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을 먹으면 꼭 소파에 비스킷 가루를 흘려놓는 칠칠치 못한 사냥꾼처럼
여기는 어디일까 너는 껍질을 뒤집어쓴 만큼만 존재했음에도
생물 사물이 허락하는 만큼만 차지했음에도 숟가락이 용납하는 만큼만 먹고
시계가 나누어준 만큼만 잤음에도 우리가 거울 속 인물에게 쉽게 연루되고 마는 까닭은
영영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시름 때문이야 바보야
그와 할 건 다 해보았다 꽃도 꽂아보았고 집어등을 쫓아 갈 데까지 갔었다
그러나 터덜터덜 홀로 돌아왔지 빛의 그물을 쓸쓸히 빠져나와 다시 이곳은 어디일까
늙은이들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몸의 어느 부분이 구부러지는 거 아니라
쪼그라드는 거 아니라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 같은 걸
밤바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이 엄지발가락부터 흘리고 가는 것처럼
눈동자마저 뽑아가는 것처럼
물가에 살아선 안 된다 넌 바보가 될 거야
잠의 테두리를 따라 걷고 싶게 될 거다 저기 먼 허공을 가리키며
저 너머엔 아무것도 없다고 중얼거리고 싶을 거야 그래서 건너가고 싶었지
동공을 풀어 딱 한 방울의 검은색을 떨어뜨리고 싶었지
투명한 물잔을 혼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것이 되고 싶었다 동네가 떠나가도록
입은 꾹 다물고 싶었다
개들은 짖겠지만 콰직콰직 깨지는 잠깐 어둠 잠깐 빛
우리는 옆으로 누워서 잤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게 좋으니까
이마에 살짝 차가운 것이 닿았다 떨어지는 느낌
거울에 바보 같은 거울 얼룩
작은 것들은 계속해서 작고 양파꽃은 피지 않고
피어 있다
지고 있다
유계영
●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 시집 ‘온갖 것들의 낮’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