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말 많고 탈 많은 군 장성 인사

盧 정권 선두주자들 대학살, 비(非)작전 특기 홀대, 야전(野戰) 우대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mga.com

    입력2008-12-05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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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참모부장 좌천 인사로 뒤집힌 육군본부
    •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NSC 파견근무자 추풍낙엽
    • 합참, 육본 요직 근무자도 줄줄이 고배
    • 인사·기획·군수 특기의 아우성, 작전 특기의 환성
    • 국방부, “‘노무현 군맥’이란 없다”
    • 국회 연락단장 진급탈락 둘러싼 국방위와 국방부의 힘겨루기
    • “이상희 장관이 소신껏 인사한 면도 있다”
    • 청와대, ‘진급 부적격자’ 명단 국방부에 전달
    말 많고 탈 많은 군 장성 인사

    11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이 중장 진급자들의 신고를 받고 삼정도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인참부장)은 육군 장교 인사를 총괄하는 요직 중 요직이다. 권한이 막강한 만큼 대체로 총장의 측근이 그 자리에 앉는다. 군단장 0순위 후보다. 이건 군내에서 공식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10월 말과 11월 초에 있었던 정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인사에서 이 공식이 깨졌다.

    11월4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이승우(육사 33기) 소장은 출근하자마자 임충빈 육군참모총장에게 불려갔다. 임 총장은 이 소장에게 학생중앙군사학교장(학군교장)으로 발령 났다고 통보했다. 이 소장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참부장에 임명된 지 6개월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인참부장의 임기는 총장의 다른 참모들과 마찬가지로 통상 1년. 게다가 학군교장은 인참부장을 지낸 사람이 가기엔 격이 안 맞는 한직이었다.

    좌천인사였다. 후임으로 내정된 장교가 포병 병과의 31사단장 서길원(육사34기) 소장이라는 점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강력히 반발한 이 소장은 전역지원서까지 냈다. 하지만 그의 ‘반란’은 곧 진압됐다. 임 총장을 비롯한 육군 수뇌부가 적극 만류했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임 총장이 주재하는 만찬이 열렸다. 중국 인민해방군 부참모장 환영 회식이었다. 회식자리에서 임 총장과 이 소장이 진지하게 얘기하는 광경이 여러 사람의 눈에 띄었다. 임 총장은 울분을 터뜨리는 이 소장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끝까지 함께 가자”며 위로했다고 한다.

    역대 정권에서 육본 인참부장이 특별한 과오 없이 한직으로 밀려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 때 윤일영 인참부장이 군 장성진급비리 수사와 관련해 육군사관학교 부교장으로 좌천된 게 거의 유일한 예외다. 하지만 윤씨만 해도 군단장으로 못 나가서 그렇지 임기는 다 채우고 전보됐다.



    전임 총장 인맥 불이익?

    왜 이런 ‘이변’이 일어났을까.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소장의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은 장성 진급인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육본에서 올린 진급 인사안(案)이 국방부 제청 심사에서 일부 바뀌었는데, 그 과정에 이 소장이 국방부 측과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육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소장 인사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노무현 정부 때 잘나갔던 장교들의 몰락. 둘째는 인사 등 비(非)작전 특기 장교에 대한 불이익이다.

