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
“회원님 이러다 쓰러지시는 거 아니에요?”
매일 퇴근 후 2시간 운동…체지방 0.7㎏ 감량 성과
배고픔은 기본, 무기력함은 덤
식어 눅눅해진 돈가스에 무너지다
8월 11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지호영 기자]
8월 4일 프로젝트 첫 날부터 ‘삐끗’했다. 신입 기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도 저리가라 할 만큼 선배들이 밥을 잘 사준다는 점이다. 기자는 먹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 식성의 소유자인데다가, 선배들과 친목도 다지고 조직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밥약’(식사 약속)에 응한다.
그날 점심 또한 선배가 신입 기자 세 명에게 제안한 자리였다. 프로젝트를 위해 식단 관리를 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빠질 수도,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대신 아침과 저녁을 적게 먹자. 그리고 운동을 열심히 하자’였다.
“저는 마파두부밥 먹겠습니다”
이현준 기자가 식사 및 간식으로 먹는 닭 가슴살.
“이제 식사 시키자. 현준 씨는 뭐 먹을 거야?”
여기서 멈췄어야 했으나 이미 들어온 식신(食神)의 분부를 거역할 순 없었다. “저는 마파두부밥 먹겠습니다.” ‘그래도 두부는 다이어트 식품이니까 살이 덜 찌겠지’라는 생각에 선택한 메뉴다. 양심은 남아있어 두부만 다 먹고 밥은 두어 숟갈 정도 남겼다. ‘나름 조절 했어’라는 합리화도 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날 저녁은 닭 가슴살 한 조각과 참외 반쪽만 먹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운동하는 사람 사이에서 흔히 도는 이야기가 ‘식단이 7, 운동이 3’이다. 그만큼 식단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기자를 비롯한 직장인이 대개 그렇듯 엄격하게 식단을 지키기엔 변수가 많다. 1주차만 해도 4일에 이어 7일, 10일에도 약속이 있어 점심마다 고칼로리 음식(알탕, 샌드위치, 감자튀김 등)을 섭취했다.
고칼로리 점심을 먹은 날엔 나머지 끼니를 간소화하며 섭취 열량을 줄이려 애썼다. 약속이 없는 날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닭 가슴살 만두 등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땐 밥을 반 공기만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식간 배고픔이 심할 때는 닭 가슴살을 간식으로 먹었다. 집에서 먹는 식단은 ‘심플’했다. 밥 한 공기, 닭 가슴살 한 조각, 김치, 김이 전부다.
‘어떻게 저런 것만 먹고 살지’라는 걱정은 기우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주린 배엔 호텔 뷔페 부럽지 않다. 어떤 음식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는데 많이 못 먹는 것이 슬플 따름이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식탐이 남달랐던 기자는 어린 시절 밥을 먹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단다. 먹을수록 음식이 사라지는 것이 슬퍼서 그랬다나.
“쓰러지시는 거 아니에요?”
살을 빼기 위해서는 적게 먹거나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둘 다 하면 좋지만 변수가 많은 식단 대신 운동에 더욱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헬스장으로 향하는 이상 운동에는 변수가 없기 때문이다. 운동은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했다. 근력운동은 몸을 가슴, 등, 어깨, 팔, 하체 등 다섯 부위로 분할해 하루에 한 부위씩 집중해 준비운동 포함 1시간 10분가량 진행했다. 유산소 운동으론 실내 자전거를 40분 탔다. PT(퍼스널 트레이닝)가 있는 날엔 ‘타바타’로 불린다는 고강도의 유산소 운동도 시행했다.계획에 따라 두 시간가량 운동하기 위해선 적어도 오후 9시엔 헬스장에 도착해야 한다. 통근시간을 감안해 매일 7시 30분엔 퇴근해야 했다. 눈치가 보일 정도의 빠른 퇴근이다.
PT가 없는 날엔 트레이너가 짜준 프로그램에 따라 개인 운동을 했다. 근력운동을 끝내고 자전거를 탔는데, 20분쯤 지나면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페달을 힘껏 밀어낼 수 없었다. 직장에서 일하고 통근하는 것도 기력이 꽤나 소모되는데 먹는 것도 평소보다 적으니 아무래도 힘이 달렸다.
집에 와서 단백질 보충제를 ‘원 샷’ 한 후 씻으면 11시 30분. 이런저런 준비와 정리를 하다 보면 새벽 1시가 넘어 잠들곤 했다. 기상 시간은 오전 7시. 매일 6시간 이내로 잠을 자며 운동까지 병행하니 주 후반엔 마치 나사가 풀린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 선배는 기자에게 왜 그리 피곤해 보이냐며 걱정을 건넸고 담당 트레이너는 “회원님, 이러다 쓰러지시는 거 아니에요?”라고 우려했다.
체지방 0.7㎏ 감량하긴 했는데…
8월 8일 다짐을 깨고 먹어버린 ‘눅눅한 돈가스’.
배고픔은 디폴트(기본값)가 됐다. 더 큰 문제는 배고픔이 불러오는 무기력함과 짜증이다. 배가 고프니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짜증이 폭발했다. 애꿎은 어머니와 반려견에게 짜증을 쏟아내고 후회하길 수차례. 성격 파탄자가 돼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자괴감도 빼놓을 수 없다. 일요일(8월 9일)이 절정이었는데, 기운이 없어 ‘운동해야지’라는 다짐을 지키지 못한 채 오후 내내 잠만 잤다.
저녁 무렵 어머니가 외출했다 돌아오며 돈가스를 싸왔다. 지인과 먹다 남아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이성의 끈을 놓은 채 돈가스를 흡입하고 말았다. ‘밖에서는 어렵지만 집에서는 다이어트 식단 외에는 절대 다른 것을 먹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1주도 지나지 않아 깨졌다.
방금 조리한 따끈하고 바삭한 돈가스라면 자존심이라도 덜 상했을 테다. 식어 빠지고 눅눅해진 먹다 남은 돈가스에 이렇게 무너지고 말다니. 의지가 박약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러면서 ‘돈가스 한 번 먹었다고 자책까지 해야 하나’라는 반항심도 움텄다. 돈가스 하나에 기자는 ‘하이드’를 품고 사는 ‘지킬 박사’가 됐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제 한 주 지났을 뿐이다. 업무에 지장이 가서는 안 되건만 배고픔과 무기력함, 짜증은 계속해서 기자를 괴롭힌다. 몸을 얻고 모든 것을 잃게 되지는 않을는지.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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