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영입을 추진 중인 김일범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의 3월 중순 일본 발문과 4월말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3월 초, 그는 짧은 인사말만 남긴 채 용산 대통령실을 떠났다. 외교적 비중이 큰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전비서관’이 사임하자 외교안보라인 내부 갈등설, 의전을 둘러싼 이견설 등 여러 뒷말이 나왔다. 숨 가쁘게 진행된 대통령의 외교 일정 속에 그의 퇴장은 금세 잊혀졌다. 김일범 전 의전비서관 얘기다.
대통령실을 그만 둔 지 석 달 만에 그의 향후 거취가 전해졌다. 7월부터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영입돼 출근하게 됐다는 것.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갈수록 증대되는 대외 리스크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현대차가 외교전문가인 그를 영입하려 한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김 전 비서관은 1999년 실시된 제33회 외무고등고시에서 제2부 외국어 능통자 전형(외국에서 6년 이상 정규교육을 받은 경우)에 수석 합격해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부친 김세택 전 대사도 싱가포르‧덴마크 대사,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이다. 배우자는 국민에게 친숙한 탤런트 박선영 씨다.
김 전 비서관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등 3명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담당했을 만큼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와 함께 근무 인연이 있는 한 인사는 “한국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영어를 잘 한다”고 평했다.
대통령 통역을 오랫동안 담당한 김 전 비서관은 외국 고위 인사, 특히 미국 정관계 인사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비서관은 외교부 재직 시절 주로 주미 한국대사관 1등서기관, 외교부 북미2과장 등 주로 미국을 상대하는 보직을 맡았다.
북미2과장이던 2019년, 그는 외교부를 떠나 SK수펙스추구협의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SK그룹의 주요 해외 업무를 담당했다. 수페스 한 고위 인사는 “외교관 출신으로 국제적 감각을 갖춘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 수립 등에서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김 전 비서관은 SK측에 “정부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결심을 밝혔고, SK측은 그의 뜻을 존중해줬다.
김 전 비서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당선인 외신 공보보좌역으로 활약했고,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을 맡아 올해 3월 초까지 일했다. 대통령실에서 나온 그는 약 넉 달 만에 현대차 부사장으로 다시 기업행을 택했다.
한 재계 인사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현안이 걸려 있는 현대차로서는 미국 정관계 인사들과 훌륭한 네트워크를 갖춘 김 전 비서관의 역할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벌 대외정책 역량 강화 및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해 김 전 비서관 영입을 추진 중”이라며 김 전 비서관의 부사장 영입 사실을 인정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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