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훌쩍 큰 오리온의 비밀, 중국·데이터·빚 털기

[기업언박싱] ‘재무통’ 허인철의 야망, 에비앙·켈로그 넘보나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0-07-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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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에도 분기 영업이익 69.7%↑

    • 사드로 고전하던 중국서 월 매출 730억 원

    • 영업이익률 16%, 경쟁업체 압도

    • POS데이터 도입해 반품률 0.6%로 낮춰

    • 지난해 부채비율 47% “신규 사업 체력 비축”

    • 용암수 1200억 원, 마켓오 네이처 620억 원 투자

    *숫자를 통해 기업과 산업을 낱낱이 뜯어봅니다. 기업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혁신의 현장을 전합니다.

    중국에서 초코파이는 ‘하오리여우 파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오리온 제공]

    중국에서 초코파이는 ‘하오리여우 파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오리온 제공]

    2010년대 초반 오리온은 위기였다. ‘국민 간식’ 초코파이로 돌파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돈은 엄한 데서 줄줄 샜다. 2012년 4분기 건설계열사 메가마크의 미분양 물량이 늘어 그룹 전체의 실적이 적자로 전환했다. 2013년에는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3.3%나 줄어들었다. 웅비(雄飛)를 위해 건설·복권·스포츠·외식·미디어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지만 부실계열사만 늘린 꼴이 됐다. 잔뜩 낀 거품을 걷어낼 필요가 있었다. 

    담철곤(65) 회장이 직접 CEO(최고경영자) 물색에 나섰다. 허인철(60) 전 이마트 사장이 낙점됐다. 그는 2014년 7월부터 서울 용산구 오리온그룹 사옥으로 출근했다. 전문경영인으로 부회장 직책을 단 사람은 오리온에서 그가 처음이었다. 허 부회장은 1986년 삼성그룹 입사 후 삼성물산 경리과장을 지냈고, 1997년 신세계로 옮겨 경영지원실 경리팀장과 재경·관리담당 임원, 경영전략실장을 역임했다. 경력이 말해주듯 ‘재무통’이다. 

    대기업 오너가 재무 라인을 요직에 발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나 쓸 데 없이 새는 돈을 줄이라는 거다. 방점은 ‘내실 강화’에 찍혀있다. 그래야 위기 때 버틸 힘이 축적된다. ‘허인철호’ 깃발을 달고 6년을 보낸 오리온은 뚜렷하게 변했다. 6가지 숫자로 오리온을 언박싱(unboxing)했다.

    반전드라마와 차이나드림

    ①실적

    7월 14일 오리온은 6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1573억 원, 192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8% 늘었다. 영업이익은 53.6% 증가했다. 앞서 공개된 4~5월 실적을 더하면 오리온의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181억 원, 852억 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17.1%, 영업이익은 69.7% 늘어난 수치다. 



    1분기(1~3월)에도 오리온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5.5% 증가했다. 감염병이 독버섯처럼 퍼지는 와중에 성적표가 외려 개선됐다. 코로나19로 ‘집콕족’이 늘면서 초코파이, 다이제, 닥터유, 고래밥, 포카칩, 썬, 꼬북칩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제품이 고루 팔렸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여기다 학교가 개학을 연기하면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간식 수요도 증가했다. 스낵과 라면, 가정간편식(HMR)을 만들어 파는 업체들이 호재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오리온의 상승세는 유독 돋보인다. 2019년 7월 22일 8만3600원이던 주가는 2020년 7월 22일 13만5000원으로 치솟았다. 7월 9일에는 종가 기준 15만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전망도 좋다. 조상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제과산업 특성상 한 번 고착된 매대 점유율은 단기간 내 바뀌기 어렵다. 오리온은 공격적 신제품 출시를 통해 매대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면서 “목표 주가는 17만5000원”이라고 밝혔다 대체 오리온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비밀을 풀 첫 번째 열쇠는 중국에 있다. 


    ②차이나드림

    오리온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181억 원, 852억 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17.1%, 영업이익은 69.7% 늘어난 수치다. [오리온 제공]

    오리온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181억 원, 852억 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17.1%, 영업이익은 69.7% 늘어난 수치다. [오리온 제공]

    오리온 중국법인 6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730억 원, 81억 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5%가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224.0%나 폭증했다. 같은 달 한국법인은 매출액 589억 원과 영업이익 70억 원을 기록한 바 있다. 중국에서 ‘하오리여우 파이(초코파이)’ ‘하오요우취(스윙칩)’ ‘야!투도우(오!감자)’ ‘슈위엔(예감)’ 등 오리온의 ‘스테디셀러’가 인기를 끌었다. 오리온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초코파이나 감자 스낵의 매출 비중이 높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을 때 중국 소비자들이 식사 대용으로 많이 구매했다”고 말했다. 

    시기를 주목해야 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6월 성적표를 근거로 오리온이 중국 시장에 완연하게 안착했다고 판단한다. 이정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시장은 전통적으로 6월이 비수기다. 7~8월 여름 성수기와 9~10월 국경절 성수기를 앞두고 재고 조정에 들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럼에도 700억 원대 중반 매출액이 발생한 것은 시장 수요가 증가하고, 점유율이 상승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중국법인은 오리온 매출에서 절반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법인 매출은 2012년 한국법인 매출을 넘어섰다. 중국에서 장사가 잘되면 그룹이 살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룹이 위기로 내몰리는 구조다. 2017년 1분기 오리온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9.9%나 감소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태 여파로 중국에서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진 탓이다. 3년여가 지나 반전드라마가 완성됐다. 1993년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세워 대륙에 첫발을 디딘 오리온이 차이나드림에 성큼성큼 다가선 것이다.

