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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로망이 된 티파니앤코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여성의 로망이 된 티파니앤코

  • ‘티파니앤코’는 메탈 소재 패션 주얼리부터 최상의 다이아몬드가 정교하게 세팅된 파인 주얼리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티파니앤코 최고의 브랜드 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에 있다.
블루 박스 카페. [티파니 홈페이지]

블루 박스 카페. [티파니 홈페이지]

4월의 탄생석은 다이아몬드다. 맑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주얼리 브랜드가 있다. 일명 ‘티파니 세팅’이라고 하는 6개의 프롱(Prong·갈래)에 다이아몬드를 올린 디자인으로 웨딩 링의 대표 브랜드 티파니앤코(Tiffany & Co)다.

하얀 실크 리본으로 묶인 티파니앤코의 블루 컬러 박스는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박스의 블루 컬러는 ‘티파니블루’로 공식 등록된 컬러명이다. 브랜드 티파니앤코를 상징하는 티파니블루는 가장 오래된 컬러 마케팅 사례로 꼽힌다. 티파니는 브랜드명이 영화 제목(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 들어간 첫 패션 브랜드이기도 하다.

세기의 인수·합병(M&A)으로 불린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티파니의 M&A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2021년 1월 인수 금액 주당 135달러, 총 162억 달러(약 19조512억 원)로 M&A를 최종 확정했다. 이는 LVMH 그룹 출범 이후 최대 규모 M&A로 기록됐다.

월드 페어 네클리스. [티파니 홈페이지]

월드 페어 네클리스. [티파니 홈페이지]

LVMH는 2021년 1월 티파니가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주얼리를 재현하기 위해 80캐럿 규모의 초대형 다이아몬드를 매입했고,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행사를 열어 총 578개, 180캐럿(36g)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월드 페어 네클리스(세계박람회 목걸이)’를 공개했다. 목걸이 한가운데 80캐럿 다이아몬드가 사용됐는데, 가격은 약 356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티파니 역사상 가장 비싼 주얼리로 기록됐다.

LVMH의 세계박람회 목걸이 제작은 티파니 인수 이후 첫 번째 경영 전략으로 헤리티지 강화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티파니의 특별함과 원동력은 무엇인지 티파니앤코의 헤리티지를 따라가 봤다.



모던한 디자인으로 미국 상류층에게 인기

링컨 대통령의 부인 메리 토드 링컨이 착용한 시드 펄 주얼리. [Gettyimage]

링컨 대통령의 부인 메리 토드 링컨이 착용한 시드 펄 주얼리. [Gettyimage]

티파니앤코 설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는 1812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코네티컷주 플레인필드에 있는 지역 학교와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의 면직물 사업을 도와 경영 보조 일을 했다. 1837년에는 아버지의 친구인 존 베넛 영에게 1000달러를 빌려 뉴욕에 문구류와 팬시 상품을 판매하는 작은 매장을 열었다. 첫날 매출액은 겨우 4.98달러였다고 한다. 1841년 티파니는 존 베넛 영의 누이인 해리엇 올리비아 에이버리 영과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두었다.

티파니는 1841년 매장을 확장하며 이름을 ‘티파니, 영 앤드 엘리스(Tiffany, Young and Ellis)’로 변경했다. 그는 보헤미안 유리와 도자기 전문점으로 최고급품만을 판매해 명성을 쌓았고, 브랜드 자체적으로 보석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1853년 브랜드명을 ‘티파니앤코’로 변경했고, 현재까지 보석을 전문적으로 제작·판매하는 미국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다. 티파니는 1845년 미국 최초로 우편 카탈로그 ‘블루 북’을 발행해 미국인들에게 럭셔리 제품을 소개했다. 이후 현재까지 블루 북은 1년에 한 번 발간되며 세상에서 가장 희소하고 아름다운 주얼리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으로 귀족의 보석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때 티파니는 프랑스 왕실과 귀족으로부터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를 매입해 ‘다이아몬의 왕’이라 불리며 보석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매입한 다이아몬드는 대부분 미국 스타일의 하이 주얼리라 불리는 티파니앤코의 디자인에 활용됐다. 당시 화려한 유럽 주얼리와 차별화되는 모던한 디자인으로 뉴욕 상류층에 큰 인기를 모았다. 티파니는 1878년과 1889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주얼리로 금상을 수상했으며, 1900년 대상을 받았다.

아틀라스 시계. [티파니 홈페이지]

아틀라스 시계. [티파니 홈페이지]

1853년 뉴욕 5번가 티파니 매장 정문 위 9피트(2.7m) 높이에 청동 소재의 대형 벽시계 ‘아틀라스 시계’가 설치됐다. 이후 티파니앤코의 뉴욕 매장은 1870년, 1905년, 1940년 위치를 3번 옮겼으나 이 모든 매장 입구 상단에는 뉴욕의 상징인 ‘아틀라스 시계’가 항상 걸려 있다. 현재 이 시계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공용 벽시계가 됐다. 그리고 이 상징적 벽시계를 기념하기 위해 1983년 베젤(bezel·시계 계기판)에 로마 숫자를 새겨 넣은 손목시계 컬렉션 ‘아틀라스’를 출시했다.

