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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실적 신세계, ‘에루샤’ 없었다면 어땠을까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사상 최대 실적 신세계, ‘에루샤’ 없었다면 어땠을까

  • ● 지난해 매출 2조1365억 원, 전년 대비 20%↑
    ● 명품이 실적 견인, 에루샤 보유 지점 호황
    ● 올해 분위기 반전, 명품 위상 하락·소비심리 위축
    ● “외부 요인 의한 성공, 지속가능성 낮아”
지난해 신세계그룹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백화점 부문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관. [동아DB]

지난해 신세계그룹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백화점 부문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관. [동아DB]

코로나19 팬데믹 2년차이던 지난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대로 유지하고 미국도 양적완화 정책을 고수했다. 이로 인해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려 대부분의 기업이 역대 최대 실적을 찍었다.

신세계그룹 역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2월 9일 신세계는 지난해 총매출이 6조3164억 원으로 전년도 4조3824억 원보다 32.4% 늘었다고 공시했다. 영업이익만 보면 5173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도 885억 원 대비 484.6%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전 영업이익 4678억 원(2019)과 비교해도 500억 원가량 많다.

실적을 견인한 건 백화점 부문이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매출은 2조1365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영업이익이 3622억 원인데, 이는 전년도 1797억 원의 두 배가량이다. 세부적으로는 명품 부문 매출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명품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4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점포 가운데 4분기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47%를 기록한 대구점이다. 이어 본점(34%), 센텀시티점(18%), 강남점(12%) 순으로 매출 증가율이 높았다. 이들 4개 지점은 모두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이하 에루샤) 등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구점의 경우 그간 루이비통만 입점해 있었는데 2020년 12월 에르메스에 이어 지난해 3월 샤넬까지 입점하면서 에루샤를 모두 갖췄고, 매출이 급신장했다.

‘에루샤’는 백화점 매출과 직결

백화점 매출 가운데 에루샤, 즉 3대 명품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3대 명품의 매출이 통상 백화점 총 매출의 1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전체 매출 가운데 명품 부문이 25.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루샤 단 3개 브랜드는 30여 해외 명품 브랜드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3대 명품 브랜드는 백화점에 최초 입점할 때 해당 백화점의 네임 밸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동 인구수, 총매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따라서 업계 TOP3인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2월 ‘여의도 더현대서울’을 오픈할 당시 에루샤 가운데 한 군데도 입점시키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각 백화점은 3대 명품을 ‘모시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현재 전국에 3대 명품을 모두 보유한 곳은 신세계백화점 4개 점포 이외에 롯데(잠실점)·현대(압구정점)·갤러리아(압구정점) 각 1개 점포씩이다. 현대백화점은 루이비통만 보유한 판교점에 올해 상반기 중으로 에르메스를 오픈하고, 샤넬도 올해 안에 입점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지난해만큼 백화점 내 명품 매출 상승세가 지속될는지 의문이 따른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해외여행 길이 막히자 보복 소비에 나섰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매번 몇 시간씩 기다려 매장에 들어가도 물건이 없어 발길을 되돌려야 하는 데다가 오픈런은 필수, 장사진을 친 리셀러(제품에 수수료를 덧붙여 판매하는 업자)와 경쟁을 벌이기까지 해야 하자 아예 구매를 포기하는 이들도 늘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김모 씨는 “대기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원하는 물건이 있기만 하다면 3시간쯤은 기다려서 살 용의가 있지만, 갈 때마다 없다고 하니 굳이 목매어 사야 하나 싶다”며 최근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소비자를 존중하지 않는 샤넬의 판매 행태도 꼬집었다. 김씨는 “클래식 백 같은 스테디셀러 모델은 리셀러가 집중 구매해 p(프리미엄)를 붙여 파는 용도로 전락했다. 샤넬도 그걸 아니까 디자인 하나 바꾸지 않고 원자재 가격과 환율 인상을 핑계로 해마다 수백만 원씩 올리는데, 일반 소비자만 호구가 되는 셈”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많은 이들이 에루샤 제품 구매에 몰려들면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백화점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이다. 56만 가입자를 보유한 한 온라인 명품 정보 공유 카페에서는 샤넬 브랜드 이미지를 두고 “오픈런에 이어 노숙런, 좀비런까지 나오니 가방을 들고 나가면 그런 부류로 보일까 봐 기분이 좋지 않다” “백화점 한 층에 샤넬 가방을 메고 있는 사람만 수십 명을 마주치니 흔템(흔한 아이템)이 된 것 같아 자주 안 들게 된다” “옛날에는 고급 이미지가 있었는데 요즘은 확실히 이미지가 대중화된 듯하다” 등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보복 소비, 해외여행으로 옮겨가

지난해 11월 가격인상을 앞두고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오픈 전부터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앉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가격인상을 앞두고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오픈 전부터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앉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팬데믹 3년차인 올해부터 확산세가 정점을 찍고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란 전망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변수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체계를 풍토병 관리 체계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월 17일 미국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관리 체계를 풍토병 관리 체계로 전환하고, 해외여행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면제를 시행했다. 영국도 1월 말 백신패스와 마스크 착용 의무를 없애고, 2월부터 자가격리를 포함한 모든 방역 규제를 폐지했다. 프랑스도 3월 중순부터 백신접종 입국자는 PCR 확인서가 없어도 자가격리를 면제해 준다.

