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씨젠, 코로나+독감 한 번에 진단하는 첨단 키트 개발했다

[기업언박싱] 해외에서 더 유명한 K방역 선두 주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7-22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2000년 창업한 분자진단 대표 기업

    • 한국서 코로나19 첫 확진자 나오기 전부터 진단키트 연구개발

    • 코로나19 6개월 만에 67개국 3000만 테스트 수출 기록

    • 북미, 유럽, 중남미 등 호평…매출 95% 해외 발생

    • 코로나와 인플루엔자 동시 진단하는 키트 판매 예정

    분자진단 전문 기업 씨젠을 창업해 이끌고 있는 천종윤 대표. [지호영 기자]

    분자진단 전문 기업 씨젠을 창업해 이끌고 있는 천종윤 대표. [지호영 기자]

    “사회학 전공 45년 만에 열등감을 극복했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가 최근 한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변방’ 출신 사회학자로서 서구에 대해 가졌던 오랜 선망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얘기다. 

    전 지구적으로 확산한 코로나19는 송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이에게 새로운 현실을 보여줬다. 선진국으로 평가받던 나라들이 신종 감염병에 속수무책 당하는 사이, 한국은 과학적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세계가 주목한 ‘K방역’ 성공 뒤에는 정확도 높은 코로나19 진단키트(시약)를 신속하게 개발·생산하고, 적기에 대량 공급한 바이오기업 씨젠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코로나19 진단키트의 75~80%는 씨젠이 만든 것이다. 이 제품은 해외에서도 널리 쓰인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미국·캐나다 등 북미, 브라질·멕시코 등 중남미, 중동과 인도·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세계 전역에서 씨젠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사가고 있다. 6월 말 현재 67개국에 3000만 테스트 이상 수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씨젠 관계자는 “여전히 많은 나라가 씨젠의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구하고 싶어 한다. 생산 물량 대부분을 외국에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요즘 씨젠 매출의 95%는 해외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2주 만에 개발한 최첨단 코로나19 진단키트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코로나19 진단키트. [씨젠 제공]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코로나19 진단키트. [씨젠 제공]

    씨젠은 올해로 꼭 20년 된 ‘분자진단’ 전문 기업이다. 천종윤(63) 대표가 2000년 9월, 이화여대 생물과학과 교수 시절 창업했다. 분자진단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질병 원인을 알아내는 진단법을 말한다. 미국 테네시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UC버클리대 등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한 천 대표는 바로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 창업 당시 그가 세운 목표는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해 세계 최고가 되자”였다고 한다. 이후 씨젠은 사람의 침, 혈액, 소변 등 검체에 첨단 시약을 결합해 특정 바이러스나 세균이 있는지 탐지하는 진단기술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쌓았다. 코로나19가 유행하자 그동안 축적한 역량이 빛을 발했다. 



    중국은 2019년 12월 31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정체 불명의 폐렴 환자가 집단 발생했다’고 국제사회에 알렸다. 이 소식을 접한 천 대표는 즉시 사내 연구진에게 관련 진단키트 개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아직 국내에 코로나19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던 때다. 천 대표는 “사스와 메르스 유행을 겪었기 때문에 신종 감염병이 확산할 경우 사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봤다. 이에 대응하려면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기술이 필요한데, 우리가 바로 그 분야 전문가 아닌가. 사업적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앞서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코로나19 염기서열을 공개하자 씨젠은 이 정보를 이용해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이때 2016년부터 구축해 온 씨젠의 인공지능(AI) 진단키트 개발시스템(SGDDS·Seegene Digitalized Development System)이 큰 몫을 담당했다. 단 2주 만에 코로나19 유전자 3개(E gene, RdRp gene, N gene)를 하나의 튜브로 검출하는 진단키트가 완성됐다. 이것이 지금 세계적 각광을 받는 ‘Allplex 2019-nCoV Assay’다. 

    씨젠이 연구 개발을 진행하는 사이, 코로나19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됐다. 바이러스가 국경 장벽을 넘어 세계 각지로 확산했고, 질병관리본부(질본)는 1월 27일 씨젠을 비롯한 몇몇 진단 전문 기업을 불러 관련 제품 개발을 요청했다. 이미 씨젠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던 때다. 씨젠이 곧 완성한 코로나19 진단키트는 2월 7일 ‘유럽체외진단시약 인증(CE-IVD)’을 획득하고, 2월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씨젠의 빠른 의사 결정이 빛을 발한 순간은 또 한 번 있다. 2월 23일 우리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때다. 천 대표는 즉시 모든 임직원에게 다른 업무를 중단하고 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에 참여하도록 지시했다.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하던 박사학위 소지자가 진단키트 포장 작업에 투입될 만큼 ‘비상한’ 상황이었다. 천 대표는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진단키트 공급 요청이 쇄도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였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직원들도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헌신적으로 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씨젠의 진단키트 생산 역량은 주당 10만 테스트 수준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500만 테스트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대폭 증산하는 과정이 쉬웠을 리 없다. 천 대표는 “많은 사람이 우리가 단시간에 수준 높은 진단키트를 개발해 낸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짧은 시간에 진단키트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밝혔다. 심지어 당시는 코로나19로 세계 물류에 차질이 빚어진 때였다. 진단키트 원재료는 물론 튜브 등 소모품 수급조차 쉽지 않았다. 씨젠은 매일 천 대표 주재로 비상경영회의를 하면서 숨 가쁘게 상황에 대응해 나갔다.

