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86 운동권이 적폐 세력 됐다”

與, 비례연합정당 창당 후폭풍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20-03-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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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체 없는 ‘탄핵’ 운운하며 위성정당 창당

    • 86운동권이 민주화 대신 ‘文 지키기’ 나선 꼴

    •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노무현 정신은…

    • 의석 확보에 혈안, 민주화 배신자로 규정

    이해찬(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정 의원이 3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 지도부는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에 관한 의견을 의원들로부터 수렴했다. [뉴스1]

    이해찬(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정 의원이 3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 지도부는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에 관한 의견을 의원들로부터 수렴했다. [뉴스1]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용각 전 중앙정보부장이 묻는다. 

    “우리 혁명 왜 했냐? 목숨 걸고 왜 혁명을 했냐고?” 

    김규평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것으로 이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각하를 혁명의 배신자로 처단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주류 86 학생운동권 세대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 민주화운동 왜 했냐? 목숨 걸고 왜 데모를 했냐고?” 

    그 대답이 비례정당 창당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유는 현실론이다. 지난 3월 1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찬성론자들은 ‘미래통합당에 과반 의석을 내주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문재인 지키기’가 최대 명분인 것이다. 86 운동권 세대의 존재 이유가 어쩌다 문재인 지키기가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논리를 거부한 이가 별로 없었다는 후문이다.

    비례정당 창당과 ‘文 탄핵’ 상관성

    2016년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2016년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최근 그런 주장을 내놓긴 했다. 2월 20일 한 방송에 출연해 2018년 울산시장 선거 당시 송철호 당선을 위한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언급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저희가 1당이 되거나 숫자가 많아지면 문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청와대가 몸통이라는 게 드러나면 탄핵을 추진하겠다.” 

    청와대가 그동안 해명해 온 것처럼 하명수사도 선거 개입도 없었다면, 심 원내대표의 주장은 근거 없는 정치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야당이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을 겁박한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 정도 발언을 근거로 실제 탄핵을 당할지 모른다는 주장을 한다는 게 일단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런 주장이 의원총회에서까지 설득력을 가졌다는 것에는 ‘뜨악’할 따름이다. 정말로 탄핵을 당할 일을 저지른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탄핵이 어디 쉬운 일인가. ‘촛불혁명’ 정도의 광범위하고 탄탄한 국민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기에 십상인 사안이 바로 탄핵이다. 민주당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 야당이 탄핵을 추진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사실을 잘 기억할 것이다. 그 탄핵 역풍에 힘입어 2004년 총선에서 무려 108명이나 당선된 초선들이 현재 민주당을 주도하고 있는 86 학생운동권 세대다. 그들이 탄핵을 우려한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국 자신들이 당시 벌인 정치 공세 탓이라고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야당의 정치 공세만으로는 탄핵이 어렵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이 등장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 또한 논리적 비약이 아닐 수 없다. 통합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다고 해서 탄핵이 용이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탄핵 가능성은 거의 ‘제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총 299표 가운데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서도 찬성표가 많이 나온 결과다. 알다시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의결정족수는 전체의 3분의 2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이 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 정도로 탄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식의 논리는 근거가 박약하다. 설령 문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민주당 내부에서 반란표가 꽤 나오지 않고서는 성립하기가 어렵다.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현재 민주당의 친문 중심 당원 구성상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민주당 의원총회 당시에 전략위원회가 만든 투표 시뮬레이션 결과도 공개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역구에서 민주당 130석, 통합당 119석, 정의당 1석을 확보한다는 가정하에 ①현행 유지 ②민주당과 연합정당 모두 비례후보를 내는 방안 ③민주당은 비례후보를 내지 않고 연합정당만 비례후보를 내는 방안 ④정의당까지 연합정당에 참여하는 방안, 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이 합류해 비례연합정당을 창당할 경우 통합당(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 포함)의 의석수를 줄일 수 있는 최대치는 138석이다. 비례연합정당을 아예 창당하지 않을 경우에 통합당과 한국당 의석수는 145석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불과 7석 차이가 날 뿐이다. 당 전략위원회 시뮬레이션에서도 과반 의석 확보는 어렵다고 본 것인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통합당이 과반을 점할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는지 의문이다. 

