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정홍원 前국무총리 “文정부 제1업적은 나라 두 쪽 낸 거"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3-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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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은 불난 집… 현 정권,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해야

    • 마스크 하나 제대로 공급 못하는 정부, 기본책무를 버렸다

    • 대통령 내외 파안대소 ‘작태’…갑질하는 공직자의 전형

    • 상처 난 국민 가슴에 소금 뿌리는 대통령과 여당

    • 박 前대통령 재판은 죄형법정주의 어긋나

    • 국민의 종이 안방 차지하고 상전 행세

    • 곳곳에서 ‘살기 힘들다’ 절규 나오고 있어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홍원 전 총리가 2월 3일 유튜브 공개 질의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전임 국무총리가 현직 대통령을 향해 “반(反)헌법적”이라고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한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그는 무슨 생각을 갖고 공개 질의를 한 걸까. 그리고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3월 9일 서울 서초동에서 그를 만났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화가 많이 나 있는 듯 보였다. 인터뷰 내내 “어쩌다가, 어쩌다가…” 하는 한숨을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 3년 만에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느냐는 탄식이었다. 

    - 공개질의를 한 배경은? 

    “취임사를 듣고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려는가 하는 기대도 하면서 지켜봤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영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어 왜 이래, 왜 이래,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하다가 이래갖고는 엉망진창이 되겠다, 기록을 해놓아야겠다고 생각해 1년 전부터 자료 정리와 메모를 시작했다. 

    그런데 전혀 정상 궤도로 되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국민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지난해 10월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하도 이상하고 괴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 업데이트를 하다 보니 원고량이 하루가 다르게 많아졌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만 해도 처음엔 별것 아닌 걸로 한 줄 썼다가 나중에 원고지 한바닥이 됐다. 총 원고량이 A4용지 15장이던 게 21장까지 늘었다. 어떻게 이렇게 국정이 갈피를 잡지 못하나.” 



    - 코로나19라는 국가 재난 사태 와중이다.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정부 대응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가장 중요한 일은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불이 났다고 대통령이 어디어디에 소방호스를 대라며 진두지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태를 제일 잘 수습할 전문가 집단 중심으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청와대는 생색나는 일에는 날름 나섰다가 책임질 일이 생기면 쏙 들어가고 그 다음에 질병관리본부가 나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하니 누가 수장인지 알 수가 없다. 전염병은 진원지를 찾아내 차단하는 게 기본 중 기본이다.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걱정된다면 중국에 이해를 구하면 됐을 일이다. 지금 서둘러 차단하는 게 오히려 장기적으로 양국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설득했어야 했다. 중국도 일본이 중국인 입국을 차단한 것에 대해 이해한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이 마스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는데 모기가 들어오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뒤 모기채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다”

    3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로해도 모자랄 판에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며 2월 20일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을 초청한 ‘짜파구리’ 오찬 때 보여준 문 대통령 부부의 파안대소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 쓰던 정 전 총리 입에서 ‘작태’라는 격한 단어까지 나왔다. 

    “국민들이 감염병 공포에 질려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내외가 파안대소하는 ‘작태’를 보였다. 갑질하는 공직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책임감을 느끼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 대한 걱정도 하는 게 도리 아닌가. 이 정부 사람들은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다. 

    옛날 임금들은 괴질이 번지면 식음을 전폐하고 백성들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흉년이 들면 고통받는 국민들을 생각하며 먹는 걸 줄였다. 내가 총리로 일할 때 여수항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다. 방재작업 현장을 살피러 간 해양수산부 장관이 코를 막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돼 국민들 빈축을 샀다. 당시 야당이던 현재 민주당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고 빗발치는 공격을 했다. 

