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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커뮤니티 Book치고]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 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9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주]

“그깟 오만 원 아끼려고 이러는 것 같아?”

독서의 본질은 고독에 있다. 책읽기는 홀로 내면에 침잠하는 활동이다. 그러면서 나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행위다. 반면 독서 모임의 본질은 부대낌에 있다. 얼굴 맞대 대화하고, 때로 쟁투하듯 이견을 드러내는 데서 모임의 즐거움이 극대화한다. 그러므로 독서 모임의 가장 큰 적은 질기게 이어지는 코로나19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지적 쾌감에 목마른 이들이 8월 3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맞은편 사람과는 약 2m의 간격을 뒀고, 옆 사람과는 두 팔 간격 이상의 거리를 유지했다. 모임치고는 불편할 법도 한데, 회원들의 메시지는 어느 때보다 묵직했다. ‘나도 겪어본 일인데…’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라고 말하는 회원이 많았다. 

이유가 있다. 함께 읽은 책은 장류진 소설가의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중 인물 대부분이 20~30대다. Book치고 회원 대다수도 같은 세대다. 1986년생 소설가가 그린 세계에는 ‘계산기’가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센스가 없는 사람이다. 단편 ‘잘 살겠습니다’에서 29세 여성 ‘나’는 눈치 없기로 잘 알려진 ‘빛나 언니’에게 이런 내용을 알려주고 싶다. 

“그깟 오만 원 아끼려고 내가, 이러는 것 같아? 빛나 언니에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 원을 내면 만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장류진의 세계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 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인아영 문학평론가) 대신 ‘밉지 않은 속물’이 있다. 넉넉한 보수를 제공하는 일자리는 줄고 취업은 ‘고시’ 수준으로 변모했다. 오늘날 20~30대가 처한 현실이 그렇다. 허황된 목표나 채색된 낭만에 얽매일 여유가 없다. 때로 작은 것에 연연하지만, 때로는 작은 데서 행복을 느껴야 오롯이 나를 위한 삶으로 받아들인다. 1990년대 출생 회원 세 명이 서평을 썼다.



민낯 보여주는 소설
황다예 한동대 언론정보학부 졸업·Book치고 3기

내 민낯은 보여주기 싫지만 남의 민낯 보는 일은 즐겁다. ‘잘 살겠습니다’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에선 나의 민낯을,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새벽의 방문자들’에서는 남의 민낯을 봤다. 민낯을 볼 때 느껴지는 감성은 보통 수치심이다. 내 얼굴은 수치심이고, 남의 얼굴은 ‘공감성 수치’다(공감성 수치란, 드라마에서 배역이 부끄러운 일을 당할 때 시청자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느낌을 말하는 용어다). 

이 중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잘 살겠습니다’이다. 작중의 주인공은 10을 받으면 10을 주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깍쟁이’로 그려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다. 작가는 한 편의 다큐를 찍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 ‘한국인의 정’ 대신 ‘거래의 기술’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러나 ‘요즘 것들’ 탓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왜 그럴까. 2019년 1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류진 작가의 말을 미루어 추론해 본다. 

“청첩장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미묘한 신경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다루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말을 듣고 돌이켜보니 직장 내 남녀 간 임금격차 같은 ‘민낯의 노동시장’이 떠오른다. 혹은 생산·현장직군에서 같은 연차 남성에 비해 처우가 부족한 여성들의 모습이 스치듯 지나간다. 눈을 노동시장 전체로 돌려봐도 살 만한 조건에 놓인, 즉 ‘한국인의 정’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노동자는 흔치 않다. 이력서를 ‘백한 번’이나 써야 첫 출근을 할 수 있는 노동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수치심 대신 씁쓸함이 남는 소설이다. 

어쩌면 ‘수치심’과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 소설의 역할일 수 있다. 소설의 기능에는 ‘인간성 탐구’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이 부끄럽다면 그 사실을 그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소설가가 현실의 단면을 보여줬다면 독자가 반응할 차례다. 남의 민낯을 보여줬다고 평해 버리고 말 게 아니라, 과연 나의 민낯은 당당한지 고민이 시작됐다. 책장을 덮고 나서 말이다. 

PS. ‘소설’을 읽다 보니 ‘소설을 쓰시네’라는 한 정치인의 발언에 왜 한국소설가협회가 반발했는지 알 것 같다. 소설은 허구만은 아니다. 사실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만이 공감을 얻는다. 또 비하의 용도로 사용할 만큼 하찮은 도구도 아니다. 소설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들고, 다시 걸어가게 하는 위로의 도구다.

