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여덟 가지 키워드로 읽는 윤석열의 모든 것

“역사에 남는 리더 되겠다는 생각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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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03-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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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내심…“끈질기게 기다리고 통합하는 쪽”

    • 명예심…“‘Team of Rivals’ 구현하려 해”

    • 타인에 대한 관심…“오지랖 넓다고 할 수도”

    • 외향성…“야근하면 ‘라면 먹으러 갈래?’ 물어”

    • 겸양…“솔직히 20·30세대 생각 잘 모른다”

    • 지적 호기심…“부친 덕인지 관심 범위 넓어”

    • 脫권위주의…“실무자에게 확실한 권한 준다”

    • 정무 감각…“저 사람 단순한 검사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미증유(未曾有).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을 이보다 더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검찰총장이 권력 핵심부와 부딪치다 뛰쳐나와 ‘정권 심판’을 부르짖으며 대권 고지를 점령했다. 3월 9일, 그러니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 263일째 되는 날이다. 반전이라는 말 한 마디로 요약할 성질의 이슈가 아니다. 누구도 점치기 어려웠고, 일말의 예측도 가능하지 않았으며,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도 알 수 없는 일대 사건이다. 한국 정당정치의 질서는 붕괴됐다. 누군가에게는 폐허의 묵시록일 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개혁의 지렛대일 것이다.

    흡인(吸引). 2018년 10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이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 의원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피해자 9명이 저를 찾아와서 ‘(윤 지검장) 장모로부터 사기당해 30억 원을 떼였고, 윤 지검장이 배후에 있다’는 하소연을 했다”고 말했다. 윤 지검장은 “아무리 국감장이지만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닌가”라며 화가 잔뜩 섞인 톤으로 따졌다. 그 야당 의원은 지금 당선인 비서실장(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됐다. 대선의 마지막 승부처였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담판’도 장 의원 매형 집에서 이뤄졌다.

    전향(轉向). 2월 21일 공개된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윤석열 지지 선언’은 ‘반명(反明) 선언’이기도 했다. 그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해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후보, 보통 사람의 도덕성만도 못한 후보, 부끄러움도 모르는 후보”라고 맹비난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측근이던 그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 전 후보 측과 대립했다.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3월 1일. 강성 친문(친문재인) 단체인 ‘깨어있는 시민연대’가 ‘보수와 진보 진영통합 윤 후보 지지 선언’을 열었다. 이들 역시 이 전 후보를 날선 투로 비판해 왔다.

    포섭(包攝). 3월 5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열린 유세는 이번 대선의 백미였다. 윤 당선인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왼쪽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손을 맞잡았다. 이 대표와 안 대표는 오랫동안 불화했다. 이들은 윤 당선인과도 얼굴을 붉힌 사이다. 이 대표는 두 차례 ‘이탈 파동’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윤 후보에게 알랑거려서 정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 대표는 윤 당선인을 겨냥해 “대통령이 전문가를 뽑을 머리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지금 두 사람은 윤석열 정부 탄생의 공신 반열에 올랐다.

    “보수의 포획물쯤으로 여기다가는…”

    3월 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오른쪽)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3월 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오른쪽)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난마처럼 얽힌 정치 상황은 인간 윤석열을 계획에 없던 길로 인도했다. 노력이건 천운이건, 그는 없는 길을 개척해 이 자리에 온 사람이다. 이해관계가 무엇이건, ‘가족 비리 의혹’을 언급한 상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복심(腹心)으로 품었다. 적의 적을 친구로 만들며 전선을 재편한 전략적 기민함도 있다. 정치적 경쟁자들에게 적절한 명분과 실리를 제공하면서 자신은 더 큰 실리를 취한 노회함도 갖췄다.



    ‘포용력’이라고 단순히 갈음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2007년 고건·정운찬·문국현, 2012년 안철수, 2017년 반기문 등 그간 명멸한 비(非)정치인 대권주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재능이기 때문이다. 그가 당내 경선에서 일합(一合)을 겨룬 보수 거물들조차 두루 갖추지 못한 미덕이기도 하다.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시달린 그는 특유의 정치력을 구축해 단기간에 약점을 보완했다. ‘전라디언의 굴레’를 쓴 조귀동 작가는 3월 3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그가 (중략) 밀당(밀고 당기기)과 협상 등을 통해 다른 세력이나 파당을 끌어당겨 무언가 ‘그림’을 만드는,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던 ‘큰 정치’ 비슷한 걸 하려는 사람인 건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그 반대파들이 윤(석열)이 초보라서 뭘 모르고 어리바리하다거나, 아니면 ‘진보 일반’이 가지고 있는 상식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중략) 꼰대 아니냐는 이야기로 무작정 깎아내리고 보수의 포획물쯤으로 여기다가는 안 될 것 같기도 한데….”

