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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장미정씨가 대서양 감옥에서 보낸 악몽의 2년

“배고픔, 성추행, 인종차별… 누가 프랑스를 선진국이라 하는가”

  •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주부 장미정씨가 대서양 감옥에서 보낸 악몽의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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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정(37)씨. 평범한 주부이던 그는 2004년 가을, 남편 친구에게서 프랑스로 ‘짐’을 가져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금강석 원석인 줄 알고 파리 오를리 공항에 내렸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2년여의 수감생활이었다. 미처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던 ‘짐’은 코카인. 장씨는 파리 인근 구치소에서 3개월, 프랑스 본토에서 7100km 떨어진 대서양의 프랑스령(領) 마르티니크 섬의 뒤코스 구치소에서 1년여를 보냈다. 이후에는 보호관찰 형태로 마르티니크 섬에서 9개월을 살았다. 2005년 11월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장씨의 사연이 국내에 전해지자 방송과 인터넷에서는 현지 영사관계자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2006년 11월 마침내 귀국한 장씨에게서 순간의 판단 실수로 대서양의 절해고도에서 보낸 세월에 대한 회고를 들었다. 프랑스 교도행정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프랑스의 이미지가 말 그대로 ‘이미지’일 뿐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장씨의 회고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주부 장미정씨가 대서양 감옥에서 보낸 악몽의 2년
끌처럼 생긴 연장을 들고 한참을 씨름하던 세관 직원이 마침내 가방을 열어젖혔다. 책처럼 생긴 물건을 검정색 비닐테이프로 둘둘 감은 뭉치가 쏟아졌다. 금강석 원석(原石)이 아닌 건 분명했다. 투명한 물약을 갖고 들어온 다른 직원이 뭉치를 찢어 병 속에 넣었다. 갑자기 색깔이 붉게 변했다.

“코카인입니다.”

세관 직원이 무서운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내 인생도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남편의 오랜 친구이던, 나를 늘 ‘형수님’이라고 부르던 ‘조 사장’의 부탁은 간단했다. “남미 가이아나에서 유럽까지 원석을 운반해야 하는데, 한 명이 옮기면 세금 문제가 있어 여러 명이 나눠 들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그리고 옮겨주기만 하면 400만원을 주겠다는 말이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나는 석연치 않은 마음을 애써 지우고 남미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무거운 여행가방 2개를 받아들고 일행과 함께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세관 직원은 가방을 열어보라고 요구했다. 가방은 잠겨 있었고 나는 비밀번호를 몰랐다. 남미에서부터 동행했던 일행 박씨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세관 직원이 조사실로 우리를 데려갔고, 거기서 비로소 가방이 열린 것이다.

이렇게 사형을 당하는구나 싶었다. 남편과 세 살배기 딸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철저한 몸수색과 조사가 이어졌다. 나를 조직원이라고 생각한 경찰들의 표정은 무서웠다. 조 사장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남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모든 얘기를 경찰에게 했다.

다섯 시간 만에 가이아나와 파리에서 일행이 모두 검거됐다. 나의 소변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자 경찰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수갑도 풀어줬다. 동행자 박씨의 가방에서 한국인 여권 사본 100여 장이 나오자 경찰도 박씨가 모집책이고 해외여행이 처음인 나는 단순가담자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는 파리 시내의 경찰청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딱딱한 침대에 억지로 몸을 뉘었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금방 다녀오겠다며 친구집에 맡겨놓고 온 딸아이를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유치장에서는 전화도 쓸 수 없었고 편지도 불가능했다. 바보 같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계속 눈물만 흘렀다.

프렌 구치소

이틀 후 파리 근교에 있는 프렌 구치소로 이송됐다. 그곳에서는 편지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남편에게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루에 몇 통씩 편지를 써서 부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편지를 받은 서울의 남편은 외교통상부에 신고를 했다. 통보를 받은 파리의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면회를 온 것은 체포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2004년 12월9일이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사건개요와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나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오를리 공항에서 가까운 프렌 구치소에는 대부분 외국인이 수감돼 있었다. 95%가 마약이나 위조여권 관련사범이라고 했다. 재판이 시작되지 않은 이들은 3층에, 재판이 진행 중인 이들은 2층에 있었다. 2층 수감자들은 하루에 한 번씩 전화도 쓸 수 있지만 3층 수감자들은 불가능했고, 면회는 오직 대사관 직원과 가족에게만 허용됐다. 편지와 대사관 직원만이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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