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처 부담에 위탁배송 활용하다 문제 불거져
창업지원센터 통해 시제품 제작…투자 못 받아
직장과 병행하다 재고 처분도 못해
창업지원금 받았지만 생활고로 쪼들려
인건비·장비유지비 감당 못해 동업자와 마찰
유명 화이트해커와 보안기업 창업, 영업하다 낙담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4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나라키움 청년창업허브센터에서 열린 ‘차세대 글로벌 청년 스타트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제작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광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광고에는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들이 나와 도전에 대한 용기를 심어준다. 그러나 ‘창업 권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비즈니스에 뛰어든 청년들의 성공률은 높지 않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8년 기준 기업생멸행정통계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생겨난 기업이 5년 뒤(2017)까지 생존한 비율은 29.2%였다. 열 중 일곱은 사업을 접었다. 화려하게 조명받는 일부 창업 성공담의 이면에는 사라져간 수많은 실패담이 있다. 실패한 청년의 삶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들은 어떤 이유로 도전을 접어야 했을까.
차예림(29) 씨는 지난해 봄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했다. 막연히 ‘사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겪어보니 회사 생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접근이 쉽고 초기 비용이 적게 드는 분야를 찾다가 인터넷 의류 쇼핑몰로 정하게 됐다. 차씨는 모아둔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국가 지원금도 알아봤지만, 쇼핑몰처럼 이미 보편화된 사업은 지원금을 받기 어려웠다고 한다.
막 사업을 시작한 그에게 최소 100장 이상만 구입이 가능한 국내 도매처는 부담스러웠다. 이에 위탁배송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도매 사이트에서 보내준 사진으로 쇼핑몰 페이지에서 홍보를 진행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위탁배송 프로그램에 들어가 주문량을 표시했다. 그러면 주 도매처인 중국에서 직접 한국의 소비자에게 상품을 발송했다.
“실밥 터져서 왔어요”
‘시각장애인 미술의 확산’ 가치를 알리기 위해 제품 디자인업에 뛰어든 정하윤 씨가 서울 한 자치구 크라우드 펀딩 사업에 참여하며 제작한 포스터. [박수민 제공]
대학생 정하윤(22) 씨 역시 “무작정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각장애인 아트워크(ArtWork)’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시각장애인 미술의 확산’이라는 가치를 알리기 위해 제품 디자인업에 뛰어들었다. 생활 패브릭, 아트 포스터 등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대학창업지원센터, 구청 등 여러 기관 도움으로 시제품 제작, 시장 반응 확인 등의 과정을 밟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정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구상해 온 일이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단순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뛰어든 대학생에게 투자하는 회사는 없었다.
직장인 임성현(34) 씨는 키토식(키토제닉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었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탄수화물 섭취를 20g 미만으로 낮추고, 많은 양의 지방과 적당량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일명 ‘저탄고지’ 다이어트다. 그는 직접 키토식을 하다가 이를 사업으로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제품 및 저탄수화물 빵을 만들어 판매한 것이다. 그러나 직장과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소비자의 불만을 혼자 해결해야 했고 무엇보다 지속적 수익이 나지 않았다. 판매가 들쑥날쑥하다 보니, 만들어놓은 재고를 처분하는 것도 일이었다. 실패 이유를 혼자 분석할 여유도, 의지도 없던 그는 사업을 그만뒀다.
기술 역량 쌓으려 IT기업 창업했는데…
부족한 자본금도 청년 창업자들의 아킬레스건이다. 대학생 이채원(24) 씨는 2018년 여행정보 플랫폼 창업을 기획했다. 그는 배낭여행을 하면서 ‘필요한 여행 정보 얻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남미 일주 때는 정보가 부족했고, 동남아 일주 때는 정보가 너무 많아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이에 다른 여행객을 위해 여행 중 알게 된 정보를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했다.블로그 방문자가 늘자 그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구상했다. 자유여행을 한 여행객들이 여정을 기록해 다른 여행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떠올린 것이다. 문제는 자본금이었다. 몇 차례 도전 끝에 창업지원금을 받았지만 창업에 시간을 쏟다 보니 당장 본인의 생활비 조달이 어려웠다. 관심을 표하는 업체와 함께 지원 사업에 도전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다음에는 붙을 수 있겠다는 희망에 일에 매달리면서 생활고는 심해졌다. 이씨는 당시의 자신을 “배고픈 꿈나무”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국 창업을 포기했다.
조영석(28) 씨는 2016년에 퍼스널 스타일링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소비자가 얼굴형이나 피부 타입(type)을 설정하면 그에 맞는 화장법, 스타일링을 조언해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온라인을 주력으로 한 사업이었지만, 오프라인 스타일링 행사 등에 소속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함께 출장에 나서기도 했다. 두 명의 동업자와 모아둔 자본금이 씨앗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니, 역시 금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소속돼 있는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인건비, 장비 유지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곧 동업자 간 마찰이 생겼고 결국 사업을 그만뒀다.
애초의 계획과 실제 업무 간 간극이 커지면서 그만둔 경우도 있다. 이재희(33) 씨는 유명 화이트해커들과 정보보안 전문 기업을 설립했다. 해커의 관점에서 IT(정보기술) 환경의 안전을 점검해 보자는 취지였다. IT 기업은 사업 초기에 고객층을 확보하고 입소문을 통해 다른 고객을 소개받는 과정이 있어야 사업을 안착시킬 수 있다. 자본금이 충분치 않으면 쉽지 않은 과제다. 그래서 이씨 본인이 영업에 적극 참여해야 했다. 기술 역량을 쌓으려고 IT 기업을 창업했는데 결국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영업 비중이 훨씬 커졌다. 결국 그는 사업을 포기했다.
청년 6인은 창업 경험을 어떻게 생각할까. 대부분 ‘창업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을 알게 됐다’며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시장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무언가에 열정을 쏟는 기쁨을 배웠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창업을 권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모두 부정적이었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차예림 씨는 “정부가 취·창업률을 높이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러나 실패해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청년은 재기 불가 상태가 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재희 씨는 “학생 창업자는 초기 자본이 거의 없어 펀딩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정부가 펀딩을 결정했다면, 지원에 그치기보다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많은 실패자에게 주목하지 않는다”
청년에게 무조건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풍토도 개선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채원 씨는 “좋은 대학·직장에 가야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사회적 강요가 옳지 않듯, 창업 역시 사회가 권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하윤 씨도 “단순히 아이디어가 있다면 창업에 도전해 보라는 식의 권유는 옳지 않다”고 했다. 현재 시행 중인 정부 지원 프로그램 대부분도 아이디어만으로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미래는 규제할 수 없다’의 저자인 구태언 변호사(법무법인 린)는 “국가적으로 창업 권하기에 나서는 분위기, 그러면서 수많은 실패자에게는 주목하지 않고 지원책도 미흡한 정책 환경은 장기적으로 청년들에게 도전에 대한 두려움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다수의 실패자가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 재도전에 나설 수 있는 환경에 좀 더 주목해야 창업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