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이 중장 진급자들의 신고를 받고 삼정도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11월4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이승우(육사 33기) 소장은 출근하자마자 임충빈 육군참모총장에게 불려갔다. 임 총장은 이 소장에게 학생중앙군사학교장(학군교장)으로 발령 났다고 통보했다. 이 소장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참부장에 임명된 지 6개월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인참부장의 임기는 총장의 다른 참모들과 마찬가지로 통상 1년. 게다가 학군교장은 인참부장을 지낸 사람이 가기엔 격이 안 맞는 한직이었다.
좌천인사였다. 후임으로 내정된 장교가 포병 병과의 31사단장 서길원(육사34기) 소장이라는 점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강력히 반발한 이 소장은 전역지원서까지 냈다. 하지만 그의 ‘반란’은 곧 진압됐다. 임 총장을 비롯한 육군 수뇌부가 적극 만류했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임 총장이 주재하는 만찬이 열렸다. 중국 인민해방군 부참모장 환영 회식이었다. 회식자리에서 임 총장과 이 소장이 진지하게 얘기하는 광경이 여러 사람의 눈에 띄었다. 임 총장은 울분을 터뜨리는 이 소장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끝까지 함께 가자”며 위로했다고 한다.
역대 정권에서 육본 인참부장이 특별한 과오 없이 한직으로 밀려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 때 윤일영 인참부장이 군 장성진급비리 수사와 관련해 육군사관학교 부교장으로 좌천된 게 거의 유일한 예외다. 하지만 윤씨만 해도 군단장으로 못 나가서 그렇지 임기는 다 채우고 전보됐다.
전임 총장 인맥 불이익?
왜 이런 ‘이변’이 일어났을까.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소장의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은 장성 진급인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육본에서 올린 진급 인사안(案)이 국방부 제청 심사에서 일부 바뀌었는데, 그 과정에 이 소장이 국방부 측과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육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소장 인사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노무현 정부 때 잘나갔던 장교들의 몰락. 둘째는 인사 등 비(非)작전 특기 장교에 대한 불이익이다.
이 소장은 굳이 분류하자면 노무현 정부 초기 육군총장을 지낸 남재준 인맥으로 분류된다. 남재준씨가 육본 인참부장을 할 때 그 밑에서 장군인사실장(대령)을 지냈다. 사단장으로 진출한 것도 남씨가 총장으로 있을 때였다. 다만 남 전 총장이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만큼 이 소장을 노무현 정부 군 인맥으로 보는 건 적절치 않다. 사단장을 마친 후에는 백군기 3군사령관의 참모장을 지냈다. 호남 출신으로 현 정권 출범 후 옷을 벗은 백씨는 ‘정권이 안 바뀌었다면 총장이 됐을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방부 요직에 근무했던 장교들에 대한 인사는 거의 ‘학살’ 수준이라는 게 군내 중론이다. 일부에서는 ‘정치보복’이라는 주장마저 제기한다. 군내 사정에 정통한 예비역 장교의 말이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육본 주변에서 ‘김장수, 박흥렬 색채를 빼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김장수 전 장관은 호남 출신이지만 지역색 없이 합리적 인사를 했다. 부산고 출신의 박흥렬 전 총장은 군 사령관도 안 거친 채 인사 특기로는 처음으로 총장이 된 사람이다.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실제로 두 사람과 가까운 장교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청와대 근무경력이 있는 4명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출신 2명이 진급에서 탈락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청와대의 경우 국정상황실에 파견됐던 오연택(육사 38기) 대령과 장혁 대령(39기)이 쓴잔을 마셨다. 둘 다 유력한 진급대상자였다. 육사 39기는 올해 처음 장군으로 진출했다. 장 대령의 진급탈락 배경엔 다른 사유도 작용했다.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 근무했던 공군 대령도 미끄러졌다.
경호실 군사상황실장을 역임한 김유근(육사 36기) 육본 전력기획처장은 소장에 오르지 못했다. 육사 36기는 올해 처음 소장이 배출된 기수. 김 준장은 보병 병과 작전 특기에서 진급 1순위로 꼽혀왔다.
NSC 근무 경력자 중에는 연제욱(육사 38기) 대령이 별을 달지 못했다. 또 공군에서 유력한 진급대상자로 알려졌던 모 전투비행단장이 소장 진급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