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의 대구·경북 출현 우려
10만 명당 확진자 많은 충남권도 주목해야
文 정부 낙관론 탓에 코로나19 창궐
‘불확실성’ 안 보여 더 불안한 정부 메시지
文 대통령의 섣부른 ‘종식 선언’
“박능후 장관 발언, 의학적 근거 없어”
“코로나19 사망, 피할 수 있던 죽음”
“文 정부 대변 ‘스피커’ 교수 몇 명 얘기만 경청”
[지호영 기자]
이에 최 교수는 2000년대 중반 국내 의학계에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을 소개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 및 전문가 집단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그런 그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커뮤니케이션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최 교수는 “근거 없는 낙관론은 독”이라면서 “차라리 정부가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낫다. 투명한 메시지 전달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최근 최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과학검증위원장으로 의협의 코로나19 관련 대정부·국민 메시지를 검토하고 있다. 3월 3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정부 공중보건 대국민 소통 ‘낙제점’
- 공중보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현재 정부의 대응을 평가해 달라.“지금 정부의 메시지에는 불확실성이 안 보인다. 정부 발표가 뚜렷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저 막연하게 ‘정부를 믿어달라’거나 심지어 ‘이때쯤이면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며 기한까지 언급한다. 이미 코로나19 관련해 정부의 언명은 여러 차례 현실과 괴리를 보였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나.”
- 정부가 무지·무능을 자인하란 말인가.
“불확실성을 극복하고자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국민과 공유하라는 것이다. 감염병 확산을 예로 들자면, 정부가 전파 경로와 증상·위험성 등 질병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짚어줄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근거 없는 낙관론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부 관계자가 무심코 내뱉는 낙관적 전망에는 적잖은 후과(後果)가 뒤따른다. 감염병 창궐처럼 변수가 많은 위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특히 함부로 구체적 기한을 언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좌절된 희망은 더 큰 불안과 불신을 낳는다.”
- 자칫 국민의 불안감이 커질까 걱정되는데.
“싱가포르의 사례를 살펴보자. 2월 8일 리센룽(李顯龍) 총리가 대국민 영상 담화에 나섰다. 놀랍게도 싱가포르에서 코로나19가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인하는 내용이 담화의 뼈대를 이뤘다. 싱가포르 당국이 ‘더는 확산을 막기 어렵다’고 나선 이유는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가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국민이 느끼는 불안이 당연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부와 의료진을 신뢰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 정부와 달리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교과서와 같은 대응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중국 국적 여성)가 나왔다. 1월 말~2월 초까지 코로나19 국내 확진자는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2월 3주차에 접어들자 정부·여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았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2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침체된 소비심리로 고생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을 위로하겠다는 취지였다. 현장에서 문 대통령은 “그렇게 공포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방문한 것”이라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상인들도 위축감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문 대통령은 대한상공회의소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경제대응’ 간담회에서 “국내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상황은 문 대통령의 희망처럼 풀리지 않았다. 2월 18일 대구에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신자인 31번 확진자가 확인됐다. 2월 20일 하루 만에 신규 확진자 36명이 발생했다(대구·경북 35명, 서울 1명). 이때를 기점 삼아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文 ‘종식 선언’ 이후 확진자 급증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2일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손님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물론 민심을 다독이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당연하다. 국민의 고통에 공감을 표하는 것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얼마 안 돼 오히려 코로나19는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 대통령이 보고받은 내용이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 본인이나 보좌진이 현상을 잘못 파악한 셈이다. 설령 당시로서 합리적 판단이었다고 해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잘못된 발언이었다.”
- 이제 정부도 견해 표명에 신중해 보인다.
“일견 그렇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론에 데었다고 해서 정부의 견해 표명이 지나치게 느려지면 안 된다. 메시지 전달에서 신속성과 정확성 모두 중요한 가치다. 다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신속성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당장 모든 것을 파악하겠나. 당국이 무엇을 파악했고, 반면 무엇이 불확실한지 그때그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정보가 투명하고 빠르게 공개되지 않으면 유언비어가 득세한다.
신중함이 책임 회피로 이어져도 곤란하다. 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에 공감을 표해야 한다. 이는 감염병뿐 아니라 의료 행위의 일반 원칙이기도 하다. 환자의 아픔을 대하는 의사의 태도에 따라 진료의 질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방역 주무부처 장관이 감염병 확산 책임을 자국민에게 돌리는 듯한 태도가 공분을 일으켰다. 야권은 박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최 교수는 박 장관의 발언이 “의학적 근거가 없어 보인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공중보건학적 측면에서 매우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 2월 20일을 전후해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기 전, 30명대이던 확진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귀국한 한국인이기는 했다. 그러나 정부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됐는데도 재빨리 중국발(發)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월 4주차까지 코로나19가 국내 지역사회 전파 단계에 이르렀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감염 경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초기에 중국에서 돌아온 내국인 확진자가 중국인 확진자에 비해 많다고 ‘한국인이 원인’이라는 것은 통계적 착시에 빠진 것이다. 코로나19는 중국에서 발원해 국내로 유입된 신종 감염병이다. 박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이 매우 유감스럽다.”
