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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Into the Arte ⑩] 판소리 영화 ‘소리꾼’

民心을 울리는 소리가 세상을 바꾼다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황승경의 Into the Arte ⑩] 판소리 영화 ‘소리꾼’

  • ● 탐관오리, 부패 정치인에 대한 강력한 비판
    ● 희망을 향해 외치는 심학규의 절규
    ● “엉성하고 산만” vs “감동과 재미”
    ● 서편제’ 이후 27년 만에 판소리 영화
    ● 판소리 뮤지컬 영화로 세계적 도전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장가는 신작의 씨가 말랐다고 할 정도로 한파가 불었다. 관객의 발길이 닿지 않던 극장가에는 6월부터 한국 영화가 개봉되면서 간신히 살아나는 분위였다가, 6월 마지막 주말에는 100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극장가는 이런 분위기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소설가와 동명이인인 조정래(48) 감독의 ‘소리꾼’이 7월 1일 개봉돼 관객의 메마른 감성을 적시고 있다.

불안한 나라에서 승화된 서민예술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때는 1734년 영조 10년. 이때까지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이라는 연이은 국란과 자연재해로 쑥대밭이 됐고, 조정은 그러한 나라를 온전히 재건하지 못했다. 조정은 일부 부유한 백성에게는 양반 신분을 돈을 받고 파는 ‘공명첩’을 발행해 탕진된 국고를 메웠다. 양반 수가 늘어나자 세금을 내야 하는 백성들의 부담은 가중됐다. 붕당정치로 임금은 무능했고, 정치인들은 제 뱃속 불리기에 여념 없었다. 백성들은 살기 위해 허우적거릴수록 도탄의 늪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누가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은 고달픈 민심을 눈물 섞인 시조로, 한숨 담긴 소설로, 탄식 어우러진 노래로 표현했다. 

이렇듯 조선 후기에는 사설시조, 한글소설, 민화, 탈놀이 등 서민 문화가 발달한다. 이 중 민중의 애간장을 녹이며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장르는 판소리다. 판소리는 노래하는 소리꾼과 북 치는 고수, 그리고 추임새를 넣는 청중이 함께 모인 ‘판’(장소)에서 만드는 ‘소리’(노래)로 구성된다. 천민 출신의 소리꾼과 고수가 흥과 한을 오가며 노래하는 소리에 조선팔도 남녀노소는 장단을 맞추며 환호했다. 원래 열두 마당의 판소리 작품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다섯 작품이다. 판소리는 허균의 ‘홍길동전’처럼 누가 어떻게 창작했는지 모른다. 판소리 춘향가와 심청가는 한글소설로 재창작될 정도이니 전국을 휩쓸던 당시 판소리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위안부 할머니의 애환을 다룬 영화 ‘귀향’으로 주목받은 조정래 감독과 판소리 뮤지컬영화는 연결이 안 되는 듯하다. 조 감독은 고 성우향 명창에게서 고법(鼓法·북 치는 방법)을 배웠다. 이미 국악 무대에서 판소리 고수로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는 판소리 전문가다. 2011년에 판소리와 민요를 전공하는 전통예고 학생들의 음악 이야기를 다룬 ‘두레소리’의 메가폰을 잡았을 정도다. 

조 감독은 심청가가 딸 청을 위해 지어 부른 아버지의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구상했다. 심청 이야기는 주로 효(孝)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무능하기 짝이 없고 심청의 처지에서 보면 잔혹하기 그지없다. 1976년 소설가 최인훈은 심청 이야기를 수탈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여성 서사로 비틀어 희곡 ‘달아달아 밝은 달아’를 세상에 내놓았다. 조 감독은 최인훈 작가와는 다른 서사 방식으로 해석한 심청가의 원류를 좇아간다.



조정래 감독의 새로운 시도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인훈의 희곡처럼 영화 소리꾼의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린다.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서일까. 엉성하고 산만하다는 혹평과 감동과 재미로 눈귀가 호강했다는 호평이 맞선다. 한국적 뮤지컬영화 소리꾼을 기존 상업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분명 곳곳에 어설픈 부분이 눈에 띄어 불편할 수 있다. 심청을 스토리로만 본다면 작가 미상으로 예술적 개연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식 극적 구성이나 뮤지컬영화 ‘위대한 쇼맨’(제작비 900억 원), ‘라라랜드’(350억 원)의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빗대면 말이다. 57억 원의 제작비로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영화를 시도한 ‘소리꾼’은 판소리가 가진 우리네 고유한 특성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소리꾼 심학규(이봉근 분)는 아내 간난(이유리 분), 딸 청(김하연)과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살아간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간난과 청을 납치한다. 간난의 기지로 청은 도망쳐 학규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그 충격으로 시력을 잃는다. 힘없는 천민 부녀자들을 납치해 노비로 만들어버리는 인신매매 조직은 일부 관료와 결탁해 조직적으로 대담하게 활동한다. 장단잽이 고수 대봉(박철민 분)과 학규 부녀는 간난을 찾으러 전국을 떠돈다. 학규는 눈먼 딸 청을 위로하기 위해 심청 이야기를 만든다. 허를 찌르는 속 시원한 학규의 소리는 서민들 분노의 체증을 내렸고, 애달픈 심청 이야기는 서민의 서글픈 아픔을 어루만졌다. 

영화는 권력자들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며 왜 곳간을 채우는지에 대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왜? 정치는 재력이니까.” 탐관오리 김태효(한인수 분)와 김준(김민준 분)은 중앙정치에서 잊힐 위험을 감수하면서 굳이 전주 부사 자리를 자청한 검은 속내를 이렇게 말한다. 

천년만년 권력을 쥐려는 권력자들의 탐욕에 힘없는 백성들은 속수무책 당하기만 한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극악무도한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하지 못하는 이유로 유력 정치인이 그 뒷배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김준은 백성들의 시선을 돌릴 희생자가 필요했다.

“왜? 정치는 재력이니까.”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는 판소리가 정해진 가사와 대사로 노래하는 양식이라 여기지만, 원래 판소리는 즉흥적인 예술 장르다. 그때그때 객석 분위기에 맞춰 탄력적으로 가사를 가감하며 관객과 추임새로 소통한다. 판소리에는 신분 상승에 대한 대리만족 욕구와 부정부패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이 내재한다. 

우연히 저잣거리에서 학규의 판소리를 들은 부패 관료 김준은 민초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에 충격을 받고 학규 일행에 선동죄를 뒤집어씌운다. 학규는 전주관아 옥사에서 누명을 쓰고 잡힌 아내 간난을 극적으로 만난다. 절체절명 위기에 선 학규 일행은 목숨을 걸고 김태효의 만찬 연회 무대에 선다.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학규가 뿜어내는 노래는 민심을 울리고 이는 세상을 바꾼다. 조 감독은 여기서 또 다른 판소리인 춘향가의 마지막 장면을 영화에 교차시킨다. 걸인으로 변학도의 만찬에 나타난 암행어사 이몽룡처럼 학규 일행과 같이 다니던 몰락한 양반(김동완 분)이 등장해 이몽룡의 시를 전달한다. 

“금술동이에 담긴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풍악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도다(歌聲高處 怨聲高).” 

감독은 우리네 울분이 메아리 돼 탄생한 판소리의 시대적 음악서사에 몰두한다. 관객은 갑작스러운 영화 엔딩으로 어리둥절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판소리 가락에 담긴 선조들의 애환에 숨을 죽인다. 그리고 판소리가 가진 매력에 흠뻑 빠진다.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판소리를 소재로 뮤지컬영화를 만든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문화와 사회’(공저)




신동아 2020년 8월호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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