    이 소장은 굳이 분류하자면 노무현 정부 초기 육군총장을 지낸 남재준 인맥으로 분류된다. 남재준씨가 육본 인참부장을 할 때 그 밑에서 장군인사실장(대령)을 지냈다. 사단장으로 진출한 것도 남씨가 총장으로 있을 때였다. 다만 남 전 총장이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만큼 이 소장을 노무현 정부 군 인맥으로 보는 건 적절치 않다. 사단장을 마친 후에는 백군기 3군사령관의 참모장을 지냈다. 호남 출신으로 현 정권 출범 후 옷을 벗은 백씨는 ‘정권이 안 바뀌었다면 총장이 됐을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방부 요직에 근무했던 장교들에 대한 인사는 거의 ‘학살’ 수준이라는 게 군내 중론이다. 일부에서는 ‘정치보복’이라는 주장마저 제기한다. 군내 사정에 정통한 예비역 장교의 말이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육본 주변에서 ‘김장수, 박흥렬 색채를 빼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김장수 전 장관은 호남 출신이지만 지역색 없이 합리적 인사를 했다. 부산고 출신의 박흥렬 전 총장은 군 사령관도 안 거친 채 인사 특기로는 처음으로 총장이 된 사람이다.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실제로 두 사람과 가까운 장교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청와대 근무경력이 있는 4명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출신 2명이 진급에서 탈락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청와대의 경우 국정상황실에 파견됐던 오연택(육사 38기) 대령과 장혁 대령(39기)이 쓴잔을 마셨다. 둘 다 유력한 진급대상자였다. 육사 39기는 올해 처음 장군으로 진출했다. 장 대령의 진급탈락 배경엔 다른 사유도 작용했다.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 근무했던 공군 대령도 미끄러졌다.

    경호실 군사상황실장을 역임한 김유근(육사 36기) 육본 전력기획처장은 소장에 오르지 못했다. 육사 36기는 올해 처음 소장이 배출된 기수. 김 준장은 보병 병과 작전 특기에서 진급 1순위로 꼽혀왔다.

    NSC 근무 경력자 중에는 연제욱(육사 38기) 대령이 별을 달지 못했다. 또 공군에서 유력한 진급대상자로 알려졌던 모 전투비행단장이 소장 진급에 실패했다.

    “특정직에 있다고 꼭 진급하지는 않아”

    합참과 육본 요직에 앉았던 장교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동반 탈락했다. 합참에서는 윤광웅·김장수 전 장관의 인맥으로 분류되는 장경석(39기) 합동작전과장이 별을 못 달았다. 합동작전과장은 100% 진급되는 자리로 통해왔다. 장 대령은 윤 장관 재직시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유력한 진급자로 꼽히던 김종배(육사 36기) 합참 작전처장도 사단장에 진출하지 못했다. 김 준장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육군참모총장인 박흥렬씨 인맥으로 분류된다. 박씨가 총장을 할 때 비서실장을 지냈다.

    합참 전력기획부장 정홍용(육사 33기) 소장도 별을 하나 더 붙이는 데 실패했다. 정 소장은 노무현 정부 초기 조영길 장관 밑에서 군사보좌관을 역임했다.

    육본에서는 부재원(36기) 준장이 소장 진급을 못했다. 부 준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육본 인참부 선발관리실장으로 육군 인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도 박흥렬 전 총장의 인맥으로 통한다. 박씨가 총장일 때 2군사령부 인사처장으로 근무했다.

    청와대에 파견되는 장교들은 대체로 군내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이는 정권의 성격과 별 관계가 없다. 국방부 외의 부처도 같은 상황이기 때문. 부처의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에 다들 ‘에이스’급을 내보내게 마련이다. ‘정치적 줄타기’로 입성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국방부와 합참 요직에 근무하는 장교들도 우수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들 진급 1순위로 꼽히고, 실제로도 그랬다. 대령이라면 1차로 별을 달았고, 준장은 어김없이 소장으로 올라갔다.

    군 장교 진급은 통상 3차례 기회가 주어진다. 청와대와 국방부, 합참 요직 근무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차로 진급하는 게 그간의 관례였다. 위에 거론된 장교들 중에는 이미 ‘정권 프리미엄’을 누린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력한 진급대상자인 이들 중 상당수가 추풍낙엽이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딱 한 사람, 예외가 있다. 청와대 파견근무를 했던 권오한(육사 39기) 대령이다. 권 대령은 이번에 별을 달았다.