    해당 장관을 불러 물었더니 재채기가 나오려 해 코를 막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본의가 아니더라도 국민에게 비치는 자세가 잘못되면 민심이 떠나고 정부에 누가 되는 것이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대통령께 해임을 건의했다. 장관도 승복했다. 전임 해수부 장관과 현 보건복지부 장관 중 누가 더 물러나야 할 사람인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말해 자국민을 능멸하고 ‘겨울에는 모기가 없으니 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는 조롱 섞인 말로 국민들 쓰린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 현 정부 책임자들이다. 도무지 이해하려고 해도…. 어이가 없다. 정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허허, 참….”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혀를 끌끌 찼다.

    상처 난 국민 가슴에 소금 뿌린 ‘짜파구리’ 파티

    - 대통령 주변에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라는 말들도 나온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진실이 아닌 자료를 갖고 판단하면 거짓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민 생명을 이렇게 쉽게 다룬다는 건 정부의 기본 책무를 포기한 것이다. 이번 일이 끝난 뒤에라도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여권에서는 ‘대구 경북 손절’ 발언까지 나왔다. 

    “이 정부와 여당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뱉는 말이 국민들 가슴에 어떤 뜻으로 다가가고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판단하는 능력이 이렇게도 없는가. 이건 이념, 진영 문제도 아니다.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불씨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꺼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하는데 섣불리 ‘종식’을 운운했다. ‘이전 정부와는 비교가 안 되게 대처를 잘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수준이 너무 낮다.” 

    - 어떻게 공개 질의할 생각을 했나. 

    “내가 30년 검사로 생활했고 40년 가까이 국록을 먹은 사람이다. 나라가 어려워지는 걸 보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강하게 들었다. 공개 질의를 해서 대통령이 뭐라고 하는지 답을 꼭 듣고 싶었다. 반(反)자유주의, 반(反)민주적인 언사와 행동이 정말 본인 소신인지 어쩌다 그런 소리를 해본 건지 정말 알고 싶었다. 소신이라면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이 거기에 반(反)하는 사상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그런 대통령은 국민들이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해서도 안 된다.” 

    -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들었다.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2월 중순까지만 집계해도 160만 뷰가 넘었다고 들었다. 말은 못하면서 속으로 끙끙 속앓이를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 타이밍 같은 것을 생각했나. 

    “아니다. 설 명절 직전 발표해 명절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화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내용이 계속 추가되면서 설 지난 후 발표하게 됐다. 방송 시간도 처음엔 20여 분 생각했는데 38분이나 됐다. 그런데도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헌법 66조가 정한 대통령의 책무 네 가지

    - 그게 뭔가. 

    “헌법 제66조에서 정한 대통령 책무가 네 가지다.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 헌법 준수가 그것이다. 문 대통령이 어떤 것을 위반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말하고 싶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우리를 변방이라는 의미의 ‘주변 국가’로 칭하고 북에 가서는 남측 대통령이라고 한 건 명백히 국가의 독립을 저해하는 발언이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헌법상 유일 합법 정부를 남측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이 나라를 어떻게 보고 있다는 건가. 생각할수록 암담하고 암울하다.” 

    - 사법부 흔들기가 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산시장 선거는 재판이 진행 중이라 말하기 조심스럽다.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다. 검찰도 헌법이 정한 준(準)사법기관이다. 검찰은 중립성을 최대한 지켜야 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다. 수사 중이라거나 재판 중이라고 하면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고 일단은 판단을 존중하는 게 관행이었고 통례였다. 현 정부는 어떤가. 대통령이 수사 지시를 하고 있고, 재판에서도 공정성을 의심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조국 전 장관한테 마음의 빚이 있다’라고 한 대통령 발언은 판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다. 이러면 국민들은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하소연할 데가 없어진다. 

