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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무대 오른 연극 ‘조씨고아’

[황승경의 Into the Arte⑨] “‘중국적 정의’, 복수의 끝은 어디인가”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어렵사리 무대 오른 연극 ‘조씨고아’

  • ● 국립극단 가장 보고 싶은 연극 1위
    ● 영웅 중심 중국고전, 凡人 조명한 한국연극
    ● 9族 멸하는 멸문지화, 살아남은 조무의 반격
    ●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秀作
    ● 코로나19 방역강화로 7월 19일부터 1주 공연
연극

연극 '조씨고아'. [국립극단 제공]

올해로 창단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은 두 달간(2019년 4~5월) 기념공연 선정을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국립극단 작품 뿐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연극 작품을 대상으로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에 대해서 물은 결과 4052명이 참여해 1357작품이 답변으로 나왔다. 득표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국립극단은 연극 ‘조씨고아((趙氏孤兒), 복수의 씨앗’이 압도적 표차로 최다 득표했다고 밝혔다. 

이 연극은 2015년 초연 이래 2017~2018년 연속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이 됐지만, 관객은 여전히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환호한다. 이 연극은 평단에도 깊은 인상을 줬다. 앞서 4년 간 대상을 못 내던 동아연극상 대상 작품(2016년)으로 선정됐고, 이후 4년 간 이 연극의 대를 이을 대상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13세기 중국 잡극(雜劇) ‘조씨고아’를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이 현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연극의 주인공인 조씨고아 조무(趙武)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배경은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다. 조씨 가문이 몰살된 해가 기원전 597년이니 연극의 무대는 2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나라 장수 도안고(장두의 분)는 최고 권세를 누리는 조씨 가문에 적의를 품고 역적 누명을 씌운다. 9족(族)을 멸하는 반역연좌제에 걸려 조씨 가문의 부계 4촌, 모계 3촌, 처가 2촌 300여 명은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피바람 소용돌이에서 유일하게 참형을 면한 이는 진나라 영공(이영석 분)의 누이로 왕족인 조무의 어머니 장희공주(우정원 분)뿐이다. 장희공주 뱃속 태아가 바로 조씨고아 조무(이형훈, 홍사빈 분)다. 

극형을 당할 운명이었던 조무는 태어나자마자 조씨 가문에 은혜를 입은 적 있는 시골의사 정영(하성광 분)의 손에 맡겨진다. 정영은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조무 대신 희생시킨다. 신의는 지켰지만 인륜을 져버린 정영의 가정은 풍비박산난다. 도안고의 환심을 산 정영은 자신을 아버지로 아는 조무를 도안고의 양아들로 들여보내 차근차근 복수를 준비한다. 20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던 정영은 이후 조무에게 도안고의 과거 만행에 대해 알렸고, 조무에 의해 도안고 가문도 9족이 멸족되는 멸문지화를 당한다.

2500년 동안 중국인들 사랑을 받은 이유

주인공 조무는 가문을 복권시켜 권세를 번창시킨다. 기원전 403년, 진나라는 조(趙), 한(韓), 위(魏)로 나뉘는데, 이때 조나라 시조가 조무의 6대손 조적(趙籍)이다. 조씨고아 조무가 건국의 기틀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조씨고아의 생애와 가장 가까운 시기의 역사서인 좌구명(기원전 556~451)의 ‘춘추좌씨전’에는 조씨 가문이 멸족 당하는 이유가 다르게 나온다. 이에 따르면, 남편 사후 조무의 어머니 장희공주는 시숙부 조영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진다. 이를 알아차린 조씨 가문이 조영을 제나라로 추방하자, 앙심을 품은 장희공주가 조씨 가문의 멸문을 주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로부터 350년이 지나 집필된 사마천(기원전 145~86)의 ‘사기’에는 조나라 편에서 조씨고아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돼 있지만 진나라 편에서는 조씨 가문의 복권만 살짝 언급된다. 조씨고아 이야기가 조나라 건국이후 만들어진 민담이라는 데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사실이든 허구이든 조씨고아 이야기는 1500년간 중국 민가에서 입에서 입으로 이어진다. 구전되던 조씨 가문의 이야기는 송나라 시조 조광윤(趙匡胤)이 중원의 패권을 잡게 되며 다시 중국 역사에 등장한다. 

원작자 기군상은 중국 원나라 시대 인물이다. 몽고족인 원나라는 한족을 억압하고 사회의 모든 이권을 독식했다. 당연히 계급·민족 간의 갈등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음악을 중심으로 안무, 연기, 대사가 어우러진 중국 전통극 잡극이 유행해 민가에서 내려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극으로 승화시켰다. 악랄한 만상을 폭로하고 신랄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 일종의 풍자극이었다. 

‘조씨고아’는 잡극으로 안성맞춤인 주제였다. 반원복송(反元復宋), 즉 ‘원나라에 저항해 한족의 송나라를 되살리자’라는 당시의 민족적 감정을 고취시켰다. 충성, 의리, 가족애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국가 정의구현에 목적을 두고 있다. 중국의 ‘조씨고아’는 부당한 탄압과 폭정 그리고 불의에 저항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정의를 지켜야한다고 강조한다. 

조씨고아 이야기는 중국 고전 단골 레퍼토리로 지금까지 경극뿐만 아니라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의 소재가 돼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다. 1755년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는 ‘중국고아’라는 희곡을 집필해 유럽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18세기 유럽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화해로 마무리되는 당시 유럽의 비극과 달리 비정한 심판으로 끝맺는 중국적 비극에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정영 아내의 울부짖음, 인간 본성과 내적 충돌

각색을 겸한 연출자 고선웅은 중국 영웅의 집안에 집중하지 않고 신의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린 정영을 조명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평범한 인물의 의로운 희생과 정영이 이루는 보은(報恩)을 정의구현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체 높은 계급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필부들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는 휴머니스트다. 

연극은 원작이 건드리지 않았던 많은 물음표를 관객에 안긴다. 특히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려는 정영에 펄쩍 뛰는 그의 아내의 울부짖음은 대의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 본성과 내적 충돌을 첨예하게 표현한다. 

“그깟 약속! 그깟 의리가 뭐라고! 남의 자식 때문에 제 애를 죽여요! 그깟 뱉은 말이 뭐라고!” 

‘신의’와 ‘복수’ 그 이면에 서린 갈등과 허무함이라는 현대적 재해석이 관객을 빨아들이는 힘이다. 늙은 정영은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란 진리를 깨우치지만 너무 늦었다. 복수에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이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정영의 환상으로 무대에 펼쳐진다. 그 사이를 나비가 날아가며 묵자(전유경 분)의 마지막 대사가 객석을 울린다. 

“이 이야기를 거울삼아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고선웅 특유의 해학(海壑‧넓고 깊음)적 해학(諧謔)은 관객을 웃고 울리며 동시대적인 가치와 공감을 선사한다. 

국립극단 70주년 기념공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당초 6월 25일~7월 26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도권 방역 강화조치’가 무기한 연장되면서 공연은 잠정 중단됐다. 극단은 7월 26일까지 휴관지침이 지속되면 미리 촬영한 온라인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민간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민간과 공동 개최하는 등의 작품에 대해 예외적으로 공연이 허용돼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7월 19일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26일까지 공연. 온라인 공연은 미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극단 홈페이지 참고.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외 다수




신동아 2020년 8월호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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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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