난마처럼 얽힌 노동시장 외면한 정치 레토릭
정규직 전환 초점, ‘사람’ 아닌 ‘직무’여야
내부자에게만 기회 준 일괄채용, ‘불공정’이라 인식 못해
‘비정규직 차별 안 된다’면서 정규직 특권은 외면
“386세대 비중 높은 기업, 청년 고용 줄여”
6월 30일 서울 마포구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들이 보안검색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를 문제 삼는 내용의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한 때는 1995년이다. 1986~1988년 3저(달러·유가·금리) 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늘면서 경기가 고속 상승세를 탔다. 민주화 직후인 1987~1989년에는 명목임금이 급격히 올랐다. 그 와중에 업종 전환 및 자동화 등 비즈니스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기업 처지에서는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노동비용을 절감하려 ‘신인사관리’를 도입했다. 직무에 따라 선별한 핵심인력만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고용 문화가 확산했다. IMF 위기는 그와 같은 변화에 속도를 더하는 계기였다.(유경준 외, ‘노동의 미래’ 중)
즉 IMF라는 외생변수가 아니라,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따른 개별 기업의 대응이 ‘비정규직 시대’의 시발점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는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술혁신으로 산업 고도화가 이어지면 기업의 인사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 의원은 정치인답게 상황을 단순화하고 진영논리를 펴는 데 능했다. 그는 6월 27일 “보수정권이 만든 ‘비정규직의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가만히 계셨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그걸 고쳐나가느라 정신이 없다”고 썼다. 야권의 공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다.
비정규직 비율, 노무현 정부 때 37%
김두관 의원 페이스북
이 와중에 노무현 정부와 여당(열린우리당)은 2007년 7월 1일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했다. 기간제(계약직)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한 게 골자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2년마다 해고가 잇따라 비정규직 규모가 줄지 않으리라는 지적이었다. 예측대로 비정규직 규모는 줄지 않았고, 2018년에 이르자 661만 명까지 치솟았다.
통계청이 2018년에 낸 ‘한국의 사회동향’(2018)에는 김 의원에게 뼈아플 만한 대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32.2%로 가장 낮았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37.0%로 가장 높았다. 공식 통계를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가 고쳐나가느라 정신없는” ‘적폐’는 노무현 정부 때의 노동정책인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국민 모두에 동등한 입사 기회를 주라’는 취지의 주장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보내고, 일반 취준생과 똑같이 경쟁해서 정규직을 새로 뽑아야 한다는 논리는, 도대체 얼마나 좋은 대학을 나와야 터득할 수 있는 건지 매우 궁금하다”고 썼다. 또 “이게 ‘정규직 신규채용’이지, 어떻게 ‘정규직 전환’인가?”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전환’의 의미를 지나치게 사람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경제학계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하는 것과,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동어반복 같지만 의미는 판이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목표라면 먼저 비정규직이 담당하던 직무를 정규직 담당 직무로 전환하고,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는 절차를 통해 그 직무에서 일할 사람을 뽑았어야 한다는 거다.(유경준 외, ‘노동의 미래’ 중)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같은 높이의 시험을 보고 들어와 (경쟁을) 시작해 중간에 문제가 생겨 탈락하면 공정한 것이다. 반면 처음에 다른 높이로 들어왔는데, 오래 있었다고 나중에 같아지는 건 과정이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기회를 줘 똑같이 올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공개 경쟁이 아닌 기존 직원에게만 기회를 준 일괄 전환 채용이 정의와 공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권의 말마따나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직접고용으로 전환”(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해야 한다면 그 문(門)은 울타리 바깥으로도 개방돼야 했다.
