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당선자 예측 여론조사 실효성 없다

총선 지역구 여론조사의 한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20-04-09 0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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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선 불복, 여론조사 왜곡 문제 제기 잇따라

    • ARS 경선은 민주주의 왜곡, 투표로 후보 뽑아야

    • 가상번호 기반 조사 12일 걸리고, 고비용으로 기피

    • 컷오프 대상자들 여론조사 안 하고 感으로 지역구 고르기도

    • 응답률 높이려면 정책이나 민심 관련 이슈 조사해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시작된 4월 2일 서울 은평구을 지역구 거리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시작된 4월 2일 서울 은평구을 지역구 거리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여론조사의 신뢰도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20대 총선 때보다 개선된 선거제도가 도입됐지만, 신뢰도 등에서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여론조사에 기초한 여야 각 당의 경선에서 불복 사례가 속출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투표는 ARS(자동응답시스템)로 진행됐는데, 당원 50%, 일반 유권자 50%의 응답을 합산했다. 경선에서 진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성북구갑)은 2월 24~26일 실시된 경선의 ARS 투표 과정에서 부정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발견됐다며 3월 5일 서울 남부지법에 증거보전신청서를 제출했다. 유 의원은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 경선 여론조사업체가 공천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여론조사업체는 유 의원에 대해 맞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 18개 지역구 가운데 6곳에서 경선에서 진 예비후보들이 당의 결정에 불복하고 재심을 요구했다. ARS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이 결국 세몰이와 당원 끌어모으기에 달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일반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서울 중구 성동구갑에 출마를 결심한 강효상 미래통합당 의원(비례대표)은 3월 10일 ‘3자경선결정’에 불복하며 “여의도연구원 등에서 특정인을 염두에 둔 여론조사를 실시하느라 (경선 결정이) 늦어진 것은 아닌지 답해 달라”며 재심을 요구했다. 


    경선 불복, 여론조사 왜곡 문제 제기 잇따라

    이처럼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의심받는 것은 무엇보다 조사기관에 따라 표본 선정과 응답률, 조사기간, 질문방식 등에서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용 여론조사의 경우 지역구에서 우세한 후보를 가리기 위한 것인데, 과거의 많은 여론조사는 광역 단위 조사에 기초해 지역구 전반의 민심을 알 수 있는 여론조사가 되지 못했다. 



    20대 총선 당시의 예측 여론조사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총선 사흘 전 여론조사 기관들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157~175석, 더불어민주당이 83~100석, 국민의당이 25~32석, 정의당이 3~8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나왔다. 지역구에서도 예측 오류가 속출했다. 서울 종로에서 오세훈 후보가 정세균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설 것으로 예측됐으나, 실제로는 정세균 후보(52.6%)가 오세훈 후보(39.7%)를 크게 앞섰다. 서울 노원병·용산·영등포을, 대구 동갑 등도 여론조사와는 크게 다른 결과가 나왔다. 

    김춘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당시 여론조사 예측 실패의 원인을 △무분별한 ARS △불완전한 표본 △저비용 구조라고 꼽았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여론조사 심의기준 강화, ARS 조사 규범 준수, 안심번호(휴대전화 가상번호) 이용, 심층 태도 조사 추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21대 총선에선 여론조사 심의기준 강화, 휴대전화 가상번호 도입 등이 이뤄졌다. 

    현재 공표·보도된 여론조사를 심의하는 곳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다. 여심위는 21대 총선과 관련한 여론조사 가운데 29건에 대해 심의기준 위반으로 고발(8건) 경고(7건) 수사의뢰(1건) 과태료(1건) 준수촉구(12건) 등의 조치를 했다. 비공표·비보도용 여론조사 결과 공표, 거짓 응답 유도, 피조사자 대표성 부족 등이 이유였다. 지난해 11월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한 ‘내년 총선 현역 의원 유지·교체 의향’과 관련된 조사에 대해선 신뢰성과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며 과태료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여론조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인구통계 가중치도 강화됐다. 성·연령·지역 3개 변수에 대해 표본이 덜 조사된 곳엔 가중치를 더하고, 더 조사된 계층의 의견에는 가중치를 빼는 방식이다. 가중치 배율 범위는 0.5~2.0에서 0.7~1.5로 바뀌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한 선거여론조사는 공표·보도할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 제한도 엄격해졌다. 선거일 60일 전부터는 입후보 예정자와 후보자, 정당 등의 명의로 선거 관련 공표용 여론조사가 불가능하다. 다만 당내 후보자 경선을 위한 조사와 언론사의 조사는 가능하다. 그리고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 투표 마감까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는 ‘깜깜이’ 기간이다.

    가상번호 기반 조사 12일 걸리고, 고비용으로 기피

    서울 성북갑 경선에서 탈락한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선부정의혹 진상규명 및 재경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뉴시스]

    서울 성북갑 경선에서 탈락한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선부정의혹 진상규명 및 재경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뉴시스]

    휴대전화 가상번호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가상번호제는 그동안 주로 활용됐던 유선전화가 고령층 위주로 응답되는 문제가 생겨 다양한 연령대의 표본을 추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은 통신사로부터 성별·연령별 정보가 담긴 유권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1만5000개까지 받을 수 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많은 유권자가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상번호를 사용하게 되면서 모집단 접근이 쉬워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상번호 발행비용이다. 가상번호 1건당 336원으로, 여론조사 1회 당 100만~300만 원(1000명 기준) 더 들어간다. 이 때문에 예년에 비해 여론조사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조사기관이 가상번호를 요청한 뒤 발행되기까지 10일이나 걸린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기간은 이틀로 명시돼 있다. 결국 가상번호 요청시부터 12일 뒤에나 조사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여론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이택수 대표는 “이것만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역행하는 상황 같다. 더욱이 개인 후보는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를 할 수 없다. 컷오프된 후보들이 여론조사를 포기하고 자신의 감(感)으로 지역구를 고르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차제에 여론조사 자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는 “당선자 예측을 목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실효성이 없다”며 “특정 정책이나 민심 파악용 여론조사를 해야 응답률이 높아져 여론조사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처럼 유권자의 표심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타격을 입은 대구·경북의 민심, 악화된 경제 상황과 체감 경기를 파악할 수 있는 지역 등에 대한 여론조사가 오히려 총선 정국에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ARS 경선은 민주주의 왜곡, 투표로 후보 뽑아야

    ARS 경선의 효용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윤석규 전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원내기획실장은 “ARS 경선은 편리한 제도일지 모르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이라며 “10%의 오차가 나오는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고, 다른 나라의 선례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ARS 경선은 △사후 검증이 어렵고 △후보자 대표 경력 한두 개만 제시되는 단순한 설문 문항으로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며 △악의적으로 왜곡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윤 전 실장은 “여론조사는 선거가 아니므로 정당 후보를 결정할 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현장 투표 방식의 경선이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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