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분-CU 콜라보 밀맥주
수제맥주 완판 행진 이어져
제주에일 마셔 봐쑤꽈?
주세법 개정·日製불매·코로나19로 날개 달아
한국 맥주 맛없다? 흰소리!
곰표맥주 [BGF리테일 제공]
수제맥주 기사를 쓰기로 했다. 직접 맛을 봐야 했다. 요즘 ‘핫’한 수제맥주 목록을 추리고 하나둘씩 마셔보기로 했다. 첫 타깃은 곰표 밀맥주. ‘곰표’ 대한제분과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수제 밀맥주다. 5월 출시 3일 만에 초도(初度) 물량 10만 개, 1주일 만에 30만 개 완판 기록을 썼다.
“곰표 밀맥주를 꼭 찾아야 한다”
‘곰표 맥주’는 출시 1주일 만에 30만 개 완판 기록을 세웠다. [뉴시스]
“곰표 밀맥주를 꼭 찾아야 한다”는 말에 점장이 말했다. “아! 그거요. 요즘 인기라던데…. 여긴 없고 다른 매장에 초도 물량 6캔 ‘짱’박아 둔 것 있어요. 제가 구해 드릴까요?” 곰표 밀맥주를 찾는 이유를 설명하고 연락처를 건넸다. 며칠 후 매장을 다시 찾아 곰표 밀맥주 이야기를 꺼내자 “안 그래도 점장님이 맡겨놓으셨다”며 내놓는다. 이렇게 편의점 순례 끝에 곰표 밀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맥주 맛은 ‘달달(甘)’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다. 코끝으로 과일향이 스며들었다. 캔에 표시된 QR코드로 접속하니 ‘탄생 이야기’가 나온다. 패션프루츠·복숭아·파인애플 추출물이 가미됐다. 제조사는 세븐브로이양평. 사명에서 알 수 있듯, 경기 양평군 소재 소형 양조장이다. 2017년 3월 설립(설립 당시 사명은 ‘수제맥주7’)된 업력(業歷) 3년차 맥주회사다.
세븐브로이양평은 한국 맥주사(史)에 1933년 설립된 대일본맥주(현 오비맥주), 쇼와기린맥주(현 하이트맥주)에 이어 77년 만에 탄생한 ‘국내 3번째 맥주 제조·유통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세븐브로이양평이 공급하는 생맥주 브랜드는 인디아 페일 에일·바이젠·골든에일·스타우트·필스너 등 5종이 있다. 서울·전라·강서·서초·달서·양평·한강 등 한국 각지 지명이 들어간 병맥주와 강서·맥아·더 캔·한강·곰표 캔맥주는 마트·편의점에서 접할 수 있다. 대한제분과 손잡고 만든 곰표 밀맥주가 시쳇말로 ‘대박’이 나면서 세븐브로이도 덩달아 바빠졌다. 제조·영업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곰표 밀맥주는 대한제분도 웃게 했다. 완판 행진을 이어가던 6월, 대한제분 주가는 일 평균 10%포인트 급등했다.
口味 당기는 수제맥주 시장
제주 위트 에일. [제주맥주 제공]
“경 호곡 말곡(그렇고 말고)”
제주맥주는 미국 뉴욕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에 자리한 수제맥주 제조사 브루클린 브루어리(Brooklyn Brewery)의 아시아 첫 자매회사다. 2017년 8월 출범했다. 제주시 한림읍에 연간 생산량 2000만L 규모 양조장을 설립했다. 2018년 8월 제주 위트 에일을 출시한 이래 제주 펠롱(‘반짝’이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 에일, 제주 슬라이스를 연달아 선보이며 맥주 애호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5월 스코틀랜드 브랜드 하이랜드 파크와 협업해 출시한 ‘한정판’ 배럴 시리즈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750ml 들이 한 병에 2만 원이라는 고가에도 출시 직후 5000병의 예약 물량과 1000병 현장 판매 물량이 동났다.
김배진 제주맥주 생산총괄이사는 “생산과정을 3교대로 늘려 주 7일 생산시설을 풀가동해 물량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제주맥주 시리즈의 인기는 제주도의 향취를 맥주에 구현한 덕분이다. 유기농 감귤껍질의 은은한 향을 맥주에서 느낄 수 있다.
“맛없는 김치는 못 참는 한국인들이 왜 따분한(boring) 맥주는 잘 마실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11월 22일자 ‘화끈한 음식, 따분한 맥주(fiery food, boring beer)’ 제하 기사에서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오비·하이트진로 양대 업체가 장악한 한국 시장에서는 원료인 맥아 대신 쌀이나 옥수수를 넣어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 영국 장비를 수입해 만드는 북한의 대동강맥주가 훨씬 맛있다”고 주장했다.
‘대○강 페일에일’은 이 기사에 자극받아 탄생했다. ‘대○강 페일에일’을 탄생시킨 김희윤 더부스 대표는 원래 한의사다. 2013년 김 대표는 맥주 애호가이던 양성후 씨와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기사를 쓴 다니엘 튜더 당시 이코노미스트 기자와 더불어 서울 용산 경리단길에 펍(pub)을 열었다.