    관점을 바꿔보자. 그를 “생명력 있는 발광체가 아니고 반사체”(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2021년 3월 18일 KBS 라디오)라고만 평해 버리면 우리는 어떤 본질을 놓치고 만다. 그것은 “윤석열이 아니라 그 누구였어도 결론은 같았을 것”이라는 손쉬운 해석으로 미끄러진다. 1년여 전 이해찬은 “대선후보가 되려면 발광체가 돼야 한다”며 ‘윤석열 불가론’을 폈다. 윤 당선인이 이겼으니 이해찬의 분석틀을 빌리자면 발광체로서의 역량을 확인해 볼 단계다.

    정치 및 행정학계에는 대통령의 성격이 국정 운영과 정책 추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여럿 있다. 대통령학 권위자인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가 2018년에 쓴 논문 ‘한국 대통령의 성격 분석: ‘중요한 5특성 판별법’(Big Five Trait Taxonomy)의 발전과 적용’(행정논총, 제56권 제3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온 길과 이념은 전혀 다르지만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수줍어하고 방어적이고 내성적’이라는 성격 면에서 공통점이 매우 많다. (중략) 즉, 그들의 이러한 방어적이고 내성적 성향은 원만한 정치적 관계, 특히 대여야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들어 대통령으로서 주요 정책의 국회 법률화를 강조하는 ‘입법 리더십’을 약화시켰고 국정 운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성격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지도자의 경우 반복되는 행동이 곧 리더십을 구성한다. 그러니 성격과 인격, 행동상의 특징을 포괄하는 퍼스널리티(personality)는 윤 당선인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꼭 경유해야 할 주제다. 여기서는 그의 퍼스널리티를 구성하는 키워드로 인내심, 명예심, 타인에 대한 관심, 외향성, 겸양, 지적 호기심, 탈권위주의, 정무 감각 등 8가지를 제시한다. 지난해 11월 12일 진행한 윤 당선인과의 인터뷰와 그의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취재 등을 두루 종합해 내린 결론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정치적 재능’

    18·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민식 전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오래전부터 윤 당선인과 교유(交遊)했다. 사법연수원 25기로 23기인 윤 당선인의 2년 후배다.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부터 기획실장으로 합류해 캠프의 골격을 짜는 데 기여했다. 본선에서는 선거대책본부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다. 대선 과정에서 작전·상황 업무의 중추 역할을 한 핵심 요직이다. 그와의 문답이다.

    대선 기간 중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도 있었고 선대위가 선대본부로 재편되기도 하는 등 고비가 있었다. 윤 당선인이 흔들리지는 않던가.

    “(당 안팎에서) 갈등이 있었지. 경선 때도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래도 윤 당선인이 끝내 통합하는 방향으로 갔다. 윤 당선인의 워딩(wording)에 의하면 ‘기다림의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끈질기게 기다리고 결국 통합하는 쪽으로 갈 수 있도록 (참모들도) 옆에서 서포트를 하고 많은 건의를 드렸다.”

    박 전 의원의 말대로 윤 당선인의 퍼스널리티를 구성하는 키워드 하나는 기다림, 다른 말로 인내심이다. 그는 2013년 이른바 ‘항명 파동’을 일으켜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그 뒤 대전고검 검사로 발령 받는 등 박근혜 정부 내내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잘나가던 특수통이 한직을 돌며 느꼈을 수모감은 쉬이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도 검찰에 남았으니 그의 인내심은 오래전 검증됐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박 전 의원에게 물었다.

    윤 당선인의 정치 스타일을 두고 한국 정치에서 사라졌던 ‘큰 정치’의 귀환이라 평하는 시각도 있는데.

