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홍길동전의 마무리가 마음에 걸린다. 풍운아 길동의 여정은 ‘율도국에서 처첩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며 끝난다. ‘문제적 고전 살롱: 가족기담’을 쓴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의 문제의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길동은 적서 차별과 처첩제도의 모순을 겪고도 왜 첩을 뒀을까? 서자·얼자의 비극을 없애려면 첩을 들이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저자는 “길동 이놈도 역시 남자였던 것”이라고 야유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들은 자신들만의 향락과 쾌락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자로서 여자를 거느리는 구조적 이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길동에게 묻지 않았지만, 아마도 처첩을 둔 것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게 분명하다. ‘차별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오? 웬 난리들이오?’”
저자는 고전소설 속 ‘가족’의 그림자에 주목한다. 양반과 남성 시선에서 재단된 서사에서 가족은 미화되기 십상이었다. 신언서판은 물론 신묘한 도술까지 부리는 양반 남성에게 천한 신분 여성은 몸과 마음을 모두 내준다. 같은 양반인 본처는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해 인내하지 못할 게 없다. 예스러운 문장으로 포장했지만, 고전소설에는 당대 남성의 욕망이 짙게 배어 있다.
이 책은 ‘불변의 희생양 메커니즘’ ‘열녀 이데올로기’ ‘처첩의 세계’ ‘가부장의 이중생활’ ‘욕망의 짝패’ ‘무능열정’ ‘은폐된 패륜’ ‘자식 사랑 패러독스’ ‘가족의 재탄생’ 등 9개 주제로 고전소설의 이면을 분석한다.
처첩제도 속에 숨죽이며 살아간 ‘천한’ 여성 이야기(‘처첩의 세계’)부터 효도를 위해서라면 자식의 목숨쯤은 포기하는 살벌한 부모 이야기(‘은폐된 패륜’)까지 저자는 고전을 비틀어 읽는다. 고전 산문을 연구한 저자의 ‘큐레이팅’ 덕에 고전 주인공에게 투영된 욕망과 눈물이 지루하지 않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