    간절히 바라건대 검찰도 엄정 중립의 자세로 가야 한다. 대통령 지시에 좌우되면 검찰도 망하는 길이다. 법원도 국민이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살면 얼마나 사나. 그 판사 정말 소신이 있었다는 평가를 원하는지, 정권 입맛에 따라 판결했던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는지 깊이 고뇌해야 한다.”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공포의 수사처다. 거듭 말하지만 검찰은 헌법에서 정한 준사법기관이다. 이런 기관을 지휘·감독하고 정보와 권한을 빼앗고 수사를 중단시키는 또 다른 기구를 창설하는 것은 헌법 개정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만들려 한 것은 자기 집단을 보호하고 반대 집단에 철퇴를 가하는 데 쓰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다음 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면 공수처를 폐지해야 한다.”

    그의 어투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했고 답변은 핵심을 피해가는 법이 없었다.

    박근혜 재판 죄형법정주의 어긋나

    - 탄핵 사태 와중인 2016년 11월에도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광화문광장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정국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혼란과 긴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TV를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했다. 종편에 나온 사람들이 마치 박 전 대통령을 무뇌아처럼, 아무 판단도 못 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하는데 이건 아니지 싶었다. 내가 2년여 겪어온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언론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의혹들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하며 마치 박 전 대통령이 최서원(최순실) 씨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몰아갔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11월 16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 당시 ‘마녀 사냥’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렇다. 대통령이라고 죄를 지었는데도 처벌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대통령이라고 해서 확정되지도, 밝혀지지도 않은 사안을 갖고 탄핵 운운하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또 증거에 의해 명백히 밝혀진 진실에 범법이 있다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감정에 치우쳐 주관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내게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지식인이 옳은 이야기를 했다고 지지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사태는 가라앉지 않았다.” 

    - 재판이 진행되는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박 전 대통령은 핏줄인 동생들까지 멀리한 분이다. 특정인의 이익을 도모하고 사리사욕을 채워주기 위해 행동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위의 일부는 국민들에게 오해 내지 실망을 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결과를 낳게 된 데 대해서는 깊이 뉘우쳐야 한다고 본다.” 

    - 재판 과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나. 

    “재판에 대해 내가 뭐라 하는 건 적절치 않다. 하지만 일부분에서는 죄형법정주의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형법이 정한 죄형법정주의란 함부로 죄를 뒤집어씌우고 사실이 아닌 해석을 통해 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엄격하고 명확하게 죄를 적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직권남용이라고 할 때 직권이 뭐냐, 남용이 뭐냐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면 안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직권남용죄가 거의 적용이 안 된 거다. 이 정부 들어서 적폐청산이라는 명분하에 직권남용을 마구 적용했는데 최근 들어 좁게 해석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그게 당연한 거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경제공동체라고 하는데 그것도 참 우스운 이론이다. (기자를 가리키며) 우리 둘이 경제공동체니까 당신이 뇌물 받은 게 내가 받은 거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게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거다. 청탁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리도 맞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 본인은 굉장히 억울할 것이다. 

    내가 그분 성격을 안다. 돈 받은 것도 없는데. 내 수중에 들어온 것도 없는데 뇌물이라니 다 무죄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물론 아직까지 최종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까지 나온 결론에 매우 실망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법원이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엄격히 살려 판단을 잘해 주길 바란다.”

    원칙주의자 박근혜

    - 3월 4일 공개된 박 전 대통령 옥중 편지를 보고 느낀 점은. 

    “대의(大義)에 충실하기에 소의에 집착해 행동할 분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신 처지에서 얼마나 할 말이 많겠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갇혀 있는 몸이 됐으니 이런 상황을 승복한다는 게 참으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억울함, 실망과 분노를 모두 가슴에 묻고 내면으로 갈무리한 뒤 오로지 나라 살리는 데 온 힘을 집중해 정권 심판에 힘을 쏟아달라는 메시지를 냈다. 여러 경로로 내가 이야기한 것과 같은 뜻이라서 환영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역시 내가 보아오던 그런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원칙주의자였다. 그분이 제일 비판을 많이 받은 게 ‘불통’이란 건데 나도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많이 충고했다. ‘기본적인 지지층이 있기 때문에 소통만 잘하면 지지도가 더 높아질 것이고 국정운영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장관들 만나는 장면도 언론에 노출하면 불통 비판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총리가 대통령하고 의견 충돌이 있는 것처럼 비치는 걸 굉장히 경계했기 때문에 최대한 뒤에서 국민 의사를 전하려 노력했다. 남들 보지 않게 작성한 민심 동향을 읽어보시라고 전하기도 했다.” 

