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택배사 효시이자 성공 모델

섬세하고 친절한 ‘빅브라운’ ups

  • 구미화 객원기자 | selfish999@naver.com

    입력2013-10-18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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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대 물류운송업체 UPS는 인간적인 서비스를 강조하면서도 최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해 직원과 고객의 편의를 도모한다. 이미 100년 전부터 직원 오너십이 뿌리내린 UPS는 기업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을 실천으로 보여준다.
    택배사 효시이자 성공 모델

    세계 최대 운송업체 ups 택배차량

    유치원 아이들이 ‘택배놀이’ 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엄마 아빠가 집 안 어디서 무얼 하든 상관 않고 등에 바짝 붙어서 “딩동” 소리를 낸 다음 “택배 왔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러고는 장난감에서부터 그림, 옷가지까지 눈에 띄는 대로 집어다 나른다. 갖고 싶은 장난감, 읽고 싶은 책, 때로는 먹고 싶은 것까지 ‘택배아저씨’(간혹 아줌마)가 가져다주니 아이들 눈엔 그들이 더없이 신기하고 대단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택배업계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가격 경쟁에 내몰린 업체들이 수수료를 계속 낮춤에 따라 택배기사들은 수입이 줄지 않게 하려면 전보다 더 많은 물품을 배송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물품 집하 및 배송만 하는 게 아니라 영업소에서 직접 물품을 분류해 차에 싣고 종일 운전하면서 배송날짜를 지켜야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아이들이 그리는 산타클로스 같은 여유로운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다.

    열악한 처우 탓에 고급인력이 외면하다보니 상당수의 신용불량자가 택배업계로 유입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을 요하지 않으니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점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패자부활전의 장이 되기엔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서비스 차별화를 위해 투자하기보다 택배기사들의 발품에만 기대어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려는 업계 경향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관련 업계는 매년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주기적으로 운영 시스템을 고도화한다”며 “차별화한 서비스 덕분에 택배 운임을 인상해도 이탈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국내 택배산업 발전 방향을 이야기할 때 자주 본보기로 드는 업체가 있다. 미국의 유나이티드파슬서비스(UPS)다. 세계 최대 물류운송업체인 UPS는 2011년 연매출 531억 달러(약 57조 원)를 기록했다. 3조50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되는 국내 택배 시장 전체의 16배가 넘는 규모다. 세계 220개 나라에서 직원 40여만 명이 연평균 40억 개의 물품을 처리하는 이 회사는 ‘최초의 사랑받는 기업’ ‘블루칼라가 꿈꾸는 평생직장’ 등으로 불린다.



    UPS는 지난 2월, 25년 이상 무사고 운전을 기록한 직원이 모두 6486명이라고 밝혔다. 올 초 1283명이 새로 추가된 결과다. 그중 364명은 35년 이상 무사고 경력을 자랑하며, 40년 이상인 직원도 40명이나 된다. 50년 동안 사고 없이 물품 500만 개를 배송한 택배차량 운전사 톰 캠프는 “UPS의 안전교육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정말 유용하다”고 말했다.

    한 직장에서 40, 50년. 그것도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택배업계에서 그런 장기 근무가 가능하다는 건 UPS의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UPS엔 정해진 퇴직 연령이 없다. 채용 공고가 나면 늘 지원자가 몰리고, 70대는 물론 80대 운전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하던 일을 계속한다. 1968년부터 영업소와 영업소를 오가는 간선차량(feeder)을 운전해온 한 직원은 11월 5일 입사 45주년을 앞두고 “여느 날처럼 아침에 출근해 늘 하던 일 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것으로 자축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거대 기업의 세심 서비스

    택배사 효시이자 성공 모델
    2011년 말 기준 UPS의 직원은 39만8300명. 경영 및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7만1000명을 제외한 32만7000명은 시급을 받는 현장 근로자다. 전 세계를 거점으로 쉼 없이 화물을 처리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그중 상당수가 파트타이머다. 그러나 UPS 정규직원 대부분이 파트타이머 출신이며, UPS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파트타이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UPS는 “차량기사 6명 중 5명이 훈련된 파트타이머인 덕분에 사고 발생 위험이 낮다”고 말한다. UPS 차량운전자의 경우 시간당 30달러 이상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초과근무수당 등을 포함하면 연 소득이 8만∼1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적으로 직원 수가 이렇게 많으면서 이 정도로 높은 급여를 주는 기업은 드물다.

