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진보, 86세대, 시민단체, 호남’ 입법부 장악 新권력 실체

“‘쪽수’로 밀어붙이면 ‘승자의 저주’ 걸릴 수도” [2020 대한민국 新주류 대해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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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8-2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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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권 190석 vs 야권 110석…與 개헌선 육박

    • ‘86세대’가 과반, 호남 출신 의원이 수도권 앞서

    • 진중권 “산업화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주류 교체”

    • ‘진보의 전당’에서 속도전 벌이는 ‘슈퍼 여당’

    21대 총선에서 입법부 권력은 보수에서 진보로 급격하게 무게추가 넘어갔다. 법조인과 관료 등 오랫동안 여의도에서 군림한 엘리트 세력이 떠난 자리에는 시민단체 출신 활동가와 ‘86세대’가 똬리를 틀었다. 

    4·15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163석)과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17석)이 전체 국회의석(300석)의 5분의 3인 180석을 차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여당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 정의당(6석)과 여권 성향인 열린민주당(3석), 여권 성향 무소속 이용호 의원까지 합하면 범진보 의석은 190석(63.3%)에 달한다(더불어시민당은 민주당과 합당해 8월 12일 현재 범여권은 민주당 176석, 정의당 6석, 열린민주당 3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 무소속 박병석 국회의장, 양정숙·이용호 의원). 이는 사실상 개헌선(200석)에 육박하는 의석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전통적 텃밭인 영·호남에선 통합당과 민주당이 싹쓸이했지만, 후보 득표율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민주당은 영남지역 65개 지역구에서 7석을 얻는 데 그쳤지만, 후보 중 26명이 40% 이상을 득표해 20대(9명) 총선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부산(18곳)에서만 40% 이상 득표한 민주당 후보가 16명으로, 20대 총선(8명)의 2배였다. 호남에서도 그동안 ‘지역 맹주’를 자처한 박지원·정동영·천정배 의원 등이 모두 낙선해 지역 세대교체 바람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법조인·관료 빈자리에 시민단체 출신 대거 입성

    이에 맞서는 보수 진영은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다. 미래통합당(84석)과 미래한국당(19석)을 합쳐 103석에 그쳤고,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도 3석에 머물렀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무소속 의원 4명을 합쳐도 전체 의석수는 110석(36.7%)에 그친다. 

    21대 총선에선 진보 성향이 강한 ‘86세대’(1960년대생)가 169명(56.3%)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경력별로는 시민단체 출신들이 대거 배지를 달았다. 의원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시민단체 출신이 45명으로 20대보다 6명 증가했고, 그동안 의회 권력 주류로 꼽힌 법조인은 42명으로 4명 줄었다. 이어 관료는 33명으로 5명이 줄었고, 학자·전문가도 30명으로 7명 줄었다. 반면 경찰 출신은 역대 최다인 9명이 배지를 달았다. 



    출신 지역별로는 단연 호남(광주·전남북) 출신이 강세를 보였다. 출생지 기준 호남 출신 의원은 모두 77명으로 20대(69명)보다 8명 늘었고,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출신도 4명이 늘어 70명이었다. 반면 부산·울산·경남은 20대(61명)와 비슷한 60명이었고, 대구·경북 출신 의원은 42명에서 36명으로, 강원·제주도 출신은 15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 태영호·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 등 북한 출신이 원내에 진입한 것도 눈에 띈다. 

    과거 ‘SKY’로 불리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들의 국회 입성도 줄었다. 21대 국회의원 중 서울대 출신은 63명(20대 81명)으로 18명이나 줄었고, 고려대(38명→27명)와 연세대(23명→22명) 출신 의원들도 각각 11명, 1명 줄었다. 20대 국회에서 27명의 의원을 배출한 성균관대 출신도 19명으로 8명 급감했다. 

    연령별로는 30대 이하 의원이 11명(20대 국회 3명)으로 급증했고, 70대 이상 의원은 8명에서 3명으로 급감해 평균연령(55.6세)은 0.6세 줄었다. 

    이러한 국회 권력 변화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총선 직후 “이제는 일본의 양당체제가 아닌 1.5당 체제라는 뉴노멀 시대가 왔다. 이는 한국 사회 주류가 산업화 세력에서 이제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자민당이 1당, 다른 정당들이 0.5당인 것처럼 우리나라도 민주당이 1당, 통합당과 다른 정당들이 0.5당이 됐다고 부연했다. 과거 ‘한나라당 대 반(反)한나라당’ 구도가 이제 ‘민주당 대 반민주당’ 구도가 됐고, 보수는 비주류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요 법안 단독 처리…“바뀐 위상 실감”

    8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종합부동산세 개정안 등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8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종합부동산세 개정안 등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의석 변화에 따른 여권의 슈퍼파워는 국회 개원 협상에서부터 드러났다. 야당은 20여 년간 관례적으로 야당이 맡았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요구했지만 여당의 ‘다수의 힘’ 앞에선 무기력했다. 통합당은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라는 민주당의 제안을 거부하고, 상임위원장 자리 18개를 모두 여당에 내줬다. 

    반면 절대적인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7월 3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된 35조1000억 원 규모의 3차 추경 예산안을 사실상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했고, 8월 4일 본회의에서 ‘7·10 부동산 대책’ 후속법안 등 모두 18개 법안을 의결했다. 국회법,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칙 제정안 등 공수처법 후속 3법과 전월세 상한제 등 부동산 임대차 3법 등을 단독 처리하면서 바뀐 위상을 실감케 했다. 통합당과 의사 일정이 합의되지 않자 각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도 구성하지 않은 채 쟁점 법안을 상정하고 처리를 강행했다. 통합당 의원들의 반발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슈퍼 여당’과의 협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이제 우리나라 1당 독재의 완성이자 의회 독재가 시작됐다”며 “언론 환경도 불리한 상황에서 소수 야당은 철저하게 팩트, 논리, 대안에 집중해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반면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8월 7일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20대 국회에선 법안 처리를 하려면 야당과 협상해야 했는데 이때 야당의 부당한 요구가 이어져 시간이 굉장히 지체됐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며 “21대 국회에선 확실히 바뀐 여당의 위상을 체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만 최근 민간임대주택법을 개정하면서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주기로 했던 조세 감면 혜택을 줄이려 하자 국민 반발에 다시 혜택을 살린 것처럼 ‘속도전’은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며 “‘쪽수’만 믿고 오만해지면 ‘승자의 저주’에 걸릴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배수강 편집장

    배수강 편집장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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