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준 前국립보건연구원장의 복지부 작심 비판
전문성 무시 정치권·복지부가 질본 망쳐
비전문가 관료들이 감염병 대응 센터장 꿰차
질본 본부장이 직접 브리핑하는 코미디 상황
질본은 복지부 인사적체 해소 자리…廳 승격하면 뭐하나
정부 내 질본 위상? “별 볼일 없는 조직”
교민에게 방 배정해 주러 출동한 바이러스 전문가들
계약직 역학조사관, 3년 뒤 질본 떠나
사이언티스트 없이는 감염병과의 전쟁 못 이긴다
[지호영 기자]
박도준(60)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은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보면 답답한 점이 많다. 새로운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철저히 과학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데 정치 및 행정 논리가 앞서는 듯해 안타깝다”며 입을 열었다.
“과학보다 정치 앞세우면 안 돼”
박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을 거쳐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연구원, 하버드대 조슬린 당뇨병센터 연구원, 서울의대 대학원 분자유전체 전공 주임교수 등을 거쳐 2016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국립보건연구원(보건연구원) 원장으로 일했다. 보건연구원은 질병관리본부(질본) 산하기관이다. 질본이 감염병과 만성병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정책 및 현장 매뉴얼을 개발한다면, 보건연구원은 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도출함으로써 질본을 뒷받침한다. 3월 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박 교수와 마주 앉았다.-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대응 가운데 뭐가 문제인가.
“초기에는 잘한다고 봤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2월 중순경 확진자 수 증가세가 주춤해지자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를 믿고 일상생활로 복귀해 달라’고 하지 않았나. 돌이켜보면 너무 성급한 발언이었다.”
-왜 그랬다고 보나.
“잘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시 메시지에 과학이나 의학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치적 발언이었을 뿐이다.”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의사다. 의학적 고려가 없었을까.
“서울대 의대에서 이 실장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의대를 졸업했을 뿐 환자를 진료한 적이 없다. 의료 제도나 의료 정책을 연구하는 의료관리학 전공자다. 이 실장이 지금 같은 전시 상황에서 코로나19 방역 체계에 관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실력과 경험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현재 청와대에는 사실상 의료 전문가가 없다고 봐야 한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뚜렷한 근거 없이 코로나19 관련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데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코로나19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발언한 것이 한 사례다. 박 교수는 이 발언을 비판하며 “잘못한 거다. 신중하지 못했다. 중국이 ‘봐라, 한국 복지부 장관이 이렇게 말했다’며 정치적으로 이용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게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정부 내 질본 위상? “별 볼일 없는 조직”
감염병 컨트롤타워 혼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27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급 참모들과 오찬을 하면서 “설 연휴 기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코로나19)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며 전체 상황을 지휘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틀 후인 29일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는 “질병관리본부(질본)가 현장 방역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말이 엇갈린 데 대해 박 교수는 “감염병 컨트롤타워는 질본이 맡아야 한다”며 “청와대는 세부 대응 방안을 직접 지시할 게 아니라 질본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현재 청와대가 질본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다고 보나.
“질본 의견이 청와대에 제대로 전달조차 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정은경 질본 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금까지 코로나19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아직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수시로 정반대 메시지가 나온다. 한창 논란이 됐던 중국인 입국 금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질본 의견을 청와대가 묵살했을지 모른다.”
이와 관련, 정 본부장은 2월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방역하는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며 입국 제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2월 4일에도 “위험 지역 입국자 규모를 줄이면 안전하다는 방역의 기본 원칙이 있다”고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질본 본부장이 차관급이라지만 정부 내 위상은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수준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후속 조치로 조직이 강화되기는 했다. 본부장 직급을 고위공무원 가급(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했다. 규모도 기존 7센터 41과에서 8센터 44과로 확대했다. 하지만 정작 방역조치 권한은 별것 없다. 전국 보건소는 각 지방자치단체 소속이고, 방역 업무 또한 해당 지자체에서 관할한다. 질본 본부장 명령은 질본 안에서만 통할 뿐 바깥에선 아무 효력이 없다.”
