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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나를 치고 올라오란 말야”

리듬체조 ‘2인자’ 김윤희의 ‘금빛 마무리’

  •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얘들아, 나를 치고 올라오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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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1일 제주 제일고등학교에서 열린 전국체전 리듬체조 결선에서 마지막 곤봉 연기를 마친 직후 김윤희는 정든 매트 위에 얼굴을 묻었다.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리듬체조의 마지막 무대에서 그는 ‘선배’ 신수지, ‘후배’ 손연재를 떠올렸다. 김윤희는 혼잣말로 이렇게 되뇌었다. ‘김윤희! 이젠 다 끝났어. 이젠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아도 돼. 넌 충분히 잘했어. 수고했다….’
“얘들아, 나를 치고 올라오란 말야”
동갑내기지만 ‘선배’로 불린 신수지와 초특급 스타로 성장한 손연재 사이에서 김윤희(23)는 그리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화려한 이름표를 내세운 선후배 틈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9년 동안 가슴에서 태극 마크를 떼지 않았다.

가끔은 자신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또는 리듬체조가 아닌 다른 종목을 했더라면 신수지와 손연재를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그는 치열한 경쟁 체제에서 생존해나가는 법을 알았고, ‘넘사벽’ 손연재 대신 신수지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리듬체조에서 맏언니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신수지, 손연재, 이경화와 함께 단체전 4위를,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손연재, 이다애, 이나경과 팀을 이뤄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윤희는 11월 초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금메달을 끝으로 17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오른 무릎 수술, 발목 인대 파열, 왼 무릎 부상 등 온몸이 상처투성이지만, 마지막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스승과 후배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파란만장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제는 운동선수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고 애써 강조하는 김윤희를 만났다. 섭섭함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홀가분해 보였고,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말로 2인자로서의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걸그룹 멤버를 능가하는 멋진 외모의 소유자 김윤희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가만히 있어도 ‘악’소리가 난다”

▼ 은퇴했다는 실감이 나나.

“선수 생활하며 수차례 상상해본 장면이었다. 마지막 무대를 금메달로 장식해 의미가 더 컸다. 선후배, 선생님들이 모두 격하게 축하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론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이라 아쉬움이 전혀 없다. 그러나 나를 능가할 만한 후배가 나오지 않아 한국 리듬체조의 미래가 살짝 걱정된다. 후배들도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다. 국내 대회가 열리면 우승권 후보가 누구인지 궁금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지금은 대회를 치르지 않아도 1, 2, 3위가 누구인지 다 안다. 만약 나의 마지막 무대에서 나 대신 후배가 금메달을 차지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을 것이다. 진심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 후배 (이)다애에게 이런 얘길 했다. ‘다애야, 내가 금메달 따는 걸 당연시하면 안 된다. 네가 날 치고 올라와야 우리 리듬체조가 발전하는 거야’라고.”

만약 손연재와 김윤희가 이번 전국체전에 같이 출전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내가 은메달이었을 거다. 연재가 부상도 있고 미리 잡혀 있던 행사가 많아 체력적으로 부담이 돼 전국체전 출전을 포기했다. 나와 후배들은 비교가 가능하지만, 연재와 나의 비교는 성립되지 않는다. 워낙 실력 차이가 크고, 연재의 영역과 내 영역은 클래스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서로를 볼 수 없다. 이것은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아시안게임 직후 연재가 체전에 출전하지 못할 거라고 말해서 내가 ‘네 덕분에 금메달 따겠다’고 했더니 연재가 ‘언니가 밥 한번 사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금메달인데 그까짓 밥을 못 사겠나. 더한 것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웃음).”

▼ 김윤희가 은퇴해도 손연재가 있어서 한국 리듬체조가 그래도 버틸 수 있지 않나.

“연재가 언제까지 활동할지 모르지만, 후배들과 연재의 실력 차이가 엄청나다. 연재 정도는 못해도 연재에게 자극을 주고 견제할 만한 선수가 나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다. 더욱이 단체전 경기에선 연재만 잘한다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 리듬체조를 시작한 지 어느새 17년이 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1991년생 선수가 은퇴하는 걸 보면 리듬체조의 선수 수명은 정말 짧은 것 같다.

“더 하고 싶어도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체전을 앞두고서도 어깨에 무리가 온 나머지 리본을 제대로 못 그릴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을 느끼는데 그걸 참고 4종목(볼, 후프, 리본, 곤봉) 연기를 다 소화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겠지만, 속은 ‘할머니’나 다름없다.”

▼ 선수 생활하면서 부상으로 쓰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들었다.

“원래 오른쪽 무릎 수술을 했는데 왼쪽도 안 좋아 내일 병원 가서 MRI를 찍어야 한다. 왼쪽 무릎도 100% 수술 받아야 할 것 같다. 1년 전부터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아시안게임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이 지경에 이르렀다. 운동을 심하게 한 후에 앉았다 일어나면 무릎이 제대로 펴지질 않는다. 무릎이 굳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발목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통증이 심하다. 리듬체조 선수로 사는 17년 동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다. 여기저기 ‘악’ 소리만 난다. 가만히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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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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