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편안한 호흡 책임지는 마스크 : ‘쌍방울 사단’ 마스크 깃발 아래 모여
②마스크 패션 재창조 : ‘KBO 마스크’ 출시 남영비비안 올해 안 신제품 내놔
③마스크 생산 첨단장비 : 미래산업 7월 마스크 생산 장비 공급 계약
④K-마스크 세계에 알리겠다 : 나노스 마스크 해외 수출 도전
쌍방울과 3개 관계사들이 6월 1일 공개한 TV 광고. [쌍방울 유튜브 캡처]
“나, 쌍방울 대표 김세호는 편안한 호흡을 책임지는 마스크를 만들겠습니다!”
뒤이어 쌍방울 관계사 대표들이 하나씩 정체를 밝히며 공약을 내놓는다. 이규화 남영비비안 전 대표, 선종업 미래산업 대표, 양선길 나노스 대표가 각각 ‘마스크 패션 재창조’ ‘마스크 생산 첨단 장비 개발’ ‘한국 마스크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6월 1일 공개된 이 광고는 다소 촌스러웠는데도 효과는 확실했다.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네 가지 공약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한 가지는 확실히 머리에 남았다. ‘쌍방울이 마스크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광고인지, 선언인지 모를 영상이 전파를 탄 지 두 달이 지났다. 대표 4명은 과연 약속을 얼마나 지켰을까.
4개 업체, ‘마스크 깃발’ 아래 모여
광고의 파격에 놀라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광고는 쌍방울 광고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쌍방울 외 남영비비안, 미래산업, 나노스 등 다른 회사도 공약을 내걸어서다. 김세호 쌍방울 대표가 처음 등장한데다 대표 4명이 말하는 방식도 같으니 쌍방울 광고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지만 형식을 떼고 광고만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4개 회사 대표가 각각 자사의 마스크 산업 진출 방안을 말한다.
그나마 남영비비안이야 토종 속옷 브랜드로 업태가 쌍방울과 비슷하다지만 미래산업과 나노스는 비즈니스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미래산업은 반도체 검사 장비인 ‘테스트 핸들러’를 제조하는 업체, 나노스는 휴대폰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던 업체다. 자칫 기름과 물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조합으로 보일 수도 있다.
4개 회사는 쌍방울을 중심으로 지분으로 엮여 있는 관계사들이다. 속옷 회사와 IT관련 제조업체를 묶는 공통분모는 쌍방울의 최대 주주인 광림. 특장차, 유압크레인 생산업체 광림은 쌍방울을 중심으로 3개 회사를 사들였다. 2016년 나노스를 시작으로 지난해 11월 남영비비안, 올해 3월 미래산업을 산하에 들였다.
‘쌍방울의 약속’이 아니라 ‘광림의 약속’이 맞는 듯 보이지만 광림은 쌍방울의 경영권을 가져왔을 뿐 인수한 것은 아니다. 물론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두 회사는 거의 한 몸이다. 광림은 쌍방울 지분 18%를 가진 최대주주. 쌍방울도 광림의 지분 14.03%를 갖고 있다. 광림의 최대주주는 칼라홀딩스다. 광림 지분의 32.07%를 보유하고 있다. 칼라홀딩스가 광림과 쌍방울을 엮는 지주회사 노릇을 한다. 이 회사의 대표는 양선길 나노스 대표로 미래산업 대표도 맡고 있으며 광림의 사내이사이기도 하다. 2013~2018년 3월 쌍방울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 네 회사를 ‘쌍방울 사단’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4명의 대표가 내놓은 공약에서 볼 수 있듯 쌍방울 사단은 마스크 시장에서 각자 맡은 바 소임이 있다. 대표선수 격인 쌍방울이 마스크 생산, 남영비비안은 새 디자인의 마스크 개발을 맡았다. 미래산업은 마스크 생산설비를 개발하고, 나노스는 쌍방울 사단이 만든 마스크를 국내외로 유통하는 일을 담당한다.
대표 수시로 바꾸며 활로 찾아
3월 취임한 김세호 쌍방울 대표이사. [김도균 객원기자]
이 같은 부진에 쌍방울은 체질을 바꾸려 나섰다. 가장 먼저 바꾼 것은 대표다. 광고에 나온 김세호 대표가 그 주인공. 3월 31일 대표이사 자리에 앉은 그의 나이는 42세. 2003년 쌍방울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영업·마케팅 분야에서 일한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그는 지난해 열린 쌍방울의 사내 공모전 ‘내가 쌍방울의 경영진이라면?’에서 우승했다. 이를 계기로 차장에서 부사장으로 일약 승진한 후 4개월 뒤 대표이사가 됐다. 현장을 잘 아는 젊은 대표를 내세워 혁신에 나선 것이다.
