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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맥주 ‘삼총사’로 오비맥주 포위 [기업언박싱]

8가지 숫자로 본 테라 전성시대의 경제학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하이트진로, 맥주 ‘삼총사’로 오비맥주 포위 [기업언박싱]

  • ●시장 2~4위, 하이트진로 제품 독식
    ●적자 행진 맥주사업, 1분기 88억 원 흑자
    ●테라 5월 판매량 300만 박스 달해
    ●日 맥주 수입액 91% 급감도 호재 작용
    ●테라 출시 전 주가 1만6000→현재 4만3000원
[뉴스1]

[뉴스1]

2016년 8월 29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호텔. 김인규(58) 하이트진로 대표이사 사장이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베트남법인 설립 발표를 막 마친 그의 얼굴에 상기된 표정이 스쳤다. 금세 김 사장의 발걸음이 기자를 포함해 대여섯 명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멈췄다. 그에게는 불편할 법한 화제, 그러니까 ‘맥주사업 부진’이 얘깃거리가 됐다. 당시로부터 4개월여 전, “이름 빼고 다 바꿨다”면서 ‘올 뉴 하이트’까지 내놨는데 시장 반응은 뜨끈 미지근했다. ‘맥스’의 존재감은 돋보이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가 맥주사업을 접느냐 마느냐가 관심사였다. 

김 사장은 덤덤했다. 직설적 질문도 웃고 넘겼다. 그 와중에 “영업 업무를 참 열심히 했다”는 취지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딱 부러지게 말하진 않았으나 맥주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는 27세 때 하이트맥주(하이트진로 전신)에 입사해 영업, 인사, 경영기획 직무를 경험했다. 말단 때부터 팔던 맥주에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듬해 하이트진로가 국내 맥주공장 한곳을 매각키로 했을 때 계획을 철회시킨 사람도 그였다. 옛 영광을 잊지 못하는 CEO(최고경영자)의 고집이었을까, 혹은 믿는 구석이 있는 뚝심이었을까.

수학과 출신 CEO

김 사장은 연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대기업 CEO로는 매우 드문 수학도다. 숫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특히 사업 현황을 숫자로 정리해 분석하는 데 능하다. 비즈니스 세계의 성패도 차가운 계산기가 좌우한다. 파는 제품이 술이건 자동차건 숫자가 기업의 희로애락을 결정한다. 수학도가 이끄는 기업을 숫자 중심으로 언박싱(unboxing)해보기로 했다. 하이트진로 맥주사업과 직‧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8가지 숫자를 짚어가다 보면 뒤바뀐 ‘맥주의 운명’이 얼개를 드러낸다. 


①실적
올해 1분기 하이트진로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338억 원, 561억 원이었다. 전년 동기 –0.99%이던 영업이익률은 10.51%로 급반등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6.2% 늘었다.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했다. 매출 성장률이 20%를 웃돈 건 2011년 9월 하이트맥주와 진로 합병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김정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당초 시장 기대치(영업이익 400억∼450억 원)를 25∼40% 웃돌았다”며 “최근 하이트진로가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100억 원 규모의 충당금을 조성하면서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는데, 이 비용을 고려하면 실제 영업이익은 600억∼700억 원 수준으로 1분기 사상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②부문별 매출‧영업이익
전년 동기 대비 올해 1분기 매출 성장률의 경우, 맥주사업 부문(30.1%)이 소주사업 부문(27.1%)을 앞섰다. 맥주사업 부문은 1분기에 88억 원의 흑자를 냈다. 가히 파란으로 꼽힐 대목이다. 수년 전까지 하이트진로는 ‘맥주사업 적자를 소주사업에서 메꾸는 기업’이라고 불렸다. 정확히는 맥주사업에 성장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하이트진로 맥주사업 부문은 2013년 영업이익 477억 원을 기록한 이후 이듬해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서 해마다 20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냈었다. 



상황이 뒤바뀌자 회사 분위기도 달라졌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1분기는 맥주사업 비수기다. 성수기인 2~3분기 판매량이 1분기보다 많다”면서 “추세대로라면 연간 기준으로 맥주사업 부문에서 6년 만에 흑자전환 할 전망이다. 해마다 맥주사업이 잘 풀리다가 흑자를 내니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다”고 전했다. 


“하이트 아닌 테라가 메인 브랜드”

③브랜드별 시장점유율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맥주 소매시장에서 주류 용량 기준 브랜드별 점유율은 카스후레쉬(오비맥주) 36%, 필라이트(하이트진로) 11.6%, 하이트(하이트진로) 7.3%, 테라(하이트진로) 7.2%, 칭따오(비어케이) 3.2%, 하이네켄(하이네켄) 3%, 클라우드(롯데주류) 2.1%, 피츠(롯데주류) 1.5% 순이었다. 하이트진로 제품 삼총사가 2~4위에 자리해 1위 카스후레쉬를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다.(*과거에는 한국주류산업협회가 매월 출고실적을 기준으로 점유율을 공개했지만 2013년 3월 이후 경쟁과열 등을 이유로 관련 통계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에 닐슨코리아 통계가 가장 정확한 편이다.)

④판매량
 무엇이 그렇게 잘 팔렸나. 테라는 출시 101일 만에 1억병(330ml 소병 기준 환산)이 팔렸다. 하이트는 출시 후 1억병 팔리는데 228일이 걸렸었다. 현재 시장 1위인 카스는 93일 만에 1억병이 판매됐다. 다만 테라의 경우 뒤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2억병을 파는 데는 불과 160일이 걸렸다. 카스는 같은 양을 파는데 173일이 소요됐었다. 테라는 5월말 기준 누적 8억6000만병이 팔렸다. 기존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의 조합을 ‘테슬라(테라+참이슬)’, ‘테진아(테라+진로이즈백)’ 등 하이트진로 제품 간 조합으로 탈바꿈시킨 점도 대형호재로 꼽힌다. 