    “사실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에 관한 보고서를 우리가 만든 적이 있다. 경쟁자들을 끈기 있게 포용하는 것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통합의 리더십을 펼쳤다. 윤 당선인은 역사에 남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더라.”

    ‘팀 오브 라이벌스’는 퓰리처상(Pulitzer Prize) 수상 작가인 미국 역사학자 도리스 굿윈이 쓴 논픽션 제목이다. 부제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정치적 재능’이다. 국내에는 ‘권력의 조건’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으로 번역됐다. 책에는 링컨 전 대통령이 대선 경선 상대였던 세 명의 정적을 국무장관, 재무장관, 법무장관에 임명한 사례가 담겨 있다. 링컨은 상대 당인 민주당 출신들도 장관직에 앉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링컨의 용인술을 차용해 당내 경선에서 경쟁한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했다. 또 공화당 출신의 척 헤이글, 존 맥휴, 레이 러후드를 각각 국방장관, 육군장관, 교통장관으로 발탁했다.

    ‘역사에 남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가 뭐래도 명예심의 발로다. 거기에는 대탕평 인사를 구현한 리더로 기록되고 싶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윤 당선인과 자주 소통하는 강명구 전 선대본부 일정총괄팀장은 “윤 당선인은 ‘민주당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다’면서 여러 사람의 이름까지 거론했다”며 “민주당의 양식 있는 정치인들과 함께하겠다는 공언은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3월 14일에는 윤 당선인이 첫 국무총리로 김부겸 현 총리를 유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아주 간곡히 설득하는데, 마음이 짠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 시절. [동아DB]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 시절. [동아DB]

    대통령의 명예심은 독자적인 어젠다와 업적을 통해 충족된다. 역대 대통령은 상징적이라고 할 만한 어젠다를 추구했다. 건국의 공로가 있는 이승만, 산업화를 일군 박정희, 경제 자유화에 시동을 건 전두환,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 최초의 문민정부로 기록된 김영삼, 대북포용 정책을 내건 김대중, 탈(脫)권위의 시대를 연 노무현 등이 있다. 이와 비교하면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의 유산은 또렷하지 않은 편이다.

    기자는 지난해 11월 12일 진행된 윤 당선인과의 인터뷰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지금 답변을 복기해 보면 그의 명예심이 잘 녹아든 발언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역사에 남을 만한 어젠다를 중심으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평가하고 있고, 자신도 그와 같은 반열에 오르고 싶다는 뜻으로 읽혀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독재, 유신이라는 그림자를 갖고 있지만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 비전을 설정해 (산업화를)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민주화가 됐겠는가 생각한다. 박 전 대통령이 속도감 있는 산업화를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그렇게 탄압을 많이 받았는데도 화해와 용서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끌어냈고,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극복하면서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김 전 대통령 하면 흔히 사람들은 민주주의, 인권, 화해, 용서, 통합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한일관계에서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남북 사이에서의 6·15 선언을 이뤄냈고 그것이 노벨평화상 수상의 이유가 됐지. 하지만 그분이 IT(정보기술) 기반을 구축해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은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또 (DJ가) 보편적 원리에 따라 원칙 있는 국정 운영을 해왔다는 점을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대통령이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 같지만, 정치적 카오스(혼돈) 안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늘 고독한 결단을 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 모두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갔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두 분(박정희·김대중)은 특히 통찰력을 갖춘 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박민식 전 의원과 나눈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윤 당선인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을 만한 일화가 있나.

    “남이 어려울 때 굳이 자기가 안 나서도 되는데 나서는 거지. 내가 특수1부 검사 시절 사표를 쓰려고 할 때다. 그때는 윤 당선인하고 나하고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접 보자면서 나오라고 하더라.”

    만났더니 뭐라던가.

    “거의 두 시간 동안 ‘절대 사표 쓰면 안 된다. 다시 돌아가라’며 아주 간곡히 설득하는데, 마음이 짠했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 사표를 쓰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기껏해야 전화해서 위로하는 정도겠지. 나뿐만 아니라 (검찰 내에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여럿 있더라. 그러니 자신은 사법시험에 떨어지면서 남이 떨어질까 봐 구명하러 다녔다는 기사도 나는 거겠지.(*시사저널 1624호. 김선수 대법관이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1985년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떨어질지 모를 상황이 되자 2차 낙방생이던 윤석열이 동기생 김선수와 함께 당시 권력 실세이던 이종찬 의원에게 선처를 호소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오지랖이 넓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 친구를 꼭 도와야 한다’는 자기 명분이 서면 팔을 걷어붙인다. 그러니까 후배들이 많이 따르지.”

