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신사 유령,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크리스틴
파리 오페라극장의 미스터리 러브스토리
1986년 초연 이후 39개국 188개 도시 공연
뮤지컬 라이브 온라인 감상 후 극장 공연 보는 재미
[오페라의유령 공식홈페이지 제공]
진실한 사랑의 가치 증명하는 명작 뮤지컬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1992) 영화 ‘쉬리’(1999)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2002)의 공통점은 가요·영화·공연계 체질을 뒤집으며 문화사업 지형을 바꾼 기념비적 이정표라는 것이다.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국내 초연 당시만 해도 전무후무한 1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라이선스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국내 뮤지컬 관객이 많지 않고, 저작권 개념도 불분명하던 시절이다. 그 무렵에는 브로드웨이 공연을 몰래 녹음하고 한글 가사를 입혀 공연하는 일까지 벌어지곤 했다. 그런 환경에서 정식 판권 작품으로 들어온 ‘오페라의 유령’은 관람 가격을 1인당 10만 원 이상으로 높이 책정하고도 7개월 동안 관객 24만 명을 끌어들이며 화제를 모았다. 최종 매출액 192억 원, 순이익 20억 원 기록을 달성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영국 머제스티스 극장에서 초연된 후, 세계 39개국 188개 도시에서 15개 언어로 30년 넘게 공연되는 명작이다.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이 순간에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제목 때문에 오페라 장르의 작품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오페라극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뮤지컬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한다.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괴신사 유령과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크리스틴, 그리고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귀족 청년 라울의 숨 막히는 삼각관계가 화려한 무대와 주옥같은 선율을 타고 흐른다 (*이 칼럼에는 ‘오페라의 유령’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원작은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1868~1927)가 1909년부터 1년간 일간지 ‘르 골루아’에 연재한 동명 추리소설. 르루는 프리랜서 기자 출신으로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 등을 섭렵하며 세계 구석구석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1896년 그는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하나가 떨어져 관람객이 사망한 사건을 취재했다. 아마 이때부터 ‘오페라의 유령’ 소설을 어렴풋이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폴레옹 3세가 세운 파리 도시 개조 계획의 일환으로 건축된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은 매우 화려하게 설계됐다. 또 나폴레옹 3세가 암살 위험을 차단할 VIP 전용 비밀 공간을 곳곳에 만들기를 원해 극장 내부 구조가 기존 극장과 상이했다. 르루는 현장을 취재하다 오페라하우스 건축 당시 공사장에서 물웅덩이가 계속 발견돼 어쩔 수 없이 길이 50m, 폭 25m, 깊이 3m의 거대한 저수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르루는 이후 여기서 착안한 물길을 소설 ‘오페라의 유령’에 등장시킨다. 화려한 극장 안 비밀 공간에서 유령처럼 숨어 살아가는 인물이 홀로 꿈꾸던 초월적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설정이다.
소설, 뮤지컬, 영화로 다양하게 변주
르루는 코난 도일의 추리작가 계보를 잇고자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하고, 기자직을 그만둔다. 이후 치밀한 구성에 환호하는 열혈 독자층이 생겼지만 그의 소설에 평단이 내린 평가는 야박했다. 억지춘향으로 연속되는 우연과 남발되는 반전이 문제였다. 1909년, 그는 항간의 우려를 종식하고자 비장의 카드 ‘오페라의 유령’을 꺼내 들었다.신문 연재 초반 그의 신작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 가도를 달리지만 연재가 한창이던 1910년 1월, 하필이면 파리에 대홍수가 일어난다. 센 강의 물이 불어나 파리는 수상도시가 돼버렸고 장장 4개월간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파리 시민 20만 명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이재민이 되자, 독자들은 더는 극장 지하의 숨겨진 습한 공간을 배를 탄 채 옮겨 다니는 미지의 괴신사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 당시 파리 모습을 찍은 기록 사진을 보면 흡사 뮤지컬의 한 장면 같다. 파리 시민들이 배에 탄 채 생계를 위해 수로 터널로 노를 저어가고 있는 게 보인다. 대홍수가 어느 정도 수습된 뒤 몇 달 후 루르는 연재를 끝내고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출판하지만 당시엔 빛을 보지 못했다. 그 빛은 이후 다른 장르에서 발현된다.
르루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25년, 미국 출신 론 채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오페라의 유령’ 무성영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이후 4번이나 더 영화화됐다. 그중 2004년 영화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 워너 브라더스사의 뮤지컬 영화다. 2011년 영화는 그해 10월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뮤지컬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이다.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전달되는 생동감 넘치는 극장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 귀한 영상이다.
최대 규모로 내한한 월드투어팀
‘오페라의 유령’ 공연 모습. [오페라의유령 공식홈페이지 제공]
스토리 외에도 ‘오페라의 유령’이 관객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6000개에 달하는 반짝이는 비즈가 달린 1t짜리 샹들리에를 비롯해, 의상 230벌, 가발 111개, 촛불 281개가 형형색색 움직이는 압도적인 무대가 등장한다. 이 무대는 초연 때부터 컴퓨터그래픽(CG) 영상작업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로 내한한 이번 월드투어 무대 또한 볼거리가 풍성하다. 여러 대륙에서 모인 배우와 스태프가 2019년 2월 필리핀 마닐라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 무대에 서고 있다. 출연 배우들이 한국인이 아니다 보니 자막을 봐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 덕에 만국 공통어인 음악의 울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최정상급 기량으로 부산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번 공연팀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의 영혼을 판타지 세계로 인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