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16일 110회 공연…‘연극 갈증’ 풀린다
‘바람이 분다–연극, 다시 밀양’ 슬로건
‘미투 사건’으로 주춤한 ‘연극 도시’ 명성 회복
관객 제한 등 철저한 방역으로 ‘안전한 축제’ 준비
2020 밀양공연예술축제가 열리는 ‘밀양아리나’(왼쪽). 2020 밀양공연예술축제 포스터.
고대 로마시대 마르첼로 극장을 연상케 하는 밀양아리나 ‘성벽극장’에서 공연되는 7일 전야제는 대경대 특별공연팀의 연극 무대와 시민과 함께하는 주제공연 ‘광대와 수녀가’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펼쳐진다.
앞서 1일~6일에는 서울예대를 비롯한 6개 대학 연극 전공자들의 공연(오후 7시)과 공개평가로 선정된 10명의 차세대 연출가들의 실험 무대인 ‘차세대연출가전’(오후 3시, 5시)이 함께 펼쳐져 한국 연극의 미래를 가름해볼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2020 밀양공연예술축제’ 홈페이지 참조).
이번 축제 슬로건은 ‘바람이 분다–연극, 다시 밀양’. 축제 조직위원회와 밀양시는 올해 축제를 기점으로 다시 밀양에서 ‘연극 바람’을 일으켜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이다.
축제는 2001년 1회 대회 때부터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수준급의 작품들을 쏟아냈지만 2018년 ‘밀양여름연극축제’를 주도한 이윤택 연출가의 이른바 ‘미투 사건’으로 잠시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밀양시는 시민들과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해 기존 ‘밀양연극촌’을 ‘밀양아리나’(‘아리랑’과 원형 경기장을 뜻하는 ‘아레나’ 합성어)로 명칭을 바꾸고, 성벽극장과 극장시설, 주변 환경을 새 단장해 관객들에게 올해 처음 선보인다.
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 대회 추진위원회는 공연별 관객 제한, 야외전광판을 통한 공연 방영 등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안전한 연극 축제’로 치르는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김건표 축제 추진위원장(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은 “코로나19로 막판까지 대회 개최여부를 고심했지만 연극 관객들 동선(動線)이 일정하고 공연 중 대화를 할 수 없는 만큼 감염 예방 수칙을 잘 지키면 ‘안전 축제’로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20년 역사의 대표적 연극축제를 통해 연극인들의 수준 높은 공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밀양공연예술축제 주 무대인 ‘성벽극장’.
놓치면 후회할 ‘주목! 이 공연’ Best 7
◇간 : 당신의 상처를 사겠습니다-일시: 8월 4일 오후 3시 밀양아리나 스튜디오극장Ⅰ
-제작: 프로젝트 그룹 배우다
-연출: 김하영, 원작·드라마트루기: 김성중
-출연: 이현준, 박정우, 김홍식, 박미영 외
소설가 김성중이 2011년 출간한 소설 ‘개그맨’에 나오는 9가지 단편 중 하나인 ‘간’을 원작으로 한다. ‘간’은 별주부전에 또 다른 상상력을 곁들인 판타지소설로, 현실과 묘하게 닮은 상상 속 이야기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간이 아니라 간 아래 붙은 상처인 트라우마를 원하는 용왕은 우승 후보를 가리는 ‘트라우마 콘테스트 TV쇼’를 개최한다. 연출자 김하영은 기발한 원작을 관객 참여형 서바이벌 형식으로 전환해 현대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풍자한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배우들이 주축인 ‘배우다’의 저력이 이번 축제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관심사다.
밀양공연예술축제 개막작 ‘낙타상자’.