대◯강 페일 에일. [더부스 브루잉 제공]
수입·유통 전 과정에서 냉장 상태를 고집한 대◯강 페일에일은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20초에 1병씩 팔리는 맥주, 치킨과 어울리는 가장 완벽한 맥주, 치믈리에일(치킨 애호가의 에일맥주) 등의 별칭도 얻었다. 이후 방송인 노홍철과 컬래버레이션한 ‘긍정신 레드에일’을 필두로 ‘특이하고 재미있는’ 수제맥주 시리즈를 내놓았다. 더부스는 맥주 애호가를 넘어 일반 소비자의 미각을 즐겁게 하며 시장을 넓히고 있다.
맥주 애호가 사이에서 품평이 좋은 ‘아크(ARK)’는 국산 수제맥주다. 브랜드 이름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Noah’s Ark)에서 따왔다. 제조사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Korea Craft Brewery)는 GS25 매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광화문’을 포함해 49종의 브랜드 맥주를 출시했다.
2014년 설립된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는 ‘부엉이 맥주’로 알려진 일본 히타치노 네스트(Hitachino Nest)를 수입·유통하는 씨에스알 와인(The Vin CSR)과 제조사 키우치 브류어리(Kiuchi Brewery)가 협업해 탄생했다. 씨에스알 와인이 자본 100%를 투자하고, 키우치 브류어리는 기술을 제공했다. 6개월여 동안 10여 곳의 부지를 답사한 끝에 충북 음성군에 양조장을 세웠다. 음성의 상수·지하수 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시기 싫은 맥주는 우리도 만들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건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의 수석 브루마스터(Brewmaster·맥주 장인) 마크 헤이먼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졸업한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이다. 애플에서 일하다 맥주 양조에 흥미를 느껴 맥주 발효, 양조기술, 미생물학을 익혔다. 미국·일본 유수 수제맥주 양조장에서 경력을 쌓았다.
수제맥주 시장이 활성화하는 가운데 원재료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스타트업’도 생겼다. 더쎄를라잇브루잉(the satellite brewing co)은 1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세계 최대 홉(Hop) 생산회사 홉슈타이너의 한국 총판으로 독일, 미국, 호주 등에서 홉을 수입해 판매한다.
한국에서 수제맥주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무렵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을 중심으로 브루펍(양조시설을 갖춘 맥주가게)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 무렵 수제맥주 시장을 이끈 건 ‘펍 크롤러(pub crawler)’다. 여러 브루펍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수제맥주를 골라 마시는 마니아들을 말한다. 5년여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향미(香味)의 수제맥주가 구미(口味)를 자극하고 있다.
수제맥주도 1만 원 4캔 할인 판촉
소수 대기업의 과점 체제가 공고한 맥주 시장에 수제맥주가 발붙일 수 있게 된 이유는 두 차례의 주세법 개정에 있다. 2014년 법 개정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들의 맥주 제조·포장판매·외부유통이 허용됐다. 2019년 법 개정에서는 맥주·막걸리 세율을 주류 가격 기준(종가세)에서 용량 기준(종량세)으로 바꿨다. 법 개정으로 캔맥주 1L당 세금이 415원 줄어들었다. 반면 생맥주는 445원, 페트맥주는 39원, 병맥주는 23원 각각 증가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차별화된 수제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가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간 비싼 재료를 쓸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했지만 종량세 도입 이후에는 세금 부담이 줄어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고 밝혔다.주세법 개정으로 수제맥주도 5캔 혹은 4캔 묶음 1만 원 할인 판촉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 한 캔당 3900~5200원 선이던 수제맥주를 할인 행사를 통해 15~40%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됐고,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다른 요인은 지난해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다. 2018년 기준 국내 맥주 시장의 20%를 차지하던 아사히·기린·삿포로·에비스 등 일본 맥주 브랜드는 매출액이 급전직하하며 매대에서 퇴출됐다. 수제맥주들이 이 자리를 메웠다. 편의점 CU의 경우, 지난해 일본 맥주 매출이 90% 이상 급감했다. 반면 국산 맥주, 그중 수제맥주 매출 증가세는 가파르다. CU의 경우 올해 1~5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5%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600억 원으로 아직 전체 맥주 시장의 1.5%에 불과하지만 5년 뒤 4000억 원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혼술족’ ‘홈술족’ 증가도 호재
[GettyImage]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음용식품팀의 한 관계자는 “주류 과세체계 개편으로 그동안 수입맥주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국산 수제맥주가 다양한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맛볼 수 있는 수제맥주의 종류가 늘어났으며 가격경쟁력도 생긴 만큼 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수제맥주 업계에는 호재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이른바 ‘혼술족’ ‘홈술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예년 평균기온보다 높았던 6월 날씨, 역대급 무더위가 전망되는 올여름 날씨도 수제맥주 업계에는 희소식이다. 미각의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든 국내 수제맥주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는 즐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