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허문명의 SOUL

680㎞ 국토대장정 도전 파킨슨병 환자 정만용

“마음 하나 바꾸니 파킨슨병도 축복이 됩디다”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4-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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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왜 하필 나에게

    • 굳어지는 근육과 싸우는 파킨슨병

    •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편해져

    • 원망하고 자책해 봐야 시간만 아깝다

    • 두 다리로 걷는 것만도 기적…포기하지 말라

    • 마라톤 완주 후 저체온증으로 목숨 잃을 뻔

    • 골방에 갇힌 환우들에게 햇빛 보여주고 싶어

    누구나 힘든 시기를 사는 것 같습니다. 안팎으로 뒤숭숭하고 먹고살기가 막막한 이런 때야말로 정신 줄을 꽉 붙잡아야 합니다. ‘허문명의 SOUL’은 삶을 뒤흔들어대는 여러 난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영혼과 정신 줄을 꽉 붙잡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회 주인공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지만 초긍정의 마음으로 45.195㎞ 마라톤 완주에 이어 680㎞ 국토대장정에 도전하는 정만용(76) 씨입니다. <편집자 주>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파킨슨병은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는 신경퇴행성 질환입니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글씨 쓰는 것도, 심지어 밥 먹는 것도 힘듭니다. 얼굴 표정도 일그러집니다. 환자들은 “온몸이 밧줄로 묶인 채 움직이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아직까지 치료법이 없어 희귀성 질환으로 불립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복서 무하마드 알리, 배우 로빈 윌리엄스도 이 병을 앓았습니다. 세계적으로 1000만 명, 한국에는 15만 명이 파킨슨병 환자라고 합니다.

    운동은 생존을 위한 사투

    몸도 감옥에 갇힌 듯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정신적 고통이라고 합니다. 우울증, 치매를 앓거나 편집증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쓸고 있는 요즘,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불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긍정하고 낙관하는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도 절대 긍정 마인드로 살아가는 정만용 씨가 살아가는 법은 그런 점에서 울림이 컸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눈을 뜹니다. 침대에서 30분가량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이며 굳어진 몸에 시동을 겁니다. 몸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되면 마루로 나와 천천히 러닝머신에 몸을 싣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빠른 걸음으로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걷습니다. 온 몸이 땀에 젖으면 욕실에서 몸을 씻고 나와 다시 마루바닥 매트에서 전신 스트레칭을 시작합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이렇게 움직이는 그에게 운동은 생존을 위한 사투입니다.
     
    인터뷰하기 위해 그를 만난 날, 그는 전날 설사 때문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밝았습니다. 정씨는 지난해 5시간 48분 만에 42.195㎞ 마라톤 완주를 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한반도를 종단하는 국토대장정에 나섭니다. 무려 680㎞를 한 달 동안 걷는 행사입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왜 가누기 힘든 몸으로 무리한 일을 자초해 하려는 걸까요. 



    처음 그와 대면했을 때 그가 환자라는 것을 잠시 잊었습니다. 70대 남자들이 소화하기 힘든 가죽점퍼에 붉은색 바지, 멋진 중절모는 물론 꼿꼿한 허리에 힘찬 발걸음이 누구보다 건강해보였으니까요. 두 손에 등산용 스틱을 쥐고 있는 모습만 좀 특이해 보였습니다. 

    인터뷰 장소로 가기 위해 몇 걸음 걸었을까요, 갑자기 그가 멈춰 서버리고 말았습니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 더는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옆에 서 있던 부인 박옥영 씨는 그런 상황이 매우 익숙한 듯 남편 옆에 바싹 붙더니 팔짱을 끼듯 한쪽 팔을 잡고 자신의 왼발을 남편 오른발 앞에 갖다 댔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구호를 붙이자 정씨는 그제야 걸음을 뗐고 이어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씨는 이런 상황을 ‘프리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갑자기 몸이 굳어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거나 발 앞에 장애물이 놓이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는 방식으로 뇌에 신호를 보내 걸음을 이어갈 수 있다는군요. 