    국방부 측은 ‘노무현 군맥 죽이기’와 관련해 ‘신동아’ 질의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청와대나 국방부 요직, 혹은 특정직에 근무했다고 반드시 진급하지는 않는다. 전문성과 능력이 중요하다. ‘노무현 군맥 죽이기’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상부에서 가라니까 간 것이지 원해서 간 게 아니잖은가. 물론 군에서는 에이스급들을 내보냈지만. 하나회 해체 이후 더는 군맥이란 게 없다. 근무 인연이 있을 뿐이다.”

    국방부 측은 “이승우 소장 보직인사에 이상희 장관이 개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육본 장교)보직인사는 총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장관은 총장에게 이 소장 인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말 많고 탈 많은 군 장성 인사

    8월14일 계룡대를 순시한 이명박 대통령.

    육군 주변에서는 이 소장과 같은 인사 특기 장교 중 일부가 이번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앞서 소개한 부재원 준장도 인사 특기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장종대(육사 32기) 육군훈련소장은 중장으로 진급하지 못한 채 교육사 교리발전부장으로 전보됐다.

    박성우(육사 36기) 인사사령부 인사운영처장은 소장으로 진급했으나 한직인 종합행정학교장(종행교장)으로 발령 났다. 소장 1차 진급자가 사단장으로 진출하지 못한 것은 드문 경우다. 종행교장은 통상 사단장을 마치고 가는 자리로, 인사 특기 장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보직이다. 종행교가 인사업무가 아닌 일반 행정을 가르치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군 인사통 출신 예비역 장교는 “대외용 구색 갖추기 인사”라고 비판했다. 즉 인사 특기도 진급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진급은 시켰지만, 보직에서는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전임자인 권용원(육사 31기) 종행교장은 이번에 전역했다.

    육본 인사운영감실 통제과장 유성식(육사 39기) 대령도 별을 못 달았다. 요직으로 꼽히는 통제과장은 진급 1순위로 꼽힌다. 남재준 총장 시절 육본에서 진급 실무를 총괄한 유 대령은 장성진급비리수사 당시 군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인사 특기 중에 장성 진급자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육사 38기 2명과 39기 1명이 별을 달았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예전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진급 업무를 다루는 인사 특기는 그간 다른 특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대를 받았다. 인사 특기 장교들의 전횡과 특혜는 종종 논란을 일으키곤 했다. 작전 특기, 그중에서도 야전(野戰)부대 근무자들의 불만이 특히 컸다. 현 정부 출범 당시 11명의 군단장급 지휘관 중 전방 사단장 출신은 2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인사에서는 야전 근무자가 약진했다. 8개 군단의 작전참모 8명 중 6명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과거에 1~2명이 진급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래선지 비(非)작전 특기 장교들의 불만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

    군내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작전 특기를 중시한다고 알려진 이상희 장관의 소신이 총장에게 투영된 결과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군 관계자는 “인사 특기에 대한 야전 장교들의 반감을 생각하면 이 장관이 화끈하게 인사한 면도 있다”고 평했다.

    기획(정책) 특기 장교들도 불만이다. 통상 3~5명이 준장으로 진급했는데, 이번에는 진급자가 2명에 그쳤기 때문.

    군수 특기도 진급이 저조하기는 마찬가지. 다만 보직인사의 경우 희비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합참 군수부장 김태교(육사 32기) 소장이 39사단장으로 진출한 반면 종합군수학교장으로 발령 난 국방부 군수관리관 이선철(육사 31기) 소장이 인사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표를 던졌기 때문.

    김 소장의 사단장 진출은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동기들이 이미 야전 군단장을 하고 있기 때문.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미 한 차례 사단장을 지냈다는 점. 4년 전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55사단장으로 임명돼 2년 임기를 채운 바 있다. 한 사람이 사단장을 두 차례 지내는 것은 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군 관계자는 “인사 특기인 박성우 소장의 경우 소장으로 진급했음에도 사단장으로 못 나갔는데,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호처 장교, 5차 진급으로 별 달아

    소장으로 진급하면 보병 병과 장교라면 작전, 인사, 군수, 기획 등 특기와 상관없이 누구나 1차 보직인 사단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그간의 장성인사 관행이었다. 그런데 정보 병과의 장경욱(육사 36기) 합참 정보생산처장도 인사 특기의 박성우 소장처럼 사단장으로 못 나가고 2, 3차 보직인 정보사령관에 곧바로 부임했다. 군 관계자의 지적이다.

