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사장은 직원 잘라 버티고, 직원은 ‘쓰리잡’ 뛰며 견딘다!

[사바나] 일하고 싶어도 잘린 104만 명, 점입가경 ‘자영업 위기’

  • 전홍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nongmin@korea.ac.kr

    입력2020-09-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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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乙’ 영세업자‧노동자 노동청서 대면…“차라리 OX문제였으면”

    • 사장 순수입 50만 원, 알바 월급 40만 원

    • 낮엔 음식점 서빙, 밤엔 주점 서빙, 주말엔 은행상담원

    • 1~4월 비자발적 실직자 104만4720명, 70.1%↑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5월 13일 경기 안산시 한 중고물품 판매점에 주방용품이 쌓여 있다.

    5월 13일 경기 안산시 한 중고물품 판매점에 주방용품이 쌓여 있다.

    손때를 씻지도 못한 채 실밥까지 묻히고 봉제공장에서 달려온 사장님, 앞치마를 두른 채 퇴직금 문제로 찾아온 김밥집 노동자. 모두 근로감독관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고용노동청 사무실에서는 노동자, 근로감독관, 사용자가 삼자대면한다. 사정을 들어봐도 영세 사용자와 노동자 가운데 누구도 갑(甲)이라고 불릴만한 이는 없다. 서울고용노동청 홍문희 근로감독관은 “차라리 답이 선명한 OX문제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김밥집 노동자는 퇴직금 문제로 홍 감독관을 찾아왔다. 1년 이상 근무했지만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퇴직금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2013년부터는 당사자 간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합의했더라도 해당 규정이 적용된다. 매장에서 함께 김밥을 말던 사장님과 노동자가 고용노동청에서 근로감독관을 사이에 두고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만났다. 다만 “서로 어려운 사정을 아는 탓인지 원만히 합의를 봤다”고 홍 감독관은 말했다.

    “써주는 것이 감지덕지”이지만…

    자영업 시장이 을(乙)과 을 사이의 복마전 양상이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대학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한을 씨는 “지금까지 일하던 가게에서 주휴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휴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그럼에도 그는 “(직원으로) 써주는 것이 감지덕지”라며 군말 없이 일했다. 이후 사장으로부터 가게를 접게 됐다는 통보를 받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었다. 1년 사이 일하던 가게가 두 차례나 폐업했다. 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씨는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에 더해 생활비 대출까지 알아보는 신세가 됐다. 

    사용자 처지도 별반 낫지 않다. 어모 씨는 이한을 씨가 마지막으로 일한 가게의 사장이었다. 그는 “매출이 300만 원까지 떨어진 달도 있다. 비용을 제하고 수중에 남는 돈이 50만 원뿐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씨가 받던 월급은 40만 원 안팎이다.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이 비슷한 수입을 얻었다. 공히 법정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강윤형 씨는 두 번 폐업했다. 개인 카페를 창업했으나 외진 위치 탓인지 손님이 찾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 없이 홀로 운영하며 인건비를 절약했지만 적자가 누적돼 문을 닫았다. 이후 번화가에서 브랜드 가맹점으로 다시 창업했다. 개인 카페에 비해 높은 브랜드 인지도, 번화가로의 위치 변경 덕에 일시적으로 매출이 늘었다. 대신 번화가인 터라 경쟁매장이 갈수록 늘었다. 이익은 갈수록 줄었다. 1년 넘게 버텼지만 현상 유지에 가까운 매출을 벗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 폐업을 했다. 

    2020년 4월 나온 더미래연구소의 ‘2020 대한민국 자영업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는 722만 명. 이 중 연매출 4800만 원 이하 영세 사업자(간이사업자)는 2018년 기준 27.9%다. 소매업과 음식업은 영세 사업자 비중이 각각 46.0%, 32.6%로 집계됐다. 영세업자가 소매업, 음식업에서 폐업할 확률도 20.1%, 19.1%로 나타났다. 영세 사업자일수록 소매업과 음식업에 많이 진출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가족 함께 식사한 게 언제인지”

    8월 27일 서울 명동 한 매장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걸려 있다. [뉴스1]

    8월 27일 서울 명동 한 매장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기준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 1인당 연평균 영업이익은 34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가 저소득층으로 편입되는 양상도 엿보인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에서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는 소득이 높은 5분위에서 5만700가구, 4분위 9만5800가구, 3분위 3만5000가구가 줄었지만 소득이 낮은 2분위와 1분위에서는 각각 6만1500가구, 6만6400가구 늘었다. 

    수입이 줄었을 때 자영업자의 선택지는 직원을 줄이면서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대신 온가족이 동원된다. 서울 송파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고은옥 씨는 직원 없이 일한 지 3년이 넘었다. 2017년 이후 최저임금 상승과 함께 매출 하락이 겹쳐 인건비 부담이 가중됐다. 고씨 부부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일했다. 부부가 함께 일한 덕에 번갈아가며 식사시간은 겨우 챙길 수 있었다. 부부 중 한 명이 사정으로 자리를 비울 때면 딸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건을 떼어오는 날에는 3시간 일찍 새벽에 출근했다. 딸 이지은 씨는 “가족이 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최성봉 씨는 방학이면 어김없이 고향인 광주에 내려간다. 자신 말고는 어머니 가게를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최씨는 “어머니가 혼자 일하시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게를 그만 운영하시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서빙에 상담까지 ‘쓰리잡’ 주 7일 일해

    생활비 충당을 위해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강훈 씨는 평일 낮에는 음식점 서빙, 저녁에는 주점 서빙 일을 했다. 주말에는 은행 전화상담원으로 근무했다. 상담원 업무는 시급이 높았지만 매주 새로 작성되는 근무표에 따라 출근 시간이 유동적이었다. 야간 근무 후 집으로 돌아와 잠만 자고 일어나 바로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스트레스도 컸다. 주 7일 일하자 건강이 악화했다. 그는 상담원 업무를 그만뒀다. 

    이와 관련해 5월 17일 추경호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1~4월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는 207만6346명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았다. 이 기간 비자발적 실직자는 104만472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1% 늘었다. 종전 최고치이던 2009년(63만8000명)에 비해서도 40만 명 이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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