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박능후? 자질도 없고 EQ도 낮은 사람이 장관이라니”

보건 당국 前 수장이 본 장관 자격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0-03-1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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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탓? 의학적으로 틀린 말

    • 中 놔두고 국내 방역? 전후방 바뀌었다

    • 입국 통제 못해 질본도 답답했을 것

    • 자화자찬 논리 개발 말고 방역에 힘써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코로나19 확산 원인이 중국에서 입국한 한국인이라고 발언했다. [채널A 화면 캡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코로나19 확산 원인이 중국에서 입국한 한국인이라고 발언했다. [채널A 화면 캡처]

    “박능후 장관의 발언은 의학적으로 틀렸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장관으로서도 부적절한 말이었다.” 

    ‘박능후 망언’에 대한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의 평이다. 그는 “국민의 고통에 공감 못한 발언이다. EQ(감정적 지능지수)가 낮은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망언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박 장관은 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원인이 한국인에게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날 정갑윤 미래통합당 의원은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가 충분치 않다”며 박 장관을 비판했다. 이에 박 장관은 “소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며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다음처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우리 한국인이었습니다.” “애초부터 들어온 게 한국인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 “지금 한국에서 전파를 시킨 가장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들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런 열도 기침도 없는 우리 한국인들이 중국에 갔다 들어오면서 감염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중국인 아닌 한국인이 문제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 [동아DB]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 [동아DB]

    박 장관의 발언은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2월 28일 중국한인회도 성명을 통해 박 장관의 발언이 “우리 교민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격리 통제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재중 한국 교민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중국 당국이 부인하고 있지만 코로나19 발원지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가 틀림없다”며 “우리 국민이 감염을 매개했어도 근본적으로 중국에서 병이 옮아왔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차의과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은 “박 장관은 장관 자질이 없다. ‘중국인은 문제없는데 한국인이 문제’라는 인식 아닌가”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사태 당시, 질본 전염병대응센터 센터장으로서 방역 일선에 있었다. 전 전 본부장은 “그간 전문가들의 주장은 일관됐다. 국적을 불문하고 중국에서 들어온 이들의 입국을 통제하자는 것이었다. 장관은 전문가들이 마치 중국인만 콕 집어 입국을 막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커지자 박 장관은 해명에 나섰다. 2월 27일 대구 남구보건소를 찾은 자리에서 “중국인뿐 아니라 우리 국민도 감염됐을 수 있기에 모두 막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라면서 “중국에서 오는 모든 사람을 입국 금지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했다. “(31번 확진자 이전에는) 중국인 여행자가 국내에 감염시킨 사례보다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국민이 감염시킨 사례가 더 많았다”고 덧붙였다.

    “정은경 본부장이 오죽 답답했으면…”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 [동아DB]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 [동아DB]

    박 장관의 발언이 구설에 오른 건 한두 번이 아니다. 2월 21일에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창문 열고 모기 잡는 격’이란 지적에 대해 “겨울이라 모기는 없다”고 말했다. 감염원 유입을 차단하지 않고 국내 방역에만 골몰하는 것의 문제점을 짚자 ‘농담’으로 응수한 셈이다.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 박 장관은 또 다른 실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일선 의료진이 마스크 부족을 호소하는 것에 대해 3월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다”며 “자신들이 재고를 쌓아두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 말한 것. 전국의사총연합회,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등 의사단체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이해해보려 애써도 이해가 안 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발 입국자 제한 조치가 허술하기 그지없다. 국내에서는 환자 1명이 지나간 공간을 소독하고 폐쇄하느라 고생인데 말이다. 방역의 전후방이 바뀐 듯하다”고 평했다. 

    2월 1일 질본은 1월 13~26일 사이 중국 우한시에서 입국한 2991명(한국인 1160명, 외국인 1831명)을 상대로 코로나19 의심 증상 유무를 전수 조사한다고 밝혔으나 이 숫자에는 선박을 통해 입국하는 하루 1000여 명 안팎의 중국인은 빠져 있다. 또 1월 30일 기준으로 외국인 1831명 중 1433명은 이미 다시 출국했다. 외국인은 소재지 및 연락처 파악이 어렵다. 잔류 외국인 중 질본과 연락이 닿은 이는 20%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욱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외국인 대부분은 다시 출국해 추적조차 어렵다. 이들의 코로나19 감염 여부 확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한에서 입국한 한국인을 확산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변수가 많은 것이다. 

