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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맛 이야기’

삼해주 빚어 독에 넣고 기다리는 마음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삼해주 빚어 독에 넣고 기다리는 마음

완성된 삼해주.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신동섭 제공]

완성된 삼해주.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신동섭 제공]

더디고 더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기분인데, 달력은 벌써 넉 장 째다. 봄을 맞이한 몸과 전염병을 경계하는 마음이 따로 노는 비정상적인 시간을 원망해본다. 그렇지만 부자연스러운 지금도 내 삶의 소중한 조각이다. 흰 말이 빨리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면 과연 말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눈 깜빡할 새보다 몇 배는 짧을 것 같다. 그만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라 비유하며 장자가 남긴 말 ‘백구과극(白駒過隙)’이 떠오른다. 

사회적 격리라는 낯선 경험은 우리에게 일상의 새로운 면모를 경험케 하고 있다. 내 경우는 외근이 사라지면서 사무실에서 차분히 업무 보는 시간이 늘었다. 일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동안 컴퓨터에 터질 듯 쌓아둔 데이터를 하나둘 정리할 틈도 생겼다. 회사도 침체기라 업무량이 줄면서 계획에 없던 여가가 생겨버렸다. 내친 김에 오랫동안 희망하던 경험치 쌓기를 사부작사부작 해봤다. 바로 술 빚기이다.


세 번의 돼지날 맑은 물로 빚는 술

밑술에 덧술을 더하는 모습. [신동섭 제공]

밑술에 덧술을 더하는 모습. [신동섭 제공]

서울지역 가양주 중 가장 인기를 누렸던 술이 삼해주(三亥酒)라고 한다. 이름에 술 빚는 방법이 숨어 있다. 세 번(三)의 돼지날(亥) 술을 빚는다. 음력 1월 첫 돼지날 밑술을 빚고 다음 돼지날이 돌아오면 덧술(중밑술), 그다음 돼지날에 마지막 덧술을 빚어 합쳐 숙성하는 삼양주(三釀酒)다. 

돼지 날 술을 빚는 이유는 12지신 중 돼지 피가 가장 붉으면서 맑고 선명해 그날 술을 빚으면 맑고 맛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해주는 빚는 시간과 정성만큼 술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지만 손이 많이 가서 이 술을 빚어 판매하는 양조장이 흔하지 않다. 그러니 빚어 마실 수밖에 없다. 

삼해주 빚는 법은 산가요록, 음식디미방, 임원경제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같은 여러 고문헌에 기록돼 있다. 밑술을 먼저 빚고 두 차례 덧술을 보태는 방법은 어느 책이나 같다. 반면 쌀 종류, 물 양, 숙성 기간 등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술 빚기 초짜인 나는 2020년 첫 돼지날인 2월 2일, ‘찬우물농장’과 ‘지우도농’ 등 친환경 농업공동체 농부님들과 함께 삼해주를 빚어 보기로 했다. 양조법은 세 차례 술을 빚을 때 쌀 조리법이 모두 다른 흥미로운 방법(임원경제지)을 따랐다. 



준비물은 좋은 쌀, 깨끗한 물,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밀누룩, 깨끗한 독이다. 먼저 지난 가을 수확한 좋은 쌀을 구하고, 깨끗이 씻는 것이 중요하다. 쌀 씻기 방법은 ‘백세(百洗)’, 즉 100번 씻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예상컨대 문헌이 작성된 시절 쌀은 지금만큼 깨끗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쌀은 몇 차례만 정성껏 씻으면 맑은 물(白水)이 나온다. 게다가 도정까지 잘 돼 있어 물에 쉽게 불고, 전분기도 잘 빠져나온다. 굳이 100번이나 물에 적실 필요는 없다. 


앉은뱅이밀로 만든 누룩(왼쪽). 완성된 밑술.

앉은뱅이밀로 만든 누룩(왼쪽). 완성된 밑술.

밑술을 빚을 때는 깨끗이 씻은 젖은 찹쌀(토종 대궐찰 품종)을 빻아 묽게 죽을 쑨다. 누룩(앉은뱅이 밀)은 미리 준비해 술 담그기 2~3일 전부터 채반에 얹어 햇살과 밤낮 부는 바람, 이슬을 맞혀 두면 좋다. 단, 빗물에 닿는 건 피해야 한다. 찹쌀죽이 완전히 식으면 곱게 부순 누룩을 넣어 큰 덩어리가 없도록 충분히 풀어가며 섞는다. 누르스름한 빚의 걸쭉한 밑술을 독에 부으면 첫술 작업은 끝이다.


버들꽃 흩날리는 날 우리 만날 수 있을까요

덧술을 만들고자 빚은 구멍떡(왼쪽). 마지막 덧술을 만들고자 고두밥을 넣은 모습. [신동섭 제공]

덧술을 만들고자 빚은 구멍떡(왼쪽). 마지막 덧술을 만들고자 고두밥을 넣은 모습. [신동섭 제공]

12일 뒤 다시 돼지날이 찾아오면 덧술을 빚어 합친다. 덧술은 깨끗이 씻은 멥쌀(졸장벼)과 찹쌀(나미)을 합해 가루 낸 뒤 따뜻한 물을 조금씩 부어 국수 반죽하듯 덩어리로 뭉친다. 단단한 반죽을 조금씩 떼어 ‘구멍떡’을 빚는다. 납작한 도넛 모양이다. 이렇게 빚은 구멍떡은 물에 삶아 익혀 곱게 으깨 풀처럼 만든다. 이렇게 몽땅 으깰 것을 왜 일일이 구멍떡으로 만드나 했더니 물에 삶았을 때 빨리, 골고루 익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잘 식은 쌀풀에 밑술을 붓고 누룩을 더해 골고루 섞이도록 잘 푼다. 밑술, 풀, 누룩을 골고루 합하기에는 사람 손만 한 것이 없다. 끝없이 주무르고 주무르다 보면 어느새 콩고물처럼 고소해 보이는 노란색 걸쭉한 중밑술이 완성된다. 다시 독에 붓는다. 

마지막 돼지날 빚는 덧술의 주인공은 밥이다. 멥쌀(졸장벼)과 찹쌀(나미)을 섞어 고두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다기보다 쌀을 찐다는 표현이 맞겠다. 고두밥을 독에 담긴 밑술에 살살 섞어 넣고 물을 더한다. 고두밥과 물을 먼저 섞어 밑술에 더해도 된다. 이것으로 삼해주 빚기는 끝난다. 이제 고문헌에 적힌 그대로 ‘버들꽃이 날릴 때’ 항아리를 열어 보면 된다. 삼해주는 짧게는 12일 길게는 100일까지 숙성한다. 술을 빚어 기쁘지만 버들꽃 날릴 때 혼자 마시게 될까 싶은 걱정과 쓸쓸함도 함께 있다.




신동아 2020년 4월호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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