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사바나

‘인터넷 MBTI’ 성격 검사는 “가짜”

“정식 MBTI도 과신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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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7-31 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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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와 함께 퍼진 MBTI 유행

    • 인터넷상 떠도는 MBTI는 유사 테스트일 뿐

    • 공식 MBTI 신빙성 있으나, 한계 확실

    • MBTI로 타인 판단해선 안 돼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16개의 MBTI 유형. [NERIS Analytics Limited 제공]

    16개의 MBTI 유형. [NERIS Analytics Limited 제공]

    직장인 이성훈(27) 씨는 최근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이성에게 퇴짜를 맞았다. 이씨의 친구가 이성을 소개해 주겠다며 자리를 주선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루 정도 호의적 대화가 오갔으나 여성 측에서 갑자기 만남을 거절했다. 이유가 걸작이었다. 이씨는 MBTI 유형 중 ENFP인데, 자신은 ISTJ라 상극이라는 것. 이씨는 “외모 등 다양한 부분이 관여했으리라 믿는다. MBTI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핑계를 댈 정도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이 테스트를 해봤겠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10~30대 사이에서 MBTI 유형은 일종의 ‘점집’이다. 연인들은 이 도구를 통해 궁합을 점치고, 대학생들은 이번 학기 팀 과제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반추한다. 일부 직장인들은 자신의 MBTI 유형을 보며 이직을 꿈꾼다. MBTI로 파악한 자신의 성향과 지금의 직업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 사주팔자, 타로의 자리를 MBTI가 빠르게 대체하는 셈이다. 

    MBTI 검사는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개발자 캐서린 쿡 브리그스(Katharine C. Briggs)와 그의 딸 이자벨 브리그스 마이어스(Isabel B. Myers)의 이름에서 따왔다. 모녀 개발자는 현대 분석심리학의 대가인 카를 융의 성격 유형론에 근거해 사람들의 성격을 분류했다. 유형 분석의 틀은 △주의초점 △인식기능 △판단기능 △생활양식 네 가지다. 각 틀은 서로가 극과 극인 한 쌍의 특성으로 구성돼 있다.

    학계의 MBTI 신빙성 논란

    주의초점은 ‘외향성(Extraversion)’과 ‘내향성(Introversion)’, 인식기능은 ‘감각형(Sensing)’과 ‘직관형(iNtuition)’, 판단기능은 ‘사고형(Thinking)’과 ‘감정형(Feeling)’, 마지막으로 생활양식은 ‘판단형(Judging)’과 ‘인식형(Perceiving)’으로 각각 나뉜다. 4가지 유형에 각각 2가지 변수가 있으니 총 유형은 16가지가 된다. 예를 들어 ENFP 유형은 외향성(Extraversion), ‘직관형(iNtuition)’ ‘감정형(Feeling)’ ‘인식형(Perceiving)’의 조합이다. ENFP인 직장인 이씨와 그가 만난 ISTJ 여성은 가치관이 정반대라는 설명이 된다. 



    한국MBTI연구소에 따르면 이 테스트는 1990년에 국내에 도입돼 기업의 채용이나 학생들의 진로 파악에 주로 쓰여왔다고 한다.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MBTI는 알려진 바와 달리 성격 유형보다는 선천적 선호 경향성을 보는 것이다. 검사자가 어떤 상황을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심리학계와 경영학계에서는 MBTI에 대한 회의론이 등장했다. 조직행동론의 대가인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의 교수는 “MBTI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혹평했다. 그는 “MBTI 검사는 1921년 카를 융의 심리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실험심리학 이전의 것이라 검증되지 않았다. 실험으로 실증해 보면 같은 사람이라도 결과가 계속 다르게 나오는 사례가 많아 부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연구부장은 “MBTI가 단순히 성격유형 테스트라고 보면 이 같은(애덤 그랜트 교수와 같은) 오해를 할 수 있다. 응답자의 상황이나 심리에 따라 응답이 매번 달라질 수 있는 것은 다른 테스트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테스트에 임한 뒤, 전문가의 해석까지 거쳐야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 집단의 신빙성 논란 속에서도 MBTI가 젊은 세대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가 활성화한 이후부터다. 12분만 투자하면 간단하게 성격을 진단할 수 있는 약식 MBTI 테스트가 인터넷상에 올라오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 정식 MBTI는 문항이 100여 개에 달하고 전문가의 해석을 거쳐야 해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반면, 인터넷상의 약식 MBTI는 약 60개의 설문 문항에 답하면 그 즉시 결과가 나온다. 각 설문은 5점 척도로 구성돼 있는데 각 문항에 응답하면 내장된 프로그램이 이를 종합해 성격유형을 알려준다. 

    대학생 이진현(24) 씨는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친구들과 여러 심리 테스트를 공유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중 결과가 가장 상세한 것이 MBTI였다.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결과를 공유하고 검사 결과와 실제 행동이 얼마나 들어맞는지 이야기하며, 한 학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포털의 MBTI 검색량은 약 6만1200건에 불과했으나. 코로나가 본격화한 2020년 3월에는 46만4000여 건을 기록. 6월에는 검색량이 115만여 건으로 20배가량 늘었다. 

    카를 융의 이론을 기반으로 만든 테스트라는 점도 MBTI 유행에 일조했다. 대학생 김은진(23·여) 씨는 “혈액형이나 별자리 성격유형과는 달리 MBTI는 심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만든 테스트라서 신빙성이 있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인터넷상의 약식 MBTI는 얼마만큼의 과학적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MBTI 테스트의 한국어판 출판권을 보유한 ㈜어세스타는 “인터넷상의 테스트는 MBTI 테스트라 볼 수 없다. MBTI 테스트와 유사한 문항과 기존 테스트의 결과 값을 섞어서 만든 유사 테스트”라고 밝혔다. 즉, ‘가짜 MBTI’, 짝퉁이라는 것이다.

    심리학계, 의학계 모두 “MBTI 과신 안 돼”

    구직자들이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구직자들이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공식 MBTI 테스트이든 약식 테스트이든 “과신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MBTI 테스트가 신빙성이 있다는 의견은 학계의 주류라 보기는 어렵다. 인간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병원에서는 환자의 성향보다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따라서 MBTI 테스트보다는 정신 질환의 유무를 판단하는 다른 테스트를 주로 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심리학계에서도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고, 정신건강의학계에서도 쓰이지 않는 성격유형 테스트이지만 인터넷상에서는 그 결과가 마치 자기소개서처럼 사용된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계정에 자신의 MBTI 유형을 게시해 놓은 경우도 많다. 아예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 페이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의 홍나래 한림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MBTI 테스트나 온라인상의 테스트를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향에 대해 알아야 한다. 본인의 성향을 궁금해한다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식 MBTI 결과라도 금언처럼 믿고 따르는 일은 위험하다. 나 교수는 “인간의 성격은 특정 유형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MBTI는 응답자가 외향 성향이 강한지 내향 성향이 강한지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을 측정하려면 얼마나 외향적인지도 알아야 한다. 양 극단의 성향 중 하나를 선택하는 테스트로는 사람의 성향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MBTI 유형만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일이다. 홍 교수는 “궁합, 취업 등 MBTI를 통해 상대방을 파악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이는 비과학적 접근이다. 대부분이 인터넷상의 테스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검사의 정확성이 떨어질뿐더러, 한계가 있는 검사라 결과로 사람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연인 간 MBTI 궁합이나 상사와의 적합도는 재미로만 보고, 과신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김 연구부장도 “MBTI는 자신에 대한 참고자료일 뿐 모든 상황에 적용하거나 이를 통해 타인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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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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