양자로 범위를 좁혀보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 품목별 소매점 매출액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맥주 소매시장에서 카스후레시와 테라는 각각 2685억5200만원과 899억8700만원으로 1·2위를 차지했다. 아직 공개된 자료는 없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격차가 줄었을 공산이 크다. 신한금융투자는 5월 테라의 판매량을 300만 박스로 추산했다. DS투자증권도 같은 달 테라가 290만~330만 박스 팔렸다고 봤다. 지난 1분기 월 평균 판매량은 200만 박스 안팎이었다. 코로나에도 외려 판매량이 늘어난 셈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내부 정보라 정확한 수치를 말할 수 없지만 증권사 분석에 일리가 있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월 판매량이 300만 박스라는 건 테라가 메인 브랜드로 올라섰다는 의미”라고 했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 상황이 그렇게 조성된다. 2006년 나온 맥스도 하이트진로의 야심작이었다. 그런데 왜 테라만 전성시대를 맞이했나. 테라의 만듦새가 돋보였겠지만, 운도 따랐다. 마침 2019년 3월에 출시된 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⑤가정용 채널 75%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도 돈을 버는 사람은 번다. 주류 시장은 업소용 채널과 가정용 채널로 나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자 회식이 줄고 업소용 채널이 직격탄을 맞았다. 향후 혼술, 홈술 트렌드 강화로 가정용 채널의 중요성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하이트진로 맥주 제품의 경우 올해 들어 가정용 채널 비중이 약 75%에 달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테라가 가정용 채널에서 점유율이 상승하는 추세”라면서 “하반기에도 가정용 채널의 맥주 판매량 증가를 중심으로 매출 고성장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올해 가정용 채널에서 업소용 채널 감소를 상회하는 수준의 매출 성장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유흥시장 판매는 예년보다 저조했고, 2분기에는 더 심화할 것 같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시장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어 1위 브랜드(카스후레쉬)와 격차를 줄여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아사히가 사라졌다

⑥일본맥주 91% 급감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액은 2억8088만 달러(약 3360억 원)로, 2018년 3억968만 달러(약 3672억 원)보다 9.3% 줄었다. 2000년 이후 맥주 수입액이 줄어든 건 2009년을 제외하면 처음이다. 2009년은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모든 수입업종이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해다. 사실상 지난해가 수입맥주 역성장의 시발점인 셈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맥주는 약 500여종 안팎이다. 이중 상위 20여종 정도가 전체 수입맥주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즉 기존에 잘 팔리던 수입맥주가 안 팔릴 때 성장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 생뚱맞게도 이 대목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등장한다. 가장 큰 계기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맥주 수입액 감소분은 2880만 달러 수준인데, 일본 맥주 수입액은 무려 6361만 달러나 줄었다. 상황은 그대로다. 관세청의 같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일본맥주 수입액은 29억2558만원(약 244만 달러)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22억5700만원·약 2689만 달러)보다 91% 급감했다. 비유하자면 아사히가 시장서 사라진 꼴이다.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의 염재화 연구원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단기간 열풍을 넘어 국산 브랜드 전반에 대한 선호 강화로 이어졌다. 맥주시장에는 일본제품을 대체할 만큼 인지도가 높은 국내외 브랜드가 많아 불매운동의 영향이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출시 후 ‘컨벤션 효과’를 자아내고 있던 테라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⑦1주 당 4만원
6월 12일 투자업계는 술렁였다. 하이트진로 주가가 전일 대비 2.7% 올라 4만2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010년 1월 5일(4만200원) 이후 10년5개월 만의 최고치다. 테라가 출시되기 전인 지난해 2월만 해도 하이트진로 주가는 1만6000원~1만7700원 선을 오갔다. 7월 6일 현재 하이트진로 1주는 4만3150원에 거래된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테라 출시 직전 하이트진로 주식 100주를 산 투자자가 7월 6일 오늘 주식을 팔았다면 약 271만원의 시세차익을 본 셈이 된다. 시가총액은 3조원을 넘어서 코스피 69위에 올랐다. 이마트, GS리테일, BGF리테일 등 주요 유통기업을 모두 앞선 수치다. 

주가는 기대심리를 품고 자란다. 최근 키움증권은 하이트진로 목표주가를 기존 4만8000원에서 5만7000원으로 한껏 올려 잡았다. 


⑧개발비용 1000억 원
업계와 하이트진로 측 설명을 종합하면 테라 개발에는 약 1000억 원이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이트진로는 전주공장을 테라 생산 전담 공장으로 전환했다. 2019년 한해 영업이익(882억 원)보다도 많은 돈이 맥주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쓰인 셈이다. 비용절감 등 내실강화에 몰두하기 마련인 수학과 출신 CEO로서는 거대한 도박에 나섰던 셈이다. 막대한 개발비용을 승인한 김인규 사장 얘기다.

“시장과 소비자 트렌드 못 읽었다”

김 사장은 올해 2월 17일(현지시간) 해외 기업설명회(IR)로 방문한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시장과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 병 색깔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있으니 매출이 떨어졌던 것”이라면서 “꾸준히 노력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매출, 영업이익, 주가가 받쳐줘야 해외 IR에 나서는 것인데, 지난 10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좋지 않다 보니 해외 설명회에 나올 수 없었다. 올해는 달라질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그는 대표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23년 3월 22일까지 연장됐다. 이제부터는 좋건 싫건 테라의 운명이 곧 김인규의 운명일 테다.



신동아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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