    결국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이보다 더 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란 가정도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해서 통합당(한국당 포함)이 과반을 점할 것이고, 그러면 탄핵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물론 국민의당이 통합당에 가세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었을지는 모르겠다.

    이처럼 민주당 의원총회의 비례연합정당 창당 명분에는 논리적 허점이 많다. 지역구 선거에서 당 전략위원회 추정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지도 모른다. 통합당을 지지하는 보수 진영의 표심 일부가 국민의당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한국당 의석수가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이 정당득표를 더 많이 얻은 결과 그들 몫이 확연히 커질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은 모두 배제한 채, 민주당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비례연합정당 창당과 합류를 결정하고 말았다.

    “중도 표심 날아갈 위기감”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는 당내 인사들도 없지 않았다. 친문인 설훈 최고위원은 3월 9일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중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분명하다. 그동안 애써 잡아놓았던 중도층 표심을 흔들리게 만들면 전략상 옳지 않다.” 

    실리적으로 보더라도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다른 친문 김두관 의원도 3월 10일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비슷한 맥락의 문제 제기를 했다.
    “비례에서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의석을 지역구에서 얻는 게 더 중요하다…진영 논리가 첨예하기 때문에 중도 표심이 참 중요한데, 원칙을 어겼을 때 중도 표심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위기감이 든다.” 

    김영춘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서 명분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저쪽이 생각지도 못한 꼼수를 부렸다고 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들이 불리하다고 해서 그 꼼수를 따라 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민주당 정신에도 어긋난다.” 

    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국민이 심판하는 경기에서 꼼수를 비난하다가 그 꼼수에 대응하는 같은 꼼수를 쓴다면 과연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어려운 갈림길에 섰을 때 역사 속 인물들은 어떤 판단과 결단을 했을까”라고 SNS에 글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명분론과 현실론 양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명분에 맞지 않는 이유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단행한 선거제 개편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리에 맞지 않는 이유는 중도층의 이반과 진보층의 내부 분열로 격전지에서 오히려 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례연합정당을 창당할 때 민주당 입장에서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정당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이 빠지면 비례연합정당은 그저 민주당의 독자 비례정당일 뿐이다.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3월 8일 이런 내용의 특별결의문을 내놓았다. 

    “최근 미래한국당이라는 ‘괴물의 탄생’을 비판해 온 민주당이 비례용 위성정당 창당을 시도하고 있다. 원칙은 사라지고, 반칙에 반칙으로 맞서겠다는 집권 여당의 태도는 정당정치를 송두리째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의 의사를 왜곡시키고 유권자의 선택을 강요하는 행위는 미래통합당이 저지른 꼼수에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다…정의당은 어떤 경우라도 ‘비례대표용 선거연합정당’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변화의 열망을 억누르고 가두는 졸속정치에 가담할 생각이 없다.”

    상대가 반칙하면 우리도 반칙해야 한다?

    이런 모든 지적에 앞서 끝내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 하나는 이것이다. 이것이 ‘노무현 정신’인가? 노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꿈꿨다. 상대방이 반칙한다고 나도 반칙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진 않았다. 국민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이유도, 시작이 미미했던 열린우리당을 밀어준 이유도 그런 점을 높이 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신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이제 상대 정당이 반칙하니 우리도 반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을 창당해 원하는 만큼의 의석수를 확보했다고 치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독수독과(毒樹毒果), 독이 든 나무의 독이 든 열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당장은 달지 모르지만 뒷맛이 쓸 수밖에 없는 열매다. 쓴맛이 들기 전에 계속 입에 욱여넣어야 하는 중독성 강한 열매다. 그래서 다음 총선 때도 그다음 총선 때도 억지 논리를 내걸어 새로운 비례정당을 창당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당신들을 민주화운동의 배신자로 처단합니다”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제발 앞으로 86운동권들은 노무현 정신이나 민주화라는 단어를 글로 쓰거나 입에 올리지 않길 바란다. 이번 결정으로 당신들도 이제 ‘적폐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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