    덕분에 갈색 유니폼에서 유래한 ‘빅브라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UPS 직원들에 대한 고객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UPS를 자주 이용하는 미국의 한 경제전문 저널리스트는 “도착 시간이 정확하고, 내가 찾기 편리하고 안전한 곳에 물건을 가져다주며, 나를 만나야 할 일이 있으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비슷한 규모의 다른 기업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세심한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UPS 창업자인 짐 케이시는 이미 100년 전에 고객 만족도를 높이려면 직원들을 잘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07년 친구와 함께 미국 시애틀에 ‘아메리칸 메신저’를 설립했을 때 그의 나이 19세였다. 대부분의 가정에 전화기나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라 이웃에 소식을 전하거나 물건 전달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전령 혹은 배달사환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자전거 2대와 전화기 1대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10년도 안 되어 자동차 4대와 오토바이 5대로 자산을 늘릴 수 있었다.

    11세 때부터 생계를 위해 배달사환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그는 고객들이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깔끔하고 공손하고 신속한 서비스. 그래서 그는 자전거 6대로만 영업할 때도 사환들에게 똑같은 모자를 맞춰 쓰도록 했다. 지금의 갈색 유니폼은 1919년 회사 이름을 UPS로 바꾼 다음부터 입기 시작했다. 더러움이 잘 타지 않고 겸손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갈색 제복을 통해 모든 직원이 군인이나 간호사처럼 고객의 신뢰를 얻기 바랐다.

    또한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신속하게 고객의 요구를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고객들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대기하는 직원이 없으면 절대 ‘지금 당장(right now)’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로 고객을 붙잡아놓고 실망감을 주는 대신 정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고객이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무엇보다 중시한 건 공손함이다. 그러나 강요된 공손함과 저절로 우러나오는 공손함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 점을 잘 아는 그는 초창기 자신이 익히 알고 있거나,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소개받아 품성을 믿을 수 있는 청년들만 채용했다.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니 부려먹기보다 다 같이 잘사는 방향으로 사업을 꾸려나갔다.

    좌회전 안 하는 UPS 차량

    사업 규모가 점점 커지자 인맥에만 의지해 직원을 채용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오너십(ownership)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집집마다 전화가 생기자 메시지 전달 업무를 없애는 대신 백화점에서 구매한 물품을 집까지 배달하는 것으로 서비스를 확장한 그는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직원을 각 구역에 고정적으로 배치했다. 직원들이 그 지역 사정에 밝고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여 전문성을 갖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회사에 이익이 나면 직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특히 1927년부터 직원들에게 주식을 제공해 진짜 ‘오너’ 자격을 갖게 했다. 케이시는 1955년 “오늘의 UPS를 만든 건 UPS 직원들의 오너십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UPS는 상장을 미뤄오다 1999년 기업공개(IPO)를 단행했지만, 전체 주식의 10%만 시장에 내놓았다. 상장기업이지만 주식의 대부분을 임직원이 갖고 있다는 얘기다.

    2011년 UPS 연간보고서에서 스콧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직원 오너십은 UPS가 자랑하는 오랜 전통이자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UPS에서는 기사나 화물처리 담당자도 관리직으로 승진하면 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있고, 파트너로 대우받는다. 데이비스 CEO는 “직원 오너십이 기업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여긴 창업자들의 뜻을 다양한 주식 제공 보상 프로그램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UPS는 직원 오너십을 통해 경영 면에서 혁신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혁신을 주도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지금도 널리 이용되는 컨베이어벨트는 1924년에 UPS가 처음 화물을 처리하는 데 도입했다. 여객운송만 하던 항공기에 화물운송을 시도한 것도 1929년 UPS가 최초다(항공화물운송은 1931년에 대공황 여파로 중단됐다가 1952년에야 재개됐다).

