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활동은 한 편의 극장 공연, 소홀함 없이 뒷받침
‘온라인 취임식’ 눈길…국회 방역 비상벨 눌렀다
의원들은 ‘울트라 슈퍼전파자’ 가능성…비상플랜 수립 중
與野, 싸우더라도 ‘결과물’ 만들어야…‘미성숙 국회’ 바꾸자
의원들만 국회 사우나 이용? 개선책 찾아보겠다
[조영철 기자]
‘여권 잠룡’인 그의 국회 사무처행(行)을 두고 언론은 대권을 향한 다목적 포석,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한 워밍업 등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김 사무총장은 7월 15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국회 개혁에 동의해 사무총장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부산에 계속 있었다면 선거 관련 보도와 구설에 계속 시달렸을 것”이라며 “지금은 ‘선거의 시간’이 아니라 ‘사죄의 시간’”이라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김 사무총장은 19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1987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일 때 그의 비서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여느 운동권 출신들과 정치 행보는 달랐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서울 광진갑)됐지만 당 쇄신을 주도하다가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을 도왔다. 이부영·김부겸 전 의원 등과 이른바 ‘독수리 5형제’의 탈당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19~21대 총선에 내리 고향 부산(부산진갑)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결과는 20대 총선 한 번 당선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 출마는 부산시민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고, 민주당의 부산 연착륙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된 지 보름가량 지났다. 하루 일과는 어떤가?
“국회의원 생활과는 딴판이다. 아무래도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 일상적인 업무도 많다. 보름간 업무보고를 받고 사무처 간부 인사를 하면서 정신없이 보냈다. 국회가 낯선 데는 아니지만 역할이 달라진 거다. 그런 면에선 과거 의원으로서 사무처를 봤을 때 아쉬웠던 점들을 이제 채워나가려는 욕심도 있다.”
3000건 넘는 법안…‘일하는 국회’ 알릴 것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국회는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국가 기관 전체 신뢰도 평가에서도 꼴찌다. 국민은 국회는 매일 싸우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국회의 24시를 들여다보면 싸우는 모습 이면에는 의원들의 입법 활동 노력과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처의 열정도 있다. 국회가 개원하지 못했지만 6월 한 달만 해도 의원들은 3000건이 넘는 입법발의검토요구서를 제출했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러면 사무처는 법안 작성이라든지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 위헌 여부 등을 검토해 반려하거나 수정을 요구한다. 이런 국회의 일하는 모습도 국민에게 균형 있게 알릴 생각이다.”
- 박병석 국회의장이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김 사무총장의 풍부한 의정 경험과 원만한 성격을 높이 평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나보다 더 풍부한 의정 경험과 원만한 성격을 가진 분은 많다(웃음). 박 의장이 내게 같이 일해 보자고 한 것은 아마도 개혁 성향인 데다 과거 열린우리당 때 같이 일해 본 경험, 그리고 과거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조직 장악력이나 일 처리 능력을 평가한 거 같다. 박 의장은 국회 사무처가 국민과 의원들에게 서비스를 잘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데 일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 김 사무총장은 6월 30일 취임식에서 “국회사무처는 국민과 국회를 연결하는 극장 관리자다. 극장이 불편하면 공연은 빛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사무처 운영 방향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의원이 극장의 배우라면 사무처나 의원 보좌기관은 극장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들을 빛나게 하고, 배우와 관객(국민) 간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이 사무처다. 관객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고, 관객은 배우들의 공연이 시원찮으면 표를 안 산다. 그러면 극장 문도 닫아야 하고, 배우도 집에 가야 한다(웃음). 관객이 극장을 자주 찾도록 배우와 극장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 수천 명의 공무원이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다.”
- 사무처는 입법 활동과 예산, 의원 외교 등 의정 활동 전반을 지원한다. 가장 중점을 두는 일은 뭔가.
“언론 지원도 한다. 국회 출입 기자만 1700명이 넘는다(웃음). 사무처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라고 본다. 과거에는 사무처가 조금 ’느슨한 조직‘이었다면 이제 대(對)국민·의원 서비스를 강화하려면 ‘타이트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관행적 인사에서 탈피해야 한다.”
