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중국發 언택트 기술 혁명, 코로나19가 준 선물?

美中과의 기술격차 더 벌어질 계기 될 수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4-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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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와도 얘기하지 마라!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 중국, 코로나19 확산 후 의료로봇 사용 급증

    • 마스크 착용 및 발열 감시 기능 갖춘 최첨단 드론 상용화

    • 5G+빅데이터+인공지능=?

    3월 초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자사 트위터에 쓰촨성 청두 관리들이 ‘스마트 헬멧’을 쓰고 거리를 순찰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 이 헬멧은 반경 5m 안에 있는 보행자 체온을 자동으로 측정하고, 열이 나는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경고음을 내는 것으로 소개됐다. 

    이튿날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은 이 장비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에 따르면 N901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헬멧에는 발열 탐지 목적의 적외선 카메라와 안면인식 장치가 탑재됐다. 체온이 섭씨 37.3도 이상인 사람이 탐지되면 알람을 울리고, 안면인식 기술로 발열자 신원을 즉시 파악한다. 헬멧 착용자는 내부에 장착된 스크린을 통해 열이 나는 사람의 이름 등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비를 개발한 중국 IT기업 ‘광치’ 관계자는 데일리 메일 인터뷰에서 “사람 간 접촉 없이 모든 절차를 수행하는 첨단 웨어러블 기기”라고 설명했다.

    의료용 로봇 개발 러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접촉’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중국에서는 사람 간 접촉을 차단해 코로나19 감염을 막는 데 도움을 주는 기술 및 장비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중국 광둥성 인민병원은 1월 말부터 감염병 환자를 위한 격리병동에 의료 로봇 ‘핑핑(平平)’과 ‘안안(安安)’을 배치했다. 이들은 코로나19 환자가 쓴 침대 시트나 생활용품을 수거하고, 약과 음식물을 배달하며, 병실 내 상황을 촬영해 의료진에게 전송하는 등의 업무를 맡았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바이러스가 병원 내에 전파돼 의료진이 다수 감염되곤 했다. 그 결과 병원이 폐쇄되고 의료진이 격리되면서 감염병 대응에 구멍이 생기는 일이 반복됐다. 핑핑과 안안은 의료진과 환자 간 접촉을 최소화해 이런 위험을 줄이려는 의도로 도입됐다.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이후 전국 각지 의료기관에 로봇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 로봇업체 ‘시아순’ ‘상하이 TMiROB’ 등은 환자 관리 및 물품 전달, 병원 소독 등의 업무를 수행할 지능형 로봇을 개발해 전국 코로나19 대응 병원에 배치했다. 



    중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우한시의 경우는 이제 병원뿐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도 로봇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로봇이 보행자 체온을 재고, 거리를 소독하며, 마스크 미착용자를 포착해 ‘마스크를 쓰라’는 안내방송까지 한다. 

    중국에서 서비스 로봇이 이처럼 빠르게 자리 잡은 배경에는 이동통신사와 통신장비업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다. 중국은 지난해 말 5G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단시간에 주고받을 수 있는 이 기술을 상용화한 무렵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중국은 관련 역량을 코로나19 발생 지역에 집중했다. 우한 등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지역 의료기관부터 우선적으로 5G 설비와 관련 컴퓨팅 인프라를 공급해 최첨단 로봇 사용, 원격 폐렴진단, 화상 상담 등이 가능하게 했다.

    코로나19發 기술 혁신

    중국 광둥성 인민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인공지능(AI) 로봇. [광둥성 보건부 위챗]

    중국 광둥성 인민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인공지능(AI) 로봇. [광둥성 보건부 위챗]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월 2일 과학기술부와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등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과학기술은 인류가 전염병과 벌이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최근 기회 있을 때마다 코로나19 사태 해결을 위한 과학계의 협조를 당부한다. 중국 기술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태세다. 

    대응의 한쪽 방향은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중국은 코로나19 특성을 알아내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다. 중국 정보통신기업 바이두는 자사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개방해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돕기로 했다. 자체 개발한 원거리 체온 측정 AI 기술 등을 공개해 의료·위생·방역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또 다른 정보통신기업 알리바바는 베이징에 있는 ‘글로벌 건강 의약품 개발 연구소(Global Health Drug Discovery Institute)’와 협력해 AI로 코로나19를 추적하는 오픈소스 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했다. 알리바바 또한 개발 자료를 관련 연구기관에 공개해 백신 및 신약이 최대한 빨리 개발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중국 기업들은 코로나19 진단 및 확산 예방에 도움이 될 기술 상용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중국 노인 한 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길을 걷다 드론의 경고를 받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조용한 시골길을 걷던 할머니는 갑자기 하늘에서 “마스크 안 쓰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자 놀란 듯 드론을 올려다본다. 괴물체가 신기했던지 잠시 입까지 벌린 채 드론을 응시하던 이 여성은 드론에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지시가 반복적으로 울려 나오자 시키는 대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이후 드론을 순찰과 거리 통제, 소독제 살포 등의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드론업체 마이크로멀티콥터(MMC)는 상하이와 광저우 등 주요 도시에 드론 100대 이상을 투입했다고 밝힌 상태다. 40배 확대 카메라를 장착한 이 드론은 지상을 관찰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행인을 발견하면 확성기로 경고 방송을 하고,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추적 비행도 한다. 적외선 센서를 활용해 원격으로 행인 체온을 측정해 통제하는 기능도 갖췄다.