    - 그렇게 조언하면 좀 바뀌었나. 

    “박 전 대통령 왈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뭘 하고 싶지는 않다’더라. 정무 감각이 나보다 뛰어난 분인데 그 점(소통)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고집스러웠는지 아쉽다. 원칙주의적인 사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만난 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변호인이 돼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인 2016년 12월 12일 오전 10시 만났다. 그의 어려운 처지를 돕고 혼돈스러운 나라 상황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컸지만 최소한의 법률보조 인력도 없었던 상황이라 정중히 사양했다. 그날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때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한 게 지금도 큰 멍에로 남아 있다.” 

    - 현직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면서 탄핵으로 마무리된 전임 정부 총리라는 자책감은 없었나.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며) 국민들이 잘 아시겠지만 2014년 4월 세월호 사태가 터졌을 때 물러나기를 강력히 원했고 관저에서 짐까지 빼서 사저로 옮겼다. 그런데 문창극 안대희 후보 두 사람이 청문 과정에서 낙마하는 바람에 마음대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서실장이 두 번이나 총리 공관을 찾아와 대통령 뜻이라면서 유임을 간청했지만 완강히 거절했다. 박 전 대통령이 만나자 해서 청와대로 갔더니 ‘국가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혼자만 생각해서 되느냐’ 고 했다. 결국 유임을 받아들였다. 그해 연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기분으로 새로 출발해야 한다고 극구 요청해 물러나게 됐다. 박 전 대통령도 ‘이제 놓아 드릴게요’ 하더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지는 자세로 일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많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 정부의 제1업적(?)은 나라 두 쪽 낸 거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 다시 현 정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정부의 문제는 뭐라고 보나. 무능인가, 이념인가, 실수인가 

    “처음엔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갈수록 고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주 52시간, 탈(脫)원전 정책 등등 아니다 싶으면 깨닫고 바꾸는 게 상례다. 그런데 바꾸지 않는 건 실수가 아니라 고의에 가까운 파괴 행위로밖에 안 보인다. 개탄스럽다.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짊어진 사람으로서 미래의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5년이 지나고 난 뒤 역사가 어떻게 나를 기록할 것인가,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그런데 문 대통령에게선 그런 무거운 소명의식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이 정부가 지금까지 잘한 게 뭐가 있나. 오죽하면 하나 내놔보라는 절규가 나오겠는가. 딱 하나 꼽으라면 나라를 두 쪽 낸 건데 이걸 업적이라 할 수 있나.” 

    -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은 그가 후보 시절부터 이미 공약한 것들이다. ‘문재인’을 그렇게 몰랐나. 

    “검증이 안 된 채로 촛불 덕분에 대통령이 됐는데…. 촛불도 그렇다. 대통령이라면 촛불이 아니라 헌법에 의해 당선됐다고 말해야 한다. 촛불을 강조하는 건 촛불을 헌법 위에 올려놓겠다는 거다. 이러면 외국 가서도 대접을 못 받는다. 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집권해 통치권을 행사하는 지도자는 위험인물이다.” 

    - 보수 우파가 이렇게 허약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반성할 점이 많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따뜻한 사회를 이루는 게 보수의 가치인데 이런 걸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 왜 그랬을까. 

    “사심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다가간다. 내가 2012년 1월 새누리당 19대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을 했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단독 면담하면서 ‘당선 위주 공천을 하겠다’고 했고, 박 위원장은 ‘당연히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사심 없이만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거의 모든 언론이 100석을 얻기 어렵다는 보도를 할 만큼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152석이 됐다. 예상을 뛰어넘은 압승이었다. 60% 이상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 전 대통령 덕분이었지만 30%는 공천에 있었다. 그 모든 게 사심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다음에 국회의원 한 자리라도 얻겠다, 뭘 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면 언젠가 그 마음이 국민 앞에서 삐져나온다. 나는 선거가 끝난 직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새누리당 당사를 떠났다.” 