    1946년 11월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비자 받기도 어렵던 시절 한국 관광업체 파견 직원으로 도쿄에 갔다가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반일 감정이 팽배하던 1990년대 업계 최초로 한국 고교생 수학여행을 기획해 연간 5만6000여 명의 학생을 실어 나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는군요. 1995년부터는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는 컨설팅 회사를 차려 사업가로도 꽤 성공했다고 합니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믿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던 그에게 파킨슨병이라는 난치 질환은 이후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길게 살아봐야 앞으로 10년이라니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발병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몸에 이상을 느낀 건 15년 전인 2005년부터였으니 꽤 오래전 일이죠. 평소처럼 길을 걷는데 발 한쪽이 갑자기 힘이 빠져 헛디딘 다든지, 잔돌이나 경계석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았어요. 처음엔 너무 타이트한 바지를 입어서 그런가, 전날 술을 많이 먹어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습니다. 워낙 건강 체질이서 몸에 자신도 있었고요. 그러다 2012년 서울에 출장을 와 있었는데 갑자기 손발이 떨려 전화기를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가 정밀 검사를 했는데 파킨슨병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에게는 마치 어제 일이라도 되는 듯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이 아득해진다는 걸 처음 경험해 보았습니다. 내가 무슨 영화나 소설 주인공이 된 것도 아닌데,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오로지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의사는 뭐라던가요. 

    “약이 워낙 잘 나와 있으니 4, 5년은 약 먹으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후는 어떻게 되는 거냐’ 물었더니 ‘수술하면 된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완치될 수 있느냐’ 물으니 ‘완치는 없다’ 딱 잘라 말하더군요. 한마디로 4, 5년 후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길게 살아봐야 10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치병 진단을 받으면 몸도 힘들지만 누구나 마음의 지옥을 경험합니다. ‘왜 내가 하필’ 하는 자책하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지요. 멀게만 생각했던 죽음이 실제 상황으로 다가오면서 허무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닥친다

    정만용 씨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몸이 얼어붙어 멈추는 일이 많다. 그럴 때면 아내 박옥영 씨가 뒤에서 그를 붙잡고 무릎을 쳐준다. 그러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정만용 씨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몸이 얼어붙어 멈추는 일이 많다. 그럴 때면 아내 박옥영 씨가 뒤에서 그를 붙잡고 무릎을 쳐준다. 그러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요. 

    “일주일 정도 흘렀을까요, 괴로워하는 시간 자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밝고 긍정적으로 웃으며 지내야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동정 대신 밝은 모습으로 봐줄 거다, 그래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생길 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큰일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까. 어려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막상 제가 겪어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뭐든 자기 판단에 따른 것이니까요. 마음 바꿔먹는 데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세금 내는 것도 아닌데 기왕이면 밝은 쪽으로 생각하며 살자는 쪽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당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그런데 아까 갑자기 몸이 굳어버려 깜짝 놀랐습니다. 위험한 순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육교 위에서 몸이 굳어버린 적도 있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그대로 서버려 오가던 차와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는 일도 있습니다. 지하철이 왔는데도 타지를 못하고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하거나 개찰구를 빠져나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 2000㎉를 쓴다면 저는 2500, 3000㎉를 소모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은 나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파킨슨병은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병입니다. 굳어가는 근육과 싸우는 병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병을 친구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난치병을 앓으면서도 절대긍정 마인드를 놓치지 않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부부는 인터뷰 내내 표정이 밝았다. [조영철 기자]

    난치병을 앓으면서도 절대긍정 마인드를 놓치지 않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부부는 인터뷰 내내 표정이 밝았다. [조영철 기자]

    -건강하다가 장애가 생기면 불편한 게 하나둘이 아닐 텐데요.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지요. 잃어버린 것보다 얻은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 저는 성미가 매우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 명함을 한 통이나 써버린 적이 있을 정도로 사람을 많이 만났고 약속이 하도 많아 아침 점심 저녁 두 끼씩 여섯 끼를 먹은 날도 있습니다. 

