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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역 지나 보문역? 황당한 서울 버스정류장 명칭

“일방적 변경하면 주민 반발 우려 있어서…”

  • 이홍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polarizt@korea.ac.kr

보문역 지나 보문역? 황당한 서울 버스정류장 명칭

  • ●‘구룡사’ ‘구룡사입구’ ‘구룡사 앞’ 연달아 이어져
    ●지침에는 ‘반경 200~300m 이내 시설물名 사용해야’
    ●지하철역이 더 가까운데 인근 아파트名 사용
    ●건물이 사라졌는데도 정류장名 ‘그대로’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이번 정류소는 ‘보문역’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보문역’입니다.” 

6월 15일, 서울 273번 버스를 탑승한 대학생 오종환 씨는 동일한 정류장 명칭이 연달아 나오는 차내 안내방송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그는 “똑같은 정류장이 반복될 줄은 몰랐다”며 “어느 정류장이 목적지에 가까운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지하철로 환승하려고 서울 1132번 버스에 탑승한 우준하 씨도 애매한 정류장 이름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었다. ‘롯데백화점노원점’에서 하차했다면 1분도 안 돼 지하철로 갈아탈 수 있었지만, 바로 다음 정류장인 ‘노원역1번출구’에 내렸더니 서울지하철 7호선까지 5분 넘게 걸어야 했다. 우씨는 “역 이름이 들어간 정류장이 더 가까울 것 같아 내리지 않았는데 허무하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정류장 명칭이 시민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 완전히 동일하거나 비슷한 정류장이 연이어 나오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시설을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인근에 공공시설을 두고도 사적 건물을 표기하기도 하며, 명칭을 딴 시설의 이름이 바뀌거나 사라졌어도 방치된다. 



6월 16일, 기타 가방을 멘 한 남성과 함께 서울숲으로 향하는 서울 121번 버스에 올랐다. 그는 서울숲 버스킹 프로그램 참여를 앞두고 야외무대를 답사하기로 한 아마추어 음악인 이호재 씨다. 

버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잠시, 노선도를 바라보던 남녀의 대화가 이씨의 이목을 끌었다. “어라, 여기 서울숲 이름 붙은 정류장이 여러 개인데 어디서 내려야 하지?”라는 남성의 물음에 “그래도 같은 서울숲이니까 대충 내려도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여성의 말이 이어졌다.

뚝섬서울숲-뚝섬서울숲남문-서울숲 등 비슷한 정류장 명칭이 연이어 나오는 모습. [이홍주 제공]

뚝섬서울숲-뚝섬서울숲남문-서울숲 등 비슷한 정류장 명칭이 연이어 나오는 모습. [이홍주 제공]

대화를 듣던 이씨는 스마트폰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이 가려는 목적지가 ‘서울숲’ ‘뚝섬서울숲남문’ ‘뚝섬서울숲’ 정류장을 지나 또 다른 ‘뚝섬서울숲’ 정류장에서 내려야 가장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무턱대고 ‘서울숲’ 정류장에서 내렸다면 10분 넘게 걸어야 도착했을 것”이라며 “지도 앱을 살펴보지 않았다면 정류장 이름이 비슷해 헷갈렸을 것 같다”고 했다. ‘뚝섬서울숲’ 정류장에서 하차한 이씨는 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3월, 구룡사 쪽으로 가려고 서울 463번 버스를 탔던 김선범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구룡사’ ‘구룡사입구’ ‘구룡사 앞’ 정류장이 연달아 나온 것. 무턱대고 ‘구룡사’ 정류장에 내린 김씨는 다음 정류장인 ‘구룡사입구’가 목적지와 더 가깝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김씨는 “‘구룡사’만 기억했는데, 안내방송을 듣고 혼란스러웠다”며 “비슷한 정류장 이름이 여러 개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통정보센터(TOPIS)가 2019년 8월 공개한 버스 노선 및 정류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다수의 정류장이 비슷한 이름으로 연이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140번 버스 등이 다니는 노선에서는 ‘수유(강북구청)역’과 ‘수유역’ 정류장이 잇달아 나오고, 서울 2112번과 서울 2233번 버스는 ‘장한평’ 직후 ‘장한평역’ 정류장을 지나간다.

