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尹, ‘아메리칸 파이’로 바이든 마음 서울에 배치했다

[백승주 칼럼] 韓美日 협력 공고히 하고 北·中에 두려움 안겨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前 국회의원

    입력2023-05-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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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싱턴 선언 둘러싼 SC戰

    • 尹, 전술핵보다 더 값진 바이든 신뢰 얻다

    • 日, 방한으로 화답

    • 中 “잘못된 길로 가지 마라”

    • 北 “늙은이 망령”

    • 전리품은 역사가 평가할 것

    4월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환호하고 있다. [AP 뉴시스]

    4월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환호하고 있다. [AP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준 역사적 울림이 크다. 세계질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 집중된 관심을 동아시아로 돌렸다. 동아시아 질서에서 한미일 협력 구도가 선명해졌다. 북핵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재확인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각국이 담아낸 전략적 커뮤니케이션(SC·Strategic Communication)이 눈길을 끈다. 미국의 저명한 SC 전문가 로버트 헤이스팅스 주니어(Robert T. Hastings Jr.)는 SC를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이미지, 행동 및 단어의 동기화”라고 정의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SC를 조명해 그 의미를 살펴본다. 윤 대통령은 노래로, 북한은 화형식으로, 바이든은 1000억 달러 투자 유치로, 중국은 경고 성명으로 SC를 만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SC로 전쟁을 벌인 셈이다.

    “정권 종말(end of the regime)”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기 전 필자는 그 노래를 몰랐다. 오래전 인기를 끈 곡이므로 모르는 한국인이 더 많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노래는 한국, 미국 국민뿐 아니라 많은 세계 누리꾼을 파안대소하게 했다.

    아메리칸 파이는 2015년 가족들에게 깊은 슬픔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난 바이든 대통령의 장남 보 바이든이 아버지와 함께 즐겨 듣던 노래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노래를 들으면서 장남과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했을 것이다. 또 윤 대통령에게서 18년의 나이 차이를 넘어 깊은 우정을 느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아메리칸 파이는 몇 가지 전략적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첫째, 윤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미국-중국 간 진영 대결에서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서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으며 그 같은 태도를 세계에 알렸다. 둘째, 바이든 대통령의 마음을 서울에 확실히 재배치했다. 한국 안보에서 미국 대통령의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 유사시 한미동맹 작동은 초기 전황은 물론 전쟁 승패에 결정적 요소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제대로 작동하느냐, 않느냐는 미국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



    미국 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의회 동의 없이 90일 동안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 북핵 위협 속에서 상당수 국민이 미국의 전술핵을 재(再)반입해 힘의 균형을 만드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가운데 70% 이상이 독자적 핵 보유를 지지한다.

    필자는 전술핵 재배치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 대통령의 의중을 서울에 확고하게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냉전시대는 물론 그 이후에도 미국과 집단 안보를 추구하는 국가들은 미국 지도자의 정치적 신뢰를 얻고자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답하듯 한미공동성명(워싱턴 선언)을 발표하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정권 종말(end of the regime)을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종래 한미 국방장관회담이나 ‘핵 태세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해 공격하면 정권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표현이 나왔기에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지만 더 큰 의미가 있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은 반(反)국가단체지만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는다. 주권국가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정권 종말’이라는 비외교적 용어를 언급한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전략적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첫째, 바이든의 의지를 단호히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만지작거리면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핵무기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까지 한 김정은에 대한 최고 수준 경고다. 둘째는 독자 핵개발,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일부 한국 국민, 정치인에게 미국의 의지를 믿어달라는 메시지다.

    4월 24일 워싱턴DC 블레어하우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를 접견하며 자신의 프로야구 시구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서랜도스 CEO는 향후 4년간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스1]

    4월 24일 워싱턴DC 블레어하우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를 접견하며 자신의 프로야구 시구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서랜도스 CEO는 향후 4년간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스1]

    미국 재계 반응도 고무적이다. 윤 대통령의 방미 첫날인 4월 24일 테드 서랜도스(Ted Sarandos)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4년간 시리즈, 영화, 예능 등 작품 제작을 포함해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넷플릭스는 190여 개국에서 회원 2억3000만 명을 보유한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미국 방문 첫날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를 이끌어낸 것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전 세계에 알리는 SC가 됐다. 북핵 문제, 정전 체제, 불행한 헌정사 등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가 잔존한 한국의 이미지를 일거에 미래지향적 이미지로 바꾸는 SC 노릇을 한 것이다.

    웃음에 숨겨진 韓美 SC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힘입어 워싱턴 선언 직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처럼 느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차장의 SC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북핵에 대한 억제 태세가 미국과 서유럽의 그것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외교적 성과를 강조한 것이다. 핵 공유란 핵무장국과 비핵화 국가 간 핵무기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핵 공유 협정을 통해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하는 방식의 태세를 NATO(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라고 한다.

