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바람 잘 날 없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 사상 초유 총파업… 변호사노조-일반직노조 대립 격화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0-04-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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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민변’ 출신 이사장 임명 후 내부 갈등 첨예화

    • 법률구조법이 우선? 변호사법이 우선?

    • 공단 운영 방침 두고 대립 격화

    • 감독기관 법무부의 미온·소극적 대응도 화 키워

    • 법률 사각지대 취약 계층 피해 입어

    경북 김천시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 [뉴시스]

    경북 김천시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 [뉴시스]

    2월 3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단 소속 변호사들이 2018년 3월 5일 변호사노조를 결성한 데 이어 파업에 나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파업 돌입 명분은 인력 충원, 처우 개선, 변호사 1인당 사건 수임 수 제한 등이다. 변호사들은 2017년 263명이던 공단 소속 변호사 수가 2019년 12월 기준 198명 선으로 줄어들면서 업무량이 늘어났는데도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업무량이 급증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난해 말 사임한 조상희(59·사법시험 26회) 전 이사장과 법률구조공단 측은 명분 없는 파업이라고 일축한다. 총파업은 3월 19일까지 이어졌다. 공단 산하 지부·출장소 업무가 부분 마비됐으며 피해는 법률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에 전가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공단 새 이사장 공모 절차도 멈춰선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실무 맡은 변호사보다 일반직 직원 많아

    2018년 3월 15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정상화를 위한 ‘이헌 이사장 사퇴’ 촉구 및 무기한 전면총파업 돌입 경고 기자회견이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뉴시스]

    2018년 3월 15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정상화를 위한 ‘이헌 이사장 사퇴’ 촉구 및 무기한 전면총파업 돌입 경고 기자회견이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뉴시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1987년 9월 1일 설립됐다. 1972년 6월 결성된 대한법률구조협회가 모체다. 경제적 약자에게 법률상담, 소송대리, 형사변호 등 법률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법무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경북 김천시 소재 공단 본부 외 11개 지부, 4개 직할출장소, 31개 출장소, 73개 지소(支所)를 두고 있다. 

    공단은 인력구조 면에서 이원(二元) 조직의 전형적 문제점을 지녔다. 상임임원(이사장·사무총장) 외 변호사 직렬과 일반·서무직렬, 계약직렬로 구성돼 있다. 1987년 설립 당시 직렬별 정원 ‘기준’은 상임임원 4명, 변호사 118명, 일반직 178명, 서무직 168명이다. 32년이 지난 2019년 말 기준 직렬별 정원은 상임임원 2명, 변호사 107명, 일반직 484명, 서무직 142명이다. 소송 실무를 담당하는 변호사에 비해 일반직이 많은 구조다. 1987년 마련한 ‘기준’보다 변호사는 11명 적고, 일반직은 306명 많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ALIO)’에 따르면 공단의 2019년 4분기 기준 일반직 직원은 1급 1명, 2급 4명, 3급 19명, 4급 44명, 5급 131명, 6급 152명, 7급 133명이다. 일반직 직원 중 5급 이상 간부 비율은 41.11%다. 변호사, 일반·서무직으로 나뉜 조직 구조에 더해 일반직 중 간부 비율이 높은 게 공단 내 조직 갈등의 원인 중 하나다. 

    공단 본부 주요 보직자 구성비에서 변호사와 일반직 간 불균형도 존재한다. 사무총장 예하 2실·2국·5부·6팀·1센터 본부 조직 중 감사실장, 구조국장, 구조1부장을 제외한 나머지 간부직은 일반직이다. 공단 소속 변호사들은 이러한 구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공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획조정실장을 변호사로 보임하려 했으나 대상자가 부적격하다고 판단돼 철회하고 일반직 2급 간부를 임명했다. 기획부장·예산팀장 등도 경력 변호사를 임명하려 했으나 ‘일반직 실장 밑에서 일할 수 없다’고 반발해 임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반직 직원들이 “지부장·출장소장·지소장 등 산하기관 책임자 자리에 일반직도 보임하라”고 요구하면서 또 다른 갈등이 불거졌다. 해당 직위는 공단 직제규칙 제11조 ‘직위별 보직 기준에 따라 변호사로 한정된다’에 의거해 변호사 자격 소지자만 보임할 수 있다. 공단 내 일반직노조와 변호사노조는 각각 이렇게 주장한다. 