남영비비안은 올해만 3번 대표를 바꿨다. 1월 남석우 전 대표이사가 물러난 후 엄용수 전 대표가 취임했으나 13일 만에 자리를 내놨다. 엄 전 대표에 이어 취임한 사람이 광고에 등장한 이규화 전 대표. 7월 20일 이 전 대표 대신 손영섭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남영비비안 측은 “(손 대표는) 기존 사업과 신사업(마스크)을 아우를 수 있는 분”이라며 교체 이유를 밝혔다.
쌍방울 체질 개선의 핵심은 마스크 시장 도전이다. 쌍방울이 마스크 산업에 뛰어든 지는 벌써 1년이 됐다. 지난해 7월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마스크 공급을 시작했으나 마스크 시장에서 본격 행보를 보인 것은 광고가 나간 이후부터다. 6월 2일부터 쌍방울과 관계사들은 마스크 생산시설 확보에 나섰다. 쌍방울과 남영비비안은 전북 익산시 국가산업단지에 300억 원을 투자해 마스크 설비 30대를 도입하고 근로자 150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광고 두 달 만에 공약 전부 이행
KBO 심판위원이 남영비비안이 내놓은 신제품 ‘KBO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뉴스1]
7월 8일 쌍방울과 미래산업은 33억 원 규모의 KF보건용 마스크 제조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래산업이 맡은 역할은 마스크 제조장비 생산이다. 국내외 256건의 특허 기술을 바탕으로 마스크 제조 장비를 개발했다.
쌍방울 사단이 마스크 생산 설비까지 직접 만들겠다고 나선 이유는 공급 안정화를 위해서다. 장진우 쌍방울 홍보실장은 “현재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는 대부분 중국 등 해외 설비를 이용해 마스크를 만든다. 문제는 이 설비가 고장이 잦다. 고치려 해도 부품 수급이 어렵다. 고장이 덜 하고, 국내에서 쉽게 부품을 구할 수 있는 마스크 생산 설비를 갖춘다면 안정적으로 마스크 공급이 가능하다. 생산 단가도 낮출 수 있다. 벌써 마스크 생산 설비를 구매하겠다는 업체도 상당수 있다”고 밝혔다.
마스크 유통은 나노스가 맡는다. 7월 28일 주주총회에서 사업 목적에 마스크 제조·유통·판매와 제약·항균·환경 관련 제품 제조 및 가공을 추가할 예정이다. 쌍방울 관계자는 “광고에서 내건 네 가지 공약을 전부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마스크 생산 허가만 남은 상태다. 국내에서 마스크를 생산·유통하려면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늦어도 이번 달 내로는 쌍방울의 신제품 마스크가 출시 및 유통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쌍방울은 마스크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고자 유상 증자까지 감행했다. 7월 2일 65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채무상환자금 확보(320억994만 원)가 주 이유였지만, 이 중 219억 원은 마스크 생산을 위한 설비 구입, 공장 신축 공사비, 마스크 관련 자재 구입비용으로 쓸 예정이다. 쌍방울 측은 “채무 상환자금을 제외하면 전부 마스크 사업 본격화를 위한 실탄 확보 차원”이라고 밝혔다.
쌍방울의 마스크 시장 도전에 대한 우려의 눈길도 적잖다. 한국기업평가는 4월 24일 쌍방울의 무보증회사채(회사채) 등급전망을 BB-(안정적)에서 BB-(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혜원, 조원무 한기평 연구원은 기업등급 평가 보고서를 통해 “업계 내 경쟁 심화와 브랜드 이미지 노후화 등으로 사업 안정성이 저하되고 있는 점과 영업실적·재무안정성의 개선 가능성이 제한적인 점 등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마스크 사업에 관해서는 “마스크를 외주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으나 주력 제품의 매출 감소를 방어하기에는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쌍방울 “마스크로 실적 역전, 충분히 가능”
쌍방울은 마스크 사업에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쌍방울 관계자는 “과거 OEM으로 마스크를 생산할 때는 마스크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직접 생산설비를 갖추지 않았으니 안정적으로 마스크를 공급하기도 어려웠다. 이제는 마스크 생산 설비를 갖췄다. 안정적으로 마스크를 공급할 수 있으며 생산 단가도 낮출 수 있다. 설비 완비 이전에 받아놓은 주문만으로도 올해 생산량은 전부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실적도 지난해에 비해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쌍방울 광고는 4명의 대표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끝난다. 마스크를 이야기하다 갑작스레 만세를 외친 내막은 ‘민족 기업’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서다. 쌍방울 측은 “마스크 산업에 도전한 이유는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원활하게 공급해주고 싶어서다”라고 밝혔다. 장진우 홍보실장은 “올해 2월~5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마스크 공급이 부족했다. 일부 업체들은 가격을 올려 돈을 벌었겠지만, 쌍방울은 국민 안전을 위해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마스크 시장에 도전한 이유도 이윤 보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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