    난치병을 얻었지만 마음을 바꾸니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슬로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비행기를 타면 구름하고 햇볕밖에 보이지 않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성냥갑 같은 자동차가 보이고 도시락 같은 아파트가 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요. 걸어가면 또 어떤가요. 나비가 꽃에 앉은 것도 보이고 더 깊게 들여다보면 나비와 꽃과 대화도 할 수 있게 됩니다.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느리게 살다 보니 안 보이던 세상이 보였습니다. 전에는 남에 대한 이해심이나 배려가 없었어요. 직원들이 출장 갔다가 감기라도 걸려 결근하면 정신력이 약하다고 타박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장애인이 돼 작은 계단 하나를 올라가지 못해 몇 십 분씩 서 있는 경험을 하다 보니 그런 과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성인군자로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저 절대 아닙니다(웃음).” 

    그는 “병을 친구처럼 생각하기로 했다”고도 했습니다. 

    “완치는 안 돼도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 함께할 친구다, 이 친구를 좋은 쪽으로 유도해서 같이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자 조용히 남편 말을 듣고 있던 아내 박영옥 씨가 “노노. 제발 (파킨슨 친구를) 보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좌중에 웃음이 크게 번졌습니다. 그런 부인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두 사람의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문득 아내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습니다.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편해져

    -난치병 환자가 있으면 가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을 텐데요. 

    “당연하지요,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건 환자 본인이 아닐까요. 몸이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요. 남편은 괴로워도 잘 내색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에게 내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얼마나 더 힘들고 미안할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모두 ‘이생에 왔다가 떠날 때 어떤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은가’ 하는 이상(理想)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도 있고 제게도 그런 이상이 있습니다. 얼음처럼 몸이 굳어진 남편을 안아 들어 올리면 몸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런 몸을 가졌지만 낙관과 긍정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내 삶을 이끌어주는 안내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난치병 환자 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좀 더 웃으며 살라고 말하고 싶네요.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조금씩 편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재난을 맞을 수 있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자들도 모두 예고 없이 당한 사람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병을 앓고 있든, 아니든 인간은 다 약한 존재가 아닐까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고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말을 받았습니다. 

    “내가 몸이 아프다 보니 장애를 가진 분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느 날 앞을 완전히 못 보는 시각 장애인과 길을 걸었어요. 갑자기 이분이 ‘코스모스가 너무 예쁘다’고 말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정말 눈앞에 코스모스가 있었거든요. ‘어떻게 볼 수 있느냐’ 물었더니 ‘오감으로 다 느낀다’ 하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을 자기 잣대로만 평가하지요.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일 수 있는데 겉모습만 보고 낮춰본다든지 무시한다든지 어떤 카테고리에 묶어두고 보는 거지요. 나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겪다 보니 모든 사람의 삶이 그 자체로 위대해 보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 저 밑바닥에서 나오는 그의 언어들은 그 어떤 종교인의 말보다 더 마음을 울렸습니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생각하며

    정만용 씨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늦추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인다. 그에게 운동은 생존을 위한 사투나 다름없다.  산책길에 밝게 웃는 두 사람.

    정만용 씨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늦추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인다. 그에게 운동은 생존을 위한 사투나 다름없다. 산책길에 밝게 웃는 두 사람.

    그는 진단을 받은 이후 투병 사실을 주위에 적극적으로 알렸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거죠? 

    “감출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죄도 아니고 말이죠. 그렇다고 일부러 알리려 했던 건 아닙니다. 제가 병에 걸려보니 저처럼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보다 상태가 훨씬 좋은데도 부정적이고 비참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힘을 내시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한테도 ‘파킨슨병 환자라고 당신들하고 다른 것은 별로 없다, 다만 더 느리고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다르다’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었어요.” 