    박 장관의 말처럼 중국발 입국제한 조치에 실효성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한의사협회는 1월 26일부터 2월 24일까지 일곱 차례 성명을 내 중국발 입국제한 조치 강화를 촉구했다. 의협은 우한시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온 입국자를 막자고 주장했다. 무증상 감염자가 있을 수 있고 이미 코로나19가 중국 전역에 전파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정부는 2월 4일 ‘특별입국절차’를 도입해 현재 중국·일본·이탈리아·이란 등지에서 온 입국자의 의심 증상 유무를 파악하고 있으나 여전히 입국 금지 조치는 후베이성에 머문 사람에 한한다. 

    질본도 입국제한조치 확대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2월 19일 정은경 질본 본부장은 “방역하는 입장에서 누구라도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중국 등 코로나19 위험지역에서의 입국을 더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이에 대해 정기석 전 본부장은 이렇게 풀이했다. 

    “정 본부장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정제된 표현이지만 공무원으로서는 작심 발언한 셈이다.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질본 관계자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본부장이 간접적으로나마 그리 얘기했겠나. 질본이 방역 실무를 맡았지만 권한은 거의 없다. 미흡한 중국발 입국제한 조치도 질본의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병율 전 본부장 역시 “여전히 코로나19 환자 수가 세계 최다인 중국이 왜 한국인 입국자를 막겠나. 바이러스 역유입을 막겠다는 것”이라며 “한국만 세상 물정 모르고 ‘어차피 늦었다’고 손 놓고 있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의 지리적 특성상 입국제한 조치가 매우 효과적인 방역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입국제한 조치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은 유럽처럼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한 지역에 국한된다는 것. 이 경우 땅을 맞댄 국가 간 인구이동을 원천봉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 전 본부장의 말이다.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은 비행기와 선박을 통한 입국만 통제하면 되므로 입국제한 조치가 실효성이 있다. 혹자는 ‘밀입국의 위험성’이 있다는데 현실적인 우려인지 모르겠다. 한국은 이처럼 방역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는데 아쉽다.”

    ‘자화자찬’ 끝나자마자 콜센터 집단감염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동아DB]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동아DB]

    이 와중에 ‘자화자찬’ 발언도 나왔다. 3월 8일 박 장관은 코로나19 정부대응 정례 브리핑에서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한다면 우리나라의 대응이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이자 세계적인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것에 대해서도 “월등한 진단검사 역량과 철저한 역학조사 등 방역 역량의 우수성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성급한 낙관론’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 장관이 ‘자화자찬’ 브리핑을 마친 날, 서울 구로구 소재 콜센터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집단 발생하기 시작했다. 확진자는 124명에 달한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8162명, 사망자는 75명에 달한다. 의심 증상을 보여 검사를 받은 인원도 1만6272명에 이른다(이상 3월 15일 0시 기준). 

    정 전 본부장은 “박 장관 발언 직후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또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논리를 개발할 시간에 코로나19 대응에 힘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 전 본부장도 “‘31번 확진자’와 같은 ‘슈퍼 전파자’가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 있다”며 “신종 인플루엔자의 국내 확진자는 74만 명에 달했다. 신종플루는 그나마 백신과 치료제라도 있었다. 코로나19는 이보다 더 위험한 감염병인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진수희 전 장관은 “장관의 말 한 마디에 공무원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장관의 섣부른 발언이 조직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호전됐다 싶어도 장관이 이것을 입 밖으로 내면 방역 태세의 긴장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보건의료 책임자로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주변에서 성급하게 낙관론을 펼쳐도 장관은 가장 보수적으로 사태를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역 非전문가·교수 출신 장관의 한계

    박 장관이 연이어 실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지낸 사회보장제도 전문가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만든 정책자문 조직인 ‘심천회(心天會)’의 멤버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장관은 보건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방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교수 출신으로 국민 정서를 잘 읽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심을 예민하게 살펴 반응할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다는 것. 

    이어 신 교수는 “앞으로 신종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보건 분야를 독립 부처로 둬서 전문가를 장관에 임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동아’는 3월 2일과 4일 두 차례에 걸쳐 질의서를 통해 복지부 측에 박 장관의 발언 배경을 물었다. 그러나 복지부 측은 박 장관이 “정례 브리핑 외에 언론과 인터뷰할 여력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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