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한민족은 어떠한 핍박과 설움 속에서도 세찬 기운과 꿋꿋함으로 떨쳐 일어서는 기상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은 위기마다 국민 모두가 분연이 일어나는 잠재된 큰 힘을 발휘했다. 3·1운동이 그러했고, 6·25전쟁 때에도 분연히 맞서 싸워 나라를 지켜냈고, IMF 외환위기 때는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국난을 이겨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역시 끝내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의사의 눈으로 본 코로나19는 과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사망률은 낮지만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번 코로나19는 배양 환경을 애초 막지 못했다는 점, 그런 배양 환경이 이미 조성돼 있었다는 점(니시우라 히로시 홋카이도 대학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크루즈선 내에서는 감염자 한 명으로부터 평균 5.5명이 추가 감염된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본의 관료주의가 크루즈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는 실책을 범했고, 우리 역시 종교단체 ‘신천지’라는 배양 환경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는 언제쯤 가라앉을까. 전병율 차의과학대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공식 시작일로부터 8~9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사스는 첫 발생 선언으로부터 종식 선언까지 9개월(2002년 11월~2003년 7월), 신종플루는 16개월(2009년 4월~2010년 8월), 메르스는 8개월(2015년 5~12월)이 걸렸다. 코로나19도 비슷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치료를 위해 정부가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하는 등 대응에 총력전을 펼친다고 해도 공산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봉쇄 정책’이 아닌 다음에는 확산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불현듯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1351)이라는 고전소설이 뇌리를 스쳤다. 페스트(흑사병) 팬데믹이 유럽을 휩쓸며 이탈리아에까지 번지자, 교회 미사에 참석했던 7명의 귀부인이 3명의 신사를 초대해 전염병이 잠잠해질 때까지 교외의 별장에 은둔하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필자는 도시를 떠난 10명의 선남선녀가 털어놓은 100개의 스토리보다 흑사병이 돌 때 먼 곳 별장까지 피신한 것에 박수를 친다. 700년 전인데도 역병(疫病)은 감염원으로부터 격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조선시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역병에 걸리면 왕족도 도성 밖으로 나가 생활해야 했고,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시신은 화장해 병체 생성을 막았을 정도로 전염병 예방을 위해 ‘격리’를 실천했다.
부모자식 간보다 부부 감염 많은 이유
지금도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실천이 중요하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공동조사단으로 열흘간 중국을 다녀온 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코로나19에 대해 “(공기로 감염되는) ‘인플루엔자’ 성격은 아니다. 접촉감염이다. 집단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집회나 종교행사, 각종 모임 등)을 멀리하고 당분간 사람 간 접촉을 피해야 감염을 막을 수 있다.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면 막을 수 있다”고 했다.하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람 분비물(droplet) 속 미세 바이러스가 공기를 타고 멀리까지 전파될 수 있어 개개인이 이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나 자신은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당분간 하숙생인 것처럼 한집에서도 개개인이 떨어져서 생활하라. 부부간에도 어지간하면 스킨십을 자제하라. 코로나19 확진자 중에서 부모자식 간 감염보다 부부간 감염 사례가 더 많은 것에 힌트가 있다. 아무래도 부부간 접촉 감염이 될 확률이 부모자식 간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일 게다. 요즘 같은 때에는 재롱부리는 자식에게 입술을 맞추지 않는 게 좋다.
조선시대 양반 가옥을 떠올려보자. 부부가 안방과 사랑방을 쓰도록 각방으로 분리돼 있었다. 한방에서조차 부부가 일정 거리를 두고 각각의 요와 이불을 깔고 덮는 것이 예사로웠다. 왜 그랬을까. 역병이 발생했을 때에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 구조가 전염 방지에 기여했을 것이다.
500년 조선, 320년간 疫病 돌아
조선시대에 역병(두창, 염병, 마진, 홍역, 콜레라 등 돌림병)이 무려 1455건에 달했다. 조선 500여 년 역사에서 전염병이 돈 기간이 무려 320년이나 된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사망자는 1000만 명 이상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역병으로 조선 팔도에서 10만 명 이상이 죽었다는 순조실록(1821) 기록만 봐도 조선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역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말에 ‘염병할’이라는 욕이 있는데, 다름 아닌 ‘역병에 걸려 죽을’이라는 뜻이다. 근대 이전의 부부들이 잠자리에서까지 적당한 거리를 두었던 게 한해도 끊이지 않는 역병 탓이었다고 해도 설득력이 있을 정도다.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이상 타인과 2m(최소한 1m) 거리를 두는 게 좋다. 필자도 마스크를 쓴 채로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의 감염 공포로 인해 생활 곳곳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다. 악수보다는 주먹을 맞부딪치거나, 팔꿈치를 갖다 대거나 발을 대며 인사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간 유대와 친목을 확인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할 때 눈만 마주치는 게 아니라 콧김과 입김이 직접 부딪칠 수 있다. 따라서 접촉으로 인한 감염이 원인인 이상, 서로의 호흡 공기가 교차되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다소 의아하겠지만 외출할 때에는 너무 깨끗한 상태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코나 구강 인후 후두 점막의 점액이 너무 깨끗해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쉽게 안착할 수 있다. ‘눈꼽만 떼고 나왔다’는 표현이 있듯이 이럴 때에는 고양이 세수를 눈감고 용인해야 한다. 단, 귀가해서는 샤워, 양치질, 세수를 모두 완벽하게 해야 한다.
너도나도 마스크 구하기에 혈안이 돼 있다. 입과 코는 몸에서 감염 경로 첫 관문이자 최전방이므로 마스크 구입이 어려우면 순면으로 만들어서라도 공기차단막을 하고 다녀야 한다. 다만 이런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면 마스크와 방한용 마스크는 입에서 나온 침과 습기에 젖을 경우 세균을 배양하는 배지와 같다는 것이다.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왼쪽 가슴에 수건을 달아주셨다. 그 수건으로 코를 닦았지만 때로는 감기 예방 차원에서 어머니가 양쪽 끝을 약간 접어 실로 꿰매고 안쪽에 검은 고무줄을 넣어 마스크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사회적 공포’가 더 사람을 잡는 법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전염병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사람을 잡는 법이다. 불안감이 커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면역력이 저하될 수 있어 저마다 ‘심리적 방역’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마스크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울산의대 미생물교실은 “야외나 환기가 잘되는 곳에서는 마스크의 중요성이 크지 않다”며 “코로나19의 경우 손을 통한 분비물 접촉이 더 중요해서 각종 손잡이가 주된 감염원”이라고 설명했다.봄꽃이 기다려진다. 평균적으로 3월 말이면 제주도를 시작으로 벚꽃이 펴서 4월 초에는 온통 벚꽃으로 만개한 여의도는 축제장이 되는데, 코로나19의 기세가 하루빨리 꺾여서 마음 놓고 꽃구경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살이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고 득과 실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 씻기가 습관이 됐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너무 평범했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그 어느 때보다 밝고 건강하게, 고마움을 아는 삶이 되지 않을까. 매일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우리가 마음 놓고 숨 쉬고 마음대로 활보하는 게 얼마나 숨통 트이는 일이었는지 알았으니 말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