    현재 서유럽 5개 나라(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6개 지역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돼 있다. 캐나다는 1972년 나토에서 떠나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의 통제 아래 미국 핵무기를 1984년까지 보유했다. 그리스는 2001년까지 핵 공유를 했다. 영국은 핵보유국임에도 1992년까지 미국 전술핵을 배치했다.

    핵 공유 협정에 따라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면 전술핵을 배치한 국가의 재래식 투발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의돼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된 가운데 한미가 핵 태세를 발전시키는 것을 한국식 핵 공유 태세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 한미 간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on Group) 설치, 미국 전략자산 전개, 핵 관련 훈련 강화 등으로 격상된 핵억지 태세를 나토식 핵 공유라고 할 수는 없다. 김 차장이 “느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사전적 의미에서 핵 공유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차장은 서유럽과 유사한 핵 공유 체제를 만들었으며 이에 서유럽만큼 한국이 핵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전략적 메시지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국가 간 외교의 냉정한 현실이 드러났다.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이 ‘태클’을 걸었다. 김 차장의 발언 직후 단호히 반론을 내놨다. 이러한 케이건의 태도엔 바이든 정부의 두 가지 전략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첫째, 한국의 독자 핵개발을 용인하지 않는다. 둘째,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 선언에서 윤 대통령은 “국제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했다”고 명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하고, 기존의 핵정책을 유지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유지해 온 기존 핵정책의 요체는 “NPT 체제에서 핵 비(非)보유국 지위를 유지하고 한미원자력협정을 지키는 것”이다. 2015년 개정돼 20년간 효력이 발생하는 한미원자력협정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순도의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여겨진다.

    케이건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강력하게 김 차장의 발언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바이든 정부가 한국의 독자 핵개발에 반대한다는 SC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김 차장과 케이건은 SC전쟁을 벌인 것이다.

    日, 셔틀외교 복원 선언하다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해 분향하고 있다. [뉴스1]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해 분향하고 있다. [뉴스1]

    워싱턴 선언 직후인 5월 2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박 2일간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기시다 총리의 결단으로 판단된다. 한일 간 셔틀외교 복원을 선언함으로써 한일관계 정상화에 다가선 것이다.

    일본 총리가 한미 정상회담 직후 한국 방문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은 두 가지 SC를 내포한다. 첫째, 동북아 질서 재편에서 주도권을 가지려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지도자 간 공유된 인식을 파악하고 대응에 나선 셈이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이후 진행된 양국의 국내 정치 사정을 고려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 한 것이다. 징용에 대한 제3자 변제를 수용한 결단 이후 윤 대통령의 국내 지지기반은 단기적으로 약해진 측면이 있는 반면 기시다의 그것은 강화됐다. 일본 내각은 한국 정부로부터는 물론 미국 정부에서도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호응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이에 호응한 SC로 볼 수 있다.

    韓美日 동맹 견제 나선 中

    4월 27일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마오닝 대변인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점점 멀리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동아DB]

    4월 27일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마오닝 대변인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점점 멀리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동아DB]

    4월 27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워싱턴선언에 대해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점점 멀리 가지 말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한국은 대만 문제의 실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대만 문제에 대한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내놓은 거친 전략적 메시지는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듯하다.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에 보복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2017년 12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스스로 약속한 삼불일한(三不一限)을 생각하면서 정세가 반전됐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2017년 12월 문 전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중국을 방문해 삼불일한을 제시했다. 삼불이란 향후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첫째,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에 가입하지 않는 것. 둘째, 한미일 안보협력을 발전시켜 3각 군사동맹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셋째, 사드 추가 배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이미 설치된 사드 사용에 제한을 둬 중국의 안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글에서 한국 정부 스스로 제기했다는 내용은 중국 관영신문에 난 기사를 근거로 했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행위가 역대급 안보 주권 포기라고 주장해 왔다.

    이번 중국의 SC엔 다음 몇 가지 전략적 함의가 있다. 첫째, 한미일 안보협력이 동맹으로 진행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둘째, 경고를 무시할 경우 한국에 국익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고려할 수 있는 카드는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활용한 압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올해 들어 한국 기업의 대중국 수출이 28% 급감한 상태다. 셋째, 북핵 해결 과정에서 미국, 한국과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가 유엔 제재를 위반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논의하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아울러 중국이 기존의 제재를 위반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할 경우 북한에 대한 유엔의 기존 제재를 일거에 와해시킬 수 있다. 넷째, 중국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 언급에 대해 논평함으로써 대만 통일 관련 한미 간 인식 공유, 동맹기제 작동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北, 두려움에 복수심 조장

    4월 28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적국 통수권자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권 종말’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직접 사용했다. 이를 늙은이의 망령이라고 보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뉴스1]

    4월 28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적국 통수권자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권 종말’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직접 사용했다. 이를 늙은이의 망령이라고 보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뉴스1]

    정권 종말을 경고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북한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4월 28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반드시 계산하지 않을 수 없고 좌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은 적국 통수권자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권 종말’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직접 사용한 것이다. 이를 늙은이의 망령이라고 보겠는가”라고 말했다.