    UPS가 신기술 도입에 앞장선 데는 기술과 자동화의 가치에 일찌감치 눈뜬 케이시 창업주의 영향이 컸다. 그는 문제를 발견하면 문제를 잘게 쪼개 분석하고, 되도록 영향력이 큰 해법을 찾으려고 했다. 크고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분석해 들어가면 작고 단순해진다. 거기에 최신 기술까지 접목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고 봤다.

    UPS 운전자 가이드라인은 세분화와 기술 접목으로 탄생한 UPS의 명품으로 꼽힌다. 왼손으로 안전띠를 매면서 오른손으로는 시동을 거는 법에서부터, 차에서 내려 물건을 나를 땐 열쇠를 새끼손가락에 걸어야 불편을 덜 수 있다는 내용까지 운전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매뉴얼로 만들었다.

    도로 위에서 지체하거나 사고라도 나면 고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UPS는 꼼꼼한 운전자 가이드라인과 신병훈련소에 비유되는 혹독한 운전교육을 통해 모든 직원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운전하도록 훈련시킨다. UPS 직원들의 놀라운 안전 운전 기록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기관은 물론 여러 단체에서 UPS의 안전운전 교육을 지원받았을 정도다.

    UPS는 업무를 세분화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데서 더 나아가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현재 UPS 차량은 대부분 자동 시동 장치를 이용한다. 이젠 열쇠를 어느 손가락에 걸어둬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장 가능성이 높은 차량을 미리 골라내는 방법으로 돌발사고 가능성을 낮췄다. 운송트럭 부품에 센서를 달아 고장을 일으키기 전 발열과 떨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 자료를 기준으로 출발 전 모든 트럭의 상태를 점검해 고장 가능성을 진단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부품을 교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미국에서 UPS 로고를 단 차량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UPS 운전자 매뉴얼 중에 좌회전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UPS는 좌회전 신호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우회전만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회사 안에서 성장하는 인생”

    이 같은 운영 최적화 노력 덕분에 UPS는 어느 누구라도 필요한 교육을 받고 시스템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그래서 UPS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노력한 만큼의 성취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도전해보는 일터다.

    2003년 8월 영국 월간지 ‘HR매거진(HR Magazine)’에서 UPS의 기업 문화를 소개한 기사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크리스틴 비렐리는 남편이 다치고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UPS에서 파트타이머로 포장상품 검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최종학력이 고교 중퇴인 그녀는 UPS에 취업하기 전 16년 동안이나 일을 하지 않았다. UPS는 그녀가 고등학교 졸업 인정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금은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저는 UPS를 떠날 수가 없어요. UPS가 저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줬으니 제가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지요. UPS는 제 인생을 바로잡아줬고, 전 여전히 성장 중이죠. 제 인생은 회사 안에서 성장하는 거예요.”

    택배사 효시이자 성공 모델

    ups 물품 창고.

    케이시 창업주는 서비스를 “많은 작은 것들이 잘 처리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the sum of many little things done well)”이라고 정의했다. 공손한 서비스를 강조했던 그는 하나의 서비스 행위를 여러 단계로 세분화해 철저히 교육하고 첨단기술을 적절히 더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는 1985년 고인이 됐지만 그의 바람은 UPS가 뻗어나간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그에 대해 “단순히 기업을 만들어 경영한 게 아니라 문화를 건설했다”고 평한 바 있다.

    UPS는 1999년부터 ‘일하면서 배우기’ 프로그램을 본격화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2년 만에 2만 명 넘는 파트타임 직원이 대학에 진학했다. UPS가 첫해 파트타임 직원들의 학비와 책값으로 쓴 돈만 900만 달러가 넘는다.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은 직원들의 자기계발을 돕는 수준을 넘어 잠재적 관리자를 양성하는 기능을 한다. UPS 임원은 대부분 30년 이상 UPS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정규직 관리자(manager)의 40%가 20년 이상 근무자다. UPS의 직원 오너십이 ‘내부승진’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민첩하게 ‘무게중심’ 옮기기