티파니는 ‘정찰제’를 고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정찰제는 드문 가격 정책이었기에 화제를 모았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은 부인인 메리 토드 여사를 위해 티파니 시드 펄 네클리스(seep pearl mecklace)와 이어링을 구매했는데, 이때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영부인은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에 선물받은 주얼리를 착용했다. 티파인앤코의 제품은 밴더빌트, JP 모건, 재클린 케네디 등 미국 상류층이 애용하며 여성들에게 로망의 대상이 됐다.

가장 크고 화려한 ‘티파니 다이아몬드’

1878년 티파니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젬스톤(gemstone·원석) 중 하나로 알려진 287.42캐럿의 팬시 옐로 다이아몬드를 1만8000달러에 구매했다. 그리고 당시 브랜드의 수석 보석학자 조지 프레데릭 쿤즈 박사는 1년 동안 이 옐로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려 절반 이상 다이아몬드의 손실을 감수하고 커팅부터 세공까지 21번의 공정을 거쳐 82면을 가진 ‘128.54 캐럿 쿠션 브릴리언트 컷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완성했다.

이 다이아몬드는 주얼리 역사상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옐로 다이아몬드로 기록됐다. 또한 티파니는 이 세공으로 캐럿보다는 광채를 더 중요시한다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브랜드 티파니앤코의 철학을 보여줬다.

왕실에서만 큰 사이즈의 보석을 소유하던 시대에 티파니는 옐로 다이아몬드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티파니 다이아몬드’라 명명하고, 이를 판매하지 않고 대중과 공유하기로 결정한다. 이 다이아몬드는 1893년 시카고 세계 컬럼비안 박람회,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 등 많은 국제 전시회에서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약하면서 티파니앤코가 다이아몬드의 대표 브랜드임을 알렸다.

비욘세 & 제이지 부부. [티파니 인스타그램]

비욘세 & 제이지 부부. [티파니 인스타그램]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철저히 전시용으로 보관됐으나 지금까지 단 5명에게만 착용을 허용했다. 1957년 티파니가 주최하는 자선행사에서 당시 사교계의 여왕이던 메리 화이트하우스와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프로모션에서 배우 오드리 헵번이 목에 걸었다. 1960년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디자이너 장 슐럼버제가 디자인한 리본 로제트 목걸이로 제작돼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포스터 촬영에 사용됐다. 이후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수 레이디 가가와 2021년 프로모션에서 가수 비욘세가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최근 128.54 캐럿의 티파니 다이아몬드가 2022년 개봉한 영화 ‘나일강의 죽음’의 주인공 갈 가도트를 위해 제작됐다.

폭발하는 불꽃이나 물을 뿜어내는 대형 분수처럼 보이는 장식의 중앙에 위치해 빛을 발하는 티파니 다이아몬드 디자인은 브랜드의 주얼리 컬렉션과 디자인 모티프의 원천으로 티파니 시그너처 향수 병으로 디자인되기도 했다. 뉴욕 5번가 매장의 장식 일부이기도 한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뉴욕 5번가 매장에 영구 전시되어 매일 300명 이상의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웨딩 링의 상징 ‘티파니 세팅’ & 설렘 유발 ‘티파니블루’

루이 컴포트 티파니. [위키피디아]

루이 컴포트 티파니. [위키피디아]

티파니는 1886년 6개의 프롱(Prong·갈래)에 다이아몬드를 올린 일명 ‘티파니 세팅’을 선보인다. 이는 세계 최초로 밴드와 다이아몬드를 분리한 디자인으로 다이아몬드를 밴드 위로 들어 올려 빛이 하단까지 통과함으로써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 티파니 세팅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오늘날 신부들의 로망이자 결혼 반지의 대명사가 될 만큼 상징적 디자인이 됐다.

1902년 2월 18일 찰스 루이 티파니는 아들 루이 컴포트 티파니에게 티파니앤코를 물려주고 뉴욕 맨해튼에 있는 그의 집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티파니앤코는 200만 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북미에서 가장 저명한 보석 회사로 인정받았다.