-일시: 8월 8일~9일 오후 9시 밀양아리나 성벽극장
-제작: 극공작소 마방진
-연출: 고선웅, 원작: 라오서
-출연: 서창호, 박상종, 김정호, 이정훈 외
이번 축제의 개막작.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라오서(老舍) 소설을 원작으로 인력거꾼 ‘상자(祥子)’의 인생 여정을 담은 연극이다. 열심히 일한 상자는 자신의 인력거를 마련하겠다는 꿈을 이뤘지만 군벌에게 인력거를 빼앗기고, 부패한 형사에게 돈을 갈취당하고, 사랑한 여인마저 비참하게 죽는 등 삶의 비극 속에서 낙타와 같은 존재로 변하는 과정을 세밀한 시선으로 그렸다. 연출자 고선웅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밝은 달이 보이는 야외극장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될 것 같다.
◇꼬마 OZ
-8월 8일~9일 오후 4시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소극장
-제작: 극단 수레무대
-연출: 김태용
-출연: 이지유, 강유희, 홍금택, 김홍섭, 김도한
아이들 눈을 사로잡는 감성 테이블 인형극으로 ‘극단 수레무대’의 28년 역사가 느껴진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결합돼 동화적 판타지를 선사하는 차별화된 총체극이다. 아이들 눈높이로 그려진 섬세한 환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희망의 원동력을 사색하게 만든다.
◇박근형전(展)
-일시: 8월 10~15일 오후 7시 밀양아리나 우리동네극장
-제작: 극단 골목길
-연출: 박근형
-출연: 강지은, 성노진, 서동갑, 오순태 외
이번 축제의 새로운 시도 중 하나는 ‘올해의 연극인전’. ‘올해의 연극인’으로 뽑힌 박근형의 대표 3개 작품이 6일 동안 연속 공연된다. ‘박근형의 작품세계 및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세미나와 토론도 이어진다. 첫 작품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는 지독한 더위와 긴 가뭄이 있던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두 형제와 그들 자식 간 이야기를 박근형 특유의 냉소적 시각으로 담았다. 두 번째 작품 ‘만주전선’은 1943년 만주국 수도였던 신경(장춘)에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만주국 고위관리로 일본인처럼 살려는 이들을 통해 동시대를 조명한다. 마지막 작품인 ‘해방의 서울’은 1945년 8‧15 광복을 맞는 날의 조선 경성이 배경. 일제 선전영화를 촬영하는 조선 최고배우들은 만주로 촬영갈 단꿈에 빠져 있다가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일왕의 항복 선언을 듣는다.
셰익스피어와 탈춤이 만난 ‘한여름 밤의 꿈’.
-일시: 8월 8일~9일 오후 7시 반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극장
-제작: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연출: 임도완
-출연: 김미령, 권재원, 정은영, 이상일 외
셰익스피어와 탈춤이 만났다. 1998년 창단한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말의 무대언어’를 ‘몸의 무대언어’로 재해석하는 중견 극단. 임도완 연출이 셰익스피어 원작을 우리 전통연희와 탈을 가지고 색다르게 풀어낸다. 그리스 아테네가 아닌 고구려 비류국에서 환상과 마력, 자연과 도시, 귀족과 장인의 세계를 구현한다. 진실한 사랑을 찾는 연인들의 유쾌한 소동이 현대적 감각의 반(半)가면극으로 제시된다. 동서고전의 절묘한 결합이 관객의 눈과 귀를 더욱 즐겁게 한다.
야외극장에서 펼쳐지는 ‘빌미’.
-일시: 8월 14일~15일 오후 9시 밀양아리나 성벽극장
-제작: 극단 인어
-연출: 최원석
-출연: 주유랑, 정연심, 박현욱, 이경민 외
악행의 근원을 파헤치는 극사실주의 공연. 공연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스산한 공포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오간다. 펜션 주인인 최 교수 부부의 딸이 데려온 약혼자가 사망하자 부부는 관리인 김씨의 외아들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운다. 최 교수 부부와 김씨 부부의 이전투구에서 관객은 소름끼치는 인간의 본성을 접한다. 극본을 쓴 연출자 최원석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 거짓을 일삼는 인간의 부질없는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야외극장이라는 조건을 적극 활용한 인공호수 세트와 공연 말미에 퍼붓는 물세례는 무대효과의 압권이 될 듯하다.
