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북유럽 신화의 재발견⑨] 神과 결혼한 비련의 두 巨人 여인

卒婚 부부의 원조 스카디, ‘커플매니저’ 스키르니르

  •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입력2020-09-03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철천지원수’ 神들과 혼인 안 하는 거인族

    • 사랑을 못할 거라는 저주에 무너진 게르드

    • 아버지 복수 나선 스카디 “신랑을 구해 달라”

    게르드와 스키르니르, 
W.G. Collingwood, 1908.

    게르드와 스키르니르, W.G. Collingwood, 1908.

    산을 그리워하는 스카디, 
W.G. Collingwood, 1908.

    산을 그리워하는 스카디, W.G. Collingwood, 1908.

    북유럽 신화의 대부분은 신과 거인의 싸움 이야기다. 이때 거인들이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너 아스가르드로 올라가 싸움을 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주로 신들이 비프로스트를 타고 미드가르드에 있는 거인 영역인 요툰헤임으로 내려가 싸움을 건다. 그렇다고 어느 신이나 요툰헤임으로 건너가진 않는다. 주로 오딘, 로키, 토르 세 신이 거인들과 싸움을 벌인다. 이번 호에 소개할 이야기는 그런 북유럽 신화의 주연급 신들이 펼치는 싸움이 아니다. 조연급인 ‘풍작(豐作)의 신’ 프레이르와 ‘사냥의 신’ 스카디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다.

    거인 여인 때문에 상사병 걸린 프레이르

    프레이르의 상사병, W.G. Collingwood, 1908.

    프레이르의 상사병, W.G. Collingwood, 1908.

    프레이르가 언젠가 발라스캴프 궁전으로 신들의 왕 오딘을 찾아갔지만 마침 그는 외출 중이었다. 프레이르가 궁전을 막 나서려는데 궁전 한가운데에 있는 아름다운 용상(龍床) 흘리드스캴프가 눈에 띄었다. 그는 갑자기 용상에 한번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용상에 앉으면 아홉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으며, 그 특권은 오딘과 그의 아내 프리그만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규칙을 위반하면 무슨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프레이르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아무도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한 뒤 용상으로 다가가 슬며시 그곳에 앉아보았다. 마치 사장실에 들어간 일개 부장이 잠시나마 사장 자리에 앉아 사장이 되는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 

    프레이르가 용상에 앉는 순간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요툰헤임에 사는 거인 기미르의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저택 바깥을 살펴본 뒤 안을 들여다보니 마침 기미르의 딸 게르드가 화장대에 앉아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프레이르는 게르드의 모습을 본 순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태양처럼 광채가 났다. 게다가 기다랗고 하얀 원피스는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위를 화사하게 밝혔다. 그는 한참 동안 게르드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다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프레이르는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듯 오딘의 궁전을 빠져나와 자신의 궁전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게르드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날 이후로 프레이르는 게르드에 대한 사랑의 열망으로 마음을 애태웠다. 어떤 일을 해도 흥이 나지 않았다. 음식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오직 오딘의 궁전으로 몰래 들어가 게르드를 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운이 좋아 그럴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을 하다가 발각되면 만천하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프레이르는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자신의 침실에 틀어박혀 오로지 게르드만을 생각하고 지냈다. 누가 면담을 신청해도 만나지 않았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침실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지독한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던 것.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뇨르드가 아들을 찾아왔다가 비쩍 마른 그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프레이르의 하인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스키르니르를 불러 이유를 들어보고 아들을 좀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커플매니저’ 전략

    게르드를 협박하는 스키르니르, Lorenz Frølich, 1895.

    게르드를 협박하는 스키르니르, Lorenz Frølich, 1895.