“질본이 복지부 인사적체 해소 수단인가”
박 교수는 이 대목에서 미국의 질본 격인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CDC)에 대해 소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CDC는 철저하게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감염병 발생 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CDC가 움직이면 지방 행정조직이 일제히 따른다. 강제집행 명령권이 있어서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도 CDC 모델을 참고해 질본을 재편해야 한다”며 이렇게 부연했다.“감염병이 발생하면 전문가로 구성된 질본이 컨트롤타워를 맡고 지자체, 보건소, 공공병원, 대학병원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감염 환자를 진료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감염병 위기에 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나.
“더불어 질본 본부장 인사권도 보장해야 한다. 현재 본부장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은 6급 이하 직원뿐이다. 5급 이상 센터장(국장급), 과장 등 간부 인사는 복지부 장·차관이 한다.”
-본부장 인사권이 왜 중요한가.
“현재 복지부가 질본을 내부 인사 적체 해소 수단 정도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질본의 국장급(고위공무원단 나급) 보직 5개 중 3개를 복지부에서 온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다. 질본 내 44개 과의 수장도 절반가량이 행정직 공무원이다. 여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질본을 ‘청(廳)’으로 승격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질본 조직을 키우고 6개 권역에 지역본부를 신설하면 복지부 관료를 내리꽂을 수 있는 보직만 늘어날 뿐이다.”
박 교수는 보건연구원장 재직 시절 직접 겪은 일을 하나 소개했다.
“보건연구원에는 국장급 보직이 3개 있다. 감염병연구센터장, 생명의학과학센터장, 유전체센터장 등이다. 2018년 12월 어느 금요일, 복지부가 청와대 행정관 출신 공무원을 감염병연구센터장으로 인사 발령 냈다.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였다. 내가 반발할 걸 예상했는지, 정작 보건연구원장인 나를 건너뛰고 질본 본부장한테만 인사 사실을 통보했더라.”
교민들 방 배정해 준 바이러스 전문가들
-그래서 가만히 있었나.“아니다. 당시 원장 임기가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았던 상황이라 복지부에 강력히 따졌다. 이후 보건연구원장에서 물러난 뒤 박능후 장관이 보자며 연락해 왔다. 그날 박 장관을 만나 인사에 관한 두 가지 의견을 전했다. 첫째는 보건연구원 센터장에 최고 전문가를 모실 수 있도록 외부는 물론 내부 직원도 지원할 길을 열어달라, 둘째는 질본에서도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내부 승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박 장관 반응은 어땠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질본 센터장 한 명이 일을 그만두자 그 자리에 의사 출신 공무원을 임명했다. 이제야 인사가 제대로 이뤄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2019년 9월 인사 때 복지부 공무원이 질본 긴급상황센터장과 감염병관리센터장을 꿰차는 것 아닌가. 이미 나는 보건연구원장직을 그만뒀을 때다. 황당했다.”
-행정 공무원이 질본, 보건연구원의 요직에 앉는 게 왜 문제인가.
“감염병 관리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비전문가가 맡아 하기 어렵다. 감염병이 발생하면 질본 역학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해 검역조사 또는 역학조사를 진행한다. 긴급상황센터장과 감염병관리센터장은 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센터장이 전문성이 없으면 언제 어떻게 역학조사관을 투입할지, 1분1초를 다투는 긴급 상황에서 어떤 순서로 방역 조치를 할지 직접 판단하고 지시할 수 없다. 이 자리에 행정직 공무원을 보내는 게 합당한가.
