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이룬 65년의 기적
구원의 영역인 ‘세상’에 ‘생태계’도 포함
교회도 다음 세대 키우는 노력을 해야
젊은 목사 설교에 희망 찾은 사람들
故 조용기 목사는 영적 스승이자 아버지
15년간 한뜻으로 지지해준 교인들에 감사
온전히 예수님 닮은 모습 회복하는 교회로
5월 21일이 취임 15주년인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세상이 어려울수록 “담을 허물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예배당 건물은 교회 이름만큼이나 유명하다. 지름이 넓은 원기둥형 건물로 짙은 갈색의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려 지어졌다. 예배당은 압도적 위용 때문인지 멀리서 보면 연식을 짐작하기 어렵다. 차츰 가까이 갈수록 군데군데 벗겨진 칠, 녹슨 철제 장식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낸다. 반세기 동안 날마다 신자들을 포용해온 예배당은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온몸으로 말하고 서 있는 듯하다.
세계 최대 교회로 창대해진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시작은 미미했다. 1958년 5월, 서울 대조동 빈민촌의 어느 천막 아래 다섯 사람이 모였다. 사과 궤짝에 보자기를 덮어 만든 강대상 위에 성경이 펼쳐졌다. 스물두 살 청년 조용기 전도사가 형제자매 앞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사회 저변에 곤궁함과 절망감이 뒤섞여 빛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시대였다. 조용기 전도사는 그 암흑 같던 세상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지지치 않고 끝없이 던졌다.
65년 전 천막 아래 피운 신앙의 불꽃
1979년 11월 4일 ‘성도 10만 명 돌파 기념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여의도순복음교회]
65년 부흥의 중심에는 두 사람이 있다. 1대 담임목사인 고(故) 조용기 목사(1936~2021)와 2대 담임목사인 이영훈(69) 목사다.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하고 확장한 주인공이자 여의도순복음교회 그 자체로 불렸다. 그가 교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48년 동안 목회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2000년대 초, 여러 대형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자녀에게 직을 물려주는 ‘교회세습’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를 향한 세상의 눈초리도 다르지 않았다.
교회는 다른 선택을 했다. 교인들의 직접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새 담임목사를 선출했다. 2006년 11월, 7명의 후보 가운데 당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목회 활동 중이던 이영훈 목사가 최종 1인으로 뽑혔다. 이 소식을 조 목사가 직접 전화로 알렸다. 이 목사에게 미국 유학을 권한 사람도, LA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있던 그를 다시 한국으로 부른 사람도 조 목사였다.
2008년 5월 고(故) 조용기(오른쪽) 원로목사가 후임으로 선출된 이영훈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주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오늘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서대문·용산·강남·동대문·광명 등 지·직할성전 18곳, 부산·강릉·광주 등 지교회 24곳, 분당·안산 등 제자교회 18곳으로 이뤄져 있다. 두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65년 만에 이룬 기적 같은 결과다.
하나님의 창조 善意 따라야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 교회는 코로나19로 잃어버린 3년을 보내야 했다.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자 많은 교인이 교회를 떠났다. 올해 들어 각지의 교회들이 다시금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역시 비전을 갖고 교회의 부흥을 기도하고 있다.오늘날 세상은 사람들이 선뜻 종교를 갖기 주저하게 만든다. 나라 안팎으로 불가항력적인 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기후위기 가속화로 4월부터 20℃를 웃도는 여름 날씨가 이어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줄 모르는 데다가 그로 인한 에너지 위기도 심화한다. 엔데믹 시대를 맞았지만 도처에 경제위기 경고음이 들려온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소멸, 마약 확산으로 인한 새로운 사회문제 등 국내 문제도 답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어떤 길을 제시해야 할까. 이영훈 목사에게 답을 듣기 위해 4월 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았다. 낡은 예배당 내부의 시간은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성가 때문인지 성스러운 공기가 감도는 것도 같았다.
1층 접견실에서 만난 이영훈 목사는 칠순을 앞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게 할 정도로 꼿꼿하고 활력이 넘쳤다. 하루에도 목회 일정이 수십 건인 대형 교회인지라 교인들이 그의 체력을 보고 담임목사로 선출한 것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스쳤다. 동석한 교회 관계자는 “체력이 좋을뿐더러 교회와 본인의 연혁·연도를 숫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이 목사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청년의 기세로 답을 이어갔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세상이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올해 벚꽃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일주일 빨랐고, 4월 기온이 20℃를 넘나들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데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요.
