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월드콘-돼지바 만난다? 롯데 두 계열사 합병 추진 이유

[유통 인사이드]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2-03-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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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제과·롯데푸드 “합병 방안 검토 중”

    • 해태 빙과 인수한 빙그레에 위기의식

    •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 축소

    • 롯데그룹 식품군 경쟁력 강화 모색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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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기간 잠잠하던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네 업체가 시장을 안정적으로 점유해 왔지만, 앞으로는 두 업체가 ‘양강 구도’로 경쟁할 전망이다.

    지난 2020년 메로나(빙그레)와 부라보콘(해태)이 연합을 형성한 데 이어 올해는 월드콘(롯데제과)과 돼지바(롯데푸드)가 한식구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두 ‘세력’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40%대다. 당분간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양측의 기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는 지난 2월 17일 나란히 “당사는 현재까지 빙과 사업 합병 관련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나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는 문구의 공시를 냈다. 두 기업이 각자 운영하던 아이스크림 사업을 합병하려 한다고 알려진 데 따른 해명이다. ‘확정된 바 없다’고는 했지만, 여러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만큼 업계에서는 사업 통합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간 시장에서는 롯데가 두 기업에 나눠 운영하던 빙과 사업을 통합하리라는 전망이 지속해 나온 바 있다. 한 그룹에서 두 계열사가 굳이 각각 같은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롯데푸드는 롯데가 지난 1978년 삼강산업을 인수해 만든 회사다. 돼지바와 구구콘, 보석바 등이 대표 제품이다. 그런데 롯데 그룹에서는 이미 롯데제과가 월드콘과 스크류바, 수박바 등을 앞세워 빙과 사업을 해왔던 터라 두 계열사가 같은 사업을 별도로 운영하는 체제가 지금껏 유지돼 왔다.



    한 그룹 안 두 계열사 같은 사업 ‘비효율’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에는 오랜 기간 큰 변화가 없었다. 소비자들이 생소한 신제품을 찾기보다는 특정 브랜드를 오랜 기간 소비하는 등 시장이 워낙 보수적인 영향이다. 예를 들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이스크림 제품은 출시된 지 47년이나 된 ‘투게더’였다. 또 같은 기간 콘 아이스크림 중 가장 많이 팔린 월드콘 역시 출시 36년째를 맞은 제품이다.

    이에 따라 업체들의 경쟁 구도도 대체로 비슷하게 유지돼 왔다. 롯데제과가 선두 자리를 지키고, 빙그레와 해태가 그 뒤를 따르던 구도다. 롯데푸드 역시 3~4위권을 지켜왔다. 특히 시장에 경쟁력 있는 신규 사업자가 진출한 적도 없던 터라 롯데가 무리하게 두 계열사의 빙과 사업을 합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변화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일단 국내 빙과 시장 자체가 침체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1조9564억 원에서 지난 2019년 1조6749억 원으로 감소한 바 있다. 오는 2024년에는 시장 규모가 1조6600억 원대로 쪼그라들 거라는 전망이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국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식품 시장 전반에서 성장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아이스크림의 경우 저출산으로 인한 저연령 인구 감소로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또 아이스크림을 대체할 만한 디저트 시장이 커피나 케이크, 초콜릿 등으로 다양화하면서 경쟁력이 갈수록 위축하는 분위기다.

    수년 전부터 아이스크림은 할인 판매가 당연한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갈수록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결국 이런 흐름이 경쟁 구도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본격적 변화는 지난 2020년 해태제과가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매물로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해태는 부라보콘과 누가바, 바밤바, 쌍쌍바 등 스테디셀러 브랜드를 보유한 업체다.

    해태제과는 지난 2015년 이른바 ‘허니버터칩’ 열풍 이후 눈에 띄는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면서 실적이 부진했다.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했다. 결국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팔기로 했다. 국내 빙과 사업 전망이 밝지 않은 데다가 해태 역시 업계 4위 정도에서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분위기였던 탓이다.

    그러자 경쟁사인 빙그레가 나섰다. 해태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사들여 몸집을 키우기로 결정한 것. 빙그레가 다른 기업을 인수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그만큼 빙그레의 의지가 강했던 셈이다.

    시장 축소로 위기감, 합병으로 생존 모색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이 2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8개 빙과류 제조사·유통사의 부당한 공동 행위에 대한 공정위 제재 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이 2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8개 빙과류 제조사·유통사의 부당한 공동 행위에 대한 공정위 제재 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빙그레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롯데제과와 롯데푸드 등 ‘롯데가(家)’와 양강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또 인수를 통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통상 아이스크림 시장에서는 ‘냉동고’를 활용한 영업 경쟁이 이뤄지곤 한다. 대형 슈퍼마켓 등 특정 판매처에 어느 업체가 냉동고를 넣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빙그레가 냉동고를 들여놓을 경우 해당 판매처에서는 주로 빙그레 제품을 많이 쌓아두는 식이다. 결국 전국 곳곳에 포진한 냉동고가 빙과 업체들의 ‘유통망’인 셈이다. 이걸 뺏고 뺏는 게 영업 경쟁의 핵심이다.