    “대검 참모들과 한두 시간씩 프리토킹”

    2013년 10월 21일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석했다. 이날 그는 “국정원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2013년 10월 21일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석했다. 이날 그는 “국정원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윤 당선인의 퍼스널리티를 구성하는 다른 키워드는 외향성이다. 그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이며 관계를 중시한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다정다감하다. 화법이 직설적이고 때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서 모욕감을 느꼈다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인지 그는 관계를 트고 나면 반말로 소통하기를 선호한다. 또 ‘후보님, 총장님’보다는 “‘석열이 형’이라고 부르는 게 제일 좋다”고 답하기도 한다.(2월 7일, 국민의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유튜브 채널 ‘인간 윤석열’ 중) 2월 15일 대구 유세 때는 홍준표 의원을 향해 “예 형님!”이라 부르며 와락 끌어안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선대본부에서도 일부 측근들에게는 별명을 부르며 친근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전임자인 박근혜·문재인 두 사람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다.

    ‘윤석열의 외향성’을 입증하는 일화는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많다. 그는 고시생 시절 도서관에 책가방을 던져둔 채 술 마시러 나가서 친구들과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걸 즐겼다. 사법시험 2차 시험을 며칠 앞두고 결혼하는 친구의 함을 지러 대구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친구나 선·후배 집안에 상(喪)이 나면 삼일장 내내 빈소를 지켰다고 한다.

    2020년 12월 30일에는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대검찰청 직원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수사관들끼리 술 마시다 한 명이 밤 10시에 전화했는데, 안 나오고 컨디션 안 좋아서 미안했다고 다음 날 돈을 보냈다”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 윤 당선인과 가까운 전직 검찰 고위관계자는 “(윤 당선인은) 총장 때도 집무실에서 대검찰청 참모들과 하루에 하루 한두 시간씩 이런저런 주제로 프리토킹(free talking)을 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 본인도 올 초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내가 원래 말이 좀 많다”고 했을 정도다.

    정치권에 와서도 그의 이런 면모는 달라지지 않았다. 강명구 전 선대본부 일정총괄팀장은 “윤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각 팀에 들러 실무 팀원 이름을 한 사람씩 부르며 악수하고 ‘고생이 많다’며 격려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사무처의 한 인사는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당사 후보실에 있다가 퇴근할 때 사무처에서 야근하는 직원들에게 ‘라면 먹으러 갈래?’라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선대본부 내에서는 “윤 당선인의 서울 서초구 자택에 가서 윤 당선인이 끓여주는 라면을 먹고 와야 진짜 측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누구나 통합 내각을 꿈꿨다. 막상 대업을 완수한 인물은 없다.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맞수에게 손을 내미는 데 용이한 성격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외향적인 윤석열은 어떤가. 윤 당선인과 서울대 법대 동기(79학번)로 학창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석동현 변호사(전 서울동부지검장)는 “친화력이 있는 윤 당선인은 역대 누구보다 소통에 능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면서 “‘혼밥’ 하지 않고 야당 의원과 수시로 연락해 밥도 먹으면서 국회 협조가 필요한 국정 현안을 풀어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낙연 측근 정운현을 尹에게 연결한 사람

    윤 당선인의 모든 대선 유세 현장마다 동행한 김병민 전 선대본부 대변인의 답변도 결이 비슷하다. 경선과 본선에서 모두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윤 당선인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만나 진솔하게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돌이켜 보면 이준석 대표, 홍준표 의원, 안철수 대표 등 갈등이 있던 사람들과 다 직접 만나서 풀었고 뒤끝 없이 정리됐다. 나와도 (캠프에 합류하기 전까지) 별다른 인연이 없었는데, 처음 만나고 난 뒤 등도 두들기면서 스스럼없이 대하는 데 딱 일주일 걸리더라.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協治)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면 대통령이 격의 없이 소통해야 하는데, 윤 당선인의 성격은 이른바 ‘구중궁궐 청와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장점으로 발휘될 거다.”