    처음엔 둘러대던 프레이르는 스키르니르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결국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으며 거인 기미르의 딸 게르드와 자신을 맺어달라고 부탁했다. 스키르니르는 주인이 아끼는 ‘스스로 알아서 싸우는 검(劍)’을 준다면 반드시 그 결혼을 성사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게르드를 얻기만 한다면야 아까울 게 없었던 프레이르는 그에게 자신의 검을 흔쾌히 내주었다. 스키르니르는 이 밖에도 게르드에게 구혼 선물로 줄 청춘의 황금사과 11개와 오딘의 보물 드라우프니르 반지도 하나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스키르니르는 모든 준비물이 갖춰지자 곧바로 말을 타고 주인의 중매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마침내 저택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 기미르는 집에 없었다. 스키르니르는 자신을 프레이르의 하인으로 소개하고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소상히 설명했다. 그다음 청춘의 황금사과를 꺼내놓으며 프레이르의 청혼을 받아준다면 11개 모두를 선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게르드는 자신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단박에 제안을 거절했다. 스키르니르는 이번에는 드라우프니르 반지 하나를 꺼내놓으며 청혼을 받아준다면 청춘의 황금사과들과 함께 이 반지 하나도 얹어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아흐레 밤이 지나면 똑같은 반지가 8개가 생겨나는 신비한 반지라고 설명했다. 

    게르드는 이번에도 반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똑같은 말로 제안을 거절했다. 화가 난 스키르니르는 이번에는 칼을 꺼냈다. 프레이르로부터 중매의 대가로 받은 칼을 빼어 들며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칼로 당장 목을 잘라 버릴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게르드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은 강요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만약 아버지가 돌아오면 당신쯤은 단칼에 해치워 버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스키르니르는 이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늘 들고 다니던 감반테인이라는 지팡이를 들고 그녀의 몸에 대고 주문을 걸었다. 감반테인은 마법의 지팡이로 스키르니르가 우연히 숲에서 발견해 분신처럼 갖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활용했다. 그는 그것을 그의 어깨에다 대고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그녀는 앞으로 절대로 사랑을 하지 못할 것이고, 혼자서 쓸쓸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며, 만에 하나 결혼하더라도 지하세계의 머리가 셋 달린 괴물 흐림그림니르가 그의 파트너가 될 것이고, 인간 남자든 거인 남자든 그 누구와도 사랑의 기쁨을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스키르니르의 저주를 듣는 동안 게르드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특히 그는 그 누구와도 사랑의 기쁨을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슬픔이 복받쳐 올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장차 좋은 남자를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하며 좋은 가정을 꾸리고 예쁜 자식들을 낳아 정원과 농장을 함께 운영하며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사실 프레이르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받은 교육의 영향이 컸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거인들은 철천지원수인 신들과는 절대로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프레이르와 결혼을 안 하면 평생 노처녀로 늙어 죽는다니 어쩌겠는가. 

    한참 소리 없이 울기만 하던 게르드는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지금까지 냉담하던 태도와는 달리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스키르니르에게 늦게나마 의자를 내밀며 앉으라고 권했다. 이어 앞으로 9일 후 정오에 요툰헤임과 미드가르드의 경계에 있는 바리 숲 중앙 커다란 참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를 설득하고 신변을 정리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키르니르가 돌아가고 정확하게 9일 후 게르드는 정말 바리 숲에 나타나 프레이르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처럼 남녀가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서는 스키르니르와 같은 중매쟁이의 역할이 중요한 법이다. 스키르니르는 오늘날 커플매니저의 원형이기에 하는 말이다.

    발을 보고 신랑감을 고른 스카디

    발을 보고 남편을 고르는 스카디, Louis Huard, 1893.

    발을 보고 남편을 고르는 스카디, Louis Huard, 1893.

    또 한 명의 비련의 거인은 스카디다. 스카디의 아버지는 한때 ‘청춘의 여신’ 이둔을 납치한 적이 있던 거인 티아지였다. 스카디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독수리로 변신해 이둔을 빼앗아 달아나는 로키를 추격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아버지가 이둔을 데리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스카디는 결국 아버지는 신들의 손에 죽었다고 짐작하고 분노에 사로잡혔다. 로키를 찾아가 처절하게 복수해 주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는 아버지의 무기 창고로 가서 평소 그가 사용하던 무구(武具)들로 완전무장했다. 이어 보무도 당당하게 미드가르드와 아스가르드를 연결해 주는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로 다가갔다. 