    반품률과 POS데이터

    허인철 오리온그룹 부회장. [뉴스1]

    허인철 오리온그룹 부회장. [뉴스1]

    한 가지 이유만으로 기업의 매출액이 커질리 없다. 투자자 역시 한 가지 이유만으로 주식시장에서 행동하지 않는다. 오리온이 실적과 주가를 한껏 끌어올린 데는 또 다른 비밀 두 가지가 숨어있다. 높은 영업이익률과 낮은 부채비율이다. 이 대목에서 소환할 인물이 허인철 부회장이다. 수익성을 키우고 빚을 터는 데 그의 역할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③POS데이터

    2분기 잠정실적치(매출액 5181억 원, 영업이익 852억 원) 기준 오리온의 영업이익률은 16%가 넘는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률 역시 16%를 상회했다. 1000원을 팔면 160원을 남겼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농심, 해태제과, 롯데제과의 영업이익률은 한 자리 수를 기록했다. 범위를 주류, 식음료업계로 넓혀도 두 자리 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는 회사는 드물다.
    오리온 관계자는 “생산 효율화가 영업이익률 상승에 영향을 끼쳤다. 제조사다 보니 소비자가 무슨 제품을 사먹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어떤 제품에 집중할지 판단할 수 있다”면서 “2016년부터 POS(Point of Sales, 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 데이터를 활용해 생산·판매계획을 짰고 판매 경향을 확인해왔다. 이를 통해 반품률과 재고율을 낮췄다”고 말했다.
    오리온은 허 부회장 취임 뒤 POS데이터 구축에 힘써왔다. 이를 활용하면 각 매장 내 POS를 통해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할 수 있다. 자연히 소비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샀는지 알면 그에 맞춰 생산 계획을 짜면 된다. 대체로 제조업체들은 그간 POS데이터 활용에 인색했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유통 채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오리온은 POS데이터를 활용해 2016년 기준 2.8%이던 반품률을 올해 1분기 0.6%까지 낮췄다. 사실상 반품 제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④부채비율

    허 부회장 취임 후 오리온의 빚은 꾸준히 줄었다. 지난해 부채비율은 47%에 불과해 2018년 62.7%에 비해 15.7%포인트 감소했다. 한때 부실계열사 탓에 골머리를 앓던 기업이라고는 볼 수 없는 성적표다. 오리온 관계자는 “2019년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해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법인의 초창기 사업투자 차입금을 모두 상환했다”고 했다. 수익성 강화가 재무 상황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지난해 오리온의 영업이익은 2018년보다 16% 증가한 3273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치였다.

    신규 사업을 위한 체력

    사람이건 기업이건 빚이 줄면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 과감해진다. 오리온 관계자는 “건실한 재무구조로 인해 사업을 확장하고 신규 사업을 추진할 충분한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재무통이라고 내실만 강화하다 시간을 보내리라고 본다면 오산이다. 허 부회장은 해마다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단, 본업의 테두리 안에서 말이다.

    ⑤1200억 원과 물

    2019년 12월 3일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제주용암해수단지에서 열린 ‘오리온 제주용암수’ 공장 준공식에 앞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허인철 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12월 3일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제주용암해수단지에서 열린 ‘오리온 제주용암수’ 공장 준공식에 앞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허인철 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생뚱맞게 건설이나 복권에서 돈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결국 먹는 데서 새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 오리온이 주목한 제품이 물이다. 오리온은 지난해 12월 3일 제주 제주시 구좌읍 용암해수 산업단지에 1200억 원을 투자해 용암수 공장을 준공했다. 6월 판매를 개시한 ‘오리온 제주용암수’는 한 달 동안 150만 병이 팔렸다. 

    다만 용암수는 제주도와의 계약에 따라 국내 판매를 위한 물량을 하루 평균 200t으로 제한했다. 같은 ‘제주산’인 삼다수의 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용암수가 조커로 기능하려면 수출 성적이 좋아야 한다. 오리온은 최근 중국, 베트남에 용암수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매출 비중이 큰 중국에서는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 2030 세대 직장인들이 밀집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⑥620억 원과 간편대용식

    허 부회장은 그래놀라(Granola) 시장에도 주목했다. 그래놀라는 콘플레이크처럼 곡물, 견과류, 말린 과일 등을 혼합해 만든 간편대용식으로 주로 우유에 타서 먹는 제품이다. 국내에서 1인 가구가 증대하고 있어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오리온의 간편대용식 브랜드가 ‘마켓오 네이처’다. 오리온은 2016년 농협과 합작법인 ‘오리온농협’을 설립하고 620억 원을 투자해 경남 밀양시에 간편대용식 공장을 건설했다. 그러면서 5년 내 연 매출 1000억 원대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허 부회장의 말마따나 “제과를 넘어 종합식품기업으로 크겠다”는 거다.

    에비앙과 켈로그

    처음 오리온에 왔을 때 그는 요샛말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급한 불을 끄고 사업을 정상궤도로 안착시켜달라는 기대감이 허 부회장을 감쌌다. 그런 그의 입에서 요즘 부쩍 글로벌 기업에 대한 언급이 잦다고 한다. 징조는 이미 엿보였다. 허 부회장은 용암수를 출시할 때 “프랑스 생수 브랜드 에비앙과 경쟁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마켓오 네이처를 공개할 때는 “국내 간편대용식 시장은 켈로그나 포스트 같은 외국기업이 석권하고 있다”고 했다. 소방수 역할을 끝낸 비상대책위원장이 시나브로 더 큰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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