    당내에는 윤 당선인을 두고 “어제까지 정색하고 싸운 사람과도 웃으며 술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진보성향 법학자인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가 겪은 일화를 소개하는 게 좋겠다. 그는 윤 당선인의 서울대 법대 선배지만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외려 2020년 6월 ‘한겨레’에 쓴 칼럼을 통해 윤 당시 검찰총장을 두고 “신화의 포로, 연고주의 포로, 야심의 포로”라며 날 선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은 독특하달 정도로 조직 내에서 자기 사람을 챙겨 ‘윤석열 사단’이라는 말도 생겨났다”며 “역대 검찰총장 중에서 이렇게 처신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까지 썼다.

    딱히 악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판받은 당사자로서는 유쾌한 경험일 리 없다. 그런 두 사람이 지난해 7월 윤 당선인의 서울 서초구 자택 근처에서 1시간 30분여간 오찬을 했다. 신 변호사는 “(당시) ‘조국 사태’를 비롯해 그간의 일에 대해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윤 당선인이 자세하게 해명했고, 듣다 보니 호방한 인물이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이에 윤 당선인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됐다”고 평했다.

    이후 신 변호사는 자신이 살고 있는 경북 경주에서 국민의힘 대선 유세 연단에 올라 연설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 활동을 했다. ‘이낙연의 비서실장’에서 ‘윤석열의 지지자’로 변신한 정운현 전 국무총리 실장은 2월 21일 “양쪽을 다 아는 지인의 주선으로 윤 (당시) 후보를 만났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지인이 바로 신 변호사다.

    “청년세대의 인생관 잘 모른다”

    방송과 비교하면 지면 인터뷰는 상대적으로 인터뷰이(interviewee)의 속내나 성정(性情)이 좀 더 명확히 드러나는 편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정제된 답변을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1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했던 기자의 기억에 의하면, 그에게서는 겸양이 엿보였고 또 유연했다. 단점을 캐묻는 질문에도 별다른 반박 없이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보였다. 모르면 모른다고 했고, 아는 것에 대해서도 딱히 과시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그 ‘강골(强骨) 검사’가 맞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에게 던진 질문 중 하나는 “20·30세대 사이에서 홍준표 의원보다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나. 경선 직후 국민의힘의 20·30세대 당원들이 대거 탈당한 데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였다. 그는 유독 긴 시간을 할애해 이렇게 답변했다. 다소 길지만 윤 당선인의 퍼스널리티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나는 솔직히 20·30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청년세대의 인생관, 세계관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솔직한 얘기다. 그러나 한 국가의 기성세대로서, 또 공익을 위해 정치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청년세대가 미래를 꿈꾸고 펼쳐나갈 수 있는 ‘인프라’는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과 주거가 중요하고, 특히 여성이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과 보육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잠시 뜸을 들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내가 지난주 토요일에 이준석 대표와 점심을 먹었는데, 상계동에서 (이 대표가) 출마했을 때 30대 초반 신혼부부를 만났다더라. (이 대표가) ‘우리가 뭘 해드리면 되느냐’ 물었더니, ‘우리 동네 스타벅스 오게 해달라’고 답했다더라(웃음). 주거·일자리·보육 이런 얘기를 할 줄 알았더니….

    물론 스타벅스가 상징하는 게 있지. 스타벅스가 들어오면 괜찮은 동네라고 하니까…. (그런데) 이 대표도 젊은 사람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정치인인데도 그 얘기 듣고 의외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심(內心)으로 들어가면,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기성세대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마치 그들을 잘 알고 있다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또 잘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청년세대가 꿈과 미래를 잘 구축해 갈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혹시 더 많은 지지를 보내주시지 않겠나(웃음).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세대를 상대로 어설프게 (접근)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학창 시절부터 경제나 역사 독서량 많았다”

    ‘정치인 윤석열’이 빚은 최악의 설화(舌禍)로 많은 사람은 “부정식품을 선택할 자유”를 꼽는다. 그는 지난해 7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없는 사람은 그(부정식품 기준보다) 아래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선택할 자유’)의 주장을 소개했다.

