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고발’ 박원순, 가평 쳐들어간 이재명, 강제수사 추미애
이낙연 등 여권 주자들의 잇단 ‘프레임 전투’
신천지 과몰입, 정쟁 휘말려 국가 역량 분산 ‘부작용’
잇단 대구 비하 발언…TK 외에서 이기면 된다?
대구 손절? 수도권, PK, 충청권에서 逆風 불 수도
2월 25일 경기 과천시 별양동 신천지예수교회 교육관에서 소방대원과 경기도 관계자들이 강제 역학조사를 하고 나오는 모습.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대형 재해재난이 발생하면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정부 대응이 적절했는지가 먼저 도마에 올랐다. 총선을 앞둔 국면에서 정권심판론 불씨를 키우려는 범야권으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곧바로 대통령 책임론, 정부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초기 단계에 중국인에 대한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실기(失期)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말았다며 보수 야권이 들고 일어났다. 보수 진영 내에서는 ‘문재인 폐렴’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런 프레임에 속절없이 당할 진보 진영이 아니다. 곧바로 맞대응에 나서 ‘신천지 코로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집단 감염된 신천지 교회 신도들이 화근이지 문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사이의 감염이 더 문제라는 주장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여기에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가세하고 나섰다. 앞다퉈 신천지에 대한 토끼몰이를 하면서 강경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다.
발 빠른 이재명의 ‘신천지 활약’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쪽은 이재명 경기지사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에서는 최초로 지난 2월 25일 신천지 교회 과천본부에 대해 긴급 강제 역학조사에 돌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기자회견을 한 3월 2일에는 즉시 검체 채취에 불응하면 감염병법상 ‘역학조사거부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며 경기 가평군에 있는 신천지 연수원 ‘평화의 궁전’으로 직접 쳐들어가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총회장이 곧바로 검사를 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현재까지 성적표를 보면 이재명 지사가 앞선 느낌이다. 최근 이 지사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상승세다. 엠브레인이 서울경제 의뢰로 지난 3월 5∼6일 18세 이상 1009명을 대상으로 한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이 지사는 13.4%로 2위를 기록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추월한 것이다. 또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3월 2∼6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254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1.9%포인트)한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 결과에서는 13.0%로 3위를 기록했다. 한 달 전에 비해 무려 7.4%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그래서 이 지사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까지 견인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원순 시장도 만만치 않다. 지난 3월 1일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과 12개 지파 지파장들을 살인죄, 상해죄,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아울러 법인 취소까지 단행하겠다고 나섰다. 3월 10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는 신천지 신도 전수조사에 낭비된 행정비용, 방역비, 신도 확진자와 그로부터 감염된 환자의 진단·치료 비용에 대한 구상권 행사 등 민사적 책임도 묻겠다고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신천지 측에 신도 치료센터로 시설을 제공하라고 공개 요구하는가 하면, 3월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회의에서는 “집단 감염의 원인으로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신천지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국민께 이토록 큰 고통을 드린 신천지는 응분의 도리를 다해야 마땅하다”고 다시금 압박하기도 했다.
대선주자들이 신천지 압박에 나선 이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왼쪽부터). [뉴스1, 서울시 제공, 경기도 제공]
첫째, 문 대통령의 책임론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신천지와 과거 이만희 총회장이 설교 과정에서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의 당명을 지어줬다고 주장한 사실과 관련해서 연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울러 보수 정당 출신의 권영진 대구시장과 신천지 측의 유착 의혹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전형적인 ‘역공(逆攻) 전략’을 이번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보수 야권의 정권심판론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적지 않다. 통합당을 비롯한 보수 야권이 제기하는 ‘문재인 책임론’은 정권심판론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총선 국면에서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긴 문제 제기다. 당연히 여당과 진보 진영으로서는 이것을 방치할 수 없다고 느끼고, 반격에 나선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경쟁하는 양상인 것이다.
셋째, 친문 내에서 개인적 인지도 내지 지지도를 높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을 보호하면 누가 좋아할까. 당연히 여당 내 주력군인 친문계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대선주자 당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더욱이 이낙연 전 총리도 박 시장도 이 지사도 당내 조직 기반이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들 세 사람 이외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빼놓을 수 없다. 추 장관도 ‘신천지 프레임’에 가세하긴 했다. 2월 28일 신천지 측의 역학조사 방해와 거부 등 불법행위가 있을 경우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로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검찰에 지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법무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또 부적절하게 압수수색까지 지시한 데 대해 월권이라는 비판론이 일자 추 장관은 이렇게 해명했다.