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
황수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졸업·Book치고 3기

‘단숨에 수많은 독자와 문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류진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창작과비평 웹사이트에 공개된 직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누적 조회수 40만 건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책의 정보 중 일부다. 나는 단편 한 편이 끝날 때마다 ‘So what?’이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물음에 내가 책을 읽는 감각을 잃은 것인지 걱정되기까지 했다. 

책장을 덮은 뒤에야 ‘So what?’이라는 질문을 던진 이유를 찾았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어서’ ‘어디선가 비슷한 얘기를 들어서’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맞이할 것 같아서’다. ‘나도 겪은 일인데 뭐’라며 공감하던 나는, 어쩌면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어떤 통쾌한 해답을 책의 결말에서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잘 살겠습니다’의 빛나 언니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을 맞았을지, ‘일의 기쁨과 슬픔’에 등장하는 대표와 회장은 잘못을 고쳤을지, ‘새벽의 방문자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정말 성 매수를 위해 찾아왔던 건지, 맞는다면 사진을 찍어두는 방법 이외에 성 매수자들을 벌할 방법은 없을지 등에 대한 답을 말이다. 

남성보다 적은 여성의 연봉, 새벽에 찾아오는 남성으로 인해 불안에 떨어야 하는 여성 ‘자취러’, 상사의 갑질, 어렵기만 한 취업전선 등은 ‘슬픔’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다. 책의 장점은 ‘슬픔’으로만 점철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월급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을 관람하고, 기고만장한 남성의 콧대를 보기 좋게 눌러주고,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되 틈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은 2030세대에게 부서지지 말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어렵고 때로는 (직장에서) 눈물 흘려도 생각지 못한 기쁨이 일상에 있으리라 친절히 조언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2030세대는 큼직한 선택의 기로에 자주 선다. 기로에 설 때마다 덜컥 겁부터 밀려온다. 혹여 나중에 후회할까 봐 말이다. ‘탐페레 공항’의 ‘나’처럼 서랍을 열기 망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신 ‘얀’을 찾았듯 더 소중하고 반짝거리는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서랍을 열기 전까지 결과를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한 결과물이 기쁨인지 슬픔인지보다, 선택하는 주체가 ‘나’라는 점이 중요하다. 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 일의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내는 이 시대의 2030세대를 응원한다.

사회생활의 기쁨과 슬픔
이종현 세종대 디지털콘텐츠학과 졸업·Book치고 3기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평소에도 늦은 시간에도 곧잘 연락하는 친구였기에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전화를 걸어놓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장난 같아 보이진 않았다. 말없이 기다리다 한 마디를 건넸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수화기 건너편에선 대답 대신 흐느낌이 들려왔다. 친구는 10분 가까이 꺼이꺼이 울었다. 

그 친구가 모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PD로 막 일을 시작한 때였다. 비록 정규직은 아니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그는 늦게 시작한 만큼 누구보다 의욕이 앞섰다. 그러나 생각만큼 역량을 발휘할 수 없어 힘들다고 했다. 쌓이고 쌓인 고된 업무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뒤섞여 응어리가 생겼고, 결국 나와의 통화에서 터졌다. 

다행히도 친구는 잘 버텨냈다. 그는 여전히 PD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일머리가 붙어 업무가 예전만큼 고되지 않다고 한다. 선배들에게 일 잘한다는 칭찬도 종종 듣고, 신임을 얻고 있단다. 지금의 친구는 자신을 더는 자책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무척 좋아하는 듯 보였다. 

뜬금없이 친구 얘기를 꺼낸 이유는 책의 내용 때문이었다. 단편 ‘탐페라 공항’의 주인공을 보면서 일에 치여 힘들어하는 예전 친구 모습이 떠올랐다. 또 다른 단편 ‘잘 살겠습니다’를 읽으면서 이제는 일 못하는 후임 흉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지금의 그가 떠올랐다. 그 밖에도 주변의 여러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가 그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소설은 다 읽고 난 뒤 주인공의 감정과 태도를 곱씹어보게 한다. 이 책은 나와 내 주변 사람을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돕는다. 한국 특유의 ‘사회생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은 누구나 잘하고 싶어 한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은 결국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일도 잘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에 사회생활에 약간의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이 주는 슬픔은 여기에서 온다. 동시에 균열이 있기에 이를 보완해 가는 과정에서 일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장류진 작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이 단순한 명제를 다양한 색깔의 소재로 풀어냈다. 사회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책을 권한다. 이 책을 읽고 자신만이 가진 ‘일의 기쁨과 슬픔’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를 통해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를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조금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신동아 2020년 9월호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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