    “장군은 ‘제너럴(General)’이라는 말 그대로 전반적인 업무를 다루는 직위다. 연대장을 거친 비작전 특기자들을 사단장에 보임하지 않는 건 모순이다. 초급장교 시절부터 보병 지휘관으로 키워놓지 않았나. 그래놓고는 사단장 인사 때 차별을 두는 것은 극단적인 작전 중심 논리다.”

    국방부와 합참, 육본에서 정책이나 전략을 담당하는 장교의 진급률이 낮다는 것도 이번 인사의 한 특징이다. 군 사정에 밝은 한 군사평론가는 “앞으로 한미동맹이나 국방개혁과 같은 중요한 국방정책을 다룰 인력군(群)이 약화됐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군에서 1차 진급자들은 대체로 동기들 가운데 우수한 자원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다. 물론 근무평정 점수도 좋다. 다음 계급으로 진급할 때 우선순위로 꼽히곤 한다.

    올해 처음 소장을 배출한 육사 36기 장성 40명 중 준장 1차 진급자는 모두 11명. 이번 인사에서 그중 2명만이 소장으로 진급했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매우 이례적인 일로, 김영삼 정부 초기 하나회 척결에 비견될 만하다”고 놀라워했다. 한 군사평론가의 진단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우수자원이라고 1차로 진급시켜놓고 다음 계급 인사 때 이런 식으로 무더기로 탈락시키면 준장 인사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밖에 안 된다. 인사의 일관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반대로 이번 인사에서 ‘정권 프리미엄’을 누린 것으로 평가받는 장교들도 있다. 물론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지만. 중장으로 진급해 군단장으로 진출한 이홍기(육사 33기) 대통령실 국방비서관도 그중 한 명이다. 정권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던 이 중장은 국방비서관이 된 지 6개월밖에 안 된 상태다.

    군 관계자는 “이 중장은 청와대 시스템을 다 익히지도 못한 채 나온 셈”이라며 “국방비서관에 임명한 것은 보직관리를 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 중장은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동향인 경북 상주 출신이다. 후임 국방비서관은 국방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추진단장 김병기(육사 35기) 준장. 김 준장은 군내 대표적 미국통으로 꼽힌다.

    “심사내용 공개 못 한다”

    대통령실 경호처 상황실장으로 근무하던 유정권(육사 35기) 대령이 별을 단 것도 화제다. 진급 적기가 한참 지났기 때문. 이번 인사에서 39기 준장이 나왔으니, 5차 진급인 셈이다. 그의 한 해 후배들 중 일부는 이번에 소장으로 진급해 사단장에 진출했다. 유 대령의 진급에 대해서는 ‘경호처의 지분 챙기기’라는 시각과 노무현 정부 때 불이익을 받은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시각이 교차한다.