“국민 86% 이상이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추 장관의 이번 행보도 그다지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준 것 같진 않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국가적인 대형 재난 사태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거들고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바다. 이들이 움직임으로써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의 적극적 대응을 이끌어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대응을 초래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다. 국민으로 하여금 과몰입하게 만들고 정쟁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역량을 결집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기에 힘을 분산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서울에서 집단감염 생겨도 살인죄 고발한 건가”
이재명 지사에게 묻고 싶다. 이만희 총회장의 강제 검사에 직접 나설 필요가 있었는가? 방역에도 바쁠 텐데 굳이 시간을 할애해 경기 가평까지 갈 필요가 있었는가. 박원순 시장에게도 묻고 싶다. 이것이 신천지 관계자들을 살인죄로 고발할 정도의 사안인가. 또 다른 집단감염 사례가 서울시에서도 발생하면, 그 단체 또는 회사 관계자들도 살인죄로 고발할 참인가. 추미애 장관에게도 묻고 싶다. 수사권을 경찰에 넘겨놓고 왜 검찰에 강제수사를 지시하는가.그렇다면 ‘신천지 프레임’에 함정은 없을까? 있다. 너도나도 신천지 프레임에 가세하면서 여기저기서 막말 논란이 유발되는 현상도 그 가운데 하나다. 3월 6일 친문 성향 방송인 김어준 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어제부로 대구의 코로나 확진자 비율은 대구시민 560명당 1명이 됐다…숫자가 명백히 말하고 있다. 우리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는 것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씨의 방송 퇴출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연이어 민주당 청년위원회 소속 인물의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는 발언이 나와서 대구시민의 반발을 불러오더니 급기야 3월 7일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이런 발언까지 쏟아냈다.
“신천지와 코로나19의 위협은 전국에 있지만 대구·경북에서만 아주 두드러지게 심각한 이유는 한국당과 그것들을 광신하는 지역민들의 엄청난 무능도 큰 몫을 하는 것이다.”
결국 이낙연 전 총리, 현 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이 나서 3월 9일 사과를 내놓아야 했다. “때로는 저희들의 사려 깊지 못한 언동으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데 대해서도 깊이 사과드린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국면에서 민주당 출마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신천지 프레임’ 가세 현상을 모두 막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천지 프레임’의 또 다른 함정은 또 다른 집단감염 장소가 발생할 여지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서울 구로구의 한 콜센터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이외에도 잠재적인 대규모 집단감염 장소가 널려 있는 곳이 서울시다. 서울시에는 대형 교회도 많고 대형 학원도 많다. 지하철을 비롯한 밀집도가 높은 다중이용시설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한 대형교회에서 신천지 대구교회와 같은 대량 감염 사태가 발생하면 그때는 오히려 박원순 시장이 보수 야권으로부터 역습을 당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재명 지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역시 다중이용시설이 넘쳐나는 곳이다. 최근 들어 신천지 대구교회를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의 확진자 발생은 다소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반면에 다른 지역, 특히 수도권에서는 증가세다. 지역감염이 일반화하는 상황에서는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아무래도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도 ‘신천지 프레임’이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총선까지 한 달, 이제부터 문제는 오히려 수도권이 될 것으로 봐야 한다.
‘대구 손절’이라는 정치적 계산
대구를 손절하는 것이 대구에서 끝날 것인지도 의문이다. 대구 손절 발언의 이면에는 대구·경북 이른바 TK 지역을 포기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틀린 판단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거친 생각’을 우려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격전지인 수도권과 충청권은 물론 새롭게 격전지로 떠오른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서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정권심판론이 아닌 정권견제론 정도만 확산해도 여당은 선거에서 불리해진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반발을 유발하는 발언 하나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KBS 라디오 진행자)의 막말로 선거에 ‘폭망’한 그 아픈 추억의 주인공이 이번에는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저들의 ‘신천지 프레임’ 전투가 은근히 불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