중국 당국의 ‘물타기’
- 중국에서도 코로나19 발원지가 자국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중국 당국의 ‘물타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본래 감염병의 감염 경로는 불명확하다. 일단 2차 감염이 시작되면 확진자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2002년 사스 때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당초 사스는 베트남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최초 발원지는 중국이었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바이러스가 유입돼 환자가 발생하자 그제야 국제사회에 사스가 알려진 것이다. 중국 당국이 바이러스 전파 사실을 숨긴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첫 번째 환자를 못 찾을 확률이 없지 않다. 이런 불확실성을 빌미로 중국이 자국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 문 정부는 왜 이런 태도를 보이나.
“처음에는 그저 정부가 안이한 탓이라 생각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도 정부의 대국민 메시지가 다듬어지지 않아 많은 혼선이 있었다. 그런데 2월 들어서도 바뀌지 않은 태도를 보고 뭔가 의도가 있지 않나 싶었다. 정부가 중국과 마찰을 우려해 정치적 목적으로 입국자를 차단하지 않았다고 본다. 의협이 의료계를 대표해 수차례 중국발 입국자를 통제하자고 권고했으나 무시당했다. 방역에 관한 기술적·지엽적 자문만 구할 뿐 공식적인 협조 요청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의협의 여러 차례 권고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스피커’라 할 만한 교수 몇 명의 얘기만 경청했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1월 26일부터 2월 24일까지 일곱 차례에 거쳐 대정부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발 입국자를 제한하자는 것이 뼈대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는 2월 4일 실시한 ‘특별입국절차’ 이후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다. 특별입국절차에 따라 중국·일본·이탈리아·이란 등지에서 온 입국자의 발열 여부를 검사한다. 하지만 입국 금지 조치는 2주 이내에 후베이성에 머문 사람에 국한된다.
여론은 어떨까. 2월 28일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6%가 중국인과 중국 경유 외국인의 ‘입국 전면 금지’에 찬성했다. ‘현행 유지’는 40.9%였다.
- 중국발 ‘입국 전면 금지’에 반대 여론도 있다.
“얼핏 보면 그럴싸한 논리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인을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협이 정부에 입국 제한을 권고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토론과 고민을 거쳤겠나. 환자를 차별 없이 대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것은 의료인의 기본 덕목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는 결단이 불가피하다. 그렇기에 일선 의료 현장에서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환자를 통제하고 감염 의심자를 격리하는 것이다. 중국발 입국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입국을 통제하지 않는다? 그런 식이면 선별진료소도 모두 없애고 모든 환자를 ‘평등하게’ 받아들이자는 건가?”
‘제2·3의 대구·경북’ 출현 우려
[지호영 기자]
“문제는 일부 의료인들조차 이런 논리에 혹해 부화뇌동했다는 것이다. 마치 선제적 방역조치가 반(反)인권적 발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부 의료인들이 방역과 관련해 ‘정치·경제적 변수’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도 깜짝 놀랐다. 의료인이라면 철저히 공중보건 차원에서만 판단하고 발언해야 한다. 의대생조차 알 상식의 문제인데….”
여기서 최 교수는 “이미 감염원 차단에 실패했다. 수차례 중국발 입국금지 권고에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라며 “이제 의료계는 대구·경북의 코로나19 확산을 진정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큰 문제는 제2·3의 대구·경북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대구·경북 방역의 초점이 신천지발 감염자 추적으로 모인다.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 과도한 듯하다. 여러 사람이 밀폐된 실내에 모이는 신천지의 예배 방식도 분명 집단 감염의 원인이다. 그런데 그런 환경 요인은 비단 신천지뿐 아니라 다른 종교는 물론 일반 공중시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신천지발 감염은 지금까지 추적으로 상당부분 윤곽이 드러났다. 그런데 교인 20만여 명을 전수조사 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현재 가용한 방역 인력을 고려하면 무리한 주장이다. 차라리 대구·경북 내 비(非)신천지 발병자 및 접촉자를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여력이 있다면 그 외 지역에 잠복된 전파 양상을 확인할 필요도 있다.”
- 또 어느 지역에서 대규모 확산이 우려되나.
“서울 등 수도권은 국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산다. 국내 체류 중국인 숫자도 가장 많다. 상식적으로 아직 확인되지 않았을 뿐, 코로나19는 수도권에 가장 많이 퍼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처럼 조명이 덜 된 지역의 증가세에도 주목해야 한다. 가령 충남(5.42명)은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 숫자로 보면 대구(247.53명)와 경북(43.46명)보다는 낮지만 타 시·도에 비해 높다. 감염 경로가 묘연한 경우도 있어 적잖이 우려스럽다(이상 3월 15일 0시 기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한국이라는 밭에 심어진 고구마에 비유해 보자. 지금 밭 여기저기 고구마가 많지만 겉으론 안 보인다. 그런데 정부는 넓은 밭에서 대구·경북 지역과 신천지 교단이라는 줄기만 잡고 늘어지고 있다. 숨어 있는 더 많은 고구마 줄기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 자칫 다른 지역에서도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다.”
“병원도 못 가보고 집에서 숨지다니…”
최 교수는 인터뷰 동안 이따금 분을 삭이지 못해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지금 대구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병원조차 못 가보고 집에서 말이다.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의료인으로서 정말 속상하고 분통이 터진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을 ‘회피가능 사망(avoidable death)’이라고 규정했다. 적절한 공공보건정책으로 예방가능(preventable)하거나 치료가능(amenable)한 죽음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다. “독감도 한 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이렇다 할 발원지나 원인이 없다. 발원지 차단 등으로 막을 수 있었던 코로나19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런 희망을 품을 단계가 아니다. 정부의 섣부른 낙관, 상황 악화의 악순환이 지속되면 고통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