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단독

선원 마스크 없어 해상수출 차질

  •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donga.com

    입력2020-03-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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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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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정부의 마스크 공급 실패가 산업계의 숨통마저 조이고 있다. 산업계가 코로나19로 인해 매출 감소, 원자재 수급 차질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마스크 수급 불안정이 기업의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마스크 전체 생산량의 80%를 공적 마스크로 공급하고자 긴급 예산을 투입했으나 부족 사태를 막지 못했다. 3월 4일 추가경정예산안 발표 이전 4조 원의 긴급자금을 투입하면서 대책 중 하나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마스크와 소독제를 배부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마스크를 확보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기업들도 마스크 구하느라 발 동동

    일부 식품 가공업체는 마스크 수급에 사업의 사활이 달려 있다. 식품안전관리인증 기준인 해썹(HACCP) 마크를 받으려면 제조 공정에서 근로자들이 마스크를 써야 한다. 해썹은 토마토주스, 냉동떡사리, 진미채, 멸치액젓, 김, 커피 등 식품 제조 시 화학적·물리적 위해 요소가 해당 식품에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 인증이다. 

    일부 업체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중단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위생에 더욱 신경 쓰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어 해썹 인증 유지는 기업의 생존과도 직결된다”며 “다른 업무보다 마스크 구하기에 힘을 쏟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기업들은 ‘마스크 5부제’ 시행으로 마스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수출입을 담당하는 해운산업도 마스크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바다에서 근무하는 선원이 어떻게 육지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국내 선원 노동자는 7만여 명의 한국인과 3만여 명의 외국인노동자로 이뤄져 있다. 이 중 2만4000여 명은 외양(外洋) 근무자들로 업무 성격상 국내 항구와 외항을 떠돈다. 정 위원장은 “국가의 마스크 공급 정책이 특수 산업에 종사하는 선원들의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해운산업의 특성상 마스크 공급 부족은 수출입 문제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외항에 도착한 국내 선박에 대한 해당 국가의 검역이 강화되고 있다.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외국 항구에 입안하면 선원들이 배에서 내리지 못한다. 해당 국가 검사관이 승선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한다. 한국 국적 선박의 선원이 현재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 검사가 원활하게 진행이 안 된다. 배에서 물건을 못 내리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각국 항구에서 “코리아 코로나 노”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선원들이 하선하지 못하고 선상에 고립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수출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한국은 석유, 가스 등 전략물자의 99.7%를 해상을 통해 확보한다. 

    이렇듯 마스크 수급까지도 기업과 근로자들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추경안을 바라보는 소상공인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사채도 한 시간이면 나온다. 지금은 리스크를 따질 때가 아니다. 다 죽고 나면 무슨 의미가 있나.” 문재인 정부가 3월 4일 11조7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하자 자영업자 대변 단체에서 나온 분노 섞인 말이다. 대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긴급 자금 지원이 필요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눈과 귀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

    3월 12일 코스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 영향으로 장중 1870선까지 떨어졌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3월 12일 코스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 영향으로 장중 1870선까지 떨어졌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대한상공회의소에 2월부터 3월 초까지 접수된 기업들의 애로사항 1순위는 매출 감소(38.1%)다. 부품·원자재 수급 곤란(29.7%), 수출 어려움(14.6%)이 뒤를 잇는다. 대(對)정부 건의 사항으로 자금 지원을 꼽은 기업이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35.1%에 달한다. 

    서비스업종이 몰려 있는 서울 지역에서는 항공·여행·교육 업계의 매출 감소가 두드러졌다. 전국 제조업체의 36%가 몰려 있는 인천·경기 지역은 원자재 수급과 수출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항공협회는 2~6월 국제선 매출 손실이 3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 최저임금 급격 상승으로 자영업자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소상공인들이 몰락의 길을 걷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으니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대응책은 좌절감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기에 앞서 두 차례에 걸쳐 20조 원의 긴급지원 대책을 발표한 후 집행 중이다. 소상공인들은 혜택을 받은 기업도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행정 편의주의적인 정부 정책 입안과 집행을 향한 비판과 함께 내수 시장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눈과 귀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내수 시장의 급격한 위축도 문제지만 수출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3월 11일 현재 한국발(發)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116곳에 달한다. 10대 수출 교역국 중 미국을 제외한 중국, 일본, 베트남 등 9개 나라가 한국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10대 수출 교역국으로의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량의 70% 규모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계기업부터 무너지기 시작할 것

    “가장 큰 문제는 해외에서의 영업 활동이다. 지사나 현지 법인이 없는 기업들의 수출 영업은 사실상 중지된 상태다. 전화나 화상회의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면대면 협상을 대체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들은 해외에서 열리는 전시회 등을 바이어를 만나는 통로로 이용해 왔다. 각국의 산업 전시회가 취소되면서 판로 확대가 어려워졌다. 코로나19로 주요 국가들의 경제가 얼어붙은 것도 어려움을 더한다. 교역 상대국의 내수 축소는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계기업부터 시작해 중소기업으로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산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가 언제 종료되는지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며 “우리가 조기 종료된다고 해서 안심할 게 아니라 현재 미국 내 확산이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교역 등 부정적 영향도 고려한 추경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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