    색안경을 벗고 보면 그의 발언에서는 두 가지가 느껴진다. 하나는 자유에 대한 그의 확신이 날것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는 인생의 책으로 ‘선택할 자유’와 더불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꼽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법률가로서는 드물게 철학적 논제에도 지적 호기심이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역시 지난해 7월 윤 당선인을 만났을 때 “주로 정치 현안보다는 법철학 얘기를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니 그를 두고 ‘너무 우파적’이라 지적할 수는 있으나, ‘지적으로 게으르다’ 평하는 건 부당해 보인다. 윤 당선인의 원래 꿈은 법학교수였다. 사법고시를 본 까닭도 훗날 실무까지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윤 당선인의 오랜 지기(知己)인 석동현 변호사는 이것이 부친(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영향일 수 있다고 본다. 그의 회고다.

    “법조인의 경우 주로 법서와 판례만 읽는다거나 관심 범위가 좁은 편이다. 그런데 윤 당선인은 학창 시절부터 부친의 영향 때문인지 경제나 역사 등 관심 범위가 넓고 독서량도 많았다. 또 법률 분야에서도,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모든 주제를 단순히 암기하는 식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깊이 탐구하고 논쟁하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검사 시절 특수수사를 할 때에도 수사에 내재된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늘 생각하면서 수사를 하는 편이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탈권위다. 윤 당선인의 리더십을 두고 제기되는 흔한 비판은 권위주의다. 검찰총장 출신인 그가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수직적인 리더십에 호의적이라는 거다. 윤 당선인이 “권위주의 독재정부는 경제를 확실하게 살려놓아서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반을 만들어놨다. 이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2021년 12월 29일) 따위의 말을 꺼낸 게 비판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강명구 전 선대본부 일정총괄팀장은 “윤 당선인이 권위적이라는 것은 오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권위적인 지도자들은 비서실장이나 상황실장, 본부장한테만 보고를 받는다. 반면 윤 당선인은 윗선에서 보고받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롤(role)을 맡은 실무자한테 직접 전화해서 질문하고 의견을 물은 뒤에야 최종 결정을 내린다. 나에게도 궁금한 게 있으면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해서 묻고 또 묻는다.”

    “모든 일정 기획 강명구 위원장에게 다 넘겨”

    강 전 팀장은 윤 당선인의 심기를 가장 잘 파악하는 최측근으로 꼽힌다. 선대본부 사정에 밝은 한 야권 소식통은 강 전 팀장을 두고 “대통령비서실 입성 1순위”라고 말했다. 아직 40대 중반(1977년생)으로 젊지만 2002년 대선 때 일찌감치 정치권에 들어와 선거 경험이 풍부하다. 국회 보좌관을 거쳐 2020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영등포갑 당협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윤 당선인과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정치권 내에서는 실무 능력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현직 국회의원도 아니고 청와대 근무 경험도 없다. 그런 그는 어떻게 윤 당선인을 만났고, 또 무슨 비결로 1년이 안 되는 사이에 하루 수십 통씩 전화하는 측근으로 자리 잡게 됐을까. 그가 겪은 과정을 듣다보면 윤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이해할 단서를 얻게 된다. 강 전 팀장과의 문답이다.

    어떻게 윤석열 캠프에 합류하게 됐나.

    “지난해 6월 29일 윤 당선인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으로부터 ‘커피 한잔 하자’고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 굉장히 초창기인데.

    “(윤 당선인에게) 처음 인사하러 간 날까지만 해도 (캠프에) 참모진이 10명도 안될 때다. 당시에는 (윤 당선인이) 무소속이었는데, 실무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만나보니 어떻던가.

    “내 소개를 하고 그간 (정치권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윤 당선인의) 첫 질문이 ‘외부에서 캠프가 잘 안돌아간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였다. 그래서 20분쯤 내가 쭉 말씀드렸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이제부터 모든 일정 기획을 강명구 위원장에게 다 넘겨’라고 말했다. 그전까지 한 번도 대면해 본 적 없는 사이인데 말이다. 호탕하고 과감했다.”

    실무자에게 확실한 책임을 부여한다는 뜻이라고 봐야 할까.

    “일을 하는 데 있어 권한을 확실하게 주는 대신 책임도 명확히 지우는 것이다. 그러니 실무자로서는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구조다. 나는 일개 보좌관 출신이고, 당협위원장을 하긴 했지만 국회의원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많은 권한을 줘서 책임지고 일하게 만든 거지. 이미 당시에도 지지율 1위 대선후보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놀랐다.”