    개발보다 힘들었던 진단키트 대량생산


    그 뜨거운 시간이 6월 초까지 이어졌다. 현재는 회사 운영이 정상화된 상태다. 천 대표는 “이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평소 월 2000만 테스트, 필요하면 4000만~5000만 테스트까지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밝혔다. 만에 하나 코로나19가 다시 크게 확산하는 상황이 온다 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한다. 

    짚어둘 것은 씨젠이 코로나19 국면에 단지 발 빠르게 대응한 덕분에 현재 위상을 확보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한 기업은 국내외에 씨젠 말고도 많다. 그러나 기술력 면에서 차이가 있다. 

    상당수 진단키트가 코로나19 목표 유전자 2개를 탐지하는 수준에 머문다. 반면 씨젠은 2월 개발한 첫 제품부터 ‘유전자 3개 탐지’ 기술을 선보였다. 현재는 ‘유전자 4개 탐지’ 기능을 갖춘 진단키트를 개발해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다. 국내 승인 절차도 진행 중이다. 이 제품을 사용하면 코로나19 병원체에 변이가 나타난다 해도 진단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25일 ‘K방역’ 성공에 기여한 진단업체 관계자를 격려할 목적으로 씨젠 본사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천 대표에게 “바이러스에 변이가 나타나면 진단키트도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천 대표는 “바이러스가 아무리 변화해도 사람이 마음먹고 대응하면 잡아낼 수 있다. 머잖아 어떤 변이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선보일 것”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목표 유전자 4개 탐지’ 기능을 갖춘 진단키트가 바로 이때 예고한 제품이라고 한다. 천 대표는 “코로나19 병원체는 RNA 바이러스로 변이가 잦다. 2개보다는 3개, 3개보다는 4개를 탐지하는 게 좋다.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유전자 4개를 튜브 하나로 한꺼번에 탐지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곳은 씨젠뿐”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한 번에 진단한다

    분자진단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고 있는 씨젠 연구실. [씨젠 제공]

    분자진단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고 있는 씨젠 연구실. [씨젠 제공]

    이런 성과의 바탕에는 씨젠이 20년에 걸쳐 축적해 온 분자진단 분야의 다양한 원천기술과 연구개발 노하우가 있다. 특히 여러 유전자를 한 번에 검사하는 멀티플렉스 기술 면에서 씨젠은 독보적 역량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미 씨젠은 신종플루·계절성 독감·폐렴 원인균 등 26종 감염 여부를 한 번에 판별하는 호흡기질환 진단키트, 임질·매독·클라미디아·헤르페스 등 28종을 한 번에 탐지하는 성감염증 진단키트, 자궁경부암 원인 바이러스 28종을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진단키트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천 대표는 “5개 이상 유전자를 튜브 하나로 한꺼번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회사는 현재 세계에 씨젠뿐”이라며 “우리가 멀티플렉스 진단에 특화된 DPO™, TOCE™, MuDT™ 등의 원천기술을 가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씨젠은 하반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코로나19를 튜브 하나로 검사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조만간 시장에 선보인다. 이미 제품 개발은 끝난 상태로, 씨젠은 인허가 과정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유럽에서 9월께 판매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플루엔자바이러스 본격 유행 전 출시를 목표로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상태다. 

    천 대표는 “조만간 여러 호흡기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계절이 온다. 이때는 코로나19 한 개만 검사하는 진단키트가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씨젠은 6월부터 유럽에 일반 호흡기바이러스 17종과 코로나19 등 18종을 같이 검사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 이 검사를 다 하려면 진단키트 2개가 필요하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제품이 방역 당국 승인을 거쳐 정식 판매되면 좀 더 간단하게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를 동시 진단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한편 코로나19 관련 신기술로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씨젠은 요즘 급속히 몸집을 불리고 있다. 1분기 영업이익은 398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배 이상 늘었다. 매출액도 818억 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코로나19 관련 매출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2분기(4~6월) 실적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씨젠 주가는 이미 급상승한 상황이다. 올 초 3만 원대에서 7월 14일 종가 기준 18만 원대까지 수직상승했다. 5월 14일 주가 10만 원을 돌파했을 때만 해도 한편에서는 “상승폭이 너무 가팔라 조만간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달랐다. 올 초 8119억 원이던 씨젠의 시가총액은 7월 14일 종가 기준 4조8087억 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천 대표는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유행이 잠잠해지면 분자진단 분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커지면서 오히려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감염성 질환을 한 번에 검사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원인을 규명하는 증상기반 진단(syndromic testing)’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은 배탈이나 감기에 걸리면 원인균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대략적으로 증상을 치료한다. 하지만 진단키트로 코로나19 병원체를 찾아내듯 원인균을 정확히 진단하면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다. 이런 시대가 조만간 열릴 거다. 씨젠은 그 시대를 선도하도록 기술 연구와 제품 개발에 더욱 힘쓰겠다.” 

    ‘코로나19 이후’를 내다보는 천 대표의 포부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