    한편 기무사에서는 이번에 3명의 대령이 임기제로 진급했다. 임기제 진급이란 해당 직책을 2년간 맡고 전역하는 조건으로 진급하는 것이다. 이들을 포함한 기무사 장성 9명 중 7명이 영남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때 소장까지 진급한 기찬수(3사 13기) 기무사 특별보좌관은 수도군단 부군단장으로 전보됐다. 작전 특기의 박원동(육사 34기) 준장이 소장으로 진급해 기무사 참모장에 부임한 것도 화제다. 이제껏 기무사 출신이 아닌 장교가 그 자리에 앉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군 고위층의 인맥으로 알려졌다. 기무사의 장교 동향관찰 자료, 이른바 존안자료는 이번 인사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군이 진급추천대상자를 올리면 국방부는 인사제청위원회를 열어 심의한다. 제청위원회 위원은 합참의장과 각 군 총장, 국방부 차관, 해·공군 중장 각 1명 모두 7명이다. 위원장은 장관이 맡는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군 인사의 경우 국방부 제청 단계에서 육본에서 추천한 진급대상자 중 일부가 교체됐다고 한다. “육본에서는 올라갔는데 국방부에서 탈락했다”고 주장하는 진급 탈락자들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신동아’는 이상희 국방부 장관에게 “어떤 규정에 의해 국방부 제청과정에서 일부 진급대상자가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국방부 측은 “규정이나 심사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번 인사에서 각 군은 국방부에 진급자 정원의 120%를 후보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묻자 국방부 관계자는 “병과별 직군별로 다르기 때문에 딱 120%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수준”이라면서 “인사규정에 복수의 후보를 올리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군 장성 인사를 둘러싼 잡음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국회 연락단장 정재관(육사 38기) 대령의 진급을 둘러싼 국방부와 국회의 힘겨루기다. 국회 국방위원회 측에서 정 대령의 장성 진급을 희망했으나 국방부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이어 연락단장 교체를 통보하는 강수를 뒀다. 이에 국방위가 국방부에 연락단 철수를 요구하는 사태가 빚어졌다(상자기사 참조).

    이 사건에 대해 군 일각에서는 이 장관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부 청탁이나 압력을 뿌리쳤음을 입증하는 사례라는 것이다. 국방부 사정에 정통한 국가기관 관계자는 “이 장관이 외부 입김을 배제하고 소신껏 인사를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야전에서 고생한 장교들의 진급률이 높은 반면 육본이나 합참의 주요 보직에 근무한 장교들은 예년과 달리 우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예상과 달리 이 장관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장교들이 진급인사에서 우대를 받았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군 인사통인 예비역 장교도 이런 분석에 동의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이 장관은 진급인사보다는 보직인사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말 많고 탈 많은 군 장성 인사

    11월4일 국회 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 본회의에 참석한 이상희 장관.

    군 인사에 대한 청와대 측의 공식 지침은 “청탁을 배제하고 장관과 각 군 총장이 책임을 지고 공정하게 인사하라”는 것이었다. 인사를 앞두고 김종천 국방부 차관과 김영식 청와대 인사비서관이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군 장성 인사에 개입하는 단계는 각 군 본부의 추천 심사가 끝나고 국방부 인사제청위원회가 열리기 전이다. 이 과정에 청와대의 ‘민원’이 끼어들기도 한다.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은 총무비서관을 통해 국방보좌관실에 ‘이런 사람이 진급되면 좋겠다’는 취지로 몇 명의 명단을 전달했다. 국방보좌관실이 이를 국방부에 통보해 협조를 구하자 국방부 측은 난색을 나타냈다. 결국 노 대통령이 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진급하지 못했다. 국방보좌관실에서 이를 보고하자 노 대통령은 “떨어진 사람들 위로나 잘해주라”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군에서 추천한 장성 진급대상자들의 자질을 검증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다. 그 전까지는 진급심사 전에 미리 ‘청와대의 뜻’을 전달해 관철시킨 다음 확정된 명단이 올라오면 재가만 했다. 중장 이상 장성급 인사의 경우 청와대는 국방부 장관이 올린 인사안을 토대로 인사추천위원회를 열어 그 자리에서 사실상 진급대상자를 결정한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군 장성인사에서는 청와대의 검증과정에 군에서 올린 진급대상자 중에 음주운전 경력자 등이 발견돼 몇 명이 바뀌었다. 이를 두고 군에선 “청와대가 군 인사에 개입한다”고 비난했다.

    이번 인사에서도 청와대는 국방부 인사제청위원회를 앞두고 ‘진급 부적격자’ 명단을 국방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탓에 인사제청위원회가 예정보다 늦게 열렸다고 한다. 청와대의 뜻이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방부 측은 “진급추천자 중 몇 명이 청와대 재가 과정에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바뀐 게 없다”고 답변했다.