“기후위기는 인간이 일으킨 재앙입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이 살고자 생태계를 파괴했기 때문이죠. 이미 30년 전부터 다수의 국제신학회에서는 ‘생태계 파괴와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영역이 어디까지 포함되느냐 하는 것이 주제였죠.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원, 생태계 구원까지 포함돼요. 우리는 기독교 차원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을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선의(善意)를 따라 인간인 우리가 기후 대책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한국 교회 전체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대처하고, 진보와 보수 진영을 떠나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할 어젠다라고 봅니다.”
국제사회 문제들도 심각합니다. 끝나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갈등, 에너지 고갈 위기, 또다시 닥칠지 모를 전염병에 대한 공포까지 불안에 떠는 사람이 많은데요.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세계 곳곳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죠. 일부 국가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심한 고통과 절망도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갔기에 인류는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희망, 나아가 신앙이라고 하죠. 지난해 발간된 ‘한국교회 트렌드 2023’을 보면 현대인은 물질보다 영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불안한 시대에는 물질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기에 영적인 것을 갈구하는 거죠. 우리나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1위이고,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합니다. 젊은 세대가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마음에 기쁨이 없고, 희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가장 큰 역할은 바로 신앙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거예요. 신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비로소 평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통렬하게 반성해야 할 때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교단으로 성장하는 시간 동안 한국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잘 먹고 잘살게 됐으니 종교의 역할은 끝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살게 되니 또 다른 문제들이 고개를 들었다. 가정을 이뤄 아이를 낳으려 하는 젊은 세대는 급격히 줄었고, 마약에 기대는 이들의 비율도 늘었다. 이 목사는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지금 속도라면 80년 뒤 한국은 인구 1500만 명의 작은 국가가 된다고 합니다. 그때는 교인 숫자도 확연히 줄어들 것 같은데요.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보는지요.
“어쩌면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문제 가운데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국의 대학교 정원이 52만 명인데 2022년 약 24만9000명이 태어났거든요. 앞으로 18년 후에 우리나라 대학의 55%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016년부터 15년간 정부가 저출산 예산으로 약 380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합계출산율은 해마다 줄고 있죠. 이유가 뭘까요. 젊은 친구들은 ‘아이를 낳아서 키울 환경이 안 되는데 어떻게 낳느냐’고 반문합니다. 만일 국가에서 ‘아이를 낳으면 집도 주고 생활비도 주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380조 원의 예산을 아이 1명 낳을 때마다 1억 원씩 주는 데 썼다면 38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죠. 지방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전남 강진군에서는 아이 1명당 7년에 걸쳐 5000만 원씩 지급하고 있습니다. 3명 낳을 경우 매월 200만 원 가까이 받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출산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해요. 이처럼 교회 안에서도 다음 세대를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다음 세대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영적인 믿음의 유산과 실질적 사랑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고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한국은 이제 ‘마약 청정국’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습니다. 이른바 사이비 교단 문제도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이런 문제들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요.
“사회가 불안하고 혼란할 때 이런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당장 해소하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는 거죠. 불안을 없애주는 답을 물질적 도구나 수단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들이 신앙의 힘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고 두려움을 물리치도록 돕는 것이 우리 기독교가 가진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비슷한 맥락에서 이단과 사이비는 사회가 혼란할 때 횡행합니다. 가장 심하게 난립한 때가 6·25전쟁 직후입니다. 그때 형성된 이단들의 제자 그룹이 오늘날 사람들의 불안을 노리고 재현됐다고 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기독교가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단이 노리는 사람들은 소외된 계층입니다. 이단에 빠졌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반 교회는 내가 가도 잘 봐주지 않는데 이단은 찾아와서 너무나 나를 사랑해줬다. 그런 사랑은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했다. 결국 이단인지도 모르고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라고 하는데 한국 교회는 전통적인 신앙 교리를 가르치는 데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큰 궁궐을 지을 것이 아니라 담을 허물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역할입니다.”