    그런데 롯데의 경우 아무래도 같은 그룹 계열사다 보니 롯데푸드와 롯데제과가 구축한 ‘유통망’을 사실상 함께 활용하면서 시장 장악력을 높여왔다는 게 경쟁사들의 주장이다. 빙그레 역시 이런 방식으로 해태아이스크림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롯데 입장은 다르다. 아무리 같은 그룹에 속해 있더라도 각사의 실적은 별도이기 때문에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 역시 이런 ‘불필요한’ 경쟁을 없애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재고 관리와 물류비 감축, 원재료 대량 구매에 따른 원가절감 등을 꾀하려는 전략이다.

    결국 국내 빙과업체들이 이처럼 몸집을 불리는 이유는 시장 축소에 따른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빙그레와 해태 아이스크림이 연합전선을 만들면서 롯데 역시 합병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분석이다.

    국내 빙과 업체들의 위기감은 뜻밖의 곳에서 드러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이 업체들에 무려 135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내놓은 조사 결과에서다.

    공정위는 이 업체들이 지난 2016년 영업 전반에 대해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하는 등 ‘담합’을 했다고 봤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경쟁 업체가 거래 중인 소매점을 자신의 거래처로 전환하는 ‘영업 경쟁’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실제 네 업체가 경쟁사의 소매점 거래처를 ‘침탈’한 개수는 지난 2016년 719개에서 2019년 29개로 급감했다. 이를 통해 납품 가격경쟁도 제한됐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네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85%가량에 달한다.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는 업체들이 담합했으니 강력한 제재는 불가피하다. 다만 서로 가격을 낮추는 등의 출혈경쟁을 하지 말자고 할 만큼 업체들의 위기감이 크다는 점을 읽을 수는 있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와 관련 “앞으로도 식품 등 먹거리 분야와 생필품 등 국민 생활 밀접 분야에서 물가 상승이나 국민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는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정부가 최근 물가 관리에 공을 들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해석도 나왔다. 공정위가 이번 제재로 식품·외식 업체들의 물가 인상 행렬에 경고성 메시지를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통상 정부가 이 정도로 움직였으면 기업들도 당분간은 분위기를 지켜보며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업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을 이미 올렸거나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한 아이스크림 업체 관계자는 이와 관련,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와중에 거액의 과징금까지 더해지면서 업계에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롯데-빙그레 양강 구도로 기 싸움 전망

    롯데그룹은 롯데제과와 롯데푸드 아이스크림 부문의 합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충남 천안시 롯데푸드 천안공장 아이스크림 생산 라인. [뉴스1]

    롯데그룹은 롯데제과와 롯데푸드 아이스크림 부문의 합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충남 천안시 롯데푸드 천안공장 아이스크림 생산 라인. [뉴스1]

    롯데의 아이스크림 사업부 합병 추진은 그룹 식품 사업군의 경쟁력 강화의 움직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롯데의 식품 계열사 중 롯데푸드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실적이 정체하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롯데푸드는 지난해 매출액이 1조7897억 원으로 전년 1조7189억 원보다 4.1%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402억 원으로 전년(446억 원)보다 9.7% 줄었다. 또 지난 2018년 매출액이 1조 8110억 원, 영업이익이 680억 원가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적이 부진한 편이다.

    이에 따라 롯데푸드는 지난해 본격적인 체질 개선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실적이 부진했던 식육 사업을 정리하고, 가정간편식(HMR)과 밀키트 사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정비했다. 이번 빙과 사업 합병 검토 역시 이런 사업 구조 개선 작업의 일환이다. 롯데그룹의 식품군 총괄 대표를 맡고 있는 이영구 사장의 주도로 이런 작업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합병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롯데가 변화를 꾀하면서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은 사실상 롯데와 빙그레가 대결하는 양강 구도가 됐다. 지난 2019년 닐슨데이터 기준 시장점유율을 보면 롯데제과(28.6%)와 롯데푸드(15.5%)가 합병할 경우 44.1%의 점유율을 기록하게 된다. 빙그레(26.7%)와 해태아이스크림(14%)의 점유율은 40.7%다.

    경쟁 구도가 새로 만들어진 만큼 당분간 기 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공정위 역시 앞서 빙그레의 해태 아이스크림 인수를 승인하면서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경쟁이 증진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두 집단 중 어느 쪽이 먼저 제대로 된 시너지를 내느냐가 될 전망이다.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 자체는 위축하고 있는 만큼 그 안에서 몸집만 키운다고 경쟁력이 높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양사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수요층을 끌어낼 수 있는 제품군을 만들거나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등의 장기적인 생존 전략을 갖출 필요가 있다.

    우선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의 경우 아직은 각자 경영을 하고 있다. 빙과 시장에서 ‘해태’라는 브랜드 파워가 여전하다는 판단에 해태아이스크림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공동 마케팅 등으로 협력하다가 향후 경영이 안정된 뒤에는 공동 생산과 물류망 공유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빙그레의 탄탄한 해외 유통망을 통해 해태아이스크림의 대표 브랜드들을 수출하겠다는 방침이다.

    롯데에서는 롯데제과가 롯데푸드의 빙과 부문을 가져오는 방식이나 양 사의 빙과 부문을 떼어내 별도의 ‘빙과 계열사’를 세우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두 업체 모두 승부수를 던진 만큼 누가 먼저 시장의 주도권을 쥐느냐가 중요하다”며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의 침체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 속에서 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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