◇꽃을 피게 하는 것은
-8월 16일 오후 5시 밀양아리랑예술센터 대극장
-제작: 극단 예도
-연출: 이삼우
-출연: 김재훈, 김현수, 김진홍, 진애숙, 고현주 외
이번 축제 폐막작. 지난해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작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창작극이다. 경남 거제를 기반으로 하는 극단 예도가 다양한 직장인으로 구성된 ‘투잡 배우’들이 뭉친 지방의 작은 극단이어서 당시 큰 관심을 끌었다. 창단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인 만큼 매 작품마다 진솔하게 우리의 인생을 그려 상당수 ‘믿고 보는’ 연극 팬을 가진 극단이다. 사립학교 재단 친인척인 김재훈은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불의에 못 참는 기간제 교사 강민정을 만나 교육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현직 국어교사인 작가 이선경이 펼치는 진정성 있는 학교이야기는 일선 교사들의 직업적 고뇌와 갈등을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극단 예도 특유의 응집력과 연출자 이삼우의 수려한 무대 언어가 벌써부터 2021년을 기대하게 만든다.
[인터뷰] 김건표 밀양공연예술축제 추진위원장
“엄선된 작품, 철저한 방역으로 세계적 축제 만들 것”
김건표 밀양공연예술축제 추진위원장.
배우 출신인 김 위원장은 밀양공연예술축제 초창기 때부터 함께 한 이 축제의 산증인. 연극 교육자와 평론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축제 추진위원회는 5월 29일 김 교수를 추진위원장(총 운영감독)으로 호선해 ‘중책’을 맡겼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코르나19로 축제 개막 여부가 불투명했는데.
“그렇다. 예정대로 개막할지, 취소나 연기를 할지를 놓고 밀양시와 많은 대화를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공연 시장과 예술인, 시민들의 문화 환경이 많이 위축됐다는 점과 밀양시의 방역 능력 등을 종합 고려했다. 시와 밀양문화재단은 축제를 안전하게 잘 치러 예술인들을 응원하고, 모범적인 축제의 선례를 남기자는 생각으로 개막을 결정했다. 현재 방역대책과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행히 국·공립극단들도 최근 공연을 재개한다고 발표했고, 서울 대학로 및 전국 공연장에서 코르나19 전파 사례가 없었다는 점도 힘이 됐다. 관객들도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수칙을 잘 지켜서 안전한 축제가 되도록 협조해주시길 당부드린다.”
-올해 밀양공연예술축제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코로나라는 복병이 나타났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지난 20년 간 연극 축제로 쌓인 에너지와 노하우를 응축시키는 터닝포인트로 만들려고 한다.”
-터닝포인트?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대‧최고 연극축제로 우뚝 세울 동력을 만들 생각이다. 20년 역사를 통해 ‘연극하면 밀양’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만큼 명품 공연 소식을 적극 알리고, 해외에도 모범사례를 적극 전파해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창작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과거 ‘밀양연극촌’이 ‘밀양아리나’로 바뀌었는데.
“그동안 밀양연극촌은 우리 연극계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한편으로는 (‘미투 사건’으로) 아픈 기억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연극축제가 연극촌에서 진행됐으니 그런 거 같다. 따라서 밀양시와 함께 아픈 기억의 장소를 치유와 변화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고,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도 그것에 중점을 뒀다. 밀양아리나는 올해 하반기 대대적인 극장 시설 공사를 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공연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교육, 체험, 전시까지 범위를 넓히고 숙박시설도 갖춰 혁신적인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기대해 달라.”
-밀양시민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거 같다.
“그렇다. 눈높이가 상당히 높다. 시민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20년 간 연극을 봐서 그런지 전문가 수준이더라. 사실 시민들이 작품과 축제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 축제는 더 성장한다. 그래야 추진위원들이 공연 작품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대회 품격에도 더욱 신경 쓴다. 올해 축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참견’해주셔야 성공할 수 있다(웃음). 냉정하게 평가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