    - 그렇지 않아도 살기가 어려운데 코로나 위기 때문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이번에 공개 질의 방송을 본 사람 수가 예상외로 너무 많아 놀랐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오는 반응을 보니 말도 못하고 숨을 헐떡이는 사람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민생 현장은 절규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더구나 지도자가 나랏돈을 자기 쌈짓돈처럼 쓰고 있는데 이건 아니지 않은가. 나라가 거덜이 나면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불이 난 집이나 마찬가지다. 불부터 꺼야지, 불이 왜 났고 누구 때문에 났고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다. 이번 선거는 불 끄는 게 먼저인 선거다. 이게 민심으로 곧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돼야 한다. 국민들이 제대로 판단하리라 믿는다.”

    곳곳에서 ‘살기 힘들다’ 절규

    그는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구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공산주의가 왜 태어났고 왜 망했으며 자유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가 토대가 돼야 한다. 둘째는 대한민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 세계경제가 반세기동안 6.6배 성장했는데 우리는 350배 성장했다. 미국의 어떤 기자가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로켓처럼 치솟아 올랐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태어난 생일조차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어떻게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고 싶겠는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나라인지를 안다면 미래 세대에 빚을 넘겨주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애국심이 절로 생길 것이다. 셋째. 대통령은 그릇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적(政敵)을 끌어안은 링컨, 25년간 감옥생활을 한 만델라가 가진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에 또다시 보복의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다.” 

    - 지도자감이 안 보인다. 

    “찾으면 많다.” 

    “염두에 둔 누구라도 있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냥 “많이 있다”고만 답했다. 

    -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도 현 정부 지지층이 굳건하다. 

    “여론조사 공정성을 신뢰하지 못한다.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19대 때도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이 예상한 결과와는 반대로 나왔다. 그때뿐 아니라 많은 경우 그랬다.” 


    종이 안방 차지하고 상전 행세… 이대로는 안 된다

    - 여당 쪽에선 선거 연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나도 뉴스를 통해서 듣고 있다. 한마디로 너무 무책임한 발상이다. 한 달 이상 선거가 남았는데 그때까지도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키지 않겠다는 말인가. 국민들이 죽어가는 사태를 계속 끌고 가겠다는 얘기냐고 묻고 싶다. 설령 그런 말이 나오더라도 제대로 된 정부나 여당이라면 ‘총선 때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되게 만들지 않겠다, 모든 노력을 다해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 민심이 하도 흉흉하다 보니 부정선거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이구동성으로 부정선거 우려를 표명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전투표 등에서 투·개표 부정을 할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감시하는 사람들이 여야 간에 다 있기 때문에 이들의 눈을 속여가면서 투·개표 부정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철저히 감시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가 있으면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이의 제기도 하고 고발도 해야 한다. 

    내가 걱정하는 건 드루킹 사건이나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같은 일이다. 여론을 조작하고 후보를 매수하고 상대 후보를 수사해 흠집을 내고 나랏돈으로 선심을 써서 매표 행위를 하는 건 적발이 쉽지 않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절대적으로 야당이 불리하다. 국민들이 감시의 눈을 더 번득이고 야당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 총리까지 지낸 분이 현직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한 건 너무 센 발언 아니었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유민주 체제를 부정한다면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자를 공복(公僕)이라고 하지 않나. 종이 안방 차지하고 상전 행세하고 있는데 주인이 ‘예, 예’ 하고 내버려두어서야 되겠는가. 이번 선거는 단순한 총선이 아니다.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바로 서게 하고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가는 것을 막는 선거다. 국민들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 정권에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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