순손실 3244억 원, 연봉 9129만 원
6월 17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 뉴스1]
하태경 미래통합당 인천국제공항공사 공정채용 TF 위원장(3선·부산 해운대갑)은 7월 7일 인천공항을 찾아 “올해 인천공항 매출이 전년 대비 54.7% 줄고, 당기순이익도 8660억 원에서 3244억 원 순손실로 적자 전환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공항 이용객이 급감한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예측 규모는 다르지만 인천공항도 4월 23일 “올해 당기순이익이 전년(8660억 원)대비 8823억 원(-102%) 감소해 163억 원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인천공항은 17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례가 역시 공사(公社)인 KBS다. KBS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585억 원, 759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그런데 KBS에서 2018년 기준 1억 원 이상 연봉자 비율은 전체 직원의 51.9%에 달했다. KBS는 이에 대해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 대규모 인력을 채용했다. 이들의 근속연수가 높고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최근에는 신입사원 채용을 최소한으로 억제해 왔다”(KBS, 2019년 9월 16일 보도자료 중)고 했다. 이에 양승동 KBS 사장은 7월 2일 “신규채용을 위해 상당 규모 감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도 KBS의 전례는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 경쟁력은 영원불변하지 않다. ‘황금알 낳는 거위’라던 공항산업도 코로나19로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그 와중에도 임금은 공기업 중에서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공공기관 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결산 기준 인천공항 정규직 1인당 평균 연봉은 9129만8000원, 평균 근속연수는 11.5년(138개월), 신입사원 초임은 4507만9000원이었다.
여기다 1900여 명을 직고용 대상으로 선정했다. 현재 이들의 연봉은 3850만 원으로 설계됐지만, 향후 노조 권력의 무게 추가 보안검색노조로 기울 수 있다. 대표 노조가 바뀔 개연성도 작지 않다. 협상력에 따라 보안검색요원의 연봉이 크게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인천공항은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 지침에 따라 총액인건비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정규직이 급증한 만큼 울타리 외부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크지 않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에 합격해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규직 연봉을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은 내놓지 않았다. 맥락상 모든 비정규직에 정규직 수준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처럼 읽힌다. 일종의 ‘상향 평등’이다.
대기업·공기업의 ‘정규직 캐슬’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가 나왔다. ‘불평등의 세대’를 쓴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전병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와 함께 ‘한국사회학’ 최신호에 ‘세대·계급·위계Ⅱ: 기업 내 베이비부머·386세대의 높은 점유율은 비정규직 확대, 청년 고용 축소를 초래하는가’ 제하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2005~2017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체 패널 데이터를 활용해 각 기업의 50대 이상 비율, 30세 이하 비율, 비정규직 비율 간 상관관계를 실증 분석했다.그 결과 386세대를 중심으로 50대 이상 장년 고령층이 증가했고, 30대 이하 청년층은 감소했다. 특히 고령자 비율이 높은 기업이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높은 임금에 직장 내 고령화까지 겹치면 기업에 비용 위기가 발생했다. 또 50대 이상 장년 직원 비중이 높은 기업은 비정규직 비율을 더 높였다는 게 입증됐다.
이 과정에서 근속 연수에 따라 지위·임금이 오르는 연공임금제가 큰 변수로 작용했다. 2015년 기준 55세 이상 비중이 높은 기업에서 연공임금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청년 고용을 줄였다. 연공임금제를 바탕으로 질 좋은 일자리를 과잉 점유한 장년 세대 탓에 청년 실업이 심화하고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의미다. 이에 연구팀은 “연공 위주 호봉제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만들어 연차에 비례해 연장자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상승분을 청년고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사용해야 한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와 같이 복잡다단한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지 않고 “공기업 취준생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는 하나도 충돌하지 않는다”고 썼다. 얽히고설킨 다종다양한 변수를 보지 못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못 본 체하는 셈이다. 대기업·공기업 중심의 ‘정규직 캐슬’을 허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아픔에 공감한다면서 정규직의 특권을 축소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공기업, 뽑을 만큼 뽑은 듯”
번지수를 잘못 짚으면 기대와는 다른 목적지에 가닿는다. ‘묻지마 정규직 전환’에 가까운 여권의 인식이 낳은 폐해는 감염병처럼 사회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이 떠안게 되는 모양새다.김상봉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내놨지만, 임시 일자리를 다 포함한 수치다. 이미 공공기관이 사람을 뽑을 만큼 뽑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력 없는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게 상당히 어려워졌다. 성장이 정체 상태고, 언택트(비대면) 경제가 확산하고 있어 취업시장 상황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