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단독] 성희롱 고발하자 비밀유지 서약서 작성케 한 K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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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3-05-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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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발하니 발설·유포 금지 서약서 내밀어

    • 피해자 면담 요청 회피 후 알림 없이 구인공고 내

    • 가해자 징계 여부 공시하지 않고 재계약 불가 통보

    • 취재 진행되자 공장장이 면담 제의… “가해자도 인격체”

    • KT&G “피해자 보호에 최선 다하고 재계약 제의해”

    • “2차 피해 막고자 가해자에게도 서약서 받아”

    • 노동 전문가 “아쉬움 남는 대처”

    대전 대덕구 평촌동 소재 KT&G 신탄진공장 전경. [KT&G]

    대전 대덕구 평촌동 소재 KT&G 신탄진공장 전경. [KT&G]

    지난해 KT&G 대전 신탄진공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인 계약직 직원 A씨는 입사 후 선배 B씨에게 대화, 카카오톡, 문자 등을 통해 약 반년간 성희롱을 당했다. 참다못한 A씨는 사측에 B씨를 신고했다.

    KT&G는 A씨에게 신고 사실을 직장 내 제3자는 물론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시켰다. A씨가 요구한 B씨의 공개 사과도 실행하지 않았다. 징계 여부도 공시하지 않아 실제로 B씨가 징계를 받았는지 A씨가 알 수 없도록 했다. 또 계약 만료일이 다가왔음에도 A씨의 재계약 관련 면담 요청을 회피했다. A씨에게 별도의 알림 없이 구인 공고를 내 사실상 계약 종료 통보를 했다. 뚜렷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신동아’ 취재가 시작되자 공장장 C씨는 A씨에게 면담을 요청해 재계약을 제의했다. 하지만 이 면담에서도 공장장은 B씨에 대해 “가해자도 인격체”라고 말했고, A씨는 이를 2차 가해로 받아들였다. 결국 A씨는 회사를 떠났다. KT&G 측은 “징계 및 가해자 분리 등 사규에 따른 조치를 이행했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쉬운 대처”라고 지적한다.

    “본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말 것”

    지난해 5월 A씨는 KT&G 신탄진공장에 1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계약 만료일은 올해 4월 30일이다. 입사 후 채용 당시 면접관이던 선배 B씨는 대화·카카오톡 등을 통해 A씨에게 “와이프가 불감증에 걸렸다” “A가 이렇게 몸매 좋았나” “동생이랑 같이 사느냐, 그러면 (집에) 못 가겠다” 등 수시로 성희롱을 했다. A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으나 B씨의 “재계약에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에 심리적 압박을 느껴 반발하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7일 A씨는 사고로 다리가 골절돼 닷새 후 병원에 입원했다. 뼈를 이식하고 철심을 여러 개 박는 큰 부상이었다. A씨는 직장 동료로부터 B씨가 “A가 꾀병을 부린다”고 말한 것을 전해 들었고, 이에 분개해 21일 B씨를 사측에 신고했다. A씨는 “B가 처자식도 있고, 나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라 참아왔지만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거짓 험담을 해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1일 피해자 A씨가 작성한 비밀유지 서약서. 제3자 발설금지 및 인터넷·SNS·언론사 유포 금지를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2차 가해 및 위법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A씨]

    지난해 12월 21일 피해자 A씨가 작성한 비밀유지 서약서. 제3자 발설금지 및 인터넷·SNS·언론사 유포 금지를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2차 가해 및 위법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A씨]