    우리나라 주요 기업 중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몽고식품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외국에도 100년 이상 그 명성을 이어온 기업은 흔치 않다. 특히 최근 10년 사이 막강해 보였던 기업들이 부침을 거듭했다. 전문가들은 초일류라 불렸던 기업들이 몰락하는 건 금융위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역량 파괴적 변화(competence-destroying change)’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UPS가 100년 넘게 사업을 계속해온 비결은 시대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고 무게중심을 적절히 옮겨온 덕분이다. 각 가정에 전화기가 없는 상황을 이용해 시작한 초창기 사업은 집 전화기가 보편화하자 위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백화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대신 날라주는 일로 돌파구를 찾았다. 백화점 배송으로 재미를 보면서도, UPS는 새로운 시장 개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쇼핑 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교외에 넓은 주차장을 확보한 대형 쇼핑몰들이 등장하면서, 백화점 배송 물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UPS는 이미 1922년부터 한 주소지에서 다른 주소지로 물건을 배달해주는 일반 택배 서비스로 사업을 다각화한 덕분에 경쟁업체들과 달리 위기를 맞지 않았다.

    UPS는 이후 한 도시 내로 국한했던 택배 서비스 범위를 점차 넓혀갔다. 처음엔 워싱턴 주에서 캘리포니아 주로 남하하고, 다음엔 점차 동진해 뉴욕 진출을 목표로 했다. 주마다 각기 다른 법과 제도를 가진 미국에서 전국을 무대로 사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주 한 주 사업 영역을 넓혀 1975년에야 비로소 전국망이 완성됐다. UPS는 전국망이 완성되자 독일을 시작으로 해외사업에 눈을 돌렸다.

    UPS가 수십 년에 걸쳐 전국적 네트워크를 완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생 기업 페덱스가 ‘익일배송’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비스 범위 확대에 주력해온 UPS가 속도전에 맞닥뜨린 것이다. 페덱스의 도전을 통해 UPS는 육로 개척에 몰두하느라 놓친 더 큰 시장을 발견한다. 중요한 정보를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법률회사나 투자회사 등에서 익일배송 수요가 많다는 것, 그리고 배송을 요청한 고객은 자신의 물품이 어디서 어떤 상태로 있는지 궁금해 한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후 UPS는 오버나이트 배송 서비스와 함께 소화물과 서류에 대한 국제항공운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배송 조회 혹은 화물 추적 서비스가 지금은 당연시되지만, 1980~90년대만 해도 기술 개발에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고객의 요구가 있었기에 UPS는 해내고 말았다.

    UPS는 경기에 상관없이 매년 10억 달러 정도를 기술에 투자한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도, 경기가 어려워져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꾸준히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UPS는 최근 ‘My Choice’ 서비스를 시작했다. 화물 배송 조건을 수취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다. 중요한 택배가 오기로 한 날이면 종일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 고객의 불편함을 없애고, 편한 시간을 정하면 그 시간에 맞춰 택배가 도착하도록 한 것이다.

    업계 최초로 시도되는 이 서비스는 UPS가 그동안 축적한 기술의 결정체다. 미국 전역을 포괄하는 촘촘한 네트워크와 실시간 경로 최적화 프로그램 덕분에 운송기사 편의가 아닌 고객 편의에 맞춘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UPS는 일반 택배 서비스를 고급화하는 동시에 의료기기 배송 서비스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전 세계적으로 헬스케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선진국에서 개발되는 의료장비나 의약품에 대한 아시아, 남미 지역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 UPS는 온도와 습도는 물론 충격에 민감한 의료 관련 물품 배송을 전문화하기 위해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미국의 한 경제전문가는 UPS에 대해 “첨단과학과 기술, 알고리즘을 이용하지만, 본질은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들”이라며 “UPS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최종적으로 물건을 주고받는 건 사람과 사람이 한다. 첨단 기술로 편리하게 물건을 선별하고, 도로 위에 묶여 있는 시간을 줄이고, 주소지를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된다면 고객을 만나는 순간 배송회사 직원의 얼굴 표정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내 택배산업이 기피 업종이 아니라 선호 직업이 되는 길, UPS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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