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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의 ‘해적 이야기’

해양의 역사는 해적의 역사 기원전 14C 소아시아 해적이 원조

고대 해양국가와 해적의 기원

  • 김석균│해양경찰청장 sukkyoon2001@yahoo.co.kr

해양의 역사는 해적의 역사 기원전 14C 소아시아 해적이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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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도 조선 등 해양기술이 뛰어났다. 그리스인들은 남이탈리아와 흑해 연안에도 다수 진출해 시칠리아 섬 등에서 먼저 자리 잡고 있던 페니키아인들을 쫓아냈다. 항해의 전통은 그리스인들보다 앞서 크레타인들이 갖고 있었다. 크레타 섬 사람들은 소아시아에서 이주해와 기원전 2000∼600년 사이에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미노스 문명이라 불리던 고도의 해양문화를 꽃피웠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쓴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포도 빛 바다’라고 표현한 에게 해에는 2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고대 에게 해 섬들은 이집트 및 오리엔트 문화권과 해상교역을 통해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일찍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고 그리스 문명의 중심부가 됐다.

그리스 최남단에 있는 크레타 섬은 고대로부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3개 대륙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번창하면서 미노스 문명을 꽃피웠다. 미노스 문명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서 유래됐다.

미노타우로스의 迷宮

페니키아 공주인 에우로페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흰 소로 변장해 그녀를 등에 태우고 크레타 섬으로 데려갔다. 미노스는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다.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위계승을 놓고 형제들과 분쟁을 벌일 때 신의 뜻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빌었다. 바닷속의 황소를 보내주면 그 황소를 신들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미노스는 포세이돈이 보내준 황소 덕분에 왕이 됐으나 아름답고 근사한 황소가 탐이 나 감춰두고 신들에게 바치지 않았다.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에로가 황소에게 욕정을 품게 했다. 파시에로는 나무로 만든 암소에 숨어들어가 황소와 관계를 맺었고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머리는 소이고 목 아래는 인간인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였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소’라는 뜻이다.

경악한 미노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유폐하기 위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도록 설계된 미궁(迷宮) 라비린토스를 짓게 하고 그곳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해마다 아테네에서 조공으로 보내온 7명의 소년과 소녀를 제물로 바쳤다.

아테네 사람들은 미노스에게 바쳐야 하는 조공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형제들과 아테네의 왕위를 다투던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공물로 바쳐진 아테네의 젊은 남녀를 구해올 것을 자청했다. 그는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의 만류에도 고통 받는 백성을 구하겠다고 결심하고 크레타로 향하면서 “무사히 구하면 돌아오는 배에 흰 돛을 달겠다”고 약속했다.

테세우스가 크레타에 도착해 미노스 왕을 만나는 자리에 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동석했다. 아리아드네는 늠름하고 아름다운 청년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칼 한 자루와 실타래를 줬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일러준 대로 실타래를 풀면서 미궁으로 들어간 후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타래를 따라 무사히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올 수 있었다. 실제로 20세기 초에 발굴된 크노소스 궁전은 방이 1300개나 되는 미궁이었다.

한편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은 아들 테세우스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살아서 돌아가면 배의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 달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항구로 들어왔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검은 돛을 단 배를 본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은 줄만 알고 절망해 바다로 몸을 던져버렸다. 이후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 즉 에게 해로 불리게 됐다.

해양민족의 출현

해양의 역사는 해적의 역사 기원전 14C 소아시아 해적이 원조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배를 타고 여러 섬을 정복하기 위해 돌아다니다 튀레노이 해적에게 붙잡히자 사나운 해적을 온순한 돌고래로 만들었다.

고대 해양활동의 주체는 지중해 연안에 산재한 해양 도시국가들이었다. 이들은 지중해와 에게 해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당시 지중해는 도시국가를 보호하는 방어막일 뿐만 아니라 세력 확대의 출구이면서 적국의 침입로였다. 이들 도시국가는 지중해에서정치·경제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해양민족(Sea Peoples)은 에게 해, 아드리아 해, 서부 지중해에서 이주해와 기원전 13세기 말부터 12세기 초에 걸쳐 이집트 제국을 침략한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해양민족은 진정한 의미에서 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배를 타고 이주하는 공격적인 부족이었으므로 크게 보면 해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해양민족은 동맹군을 형성해 이집트를 침략했으나 기원전 1186년 나일 강 삼각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해 궤멸했다. 그러나 기원전 1220년을 전후해 기원전 1186년에 궤멸할 때까지 동부 지중해를 완전히 지배했다. 해양민족은 해상무역을 시작했지만 동시에 해적행위도 했다. 그들은 선박과 해안도시를 습격하며 이집트를 제외한 모든 세력을 물리쳤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해양민족은 역사상 최초의 해적동맹이라 할 수 있다.

해양 도시국가들은 해양민족을 흡수함으로써 해양활동의 범위를 점차 확대했다. 해양민족은 독자적인 도시국가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지중해와 에게 해, 아프리카 북부 연안에 형성된 해양 도시국가들에 흡수됨으로써 이들의 해양 진출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해양 도시국가들은 해양으로 본격 진출하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리스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와 에게 해에 형성된 삼각 해양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에 위치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가장 먼저 해양 패권을 차지했다. 이후 아테네·미케네·로도스와 같은 그리스 반도의 해양 도시국가와 페니키아·크레타와 같은 지중해 연안의 해양 도시국가들은 독자적 해양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쟁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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