    위기이자 기회?

    방역 업무를 맡기 위해 투입되기 전 대기 중인 중국 MMC사 드론. [MMC 제공]

    방역 업무를 맡기 위해 투입되기 전 대기 중인 중국 MMC사 드론. [MMC 제공]

    중국에서 2월 8일 출시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밀접 접촉 감지기(close contact detector)’도 화제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국영기업인 중국전자과기집단공사(CETC) 등이 공동 개발한 이 앱에 사용자 이름과 신분증 번호를 입력하면 동선을 추적해 그가 최근 2주 사이에 코로나19 확진자 또는 감염 의심자와 접촉했는지를 알려준다고 한다. 사용자 동선은 공공기관이 수집한 대중교통 이용 기록 등 여러 빅데이터를 참고해 파악한다. 

    중국은 최근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국민 개개인의 일상을 매우 세세히 파악하고 있다. 선전시의 경우 2월부터 지하철 이용자 모두가 실명인증 절차를 거치게 했다. 지하철 칸마다 다른 번호를 부여해 개개인이 몇 번째 칸에 탔는지까지 확인한다. ‘밀접 접촉 감지기’ 같은 앱이 가능한 건 모든 국민의 동선을 정부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안면인식 기술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 스타트업 ‘센스타임’도 최근 방역을 위해 중국 정부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이나 로봇에 발열측정기와 센스타임 기술을 탑재하고, 빅데이터까지 활용하면 코로나19 확진자 또는 감염 의심자를 신속히 탐지해 격리할 수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통신(IT) 기술이 개발되고 결합되면서 코로나19가 중국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국은 2003년 사스 유행을 겪은 뒤 온라인 유통 분야가 급성장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딜로이트는 최근 펴낸 보고서 ‘코로나19의 중국 경제에 대한 영향’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코로나19 발생 후) AI와 5G, 빅데이터, 클라우드를 바이러스 확산 예측 및 환자 진단, 병원 디지털 인프라 지원에 활용하는 등 기술 분야가 위기 대응에 긍정적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기가 억제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중국 기술산업은 2020년에 6~7%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술 발전이 정부에 의한 전 국민 감시체계 구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19가 촉발한 AI 및 첨단 기술 분야 발전이 사회 전반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어디쯤?

    미국, 유럽 등에서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대면 접촉 없이 상품을 주고받는 비대면 배송, 스마트 물류, 재택근무 및 온라인 강의 플랫폼, 원격의료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4차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꼽히는 AI,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지능형로봇, 드론 등 다양한 산업이 급성장하는 모양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는 3월 6일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구글은 AI를 활용해 코로나19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며 자회사 ‘딥마인드’의 의료용 AI ‘알파폴드’를 이 연구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딥마인드는 2016년 이세돌 9단을 꺾은 바둑AI ‘알파고’를 개발한 회사다. 알파고의 형제가 이번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나서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지능을 가진 AI가 코로나19 병원체인 ‘SARS-CoV-2’의 단백질 구조를 파악해내기만 하면 빠른 시간 안에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이 새로운 세계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인공지능 기술·활용·인재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81.6%로 중국(미국의 88.1% 수준)과 일본(미국의 86.4% 수준)보다 낮다. 빅데이터 기술 수준도 미국의 83.4% 수준으로 중국(87.7)은 물론 일본(84.8)보다도 뒤처져 있다. 옥스퍼드 인사이트와 국제개발연구소(IDRC)가 발표한 ‘2019 정부 AI 준비도 지수’ 평가에서도 우리나라는 세계 26위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유행은 미·중과 한국 사이 첨단 기술 격차를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준화 국회 사회문화조사실 입법조사관은 “우리가 관련 기술·활용·인재 수준을 전면적이고 지속적으로 높이려면 집중적인 발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응용SW 등 우리나라가 상대적 우위를 갖고 있는 부분을 전략적으로 활용, 육성하는 틈새시장 전략을 추진하는 것도 좋다”고 제언했다.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을 그린 2011년 개봉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에는 “누구와도 얘기하지 마라!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 속 세상에서는 이 지침을 지키는 게 불가능했고, 감염병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현재 과학기술은 코로나19를 잡든지, 아니면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만지지 않은 채’ 살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려 노력 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된 뒤 지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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