    김여정은 미국을 미국이라고 하지 못하고, 바이든을 바이든으로 말하지 못했다. 북한 주민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체제의 종말을 직접 언급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받을 충격을 생각했을 것이다.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김여정의 말 속엔 북한 체제 내부에 엄습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차라리 바이든이 망령이라도 들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조선중앙통신에서 언급한 표현 ‘정권 종말’은 노동신문 등 주민이 직접 읽는 매체엔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5월 3일 노동신문은 “청년학생들이 집회를 통해 침략자, 도발자들의 허수아비를 불살라 버리는 화형식을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늙다리 전쟁 괴수와 특등 하수인인 괴뢰 역도의 몰골들이 재가루로 화할수록 징벌의 열기는 더더욱 가열됐다”고 주장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거론한 화형식 대상은 한미 양국 지도자다. ‘한미 지도자 화형식’을 통해 나타낸 SC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갖고 있다.

    첫째, 엄습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중의 복수심을 조장하는 것이다. 복수심을 결집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환하는 정치심리전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미국과 바이든, 윤석열과 한국 국민을 분리하는 것이다. 바이든이 아닌 다른 미국 정부,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을 제외한 한국의 정파들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셋째, 국내외적 지지를 결집해 새로운 혁명 역량을 창출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한국 언론의 한국 비판 기사를 인용하는 빈도가 높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북한을 지지하는 시각이 많다는 것을 주민에게 알리려고 한다. 새로운 형태의 연합전술을 구사하는 셈이다.

    ‘호갱’은 동맹국 간 외교에 쓸 말 아냐

    한국 내부 정치 사정은 어떨까. 양당 체제와 다름없는 국회에서 모든 국정 어젠다는 정쟁 대상이 되곤 했다.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정쟁을 통해 한국 국민은 생소한 단어의 뜻을 알게 됐다. ‘호갱’이라는 말이다. 호갱은 ‘호구’와 ‘고객’을 합쳐 만든 은어로 어수룩해 속이기 쉬운 손님을 말한다. 판매자가 고객을 우습게 보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판매자 ‘갑’이 고객 ‘을’을 무시할 때 쓰는 말이 호갱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미국에 대해 한국이 스스로 알아서 접어주는 ‘호갱’ 외교를 자처했다”며 한미 정상회담의 의의를 깎아내렸다. 국민 귀에 익은 ‘외교 참사’라는 말 대신, 새로운 언어로 정부의 외교 실패를 비판하는 정치 공세로 볼 수 있다.

    호갱의 어원으로 따져보면 어색한 부분이 있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애써 무시했거나,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을 애써 무시해야 성립되는 용어다. 5년 주기로 등장하는 한국의 어느 행정부가 집권 기간에 미국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G8 가입이 논의될 정도로 강대국이 된 한국을 미국의 어느 행정부가 무시할 수 있겠는가.

    한국 정당이라면 SC에서도 북핵이라는 안보위기 앞에 안보태세 강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 대표가 원자력협정 추가 개정을 촉구하고, 원자력 시설 수출 지원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디테일하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외교는 상대가 있다. 호갱은 동맹국 간 외교에 갖다 붙일 용어가 아니다.

    윤 대통령의 방미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2013년 5월 진행한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첫 워싱턴 정상회담을 생각해 봤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방부 차관이던 필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 국방부 간 진행되던 소송을 조속히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었다.

    우방 간에도 ‘밀당’ 벌어져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방부를 상대로 지식재산권 위반 관련 2011억 원 수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월에는 매년 120억 원 상당 수의계약을 하자며 제안을 수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 당시 회장이 앞장서서 미국 국무부, 상무부 등을 통해 1차 한미 정상회담 개최와 송사를 연계시키며 집요하게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리더십하에서, 국방부 주도로 부처 간 공조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압박을 무력화했다. 단 1달러도 주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 스스로 송사를 철회하게끔 했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우방 간 정상회담이라고 하더라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고, 치고받는 ‘밀당’이 벌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더 확실한 확장억제를 보장받으려 했을 것이고, 바이든 정부는 핵확산을 막는 국가전략에 한국이 모범적으로 협조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절충의 산물이 워싱턴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둘러싼 SC를 식별하고 그 함의를 찾아봤다. 가히 ‘SC 전쟁’이었다. 외교 성과는 단시간에 평가할 수 없다. 전리품이 무엇인지는 향후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신동아 6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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