    스카디가 저 멀리 아래쪽 미드가르드에서 비프로스트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헤임달이 신들에게 호른을 불어 경적을 울렸다. 신들은 더는 성스러운 아스가르드 성벽 부근을 싸움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스카디가 여자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티아지의 피가 식기도 전에 또다시 딸의 피를 그곳에 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스카디가 아스가르드 성문에 도착하자 신들은 마중을 나가 그와 화해를 시도했다. 그들은 우선 스카디에게 아버지 티아지의 죽음에 대해 황금으로 보상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스카디는 황금이라면 자기 집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신들이 그러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스카디는 자신에게는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줄 신랑이 절실하다고 말하면서 슬쩍 발데르 쪽을 쳐다봤다. 그는 언젠가 우연히 요툰헤임을 여행하던 발데르를 보고 첫눈에 반해 오랫동안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신들은 스카디가 목숨을 걸고 싸울 것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와서는 엉뚱한 제안을 하자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전혀 내색은 하지 않은 채 스카디에게 자신들 중 하나를 남편으로 선택하도록 해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카디는 갑자기 생각난 듯 화해 조건을 또 하나 덧붙였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자신을 한번 실컷 웃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들이 스카디의 남편감을 고르는 방법을 놓고 회의를 벌인 결과 스카디가 직접 신랑감을 고르게 했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스카디가 얼굴이 아니라 발을 보고 신랑감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스카디는 신들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발데르가 신들 중 가장 잘생겼으니 당연히 발도 가장 예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카디는 아스가르드로 인도됐다. 신들은 글라드스헤임 궁전에 임시로 만들어진 장막 너머에서 발만 보인 채 나란히 서서 스카디의 선택을 기다렸다. 스카디는 망설이지 않고 신들의 발 중 모양이 가장 좋은 것을 골랐다. 

    마침내 장막이 걷히고 스카디의 눈에 자신이 선택한 발의 임자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선택을 받은 신은 발데르가 아니라 바로 ‘바다의 신’ 뇨르드였다. 뇨르드는 날마다 미용 효과가 있는 해수로 손발을 씻기 때문에 그런 매끈하고 멋진 발을 지니게 됐던 모양이다. 뇨르드의 얼굴을 확인한 스카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뇨르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움찔해 뒷걸음질하면서 속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그러자 뇨르드가 그의 귀에 대고 로키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라고 속삭였다. 오딘도 이번 선택은 한 점 의혹 없이 공정했다며 스카디의 의심에 쐐기를 박았다.

    로키와 흑염소의 ‘거시기 줄다리기’

    산속에서 사냥하는 스카디, H. L. M, 1901.

    산속에서 사냥하는 스카디, H. L. M, 1901.

    하지만 스카디가 내건 또 하나의 화해 조건이 있었다. 스카디는 자신을 한번 웃겨야 하는 조건이 남았다며 자신은 절대로 웃지 못한다고 공언했다. 오딘은 스카디의 말을 듣고 그를 웃길 신은 로키밖에 없다며 급히 로키를 투입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로키가 등장하자 스카디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모든 신은 오딘이 무리수를 뒀다고 생각했지만 오딘은 로키의 해학적인 능력을 믿었다. 

    로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치 요즘 개그맨처럼 일부러 어눌하게 말을 더듬으며 예전에 미드가르드에서 염소를 데리고 시장에 가다 우연히 벌어진 일을 꺼냈다. 그는 스카디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그에게 혹시 염소가 정말 고집이 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궁전 현관 쪽으로 달려가더니 언제 대령해 놓았는지 잽싸게 염소 한 마리를 데려왔다. 허리춤에서 가죽 끈을 꺼내 녀석의 수염에 묶으면서 우스갯소리를 계속했다. 