김영춘式 ‘유산균 인사’
- 느슨하다는 의미는 뭔가. 관행을 탈피한 인사는 어떤 인사인가.“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였다는 거다. (7월 7일 단행한) 사무처 입법·사무차장과 수석전문위원 인사는 정부로 치면 차관급 차관보급 인사였다. 이번 인사에서 입법고시 10회 인사들은 후배들을 위해 일괄 용퇴했고, 11회가 차장에 올랐다. 선임급 수석전문위원 자리에는 12회 출신들이 올라 일종의 서열 구조를 깼다. 또한 그동안 공채 출신 중에는 여성 수석전문위원이 없었는데 이번 인사에서 처음 나왔다(정성희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9급 출신 중에도 첫 수석전문위원(김병주 정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나왔다. 9급 출신은 그동안 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했는데, 이번에 처음 상임위 수석이 탄생한 거다. 이런 식으로 과거 관행을 타파하면서 모든 그룹이 만족할 수 있는 후속 인사도 준비하고 있다. 사무처에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을 넣어 꽉 막힌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야 한다.”
- 반발은 없었나.
“인사 ‘평가담(談)’을 들어보니 이번 인사처럼 잡음이 없는 인사는 없었다고 하더라. 박 의장이 좋은 방침을 줘서 가능했다. 사실 주위 동료들은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무사안일에 빠진 사람인지 냉정하게 평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사 개혁을 한 거고, 인사는 사무처 개혁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 일반적으로 국회 사무총장은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를 거친 후 여야 의원이 모두 참석한 본회의 승인을 받아 임명한다. 그러나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상황에서 투표(찬성 177표, 기권 2표, 무효 2표)를 했는데.
“나로서는 여야 의원들의 축복 속에 출발하고 싶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일을 더 열심히 해서 그 아쉬움을 채울 생각이다. 사실 의장이 야당과도 상의했고, 사무총장 임명 동의안은 반대하지 않았다.”
- 말씀처럼, 21대 국회는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로 극한 대치를 했다.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다.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 차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 완성된 체제를 가진 나라는 아니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꼈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5월 31일 시작됐는데 45일 지나 의사 일정에 합의하고 뒤늦게 47일 만에 개원식(7월 16일)을 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위기 등으로 국민 고통이 큰데 원(院) 구성을 못해 (여야가) 대치하는 건 슬픈 현상이다. 앞으로는 다수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든, 여야 상임위 자리를 따로 정하든 자동으로 국회가 개원하는 규칙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국회 문을 못 여는 미성숙한 국회는 바꿔야 한다. 여야가 갈등하더라도 항상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데, 결과는 안 만들고 싸우기만 하니 국민이 등을 돌린다. 대화·타협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민주주의 정치의 요체 아닌가.”
의원들이 코로나19 ‘핵폭탄’인 이유
- 내각제식(式)으로 국회가 운영되다 보니 정당 간 극한 대립이 발생하고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의원은 무조건 당론에 따라야 하고, 여당은 대통령과 행정부를 옹호해야 한다는 인식도 문제 아닌가.“그건 의원들의 용기와 신념의 문제다. 큰 흐름 속에서는 정당과 함께 한 팀으로 일하지만, 헌법기관으로서 당론에 반대할 수 있다. 다만 그 소신이 소속 정당의 큰 당론이나 정책과 충돌할 때는 의원 스스로 소속 정당을 떠날 정도의 각오로 신념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도 얻고 저것도 얻는 길은 별로 없다. 당에서도 이런 소신에 대해서는 관용적으로 대해야 한다.”
- 과거 ‘독수리 5형제’ 정도는 해야 하나.
“조그마하게라도 역사를 만들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 김 총장의 ‘온라인 취임식’은 인상적이었다. 사무처도 ‘디지택트’ 의정 활동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당초 사무처는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과거에는 500~600명이 들어가는 본관 지하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했다. 그러면 최소한 몇 백 명이 참석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일부 간부들만 참석하고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취임식을 보는 온라인 취임식을 하자고 했다. 사실 코로나19 방역에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기관이 국회인데, 방역 면에는 느슨한 점이 있다. 취임식 직후 사무처에 지시한 것도 추상적인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을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맞춰 액션 플랜을 만들라는 거였다.”
- 7월 3일 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지역 행사에서 악수한 시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국회에 비상이 걸렸다.
“그렇다. 팔도의 지역구를 오가는 국회의원은 코로나19 감염의 핵폭탄이다. 7월 3일 3차 추경안을 통과시키는 날인데, 본회의가 열리지 못할 뻔했다(그날 본회의는 오 의원의 음성 판정 이후 오후 10시에 열렸다). 그때 오 의원과 악수한 의원이 수십 명이 넘었다. 만약 양성 판정이 나왔다면 언제 본회의가 열릴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거다.”