    A씨는 B씨를 신고하며 사측에 B씨와의 분리, B씨의 공개 사과, B씨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그런데 사측의 대응이 다소 의아했다. 사측은 A씨에게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시켰다. 내용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행위자, 피해자 및 발생 경위에 대해 직장 동료 등 제3자에게 발설하지 않으며, 인터넷·SNS·언론사 등에 유포하지 않는다’였다. A씨는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는 건 그렇다 치고, 피해자에게도 사건을 알리지 못하게 하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감을 느꼈다. 이에 대해 김유경 노무사(돌꽃 노동법률사무소)는 “근로기준법 제7조 3의 7항에서 사용자의 비밀유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본인 관련 사건에 대해 언론 등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막을 용도로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해당 법의 취지에 어긋나고 해석상으로도 옳은 일이 아니다. 인권침해 요소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A씨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사측은 B씨를 타 부서로 보냈으나 공개 사과는 시키지 않았다. 징계 여부도 공시하지 않았다. A씨는 “소속 팀장으로부터 구두로 ‘B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들었을 뿐이다. 실제로 B씨가 징계를 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가해자도 인격체”

    A씨는 고발 이후 직장 동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도 했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곤 했고, 업무 변경 사항도 알려주지 않는 등 사실상 ‘왕따’가 됐다”고 말했다.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둔 3월 30일 A씨는 팀장에게 재계약 여부에 대해 듣고자 면담을 요청했으나 그는 시간이 안 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튿날 A씨는 ‘워크넷’에서 자신을 대체할 직원을 구하는 공고를 발견했다. A씨는 일절 전해 듣지 못한 내용이었다. 4월 6일 또 다른 팀장이 A씨에게 “재계약은 없다”고 통보했다. A씨가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회사 방침”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4월 8일 A씨는 ‘신동아’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취재가 시작되자 공장장 C씨는 A씨에게 면담을 요청해 재계약을 제안했다. 면담에서 A씨가 “B의 공개 사과와 징계 공시가 왜 이뤄지지 않느냐”고 묻자 C씨는 “가해자도 인격체다. 이미 징계를 받았다. 공개 사과를 시키고 징계까지 공시하면 그가 회사를 어떻게 다니겠나. 사측이 그렇게 할 의무도 없다”고 답했다. 이에 A씨는 더는 회사를 다닐 수 없겠다고 판단해 제안을 거절하고 계약 종료를 택했다.

    A씨는 “일방적으로 계약 종료를 통보하다시피 하더니 취재가 시작되자 공장장이 면담을 요청해 와 재계약을 제안해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다”며 “가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피해자로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2차 가해로 느껴졌다. 사실상 더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느껴 재계약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말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조치 및 최선의 노력 다해”

    KT&G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사측은 사건 인지 후 즉시 가해자를 분리 조치하고 사규에 따라 객관적 조사를 거쳐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징계가 내려진 건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예전부터 2차 피해 및 명예훼손 등을 방지하고자 징계 결과를 별도 게시하고 있진 않다.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의 징계 결과 및 타기관 전보 조치 사실을 설명했다. 비밀유지 서약서는 회사가 객관적 조사 절차를 진행하기 이전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2차 피해 및 조사 결과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조사 대상자로부터 받고 있다. 사측은 모든 절차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피해 사실 신고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공장장 C씨는 본 사안에 대해 인지하고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 요청 사항 청취 및 신속한 조치를 위해 직접 2회에 걸쳐 피해자와 면담을 수행했다. 피해자에게 계약 연장과 타부서 근무를 제안했으나 피해자가 수용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KT&G의 대처에 미흡함이 있다고 말한다. 박정연 노무사(노무법인 마로)는 “피해자에게까지 비밀을 유지하도록 하며 서약서를 받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신고로 인해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을 피해자에게 비밀유지 서약서 작성은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 ‘불리한 처우 금지’ 법률 위반 및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며 “신고 후 따돌림이나 회피 역시 그 자체로 2차 가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약 여부 미통보에 대해선 “법률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미리 알려주는 게 더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유경 노무사는 “가해자에게 어떤 징계를 내릴 것인지는 사측의 재량에 달려 있다. 가해자에게 공개 사과를 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행법상 피해 근로자의 의사에 반한 징계 조치는 해선 안 된다.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주는 게 바람직했다”고 말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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