    그는 당시에 양손에 잔뜩 짐을 들고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염소를 몰고 가기 위해 그 가죽 끈을 자신의 ‘거시기’에 묶었다며 말을 이었다. 스카디가 ‘거시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로키는 그녀에게 그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줬다. 결국 로키는 진짜로 자신의 음경(陰莖)에 염소의 수염과 연결된 가죽 끈을 단단히 묶었다. 

    염소가 궁전 밖으로 나가려고 앞으로 움직이자 가죽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로키는 무척 아팠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당시는 한여름이어서 여기저기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며 그 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가 갑자기 “소~쩍!” 하고 소리를 내자 염소가 놀랐는지 줄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로키가 다시 “소~쩍!” 하며 몸을 뒤로 움직여 줄을 힘껏 잡아당기자 이번엔 염소가 화답하듯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끌려왔다. 로키와 염소는 마치 줄다리기 시합처럼 서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 로키가 힘껏 줄을 잡아당겼다. 염소가 이런 놀음에 싫증이 났는지 힘없이 로키 쪽으로 끌려왔다. 그러자 로키가 힘의 균형을 잃고 뒤로 밀리다가 공교롭게도 스카디의 품에 안겨 넘어지고 말았다. 스카디는 바로 이 순간 얼떨결에 로키와 함께 넘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스카디는 이렇게 한참을 활짝 웃으면서 신들과 약속한 대로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더불어 로키에게 품은 원한도 깨끗이 잊기로 했다. 하지만 로키는 일어나면서도 자신의 퍼포먼스에 몰입한 나머지 스카디가 이미 실컷 웃은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소쩍새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하던 말을 계속하려고 했다. 

    오딘이 미소를 지으면서 로키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말린 다음 스카디를 더 기쁘게 해줄 일이 있다면서 주머니에서 수정처럼 맑은 구슬 2개를 꺼내 그에게 내보였다. 스카디는 단박에 그것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두 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오딘은 2개의 구슬을 얼른 하늘에 던져 올리며 티아지의 두 눈은 이제 별이 돼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딸 부부를 비롯해 우리 모두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그 후 스카디와 뇨르드는 아스가르드에서 며칠을 보낸 다음 요툰헤임에 있는 스카디의 궁전인 트림헤임을 향해 출발했다. 

    높은 산 정상에 위치한 트림헤임으로 가는 길은 위로 올라갈수록 험하고 깊은 계곡도 많아졌으며, 산 정상은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스카디는 궁전이 가까워올수록 편안함을 느꼈지만, 뇨르드는 부드러운 바닷물과 수평선에만 익숙한 터라 이런 환경이 낯설기만 하고 몹시 불편했다. 특히 깊은 밤 사방에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는 뇨르드를 신경쇠약에 빠지게 했다.

    결혼보다 자유를 택한 부부

    바다를 그리워하는 뇨르드, W.G. Collingwood, 1908.

    바다를 그리워하는 뇨르드, W.G. Collingwood, 1908.

    아흐레 밤이 지나자 부부는 이번에는 아스가르드의 바닷가에 있는 뇨르드의 궁전인 노아툰으로 왔다. 그들은 그렇게 공평하게 아흐레씩을 서로 궁전을 번갈아 바꿔가며 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카디가 수평선이 보이는 바닷가와 갈매기 울음소리를 죽도록 싫어했다. 

    스카디 부부는 신들을 증인으로 삼아 결혼식을 올린 정식 부부이긴 하지만 성향이 너무 달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 각자 궁전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가끔 필요할 때만 만나기로 합의했다. 스카디와 뇨르드는 오늘날 졸혼(卒婚) 부부의 원조인 셈이다. 

    이후 스카디는 궁 근처에서 활과 전통을 메고 스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짐승들을 사냥하며 지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겨울과 사냥과 스키의 여신으로 삼았다. 결혼의 구속을 떨쳐버린 채 눈과 얼음으로 덮인 산 위를 달리며 자유롭게 사냥을 즐기는 스카디에게서 그리스 신화의 사냥의 여신이자 독신자의 수호신 아르테미스의 모습이 강하게 떠오른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