지난해부터 한국과 자가격리 면제 협약인 트래블버블을 맺은 사이판, 싱가포르 여행은 계속돼 왔다. 3월 2일 사이판 마리아나관광청은 지난해 7월 한국과 트래블버블을 체결한 이후 7개월 동안 패키지 상품을 통해 입국한 한국인 여행객이 1만 명을 넘겼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 역시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면제를 검토하고 있어 올해는 해외여행객이 늘어날 전망이다. 2월 2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겸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오미크론 변이 유입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목표 달성은 했다고 판단한다”며 “예방접종을 완료한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를 면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데 적절한 시기에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입국자 자가격리 면제가 결정되면 최근 2년 동안 발이 묶였던 소비자들은 백화점이 아닌 면세점으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코로나19 이전 해외여행이 자유로웠던 시절, 면세점 명품 화장품 및 잡화류 소비는 해외여행족의 필수 코스였다. 게다가 3월 중으로 5000달러로 제한된 면세 구매 한도가 폐지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1000만 원이 넘는 샤넬백도 면세점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30대 직장인 최모 씨는 “해외여행 티켓만 끊으면 백화점 오픈런에 연연할 필요가 없게 되니 기대하고 있다”면서 “오미크론 확산세가 수그러들면 여름휴가 시즌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면세점부터 들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외여행 재개 분위기 속에 명품 대기 수요가 분산될 것이 예상되면서 명품 매출 의존도가 높은 백화점들의 매출 타격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 내 명품을 제외한 일반 브랜드의 경우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백화점 내 일반 패션 및 잡화 브랜드 매장은 ‘쇼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30대 직장이 최모 씨는 “옷이나 신발은 온라인에서 보는 것과 실제 색감이나 재질이 다르고, 직접 착용 해봐야 후회가 덜해 백화점을 찾지만 직원에게 ‘돌아보고 올게요’ 하고 나와서는 구매하지 않는다”며 “검색해 보면 온라인몰에서 많게는 10%가량 할인해 주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판매자 가운데서도 백화점 매장을 홍보 수단의 일환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소규모 가방 브랜드를 3년째 운영 중인 창업자 이모 씨는 지난해 가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일주일 동안 판매를 진행했다. 그러나 매출은 같은 기간 온라인몰에서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을 때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에 대해 이씨는 “당시 확보한 팝업스토어의 위치가 유동 인구가 적은 곳이었고, 매출의 약 38%를 수수료로 지급해야 했기 때문에 수익이 썩 좋지 않았는데 사실 예상했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백화점 팝업 스토어를 열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백화점 입점 브랜드’라는 고급 이미지를 얻고, 온라인 판매가도 그만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향후 매장 오픈 계획을 묻자 그는 “백화점에 매장을 내는 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보다는 팝업스토어만 몇 차례 더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올해 경기가 지난해와 같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이 올해 서너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바 있어 시중에 풀린 자금이 일시에 미국 채권 등으로 옮겨가면 국내시장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한 올해 초부터 각종 요금이 인상되는 등 인플레이션으로 가용 자산이 줄어든 소비자들로서는 명품과 같은 사치품 소비에 지갑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는 에루샤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 매출이 주효했다. 에루샤 브랜드 가치 훼손과 명품 수요 분산,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등의 이유로 올해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낮아질 걸로 전망되는 실정이다.

명품 의존도 높을수록 타격 클 듯

따라서 백화점이 명품 의존도를 낮추고,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도 나온다. 구혜경 충남대 소비자생활정보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오프라인 매장으로서 백화점의 생존 전략은 꾸준히 모색돼 왔다. 최근 2년 동안 보복 소비 여파로 숨을 돌렸지만 이제 다시 백화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화된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탈(脫)명품 전락으로 호실적을 누린 백화점 마케팅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2월 26일 개장한 현대백화점그룹의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개점 1년 만에 매출 8000억 원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세웠다. 개점 1년간 매출만 놓고 봤을 때 국내 백화점 가운데 최대 실적이다. 3대 명품인 에루샤 없이 이뤄낸 실적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에루샤는 ‘오픈하는 백화점에는 바로 매장을 열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더현대서울에도 입점하지 않았다.

이에 현대백화점은 2030세대를 공략하고 SNS에서 인지도가 높은 신생 브랜드와 해외 컨템퍼러리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또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맛집 분점과 해외 유명 식음료 브랜드를 배치해 오프라인 수요를 공략했다. 이런 전략은 제대로 먹혔고 더현대서울의 최근 1년간 2030대 매출은 전체 매출의 50.3%를 기록했다. 입소문을 타고 지방에서 원정을 온 소비자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 전체 매출 가운데 54.3%는 점포에서 10㎞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방문한 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듯 차별화된 마케팅은 명품 입점보다 의미 있는 실적을 도출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소강 국면을 앞두고 백화점의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구혜경 교수는 “명품 매출 상승에 따른 백화점의 사상 최대 실적은 외부 요인에 의한 성공이므로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꼬집으며 “코로나19 이후에도 성장하려면 특정 백화점에 특화된 브랜드 소싱이라든지, 기존 브랜드라도 희소 아이템 판매를 시도하는 등의 특화된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동아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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