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또 ‘으르렁’…금융위·금감원 파워게임 갈등史

‘독립성’ 강조 윤석헌號, ‘기 싸움 불붙이나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0-04-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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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직 개편하며 양 기관 권한 애매하게 나눠

    • DLS 사태 손태승·함영주 징계 두고 티격태격

    • 금감원 부원장 인사 두고도 충돌 조짐

    • 금융사는 두 시어머니 모시는 꼴

    ‘혼연일체’. 5년 전,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이 취임 직후 금융감독원(금감원)을 방문했다. 임 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에게 ‘금융개혁 혼연일체’라고 쓰인 학정 이돈흥 선생의 작품 액자를 선물했다. 그는 “똑같은 액자를 두 개 마련했다”라며 “하나는 금감원에 선물하고 하나는 금융위에 설치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금감원의 상급 기관이다. 상·하급 기관 수장들이 이처럼 취임을 기념해 만나 ‘화목한’ 모습을 연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같다. 그러나 이런 모습 뒤에는 다른 스토리가 있다. 금융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두 기관이 ‘혼연일체’라는 간판을 만들어서 다짐해야 할 정도로 워낙 사이가 안 좋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날 임 전 위원장이 다녀간 뒤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을 공식 방문한 것은 4년 반이 지나서였다. 지난해 9월 은성수 현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을 방문했다. 두 기관이 ‘혼연일체’라기보다는 ‘혼연이체’가 아니냐는 농담 섞인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조직은 분리했는데 권한은 애매하게…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에는 긴 역사가 있다. 짧게 보면 10년가량 되지만, 길게 보면 7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다. 이를 통해 금융 관련 정책과 감독 권한을 두고 정부와 공적 민간기구가 오랜 기간 ‘밀고 당기기’를 해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950년 제정된 한국은행법에서는 한국은행(한은)이 은행에 대한 감독과 검사·제재 권한을 모두 갖게 했다. 당시 금융기관이라고 하면 은행이 전부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공적 민간기구인 한은이 금융 감독의 책임자였던 셈이다. 이후 1960년대에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금융 감독 기능은 재무부로 대거 넘어갔다. 이후 출범한 증권감독원과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금융 감독 기관은 모두 재무부 산하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정부가 권한을 가져갔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다. 금융 감독을 맡아온 관료들에게 책임론이 쏟아진 탓이다. 이후 정부는 흩어져 있던 금융 감독 기능을 통합해 새로운 공적 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을 신설했다. 금감원 위에는 합의제 행정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의 전신)를 만들었다. 관료들은 금감위에 사무국을 만들어 참여하는 데 그쳤다. ‘권력’은 다시 금감원이라는 공적 민간기구에 넘어갔다. 이로써 금융정책은 정부가, 금융 감독은 민간이 맡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금융사 처지에서는 다소 추상적인 금융정책을 만드는 정부보다는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는 금감원을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당시 정부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불거진 금융위-금감원 갈등의 직접적 원인은 약 10년 전의 변화로부터 초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를 신설하면서 금융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을 총괄토록 했다. 금감원은 금융위로부터 감독 집행 권한을 위탁받는 방식이 됐다. 

    문제는 이처럼 조직은 뚜렷하게 분리했는데 권한은 애매모호하게 나눴다는 점이었다. 2008년 당시 금융위 측은 “금감원은 현장 감독만 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금감원은 “중징계만 금융위에서 결정하면 된다”라며 맞섰다. 결국 기관 및 임직원에 대한 제재 중, 중징계 이상은 금융위 의결을 거치도록 했고 경징계는 금감원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후 두 기관을 두고 금융위로 권한을 더욱 몰아준다거나, 아니면 아예 금융위를 없애고 금감원에 권한을 넘기는 방안들이 때마다 나왔다. 지금과 같이 관료조직(금융위)과 민간조직(금감원)을 수직적으로 만들어놓은 구조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통합이 필요한데, 권한을 정부에 주느냐 공적 민간기관에 주느냐를 두고 엇갈린 의견이 나온 셈이다. 이런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두 기관은 기 싸움을 벌이곤 했다.

    우리금융 손태승 · 하나금융 함영주 ‘문책경고’

    2019년 10월 1일 DLF(파생결합증권)로 인해 원금 손실을 입은 피해자들이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해보상과 금융 당국의 엄정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2019년 10월 1일 DLF(파생결합증권)로 인해 원금 손실을 입은 피해자들이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해보상과 금융 당국의 엄정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최근 DLS(파생연계증권) 사태와 관련한 은행과 임직원의 징계 건을 두고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이 불거진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앞서 금감원은 DLS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문책경고를 받은 임원은 연임과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이후 업계 안팎에서는 금융위가 이런 징계 안(案)을 일부 뒤집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금감원과 금융위의 갈등설이 부각됐다. 그러나 금융위가 3월 4일 금감원의 징계 수위를 그대로 확정하면서 두 기관의 갈등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그간 두 기관의 오랜 갈등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불씨는 여전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월 ‘2020년 업무계획’ 발표 이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역사적 산물”이라는 표현을 쓰며 씁쓸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면 이미 공론화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고) 당분간 또 발생하지 않을 테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라고 밝혔다. 