한국 교회 부흥 주역 조용기 목사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박해윤 기자]
“부흥의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저는 어릴 적 들었던 할아버지 말씀에 핵심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4대째 신앙을 이어오는 장로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조부와 외조부 모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던 중 월남하셨고, 외삼촌과 사촌들도 목사가 됐죠. 저와 제 동생도 목사가 되면서 뒤를 잇게 됐습니다. 할아버지 이야기로 돌아가면, 초등학생 때 서대문구 냉천동에 살았는데 집에서 거리가 있는 장로교회에 온 가족이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새벽예배는 가까운 순복음교회에서 드려야겠다고 하셔서 홀로 다니셨어요. 얼마 뒤 온 가족을 불러 앉혀놓으시고는 ‘젊은 목사가 성령 충만하고 설교를 아주 잘한다. 이제부터 그 교회로 출석하자’고 말씀하셔서 그날로 옮겼습니다. 저 역시 할아버지 말씀처럼 조용기 목사님의 성령 충만하고 탁월한 메시지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조 목사님 설교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선포하는 순복음교회로 몰려든 것이죠.”
조용기 목사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제가 열한 살 때 목사님을 처음 뵀습니다. 냉천동 45번지에 살았는데 목사님은 41번지에 사셨어요. 하굣길에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목사님이 툭 치고 지나가시면서 ‘재미있게 놀아~’ 하고 웃음 지으셨죠. 저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자 스승이고 멘토셨습니다. 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도,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할 때도 조 목사님 기도를 받고 갔으니까요. 1982년 조 목사님께서 미국의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좋겠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셔서 전액 장학생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조 목사님이 저를 키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 목사님은 한 마디로 절대 긍정의 인격체였습니다. 설교 때마다 ‘할 수 있다. 해보자’ ‘눈에는 보이는 것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음을 갖고 나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절대 긍정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 지금까지 목회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가 기독교를 믿고 있던 경우를 모태신앙이라고 한다.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대중 종교로 자리 잡은 지 반세기가 넘으면서 모태신앙인의 숫자도 늘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진정한 신앙인이냐 하는 데는 의문이 따른다.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의지가 반영된 수동적 믿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목회자를 업으로 삼는 경우 진실한 영적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평생을 바쳐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어렵다. 이 목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머님 소원이 목사였는데 장로교에서는 여성이 목사가 될 수 없어 아들 넷을 놓고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될 운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죠. 늘 그러고 다니니 학교에서도 별명이 ‘목사’였어요. 그런데 영적 체험은 못하고 있던 때였어요. 조 목사님이 성령침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더군요. 누구보다도 성령충만 받기를 원했고 매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1년 10개월 만인 1966년 2월, 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조 목사님이 닷새 동안 고백기도를 하셨는데 넷째 날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진짜 예수님은 살아 계시구나.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알고 있던 예수님이 내 삶에 걸어 들어오시는 감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많이 울면서 ‘내 삶을 이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모든 성도가 ‘작은 예수’가 되길
5월 21일은 이영훈 목사 취임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국내 4대 대기업 종사자를 합산한 숫자(약 72만 명)보다 많은 등록교인을 상대로 매주 설교를 해오고 있다.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일 터다.“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이런저런 말이 있기는 했죠. 2대 담임목사로 선출되고 나서도 저를 인정하지 못한 성도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자 제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과 사람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주셨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감사한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장로만 1300명입니다. 국회의원 300명도 마음이 안 맞아서 싸우는데 1300명이나 되는 어르신들은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못 미더워도 제 뜻을 따라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본인들이 투표로 뽑았기 때문에 어찌 됐건 본인들이 세운 목사가 잘못되면 안 되니까 15년간 많이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 장로님들과 성도님들 그리고 신실하신 많은 목사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65년간 순조롭게 이어져온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 교회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되길 희망하나요.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한 교회, 상처받고 소외당한 사람을 사랑으로 치유하고 품어주는 교회, 큰 교회이기 전에 사람을 섬기며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교회여야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예수님의 몸 된 교회로서 어두워져가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한국에서 기독교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만큼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회로부터 비판과 우려의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됐을 때 사회 전반에 끼쳤던 선한 영향력을 잊고, 시대적 부름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반성을 통해 교회의 본모습인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 화목과 화해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성도가 ‘작은 예수’가 되길 노력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우리도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예수님 닮은 나눔과 섬김의 모습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예수님 닮은 모습을 회복한다면 기독교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레 달라질 것입니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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