티파니앤코의 첫 번째 공식 아트 디렉터인 루이 컴포트 티파니는 아르누보의 선두 주자로서 컬러풀한 자연주의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는 아버지의 회사인 티파니앤코, 블루 북, 세계 박람회 등을 통해 보석 트렌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초기에 디자인한 보석은 1904년 루이지애나 국제박람회에서 전시됐고, 동시대의 예술 비평가들로부터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티파니앤코 매장_1892년. [티파니 홈페이지]

티파니앤코 매장_1892년. [티파니 홈페이지]

루이 컴포트 티파니는 1892년에 ‘티파니 글라스 앤드 데코레이팅 컴퍼니’를 설립했고, 1902년에 ‘티파니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조명기구, 유리 모자이크, 꽃병, 보석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혀갔다. 이후 티파니 스튜디오와 티파니앤코에서 일하다가 1933년 1월 17일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1903년 티파니앤코는 당시 보석학자 직책을 둔 최초의 리테일 매장이었다. 티파니앤코의 수석 보석학자 조지 프레데릭 쿤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당시 발견된 핑크빛 원석을 ‘쿤자이트’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10년 조지 프레데릭 쿤즈 박사가 원석 ‘모거나이트’를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이는 은행가이자 자선가인 J.P.모건의 업적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장 슐럼버제. [티파니 홈페이지]

장 슐럼버제. [티파니 홈페이지]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티파니앤코 역시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나 1955년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월터 호빙이 티파니앤코를 인수하면서 크게 도약했다. 그의 성공 요인은 감각 있는 디자인 디렉터들을 영입해 디자인 혁신을 통해 가치를 높인 데 있다. 1955년 진 무어가 티파니앤코에 합류하면서 유명 아티스트와의 창의적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뉴욕 티파니앤코 매장의 쇼윈도는 전 세계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56년 전설적 디자이너 장 슐럼버제는 식물과 바다 생물을 귀중한 젬스톤으로 표현해 그의 호화롭고 기발한 디자인을 재치 있게 활용했다.

사랑의 상징, 뉴욕 티파니 매장

티파니 박스. [티파니 홈페이지]

티파니 박스. [티파니 홈페이지]

티파니앤코는 매장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티파니블루 컬러를 통해 컬러 마케팅을 했다. 티파니블루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결혼식 하객들에게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울새의 알 색인 블루 컬러의 비둘기 모양 브로치를 선물한 것에서 유래했다. 1845년 티파니는 이 색을 신규 주얼리 카탈로그인 블루 북의 커버 색으로 사용했다. 1886년 티파니 세팅 제품을 선보일 당시 티파니 블루 박스에 넣어 판매한 것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 티파니 블루 박스는 인기가 많아서 1906년부터는 판매된 물품 외에 박스 유출이 엄격히 금지됐다.

티파니 블루의 브랜드 상징성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티파니앤코는 1998년 상표등록을 통해 ‘티파니블루’라는 고유의 색을 색채상표로 갖게 됐다. 2001년 티파니앤코는 팬톤과 함께 아이코닉한 티파니블루 컬러를 기념하는 팬톤 컬러 ‘1837 블루’ 컬러를 제작했고, 이는 바로 티파니의 창립 연도이다.

오드리 헵번. [Gettyimage]

오드리 헵번. [Gettyimage]

갈 가도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갈 가도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앞서 언급했듯 티파니앤코는 브랜드명이 영화 제목(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으로 들어간 첫 패션 브랜드다. 1961년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인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 커플이 뉴욕의 티파니앤코 매장을 방문해 이니셜을 새겨달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대중에게 명장면으로 남아 뉴욕의 티파니앤코 매장은 세계적으로 사랑의 상징이자 약속의 장소로 유명해졌다. 이후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과 ‘스위트 알라바마’(2002)도 티파니앤코 매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1969년 티파니앤코의 베스트셀러 컬렉션 중 하나인 ‘리턴 투 티파니 키링’을 선보였다. 판매된 링에는 고유 시리얼 번호가 등록돼 분실할 경우 뉴욕 5번가의 티파니 매장으로 돌려보내져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1974년 엘사 퍼레티가 티파니에 합류하면서 실버(은) 92.5%에 다른 금속 7.5%가 함유된 실버 합금의 ‘스털링 실버(sterling silver)’가 주얼리 디자인으로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는 데일리로 착용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바이 더 야드 컬렉션’을 통해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탄생시켰다.

1979년 존 로링이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된 이후 40년 동안 티파니 디자인의 헤리티지를 구축했다. 1980년 팔로마 피카소가 1970년대 뉴욕 건물 벽면의 그라피티로부터 영감을 받은 시크하고 그래픽적인 주얼리 디자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2009년에는 낙천성과 희망을 나타내는 아이코닉한 ‘티파니 키 컬렉션’을 론칭했다. 티파니 키 펜던트는 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워더브러더스 코리아]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워더브러더스 코리아]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를 통해 티파니앤코의 주얼리가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과거를 재현한 주얼리 제작에만 18개월이 소요됐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개츠비 집 인테리어 곳곳을 티파니앤코 제품들로 장식했다. 영화 속 주인공 캐리 멀리건은 진주를 술 모양으로 장식한 목걸이, 다이아몬드와 양식 진주를 수놓은 머리 장식, 우아한 손동작을 강조하는 데이지 꽃문양의 손 장신구를 착용하며 브랜드 티파니앤코에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2014년에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아이콘, 창의성, 행복, 사랑, 강인함을 담아낸 ‘티파니 T 컬렉션’을 론칭했다. 그리고 2017년 뉴욕 5번가 매장에 블루 박스 카페를 오픈해 영화 제목처럼 모두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신동아 2022년 4월호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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