- 정치인은 유독 악수를 많이 한다.
“그래서 내가 ‘핵폭탄’이라고 한 거다. 지난 2월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감염 당시 ‘슈퍼전파자’ 얘기가 나왔지만 의원들은 ‘울트라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다. 의원회관에서는 거의 매일 각종 토론회가 열린다. 만약 정기국회 때 법안과 예산을 통과시켜야 하는 타이밍에 확진 의원이 발생하고, 밀접접촉자들이 자가격리에 들어간다면 법안과 예산이 막히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비상계획, 컨틴전시플랜(비상대응계획)을 만들라고 한 거다.”
사죄의 시간, 선거의 시간
- 극단적으로는 국회 운영이 중단될 수도 있겠다.“그렇다. 차라리 전시(戰時)라면 후방에서 모여서 국회 일을 하면 되는데, 코로나19는 그럴 수도 없다. 따라서 집이나 지역 사무소에서 온라인 투표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하고, 이에 따른 보안 및 인증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국회법도 고쳐야 한다. 나는 온라인 취임식을 하면서 국회 방역의 ‘스타트 비상벨’을 눌렀다고 생각한다. 플랜을 짜고 있다.”
- 국회 사무처는 지난 3월 목욕탕과 사우나, 헬스장 등이 있는 의원·직원 건강관리실을 모두 폐쇄했지만 의원들 요청으로 의원 건강관리실만 운영해 비판을 받았는데.
“결국 빈도의 문제다. 의원회관에 인턴 포함한 보좌직원만 2700명이다. 이들 보좌진은 아침부터 밤까지 상주하지만 의원 300명은 늘 상주하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의원 건강관리실은 열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전임 때 이미 결정한 문제였지만 지금도 그 입장은 유효하다. 직원들 건강관리실은 일부 입장을 제한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고려해 보겠다.”
- 김 총장은 201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유력한 부산시장 후보로 입길에 올랐고, 지난 4월에는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과 관련해 “그(오거돈)에게 (부산시장) 후보직을 양보했던 사람으로서 시민들께 머리 숙여 사죄부터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는 어떻게 보나.
“오 전 시장 사건은 재론의 여지가 없고, 사무총장 취임 전에도 ‘민주당이 보궐선거에 나설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30년 만에 민주당에 처음 시장 자리를 안겨준 부산시민에게 사죄하고 석고대죄하는 그런 심정으로 기다릴 때다. (성추문 의혹을 받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지금은 더욱 할 말이 없다. 사실, 박 의장의 사무총장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국회 개혁을 같이 해보자는 데 동의한 거였지만, 당분간은 떨어져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은 사죄의 시간이지 선거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당장 부산시장 관련한 보도와 구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하늘과 국민, 당의 결정에도 따라야 한다. (선거와는) 거리를 두고 현재의 직분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과 서울특별시장(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그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도 결국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기 때문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왜 그렇게 이해 못할 행동으로 60년 이상 평생 쌓은 명예에 금이 가게 했는지 안타깝고 한스럽기도 하다. 이와는 별개로 그분의 족적을 보면 (우리 사회에) 선한 기여를 많이 한 분이다. 조문과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지역주의 타파, 노무현 이어달리기
[조영철 기자]
“그런 분석을 하는 기사도 있더라(웃음). 해양수산부 장관 한다고 2년을 국회와 떨어져 있어서 의원들이나 언론과의 스킨십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직분에 최선을 다하면서 부가적으로 그런 만남의 기회가 생기면 더 좋은 일이고….”
- 부산에서 계속 정치할 건가. 정치인으로서 보람 있었던 일과 안타까웠던 일이 있다면 얘기해 달라.
“2011년에 고향으로 갔으니 벌써 10년이 됐다(웃음).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지금보다 훨씬 험지였던 부산에서 힘겨운 도전을 계속했다. 나도 노 전 대통령 정신으로 ‘이어달리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부산으로 갔고,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방 소멸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전국이 두루 잘살고, 지역 정치가 활성화되면 대한민국의 에너지는 더 커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에서 민주당 의원 5명과 함께 당선됐을 때, 부산 정치가 바뀌고 있다는 걸 목격한 그때가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반대로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어려워질 거다. 특히 경제 면에서 그렇다. 이럴 때 국회가 국민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만들겠다. 국민께서도 국회 사무처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SNS 등을 통해 의견을 주면 적극 반영하겠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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