    “변호사 업무는 법률구조사업이라는 대(大)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업무’에 불과하며 변호사 자격은 ‘변호’ 자체를 위한 자격이지 조직을 이끌 필요조건은 아니다.”(일반직노조) 

    “일반직을 보임하면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를 고용해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변호사법 제34조 위반이다.”(변호사노조) 

    신준익(39·사법시험 46회) 공단 변호사노조 위원장은 “일반 직원들이 본부 핵심 보직을 독점한 데 이어 지부장·출장소장·지소장 보직까지 자신들에게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명백한 변호사법 위반이다. 일반직 요구대로 할 경우 이른바 ‘사무장 로펌(소속 변호사 명의를 빌려 비(非)변호사 사무장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을 만들자는 것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코드 인사’ 논란 일으키며 민변 출신 이사장 취임

    지난해 10월 15일 조상희 당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15일 조상희 당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이사장 인사도 법률구조공단의 문제를 키우는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2018년 4월 30일 법무부는 이헌(58·사법시험 26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해임했다. 3년 임기 중 1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이사장으로서 공단 정상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는 게 해임 사유다. 이 전 이사장이 해임된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가 자리한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인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대표를 지낸 데다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인사라는 점,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사무처장 겸직)을 맡았던 이력이 작용했다는 것. 

    조직 내 갈등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8년 3월 공단 3급 이상 간부들과 팀장급 전원이 공개적으로 이헌 당시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그 후 2018년 6월 25일 조상희 건국대 융합인재학과 교수가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인사검증권자이던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서울대 법대 동문인 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참여 경력,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고문 변호사 이력이 ‘코드인사’ 논란을 일으켰다. 

    조상희 전 이사장은 기자에게 “경북 영양 출신으로 대구고를 나온 이른바 ‘TK’ 출신이다. 공단 본부 소재지가 경북 김천인 점을 감안해 지역에 연고를 둔 민변 출신 법조인을 찾다 보니 공모 절차를 거쳐 내가 내정된 것이다. 현 여권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전 이사장 취임 후 내부 갈등이 폭발했다. ‘소수 변호사 대(對) 다수 일반직’ 간 고질적 조직 병리 문제가 곪아터진 것이다. 조 전 이사장은 ‘비능률적 구조의 개선, 공단 운영 합리화’를 명분으로 채용·인사제도 개편에 나섰다. △‘임기제 변호사’ 제도 도입(최초 임용 후 5년-3년-3년 단위 계약 갱신, 최장 11년간 근무 허용) △‘일반직’ 6급 변호사 채용 △지부장 보직 외부 개방 △소속 변호사에게 일괄 지급하던 소송성과급 등 수당 체계 개편 △지부-출장소-지소 위계구조 개편 등을 추진했다. 

    공단 측이 “소속 변호사들이 10년 근속 기준 연 1억4000만 원에 이르는 임금을 받으면서 65세 정년도 보장받고 있다. 신규 채용 변호사는 기간제(계약직)로 채용하겠다”고 밝히고 나서자 변호사노조는 “변호사에 의한 법률상담·법률구조를 보장하려면 정규직 변호사를 더 많이 뽑아야 한다”고 맞섰다. 신입 변호사 임금 삭감 문제도 반발을 샀다. 공단은 2019년 신규 채용 변호사부터 월 40만 원 상당의 판례수집비를 삭감했다. 

    신준익 변호사노조위원장은 “경영합리화라는 명분은 일견 타당하게 들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일반직 7급으로 입사해 20년 넘게 근무한 4~5급 연봉이 7000만~8000만 원 선인 반면 신입 변호사 연봉은 4800만 원 정도다. 일반직 간부 1명을 채용할 비용으로 변호사 2명을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돕는 변호사 수를 늘릴 생각을 하지 않고 일반직 수만 늘려오면서 변호사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사 문제를 둘러싼 잡음

    또 다른 갈등도 있었다. 조상희 전 이사장 임기 동안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 송사(訟事)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소속 변호사들을 자극한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다. 

    2018년 7월 5일 조 전 이사장이 공단 전주지부를 찾았다. 보름 후 박왕규 전주지부장(41·사법시험 33회)이 산하 군산출장소장으로 전보됐다. 후임 전주지부장에는 군산출장소장을 발령했다. 각급 법원·검찰청에 대응해 본부-지부-출장소-지소 순으로 구성된 법률구조공단 직제에 비춰 볼 때 일종의 ‘강등’ 인사였다. 

    그해 7월 25일 박왕규 지부장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 ‘전보발령 효력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8월 8일 부당전보 무효확인 본소송도 제기했다. 8월 14일 김천지원은 효력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박 지부장과의 소송이 계속 이어졌다. 박 지부장은 이듬해 2월 15일 정기인사에서 의정부지부장으로 전보된 후 전보발령 효력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2월 18일). 3월 14일 김천지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박 지부장의 주장은 이렇다. 