    은 위원장이 생각해 보겠다는 문제는 금감원장의 징계 권한이다. 만약 금감원이 이번에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징계를 내렸다면 ‘문책경고’ 같은 중징계를 직접 결정할 수 없었다. 자본시장법에서 중징계는 금융위에서 최종 판단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자본시장법이 아닌 지배구조법으로 제재를 결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금감원장에게는 문책경고에 대한 전결권이 있다. 은 위원장은 이런 복잡한 구조를 두고 “역사적 산물”이라고 표현한 셈이다. 

    실제 금융위 내부에서는 이번 DLS 징계 사안의 경우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핵심이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따라 중징계를 하려면 금융위를 거쳐야 하는데 금감원이 이를 피하기 위해서 지배구조법을 적용하는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한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평소 잘 들여다보지 않던 금융사지배구조법까지 들고 나온 것은 이유가 있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친(親)금융위 인사와 윤석헌 측근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은 최근 금감원장 인사권을 두고도 벌어졌다. 인사권 역시 권한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 갈등을 초래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윤석헌 금감원장은 친(親)금융위 인사로 알려진 두 명의 부원장을 교체하려 했고, 금융위는 이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로 윤 원장 측근으로 여겨지는 부원장의 경우 금융위는 교체를 원했고 윤 원장은 유임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부원장 인사의 경우 금감원장이 제청하면 금융위에서 임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금감원은 그간 부원장급을 교체한 뒤 그 아래 직급을 순차적으로 인사해왔는데, 윤 원장은 아래 직급부터 먼저 인사하는 ‘역주행’ 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두 기관의 갈등 탓에 인사가 지연되니 윤 원장이 ‘버티기’를 하기 위해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를 진행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결국 양측이 한 걸음씩 물러나는 선에서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측 인사로 분류된 부원장 두 명 중에서는 한 명만 유임됐고, 윤 원장 측근 부원장 역시 남게 됐다. 금융 당국 내에서는 “청와대에서 양 기관장의 제청권과 승인권을 각각 존중하는 선에서 결정이 이뤄진 것 같다”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결정은 양 기관 갈등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금감원장이 민간 인사일 경우 두 기관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장은 윤 원장처럼 민간 인사가 맡을 때도 있지만 이전 정권에서는 주로 관료 출신이 앉는 게 관례였다. 관료 출신이 금감원장이 될 경우 아무래도 ‘친정(금융위)’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만 민간 인사는 그렇지 않다. 

    윤 원장은 학자 시절부터 줄곧 감독 기구 독립성 확보를 주장해 온 인물이다. 금융위에 금감원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생각은 금감원장 취임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취임 초 “금융 감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라고 재차 밝혔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금융위로부터 금감원의 예산·인사 독립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윤 원장은 아울러 금융위가 현재처럼 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 모두 갖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해왔다. 두 기능을 모두 갖고 있을 경우 이해 상충되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이른바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로 설명된다. ‘액셀’은 금융산업을 진흥시키려는 정책 기능을 의미한다. 통상 금융산업 정책이라고 하면 규제 완화와 자율 확대 기조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감독 기능은 ‘브레이크’로 비유된다. 금융 시스템에 위협이 되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금융사들의 행위에 제동을 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액셀과 브레이크 기능을 함께 보유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윤 원장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정책’이 ‘감독’을 압도할 경우 저축은행 부실 사태나 동양증권 사태 등 각종 금융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껄끄러운 인사다.

    혼란 주는 두 명의 시어머니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은 당분간 때마다 불거질 것이다. 일단 윤 원장의 남은 임기에도 기 싸움은 이어질 전망이다. 금감원장이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역시 민간 인사가 올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금감원장 자리에 세 차례 연속 비관료 민간 출신 인사를 임명했다. 

    금융권에서는 두 기관의 갈등을 풀 수 있는 근본적 개편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등이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에 그치지 않고 금융사나 금융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체계는 국가마다 다르게 짜여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는 다양하다. 미국의 금융정책은 재무부가 담당하고, 금융 감독의 경우 금융 권역별로 감독 기구를 나눠서 사실상 정부 조직으로 운영한다. 독일은 재무부가 경제정책을 담당하고 금융 감독 업무는 별도의 연방금융감독원이 맡는다. 일본은 금융청이 금융정책과 감독 및 집행까지 모두 담당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금감원 같은 감독 집행기구는 없다. 이처럼 감독 체계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개편의 여지는 충분하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두 명의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과 마찬가지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위와 금감원 간 업무와 권한을 명확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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