 외대역앞-외대앞(좌측), 보문역-보문역(우측)이 연이어 이어지는 273번 버스 노선도. [이홍주 제공]

외대역앞-외대앞(좌측), 보문역-보문역(우측)이 연이어 이어지는 273번 버스 노선도. [이홍주 제공]

가장 가까운 시설물을 버스정류장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수유(강북구청)역’과 ‘수유역’을 지나 한강을 건넌 서울 140번 버스 안, 강남구민 김대영 씨는 서울 지하철 7호선 논현역 환승을 위해 ‘논현역’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지하철 출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는 ‘논현역’ 정류장에서 지하철 논현역까지 10분 이상을 걸어야 하며, 다음 정류장인 ‘신사역’에서 하차해야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다 온 줄 알고 내렸는데, 생각보다 더 걷게 돼 허탈했다”며 “지하철역 명칭을 딴 정류장이 다른 정류장보다 더 멀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버스정책과로부터 입수한 ‘가로변 시내버스정류소 설치 및 운영 지침’에 따르면, 버스정류소 명칭은 반경 200~300m 이내의 시설 중 가장 근접한 시설물을 사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 이런 기준이 지켜지지 않았다. 종로구 ‘사직동주민센터’ 정류장은 100m가량 떨어진 경복궁역이 아닌 200m가량 떨어진 사직동주민센터를 명칭으로 택하고 있다. 삼양사거리역과 접해있는 ‘강북청소년문화정보도서관입구’ 정류장 역시 300m가량 떨어진 시설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설의 명칭을 딴 정류장보다 다른 정류장이 더 가까운 모순적 상황도 발생한다. 김대영 씨가 하차한 ‘논현역’ 정류장은 7호선 논현역까지 500m 넘게 이동해야 하지만, 9호선 신논현역과는 200m 떨어져 있다. ‘신사역’ 정류장 역시 350m 거리의 지하철 신사역보다 논현역이 더 가깝다. 

정류장은 인근의 고유지명, 공공시설, 문화·관광지 등 지역의 대표성을 갖는 명칭을 우선 사용토록 한다. 특정 법인 등의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자치구청이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서울시가 공개한 버스정류소 명칭 선정 기준. [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공개한 버스정류소 명칭 선정 기준. [서울시 제공]

하지만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초구 ‘삼성래미안’ 정류장은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과 접해있지만 아파트 명칭을 사용한다. 중랑구 ‘서울우유앞’ 정류장 역시 근처에 서울스포츠과학관과 중랑세무서가 있다. 노원구 ‘상계동주유소’ 정류장은 걸어서 2분 거리에 중계초등학교와 구립수학문화관이 있다. 노원구민 김미경 씨는 “버스를 이용하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류장 이름을 딴 건물이 사라졌어도 명칭이 그대로여서 이용객과 지역 주민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5월 24일 강남대로 끝자락, ‘논현역’을 통과한 140번 버스는 ‘교육개발원입구’ 정류장에 멈춰 섰다. 정류장 근처 가게에 들어가 교육개발원으로 가는 방법을 묻자 “멀다”는 대답과 함께 “30분가량 버스를 타고 가야 나온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정작 한국교육개발원은 현재 서초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초구 건물에 2017년 1월까지 있었으며, 현재는 충북 진천군에 있다. 시설이 이전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정류장 명칭이 갱신되지 않아 이용객과 지역 주민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다. 

강남구 ‘강남YMCA앞’ 정류장 역시 YMCA 건물이 인근에 존재하지 않는데, 명칭은 바뀌지 않고 있다. 공사장 담장에 붙어있는 ‘사업계획승인’ 안내판에 따르면 2018년 3월부터 해당 건물은 ‘논현아이파크’로 재건축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초구 ‘구립서초어린이도서관’ 정류장도 마찬가지다. 신수미 서초구립반포도서관 문화홍보파트 담당관은 “인근에 구립서이도서관이 개관하면서 2017년 구립서초어린이도서관의 도서가 이관됐다”며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 담당관은 “아직도 정류장명에 그대로 쓰이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공사장 담장이 보이는 ‘강남YMCA앞’ 정류장 근처 모습. [이홍주 제공]

공사장 담장이 보이는 ‘강남YMCA앞’ 정류장 근처 모습. [이홍주 제공]

버스정류장 명칭 변경은 어떻게 이뤄질까. 서울시에 따르면 주민 의견을 수렴한 자치구가 시로 신청하고, 이를 시에서 격월로 승인하는 형태라고 한다. 김용민 서울시 버스정책과 정류소관리팀 주무관은 “일방적 변경에 의한 주민 반발의 우려가 있어 가급적 요청에 따라 명칭을 바꾸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아 2020년 8월호

이홍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polarizt@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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