    권위주의적 용인술은 직급과 서열을 중시한다. 탈권위주의적 용인술은 직급과 서열 대신 숙련된 실무 능력과 아이디어, 개성을 존중한다.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청년보좌역들을 선대본부 회의에 참석시켰고, 이들의 의견이 담긴 보고서를 매일 직접 읽었다고 한다. 그는 집권하면 대통령비서실 직원의 30%를 줄이고 수석비서관직을 없애겠다고 공언해 왔는데, 이 역시 탈권위주의적 용인술의 일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강 전 팀장은 “윤 당선인은 취임 후에도 실무자 중심으로 업무를 챙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인생의 책으로 꼽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동아DB]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인생의 책으로 꼽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동아DB]

    “검사가 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이 설득”

    2019년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예나 지금이나 정무 감각 없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주광덕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2013년 서울중앙지검 국감 이후 ‘검사로서 윤석열’이 변한 게 있는지” 물었을 때다. 당시는 ‘조국 사태’의 여파로 여당(민주당) 내에 ‘반(反)윤석열 기류’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다.

    권부(權府)와 적절히 주파수를 맞추는 능력이 정무 감각이라면, 윤 당선인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2013년 ‘항명 파동’이나 2019년 ‘조국 사태’ 수사는 이런 의미에서의 정무 감각이 그에게는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 한 번은 검찰 지휘 라인, 또 한 번은 여권 핵심부와 타협점 없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반면 정세와 여론을 읽고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능력이 정무 감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와 관련해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직후인 지난해 3월 26일 CBS 라디오에 나와 “저 사람 얘기하는 걸 보면 단순한 검사가 아니다”라며 “처음서부터 내가 그랬다. 저 사람이 대단히 정무 감각이 많은 사람이라고”라고 했다. 정무 감각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정치 9단’ 김종인의 평가라 흥미롭다.

    ‘윤석열식 정무 감각’은 특수통 검사로 단련된 결과물일 수 있다. 특수통의 수사 대상은 정계나 재계 유력 인사들의 권력형 범죄다. 자칫 설익은 채로 ‘칼’을 들이댔다가는 되치기당하기 십상이다. 이럴 때 분위기를 바꿀 무기가 여론이다. 이와 관련해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이던 2020년 8월 3일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검사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설득”이라며 “그 과정에서 수사 대상자와 국민을 설득해 공감과 보편적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가 이에 대해 이런 해설을 덧붙였다.

    “권력에 맞서 수사하려면 수사에 대한 정당성을 옹호해 주는 여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이 검찰 시절부터 공보와 대언론 기능을 특히 중시한 건 그 때문으로 보인다. 공보 라인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다. 내가 보기에는 여의도의 어떤 정치인보다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

    文과 기질적으로 정반대

    윤석열의 퍼스널리티를 구성하는 키워드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에게도 발견된다. 인내심이나 겸양은 문재인 대통령의 미덕이다. 명예심이나 지적 호기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점이다. 탈권위주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외향성과 정무 감각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징으로 꼽혔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조금 독특한데, 이는 역대 대통령과 구별되는 윤 당선인만의 개성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공통점이 없지 않지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기질적으로 정반대의 사람이다. 문 대통령은 내향적인 지도자다. 안정적이고 꼼꼼하며,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탄핵 사태’ 직후 혼란에 빠진 국정을 정상화하는 데 장점으로 작용했다. 대신 고비마다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노출했다.

    윤 당선인은 외향적인 인물이다. 이런 성격은 큰 그림을 그리는 걸 선호한다. 다만 세심함은 내향적 지도자보다 부족할 수 있다. 그가 가진 타인에 대한 관심과 외향성이 측근의 울타리 바깥으로 향하면 통합의 동력이 될 것이다. 만약 울타리 안에만 머물면 “윤석열 사단이 다 해 먹는다”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바꿔 말해서, ‘윤석열 시대’의 도래가 한국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딱 한 줄이다. “대중은 현직 대통령에 실망하면 그 반대 유형을 후임자로 갈망한다.” 그리하여 문제는 다시 리더십이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고 전임자와는 성격이 판이하며 차점자에 불과 0.73%포인트 앞서 당선된 대통령은 국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나쁘게 보면 불안정성의 시대고, 좋게 말하면 ‘파괴적 혁신’의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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