질본과 보건연구원에도 정무 감각이나 행정 능력이 필요한 자리가 있다. 질본 기획조정부가 대표적이다. 그런 곳에 공무원 출신을 보내면 된다. 대신 나머지 주요 센터장과 과장 자리는 전문가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감염병 유행은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비전문가가 센터장을 맡고 있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보건연구원 관계자한테 들은 얘기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 우한(武漢)에서 들어온 우리 교민들이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수용됐다. 복지부에서 보건연구원 바이러스 전문가들을 그곳으로 보냈다. 신종플루부터 메르스까지 각종 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해 온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에게 복지부가 내린 업무 지시가 뭔지 아나? 교민들 머무를 방을 배정하는 등 행정 업무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사영양과장을 뇌질환과장으로 전보
충북 청주시 오송읍 국립보건연구원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실험하는 모습. [뉴시스]
“전문가 조직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질본, 보건연구원 과장들은 보통 한 부서에 10년씩 근무했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반면 일반 공무원은 1~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지 않나. 내가 보건연구원장으로 부임하기 전인 2010년대 중반, 복지부에서 내려온 모 질본 본부장이 일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순환보직 시스템을 질본, 보건연구원에 도입했다. 수십 년간 대사와 영양을 연구해 온 전문가를 뇌질환과장으로 전보했다. 반대로 뇌질환과장을 대사영양질환과장(현재 내분비대사질환과)으로 보냈다. 평생을 감염병 매개체 연구에 천착해 온 과장을 바이러스질환과장으로 보낸 일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과장들이 부서를 옮겼다. 한 부서에 오래 있으면 조직을 장악하게 돼 안 좋다는 논리인데, 이건 20년간 안과에서 근무한 의사한테 내일부터 이비인후과에서 일하라고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박 교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연구기관의 특수성을 모르는 공무원이 조직에 미친 악영향을 설명하면서다.
“보건연구원은 중장기 연구과제가 많다. 전임 원장이 있던 시절, 고위직 공무원 한 명이 찾아와 “장기 연구를 많이 하면 분위기가 느슨해질 수 있으니 연구 기간을 1년 단위로 끊어 진행하라”고 했다더라. ‘정권 바뀌기 전에 결과가 나와야 하니 단기 연구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라’는 얘기였다. 이런 분위기가 조직에 팽배했을 때 내가 보건연구원장으로 갔다. 젊고 실력 있는 의사 등 전문가들이 점차 의욕을 잃어갔다.”
-보건연구원 설립 당시엔 세계 최대 규모 생명·의학 분야 연구소인 미국 NIH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안타깝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보건연구원은 대학처럼 자유롭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연구 인프라도 좋았다. 혈액 샘플이 800만 개 넘게 있고, 대형 액체질소 보관탱크도 500개나 됐다. 보건연구원을 방문한 미국 NIH 디렉터이자 세계적인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가 한국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나도 서울대 교수가 된 뒤 보건연구원 연구직으로 올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받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연구자들이 한 번쯤 몸담고 싶어 할 만한 연구소였다.”
관료주의가 질본과 보건연구원 망쳐
-그런데 행정 관료들이 고위직을 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긴가.“그렇다. 하드웨어를 잘 만들어놓고 전문가가 전문성을 발휘할 시스템을 못 만들었다. 일례로 실험하다 보면 갑자기 시약이나 실험 동물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런데 입찰 시스템을 통해 시약을 구매하게 되면 도착하기까지 3개월 넘게 걸리는 거다. 이러면 학술지 논문 제출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차질이 생긴다. 담당 부서 공무원한테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부족해질 걸 예상해 미리 신청하면 되지 않나’라며 ‘매달 필요량을 보고하라’고 하더라. 황당했다. 실험하다 보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고 실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시약을 더 사용하기도 하는데 공무원은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이후 정은경 본부장이 복지부 감사관실을 설득해 연구비카드 제도가 도입됐고, 지금은 1~2일 만에 시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됐지만 이 제도가 매우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걸로 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연구원 분위기가 점점 나빠졌다. 실패 확률이 낮은 연구가 아니면 시도하지 않는 기류가 형성됐다. 관료주의가 질본과 보건연구원을 망친 셈이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내 보건연구원장 임기가 2019년 4월까지였다. 이후 13개월간 보건연구원장 자리가 공석이었다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2월 21일, 정부가 신임 원장에 권준욱 복지부 대변인(의사)을 임명했다. 감염병 연구와 백신 개발을 하는 중요한 연구기관의 수장을 1년 넘게 비워둔 것만 봐도 복지부가 보건연구원을 어떻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박 교수는 감염병 대응의 중심에 있는 질본 역학조사관 처우 문제도 지적했다. 질본이 전문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한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질본 역학조사관들은 계약직 공무원이다. 처음 들어올 때 3년 계약을 하고 2년 연장한 뒤 보장되는 게 없다. 이후 몇 년 간격으로 계속 재계약하며 일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감염병 연구에 전념하며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질본에 들어왔다가 불안정한 환경에 지쳐 떠나고 만다. 연구 역량이 뛰어난 젊은 인재가 대학이나 다른 연구기관으로 옮겨가는 건 국가적 관점에서 볼 때 큰 손해다.”