    국회 연락단장 진급탈락 둘러싼 국회-국방부 힘겨루기

    말 많고 탈 많은 군 장성 인사
    11월7일 국방부는 국회로부터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담긴 공문을 받았다. 국회에 상주하는 국방부 연락단 사무실을 철수시키라는 통보였다. 공문 발신인은 국회 사무총장, 수신인은 국방부 장관이었다.

    국방부 연락단은 1963년 국방부와 국회 간 원활한 업무협조를 위해 만들어졌다. 자료 제출과 민원 처리, 군과 관련된 의원들의 일정이나 행사를 챙기는 게 주요 업무다. 45년간 존치한 연락단 사무실을 빼라는 얘기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국회 국방위원회 측의 ‘협조 요청’에도 국회 연락단장인 정재관 대령이 진급되지 않은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국회 국방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 대령 탈락이 계기인 건 맞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국회에서 일하는 정 대령이 진급되기를 희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국회가 군 고유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급이 안 된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국방부는 며칠 후 정 대령의 보직 교체를 국방위원장실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기관 간의 예의상 최소한 사전 협의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나아가 국방부는 연락단 장교들에게 ‘정치군인’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우리가 그런 오해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국회 연락단장이 진급되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국방부는 관례를 무시하고 정 대령의 후임자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군단 작전참모 출신의 조국제(육사 39기) 대령을 내정한 것. 작전 특기인 조 대령은 이번에 준장으로 승진했다. 정 대령의 특기는 기획이다.

    국방부의 거침없는 태도에 국회 국방위 전체가 들끓었다. 김학송 국방위원장은 국방부 장관이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했다. 11월6일 김종천 국방부 차관이 김 위원장에게 인사배경을 설명하려 찾아갔으나 김 위원장은 문전박대했다. 그날 김 위원장은 이 사건을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보고했다. 이튿날인 11월7일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14일까지 연락단 사무실을 비우라”는 공문을 이상희 장관에게 발송했다.

    국방위 관계자는 “계기는 정 대령 인사문제지만, 근본 원인은 이 장관의 독선과 국회 경시 태도”라고 분개했다.

    “그간 몇 차례나 국방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대해 국방위와 사전에 협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최소한 사전 통보만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국방부는 번번이 이를 무시했다. 군사보호구역 해제, 소말리아 파병, 자이툰부대 철군 등 주요 현안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 정도였다. 중기계획도 국방위에 알려 협의하는 게 관례인데 전혀 얘기가 없다. 사실 연락단은 국방부가 필요해서 설치한 것이지, 국회는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연락단의 주요 임무는 정보보고와 국방위 의원들의 질의서 획득이다. 우리야 민원창구로 활용하지만. 규정을 살펴보니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철수 를 요구한 것이다.”

    상당수 국회 국방위원은 이 장관이 그간 국회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장에서 보인 이 장관의 ‘꼿꼿한’ 태도와 주요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도 한몫했다. 한 예로 방위사업청 핵심기능을 국방부로 이관하려는 계획에 대해 여야 가릴 것 없이 국방위원 상당수가 우려하고 있으나 이 장관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청와대 측은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측의 ‘청탁’을 거절한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장관의 세련되지 못한 민원처리 방식이 사태를 악화시킨 데 대한 불만이라고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 대령의 진급 문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정책 특기자는 한 명도 진급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번이 1차 진급인 셈이다. 준장 인사에서 정책 특기 진급대상자 5명 중 1명이 진급했다. 그간 국회 측의 청탁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청탁을 배제하고 전문성과 능력 위주로 선발하라’는 장관의 인사지침에 따라 선발했다.”

    국방부는 국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11월 14일 연락단을 철수시켰다. 대신 정 대령의 보직교체 결정은 철회했다. 국방부는 연락단 처리 방법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검토되는 방안은 ▲국회에서 철수는 하되 연락단이 그대로 임무 수행 ▲각 군으로 연락단 기능 분산 ▲국방부 기획조정관실 민정협력과 활용 ▲완전 해체 네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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