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계획이 있었다” 국민 살릴 계획은?
대통령 말대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사람이 죽어가는데 짜파구리 준비라니
“한국이 슈퍼전파자”… 전 세계서 고립
“메르스 슈퍼전파자는 정부”라고 소리치던 文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0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제작진을 만나 오찬을 하기 전 격려 인사를 하며 오찬 메뉴 중 김정숙 여사가 제안한 ‘짜파구리’가 포함돼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대한 분노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2020년 봄,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는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대한 분노가 일고 있다.
청와대는 2월 요란하게 ‘대파 짜파구리’를 준비했다. 2월 20일 청와대는 영화 ‘기생충’ 제작진을 초청하고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 수상을 축하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한 듯 “저도 계획이 있었다”면서 이틀 전 전통시장 방문 때 구입한 진도 대파를 곁들여 이연복 셰프의 레시피로 만든 짜파구리를 내놓았다.
이날은 국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한 날이다. 당시에는 빙산의 일각임을 알지 못했으나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대구교회 관련 5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확진자 수가 100명을 돌파했다. 감염병이 퍼져가는 마당에 짜파구리 대접에 공을 들인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국민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와 대만 정부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첫 확진자가 1월 20일, 대만이 1월 21일 나왔는데 대만은 확진자가 발생하자마자 마스크 수출을 금지하고 국가가 마스크 전량을 구매해 저렴하게 파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만 국민들은 마스크로 불편을 느끼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확진자 수만 봐도 한국은 7000명(3월 10일 현재)을 넘어섰지만 대만은 두 자릿수로 통제할 수 있었다.”
“메르스 슈퍼전파자는 정부”라고 소리치던 文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시 대표가 2015년 6월 2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보건소를 방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책본부에서 의료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사태는 진전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짜파구리 파안대소가 있던 날부터 3일 후인 2월 23일, 정부는 코로나19 위기경보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올렸다. ‘종식’이라는 낱말을 쓴 문 대통령을 향해 뉴욕타임스는 “대가가 큰 오류(Costly Error)”라고 평했다. 걸핏하면 가짜뉴스를 언급하던 문재인 정부의 수장이 가짜뉴스 유포자였던 셈이다.
김민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조기 극복과 경제 회생을 전 세계에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결국 둘 다 놓친 결과를 초래했다. 방역이 이뤄져야 경제고 뭐고 정상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5월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국내 첫 발생했다. 같은 해 7월 말 정부의 메르스 종식 선언까지 186명의 환자가 발생해 38명이 사망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문 대통령은 2015년 6월 22일 정부를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지난 세월호 참사에 이어 정부의 무능이 낳은 참사로 국가 리더십과 위기관리 능력이 지금처럼 허술했던 적이 없었다. 메르스 슈퍼전파자는 다름 아닌 정부 자신이다.”
이어 6월 25일에는 “먼저 대통령께 묻고 싶다. 정치를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건지 정말 답답하다.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는 게 정치이지 이건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다”고 말했다. 정부를 비판하던 당시 문 대표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문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세계 시각에서 보면 한국도 슈퍼전파자
3월 15일 기준 코로나19로 136개 국가가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으며 국내 확진자 수는 8612명, 사망자 수는 75명이다. 코로나19와 메르스의 단순 비교는 부적절하지만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도 한국은 세계적으로 고립되지 않았다. WHO는 2015년 6월 17일 한국 메르스 확산 여파와 관련해 “현재 지역감염 증거는 없으며 여행 및 무역에 어떤 제한도 권고하지 않는다”는 공식 견해를 밝혔다.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한국인이 외국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신혼부부가 모리셔스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퀴벌레와 쥐가 들끓는 장소에 격리됐다. 모리셔스가 한국 정부에 사전 설명도 없이 결정한 일방적 처사였다. 코로나19 발병 근원지인 중국에서도 한국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불심검문을 해 강제 격리하거나 거주단지 내 차별 대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행태는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에 신중한 자세를 유지한 문 대통령의 태도와 정반대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진단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2월 27일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국인 입국 제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성·시(省市)별 입국 제한 조치가 있지만 중국 중앙정부 차원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청와대가 중국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월 4일 한국인 입국 금지·제한 조치가 잇따르는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 (다른 나라) 외교장관들이 스스로 방역체계가 너무 허술해 투박하게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는 것이다.” 한국은 방역 능력을 갖춰 중국발(發) 입국 금지나 제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도,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들이 입국을 막은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투로도 들린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어떻게 외교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다른 나라의 방역체계를 언급할 수 있느냐”며 “타국으로부터 항의를 듣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고립’ 넘어 ‘국제 미아’ 될 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한 이스라엘의 입국 금지로 조기 귀국길에 오른 한국인 관광객들이 2월 25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버스에 타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한국발 승객의 입국 금지와 제한 조치로 국제노선의 비(非)운항 추이가 늘어나고 있다. 3월 9일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영하는 유럽 노선은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정도다. 스페인, 오스트리아, 체코,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으로 가는 직항 노선은 모두 운항이 중지된 상태다.
