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아닌 진실 얘기해야 버틸 수 있다
선거를 의식했다니 아이고 참….
장기전 시작되는데 벌써 지쳐가는 느낌
지금은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 필요한 때
2차 대응 성공은 국민과 헌신적 의료진들 덕
‘허드 이뮤니티(hud immunity)’, 백신 기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시스]
안 대표는 3월 1일부터 보름간 부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진료 거점병원인 대구동산병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 뒤 현재 자가 격리 중이다.
앞서 안 대표는 신동아 4월호를 통해 ‘전시 상황’인 대구의 코로나19 방역 활동과 환자들의 상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처음 심경을 밝혔다(‘신동아’ 4월호 [단독인터뷰] 안철수 “소설보다 더 끔찍한 현실, 어떻게 이런 일이…” 제하 기사 참조). 출고 당일에만 140만 명 이상이 기사를 봤다. 뉴스 댓글창에는 1만50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은 뜨거웠다.
-인터뷰 기사 댓글에 응원의 글이 많이 달렸다. 선거를 의식해 인터뷰 한 게 아니냐는 댓글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합심을 해서 앞서나가는데 우리는 반으로 나뉘어 싸우기만 하고 바깥은 안 보는 거 같다. 우리 경쟁 상대는 세계 아닌가. 선거를 의식했다니 아이고 참…. 다만 기사와 댓글을 보니 이번에 위기를 맞으면서 다시 마음이 모아지는 느낌도 받았다.”
-마음이 모아지는 느낌이라면….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겪다보니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민들이 합심해서 극복하는 계기가 되는 거 같다. 그동안 흩어져서 서로 쳐다보면서 싸우기만 하다가 이제 헌신, 봉사, 공동체라는 단어들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기사 댓글에서도 ‘싸우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보자’는 글도 많더라. 다만 걱정되는 건 이제 장기전이 시작되는데 국민들은 지쳐가는 거 같다는 점이다.”
매르켈 총리 담화문을 번역한 이유
-지금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방역 원칙은 딱 하나다.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희망이 아니라 진실을 얘기해야 버틸 수 있다. 메르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렇게 전사회적 협력과 도움이 필요한 적은 없었다’며 치료법과 백신 연구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물리적인 거리 두기 등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코로나19가 퍼지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면 감염 환자를 치료할 시간과 백신을 완성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진정어리고 현실적인 호소였다.”
안 대표는 최근 메르켈 총리 담화문을 직접 번역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독일 병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환자가 발생한 탓도 있는 거 같은데.
“그렇다. 그래서 감염 확산 속도를 늦추자는 거다. 대거 감염이 돼 갑자기 환자들이 몰리면 병실과 의료진 부족 등으로 치료를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메르켈 총리는 또한 의료진과 보건 업무 담당자들, 계산대에서 일하는 분 등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식료품도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강조했다. 최대 위기상황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얘기하고, 이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으니 참아달라고 말한 거다.”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버티자는 건데….
“백신도 백신이지만, 전 국민의 60%가 항체를 가지고 있으면 ‘허드 이뮤니티’(hud immunity‧집단 면역)가 생겨 확산속도는 굉장히 더뎌진다. 전체 국민을 보호하는 집단 면역 개념이다. 감염된 환자들이 치료와 회복 과정에서 항체가 생기든지, 백신 접종으로 항체가 생기든지 두 가지 중 하나에 의해 집단 면역이 형성된다. 어떻게든 감염속도를 늦추는 게 중요한 이유다.”
-무척 현실적으로 들린다. 장기전을 대비해야하는 현실적인 이유 말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8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미국 스톡데일 장군은 힘든 포로수용소 생활을 견뎌 살아남은 병사들은 낙관주의자가 아닌 현실주의자였다고 했다. 그는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8년을 버텨 고향 땅을 밟았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낙관주의 병사들은 활달한 성격에 주위 사람들 기분을 북돋워주는 분위기 메이커였고, ‘곧 고향으로 갈 수 있을 거야’라며 낙관했다. 그런데 희망이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반면 ‘상당 기간 고향에 가기는 힘든 게 현실’이라고 생각한 현실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오랜 수용소 포로 생활을 이겨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국 모델과 중국 모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 위기 상황에선 근거 없는 낙관주의보다는 냉철한 현실주의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여러 국가적 문제에서도 과학적 사고, 문제 해결방법, 사실에 근거한 의사결정이 중요한데, 옛날 방식의 정치인과 정부는 이런 데 익숙하지 않다. 먼 훗날이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는 열정,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3월 2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감염 우려가 큰 종교시설 등에서의 ‘사회적 격리’를 강조했다.
“확진자를 파악해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감시하면서 확산을 막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방역 단계다. 그 시기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바꾸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망자들을 최소화하는 단계가 된다. 이 시기는 국민 개개인과 의료인들의 몫이다. 사실 우리가 처음 정부 방역단계에서 대응을 잘못한 건 인정해야 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확진자수가 많은 건 그 때문이다. 대만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확진자는 200명 안쪽이다. 물론 방어벽이 뚫려 확진자가 늘 수 있지만 그만큼 시간을 벌었다.”
-다른 나라 확진자수가 급증해 상대적으로 우리가 대처를 잘했다는 이들도 있다. 외신이 한국의 대응을 주목한다는 보도도 있었고….
“그래서는 또 교훈을 얻지 못한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초기 방역이 뚫린 건 정부가 대응을 잘못한 거다. 그리고 외신 보도도 그렇다. 한국과 중국은 초기 확진자가 많았지만 이제는 상대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 처지에선 지역사회를 강압적으로 봉쇄한 중국 모델과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를 통해 관리하는 한국 모델 중 어디를 주목하겠는가. 현재 우리의 대처도 확산 방지에 적극 협조하는 시민들과 헌신적인 의료인들이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한편 안 대표는 앞선 신동아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본 의료물품 수급 상황과 의사로서 초기 정부 대응에 대해선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해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과 이 댓글을 지적하는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냥 좋은 일 하셨으면 조용히 계시지”(‘생활의 욕심’님) “그럼 어떡하니. 대안을 내놔봐. 그런 비판은 나도 해”(‘여우같은걸’님) 등의 비판에 “목숨 걸고 진료하신 분에 예의가 아니라 봅니다”(‘꼬마곰’님) “잘한 것은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못한 것은 못한다고 비판해야지 않겠습니까? 오늘 기사 내용대로라면 틀린 말이 없는 것 같은데요”(‘코로수케’님) “이 기사를 보고 공감 안 되면 무작정 (안)철수를 싫어하는 패거리 정치를 따라다니는 자들일 게다”(‘paro’님) 등의 댓글이 달렸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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