    “조상희 이사장이 예고 없이 전주지부를 방문했다. 지부장으로서 현황보고를 했다. 인사발령을 내리면서 지부 통계 등을 허위 보고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지부장과 산하 출장소장을 맞바꾸더니 가처분 소송에서 패하자 의정부지부장으로 전보했다. 광주광역시가 연고지인 나는 전출을 희망한 적이 없으며 연고도 없고 사택도 제공되지 않는 곳으로 발령 낸 것은 명백한 보복 인사다. 평소 일반직 직원이 법률상담 등 변호사 업무를 하는 것에 이의 제기를 해왔는데 이에 미운털이 박힌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조상희 전 이사장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1차 전보는 징계성 인사가 맞으나 강등은 아니다. (박왕규 변호사) 후임 전주지부장으로 임명한 군산출장소장이 의정부지부장을 맡았다. 지소장 중에도 지부장·출장소장보다 사법시험 선배 기수가 존재한다. ‘순환보직’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차 전보는 수도권·비(非)수도권 간 교류 인사 원칙에 맞춰 단행했다. 이를 1차 인사와 연계해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송사, 파업으로 이어진 조상희 전 이사장과 소속 변호사 간 갈등의 기저에는 가치관의 차이가 자리한다. 조 전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직 밑에서 일 못 하겠다는 변호사들

    “법률구조공단은 사회적 약자에게 법률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설립 목적에 충실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다. 소속 변호사도 조직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소송대리뿐 아니라 법률상담도 공단의 주요 업무다. 국민연금공단 등 다른 공공기관도 변호사 자격을 가진 직원이 일반직 상급자 감독하에 일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공단 변호사들이 일반직 직원 밑에서 일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부장 등 산하기관장 일반직 보임 문제도 마찬가지다. 공단 업무를 규정한 법률구조법에 따라 변호사를 고용해 업무를 맡길 수 있다” 

    변호사노조의 견해는 다르다. 

    “변호사라는 직(職)의 전문성을 무시한 처사다. 비(非)변호사 직원의 지시·감독을 받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다. 법률구조법보다 변호사법이 상위 개념이다.” 

    변호사노조의 이 같은 주장에 조상희 전 이사장은 “법적으로 이사장·사무총장 등 상임임원은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임명할 수 있다. 추후 비변호사 출신 이사장이 임명되면 그때도 ‘사무장 로펌’ 운운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공단 운영 제도 개편 방식을 두고도 갈등이 첨예하다. 법률구조체제는 ‘주디케어 시스템(judicare system)’과 ‘스태프 어토니 시스템(staff attorney system)’으로 양분할 수 있다. 전자는 법률구조 사건 소송처리를 외부 변호사들과 연계해 처리하는 방식, 후자는 법률구조기관이 변호사를 직접 고용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공단은 현재 스태프 어토니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조상희 전 이사장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주디케어 시스템을 채택한 것을 예시로 들며 궁극적으로 법률구조공단도 법률상담·변호사 알선 업무 등을 담당하고 소송은 외부 계약 변호사가 담당하는 체제로 개편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변호사노조는 ‘법률 서비스 저하, 소송비용 증대’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31일 조 전 이사장이 돌연 사직했다. 임기를 1년 6개월 남긴 채였다. 조 전 이사장은 일신상 사정과 신임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공단을 떠났다. 

    공단은 이후 이상호(54·사법시험 30회) 사무총장의 이사장 직무대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후임 이사장을 공모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법무부에서 공단을 담당하는 인권국장직도 황희석(54·사법시험 41회) 전 국장이 2020년 1월 6일 사임해 3월 16일 현재 공석이다. 

    조상희 전 이사장 사임 후 법률구조공단과 법무부는 변호사노조를 향해 파업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원인 제공자가 사직했으니 파업 명분이 사라졌다’는 이유에서였다. 변호사노조는 “본질은 조 전 이사장 개인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이 시정되는 것”이라며 파업을 강행했다.

    대한변협 파업 지지 성명 발표

    대한법률구조공단 제주지부가 작성한 소송 업무 지연 안내문.

    대한법률구조공단 제주지부가 작성한 소송 업무 지연 안내문.

    사상 초유 변호사 파업 사태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사법시험 40회)는 2월 6일 ‘파업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변협은 “법률구조공단 운영에 있어 변호사가 법률상담부터 소송업무까지 직접 관여해 법률구조법·변호사법을 준수하면서 변호사의 독립적 직무 수행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단 변호사들은 파국에 이른 원인 중 하나로 법무부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2018년부터 수차례 시정 조치를 촉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일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사장·법무부 주무국장 공석이라는 ‘리더십 공백’ 속에서 변호사 파업 사태는 장기화가 예상된다. 일을 책임지고 수습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해묵은 직렬 간 갈등, 구성원 공감 없이 진행된 제도 개편, 논란 많은 인사권 행사 등이 누적돼 발생한 초유의 변호사 파업 사태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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