항공사 관계자들은 파리, 런던 공항의 한국발 항공기 승객 입국 절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재 유럽과 중동으로 가려면 파리와 런던 공항을 거쳐야 하는데 이마저도 없어진다면 한국의 국제 고립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동과 유럽 주요 도시는 한국발 직항 노선이 없더라도 파리나 런던 국제공항을 경유하면 도착할 수 있다.
영국은 3월 15일 현재 대구와 경북 청도지역에서 입국한 외국인에게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자가격리하고 국민보건서비스(NHS)에 통보하도록 요청하는 등 사실상의 입국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런던과 파리 노선이 막히면 유럽과 중동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비즈니스와 공적 업무를 위한 한국발 출발도 막힌다. 항공사 관계자는 “정부가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나라에 실효도 없는 경고를 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노선을 유지할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할 때”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은 또 마스크를 구입하느라 고생해야 했다. 문 대통령은 2월 26일 “(마스크) 물량 확보 문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에게 약국 등에 가면 언제든지 마스크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말을 듣고 국민은 또다시 약국과 마트로 향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이틀 뒤 문 대통령은 “여러 대책을 내놨으니 오늘부터 내일, 모레까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스크 공급을 장담하던 이틀 전 발언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자 ‘내일은 된다’며 국민에게 사정한 꼴이다. 마스크 탓에 국민의 분노가 거세지자 3월 3일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는 점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명하면서 각 부처 장관을 강하게 질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정부 관계자 A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부처 실무자의 말을 믿고 마스크 공급을 자신했던 대통령이었기에 심정은 이해가 가나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대통령의 몫이다. 아랫사람의 실수를 드러내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모양새로 보일 수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일관성 잃은 정부發 메시지
문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언 이후 정부는 준(準)배급제에 속하는 마스크 5부제를 내놓았다. 마스크와 관련한 정부의 메시지에는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사고수습본부가 2월 4일 발표한 ‘올바른 마스크 착용법’은 식약처 허가를 받은 KF80, KF94, KF99 보건용 마스크 사용을 권장하면서 “한번 사용한 마스크는 재사용을 금지한다”고 적고 있다. 정확하게 한 달 후인 3월 4일 식약처는 ‘마스크 사용 개정 권고사항’을 발표한다. 개정 권고안에는 ‘비상 상황에서의 한시적 지침’이란 단서를 달면서 “오염 우려가 적은 곳에서 일시적 사용 시 동일인에 한해 재사용” “사용한 보건용 마스크는 환기 잘되는 곳에서 건조한 후 재사용”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방역 분야 비전문가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끼어들어 3월 6일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거나 건강한 분들은 마스크 사용을 자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더니 이제는 사용을 자제하라는 거다.
한 방역 전문가는 “정부 입장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지만 어느 국민이 이제 와서 저 말을 믿겠습니까. 코로나19 초기 과정부터 이어져온 일관된 발언도 아니고 지금 시국에서는 ‘없으니까’ 자제하라는 의미로 들리지 않겠습니까”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 안전은 최소한의 국가 존립 근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 것처럼 정부가 불안감을 조성해 놓고 이제는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마스크 사용을 자제하라니요. 국가가 지켜주지 못하는 자신의 안전을 위한 선택을 마치 개인 욕심이나 이기심인 것처럼 말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이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제목의 책도 출판했다. 대통령 취임 1000일(2월 3일)을 넘겼지만 사람이 먼저인지 국내외 정치 공학이 먼저인지 국민은 혼란스럽다.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월 25~28일까지 19세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일상생활이 절반 이상 정지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9.8%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뉴스를 접할 때 떠오르는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48%가 불안, 21.6%가 분노라고 답했다. “스스로 무기력하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58.1%다.
김민전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6·25전쟁 이후로 대한민국이 멈춰 선 경험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 위기 때마다 국민이 힘을 모아 해결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겠다며 긴 줄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조차 충분히 만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깊은 무기력감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