    -그 몸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진단 초기보다 상태가 많이 나아졌어요. 글씨도 쓸 수 있게 되고,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설 수도 있게 됐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마라톤에 한번 도전해 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내가 어떻게?’ 하다가 ‘나라고 왜 못 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표가 생기니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마라톤이 열린 2018년 10월은 엄청나게 추웠습니다. 일반인도 포기자가 나올 정도였어요.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갔는데 출발이라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출발선에 겨우 섰는데 막상 스타트 신호가 떨어지니까 거짓말처럼 발이 땅에서 떨어지더군요.” 

    -5시간 48분 만에 완주했더군요. 

    “아내의 힘이 컸습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 깃발을 흔드는 사람보다 그걸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는 말이 있지요. 아내는 모든 짐을 등에 메고 옆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내가 힘들어할 때는 몸을 잡아주며 ‘뛰어~’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서로 울면서 같이 뛰었습니다.”

    마라톤 완주 후 저체온증으로 목숨 잃을 뻔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뛰고 있는 정만용 씨.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뛰고 있는 정만용 씨.

    부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완주 직후 심한 저체온증으로 인해 목숨이 위험한 상황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한 달간 매일 20㎞ 넘게 걷는 국토대장정을 시작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병을 얻고 나서 이대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남은 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대부분 숨어 삽니다. 병을 감추다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집안 전체가 어두워집니다. 골방에 있는 환우들을 밖으로 불러내 하루라도 밝은 햇빛을 보게 하고 싶어요. 

    물 위를 걷는 게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게 기적입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하루만이라도 세상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지요. 걷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라도 걸을 수 있기를, 말 못 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한 마디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간절하게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고 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가요.”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나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움직이지 못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돼 고립될 수 있겠구나,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이죠. 약 기운이 떨어지면 몸의 균형이 깨져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보통 사람에게 옷깃만 스치는 정도의 자극이 제겐 엄청난 충격이 됩니다. 제 마음 상태도 늘 천국과 지옥을 오갑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면서 아내에게 폐만 끼치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는 강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거짓이라고 느낄 때도 있고요.” 

    인터뷰 내내 밝던 그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습니다. 

    -우울해질 때도 많으시죠. 

    “우울해지기보다 진지해질 때가 많습니다. 마라톤을 하고 국토대장정을 하려는 것도 우울감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객기를 부리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순간순간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가 많습니다.” 

    -언제지요? 

    “샤워를 할 때 혈관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남자는 태어나 세 번만 운다는 말을 믿었던 사람인데 요즘은 지나가는 아이의 얼굴만 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요.” 

    인터뷰를 시작한지 세 시간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가고 목소리도 작아졌습니다. 처음엔 꼿꼿하게 앉아 있던 몸도 차츰 안으로 굽어져 스티븐 호킹 박사의 몸처럼 변해 갔습니다.

    어떤 땐 깊은 슬픔에 빠져 부둥켜안고 울어

    마지막으로 아내 박씨에게 “남편이 국토대장정을 한다는데 걱정되지 않느냐” 묻자 “네버(never)”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연습보다 본방이 더 강한 사람입니다(웃음). 지난 인생도 그랬지만 숱한 어려움을 헤쳐 나왔습니다. 한번 결정하면 마음먹은 대로 해내는 사람입니다. 절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부부는 약한 모습도 스스럼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땐 깊은 슬픔에 빠져 둘이 부둥켜안고 운다고도 했습니다. 병에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 맞서 이겨내며 행복과 긍정을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인간 정신의 고양이 어디까지 이르를 수 있는지 느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걸어 나오면서 멀쩡한 두 다리가 괜히 미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에게 한없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만용 씨가 참가하는 ‘위대한 여정 한반도 종단 걷기’ 행사는 난치병 극복을 위한 한중일 의료인 협력모임인 ‘한중일난치병극복의료인회(대표 이왕재 서울대 의대 교수)’가 주최한다. 파킨슨병을 비롯한 난치병 환자들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5월 2~28일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시작해 하루 평균 23㎞씩 한 달 동안 총 680㎞를 걸어 경기 파주시 임진강역까지 도착하는 일정이다. 비영리 사단법인 문화나눔단체 ‘사색의 향기(대표 이영준)’가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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