질본 본부장 보좌할 스태프가 없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3월 1일 코로나19 관련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 본부장이 많이 고생하는 걸 안다. 하지만 상황 자체를 놓고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감염병 위기 전체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할 본부장이 하루 몇 시간씩 정례 브리핑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정상적인가. 원래 브리핑은 긴급상황센터장이나 감염병관리센터장 등이 하는 게 맞다. 문제는 그분들이 감염병에 문외한이나 다름없어 브리핑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정 본부장이 혼자 고군분투한다.”
-보건연구원장 시절 정 본부장을 가까이서 봤을 텐데 그의 역량을 평가한다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우리나라 최고 방역 전문가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성실하고 꼼꼼하다. 차관급은 보통 2년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는 올해로 본부장을 맡은 지 3년이 됐다. 대체할 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방증 아니겠나.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감염 분야에 정통한 예방의학 전문가가 별로 없다.”
-누리꾼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는 정 본부장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가 화제다.
“저렇게 무리하다 과로로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된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정 본부장이 쓰러지면 방역 업무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본부장을 보좌할 스태프를 충원해야 한다. 본부장은 방역 대책 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과 여유를 줘야 할 때다. 계속 이대로 가는 건 무리다.”
그가 이어 말했다.
“정 본부장이 대학(서울대 의대) 5년 후배다. 그의 남편과도 잘 알고 지낸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뒤 정신없이 바쁜 사람한테 직접 연락하면 부담을 느낄까 봐 남편한테 안부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도 정 본부장을 잘 못 보는 모양이더라.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기를 보면 새벽 2시쯤 아내가 보낸 ‘잘 있다’는 문자가 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몸 바쳐 일하고 있는 정 본부장에 대한 걱정이 커 보였다. 그를 비롯한 질본 내 전문가들이 사태 수습 후 공(功)을 인정받기는커녕 과(過)에 대한 책임을 떠맡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질본, 관료 말고 사이언티스트가 중심 돼야”
메르스 사태가 끝난 후 감사원은 복지부와 질본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다. 이때 양병국 당시 질본 본부장 등 9명이 메르스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중징계 권고를 받았다. 긴급상황센터장을 맡았던 정 본부장도 정직 처분(이후 감봉 조치로 변경) 대상에 올랐다. 반면 문형표 당시 복지부 장관은 이미 장관직에서 사퇴했다는 점 등의 이유로 징계를 받지 않았다.박 교수는 “이 징계는 내가 보건연구원장으로 취임하던 2016년 4월 전후로 이뤄졌다. 대상자 중 일부 전문가가 질본을 떠났다”고 회상했다.
“메르스 사태 때 의사면허를 가진 질본 직원들은 자기 업무가 아니어도 자원해 방역 업무를 도왔던 걸로 안다. 그 결과가 징계로 돌아오자 조직 내에 ‘괜히 나서지 말자’는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사명감을 갖고 감염병 대응에 몸을 던지겠나.”
박 교수가 한 얘기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과학, 연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복지부 예산이 82조 원이 넘는데, 그중 연구개발(R&D) 분야에 배정된 돈은 7000억 원이 채 안 된다. 복지부에는 한 해 예산을 2조~3조 원씩 쓰는 부서가 허다하다. 반면 R&D는 뒤로 밀린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 정부 들어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 이 정부엔 사이언티스트가 없지 않은가. 운동권 세력이 과학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까 싶다.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철저히 과학적 시각에서 대응해야 한다. 정치적 관점을 버리고 전문가들이 정부 조직 안에서 비교적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판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고 관련 투자도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